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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절에서 살고 싶습니다.
ppku**** 조회수 16,534 작성일2014.04.16

 나이 32 남자입니다....

세상속에서 살기가 굉장히 힘드네요....

매일 죽을 생각을 합니다...

죽지도 못하면서 혼자 학대만 합니다...

어린시절부터 죽고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어여...

공장에서도 일하고 요양보호사로도 일했습니다.

노가다도 했구요....

세상에서 벗어나 절에서 살고 싶습니다...

절에서 숙식도 하고 일도 하면서 돈(많이안주셔도됩니다)벌수 있는 곳 없을까요....

나쁜 생각 안들게 절에서 일하면서 마음 닦으며 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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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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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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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모르면 삶이 힘들 수밖에 없고 길을 알면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먼저 자신에게 이익이 없는 생각은 떨쳐내어 버려야 합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은 자신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현실을 외면하게 만들기 때문에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를 않는 생각입니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를 않는 생각을 움켜쥐고 있을 필요가 없으며

이 생각은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다고 판단하여 떨쳐내어 버려야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우리들에게 마음이라고 알려진 내용은 업입니다

업을 닦는 행위를 두고서 마음을 닦는다고 이름을 합니다

세 가지의 업이 있는데 뜻의 업 언어의 업 몸의 업입니다

악한 뜻의 행위 언어의 행위 몸의 행위는 자신에게 괴로움을 가져다 주며

착한 뜻의 행위 언어의 행위 몸의 행위는 자신에게 즐거움을 가져다 주게 됩니다

이제 기쁨과 행복의 열쇠는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 뜻은 살아있는 이들은 모두 편안하고 행복하며 기뻐하기를 바래어 주고

언어는 진실하고 상냥하며 부드러우며

몸은 조금은 부족한 음식의 양에 만족을 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단체에서 생활을 합니다

이와 같은 뜻의 업 언어의 업 몸의 업을 실천하면 기쁨과 행복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되고

이와 같은 행위를 두고서 마음을 닦는다고 이름을 하며

이와 같은 행위를 실천하면 절 속에 있음과 다름이 없게 됩니다

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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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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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gb****
지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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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서 사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32살이면 적은 나이가 아닙니다.

공장에서도 일하시고 요양사도 하시고 노가도도 하셨다니

몸은 건강하신가 보네요.

그런데 죽겠다는 생각을 하세요.

개통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낯다는 말이 있지요.

죽음은 끝이 아니고 다른 몸을 받는 거에요.

자살을 하면 다른 몸을 받기 까지 중음신으로 떠돌아 다녀야 해요.

물론 절에 들어 가시면 노가다 보다느 힘들진 않겠지만

그래도 무척힘들 것입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들어 가지 않으면 실망할 수 잇습니다.

그럼 절에서 잘 살아 보세요. 

 

 

2014.04.16.

  • 출처

    절에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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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혜장철학관
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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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겸 칼럼]

 

 

나를 보는 3분

부처님도 병들어 돌아가셨습니다

 

[뉴시스]

  
입력 2014.04.15 10:54 
 

【서울=뉴시스】하도겸 박사의 ‘삶이야기 禪이야기’ <103>

잡초도 들꽃이 된다.

농사를 지어보면 비가 내려 하루 이틀 공칠 때가 많습니다.
장마철이라도 되면 매일 밭일을 못 하게 되기도 합니다.
비가 멎고 나서 들에 가보면 며칠도 안 돼 밭 전체가 온통 잡초뿐입니다.
이놈의 잡초는 아무리 뽑아도 언제 뽑았느냐는 듯 다시 쭉쭉 자랍니다.
웰빙시대가 돼 논밭에 함부로 제초제나 농약을 쓰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망상을 잡초처럼 뽑아버리나요?
아닙니다.
그냥 밟거나 짓누르지도 마세요.
아무리 그래도 잡초는 다시 자라납니다.
그러니 그냥 잘 지켜만 보세요.
내게 온 것은 모두 소중합니다.
그냥 놔두면 아름다운 들꽃이 됩니다.

농사를 지을 때 잡초에 덜 영향 받을 나무를 기르는 건 어떤가요?
스스로 나무가 되세요.
수행도 이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야 합니다.
잡초를 뽑는다고 망상이 뽑히지 않습니다.
잠시 정리된 듯 보일 뿐입니다.
딴짓하는 순간 잠시 방심하는 순간 온통 다시 망상으로 채워집니다.
망상이 뭔지 아시나요?
망상은 바로 마음의 상처에서 나오는 욕망의 찌꺼기로 만들어지는 거품입니다.
욕망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없애려고 하지 말고 내버려 두세요.
모두 수행의 자량이 되는 소중한 것입니다.
그걸 뽑아버리면 안 됩니다.
난초처럼 잘 보살피세요.
알고 보면 오리가 아니라 백조입니다.
그렇게 받아들이면 어느덧 아름다운 들꽃 즉 야생화가 돼 있습니다.
불교는 받아들임을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다 받아들이기 나름입니다.

수행자는 마음의 주인이 된 사람.

출근 퇴근 야근의 끝없는 반복이 이어집니다.
어쩌다 한 번은 회사 가기가 싫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불편하거나 아프기도 합니다.
이렇게 삶을 단조롭게 만든 것은 나라나 회사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산업화와 정보화의 발전에 따라 우리 사회는 너무나 빨리 인간들을 기계의 부품처럼 만들고 있습니다.
더는 정부나 대기업에 필요한 인간이 되기 위해 교육 전 과정을 취업 학원처럼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이 이런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죠?
그냥 오늘은 회사 가지 말까요?
학교 때려치우고 놀까요? 아닙니다.
그렇게 끝없이 반복하지만,
그 과정에서 하나씩 가치를 찾아서 고쳐 나가야 합니다.

김춘수의 시 ‘꽃’처럼 삶의 과정의 모든 것 하나하나에 다가가서 꽃이 되라고 해주세요.
잡초가 들꽃이 될 때,
진정한 사물과 사람의 본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공기를 느끼듯이 그에 대한 고마움도 나타납니다.
아름다운 가치의 부여.
생명까지 불어넣을 수 있는 건 바로 당신의 마음입니다.
그걸 아시면 됩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어느덧 사회도 조금씩 바뀌게 됩니다.
사회는 우리들의 집합체입니다.

부처님도 병들어 돌아가셨습니다.

누가 때리면 아픕니다.
근데 요즘은 가끔 웃음이 나와요.
“내가 아직도 아파하는구나.
통증을 느끼는구나!”
주변에 수행 조금 했다고 알량한 상심[자만심]은 많아서
마음공부 했다고 육신의 고통이 사라질 거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닙니다.
수행자도 아프고 치매도 걸리고 병에 걸리고 죽습니다.
그들의 숙세로부터의 또는 전생으로부터의 업이기 때문입니다.
인과응보[연기법]와 함께 생로병사는 인간이 비켜갈 수 없습니다.
비켜갔으면 하는 것은 수행을 모르는 자들의 헛된 바람과 희망입니다.
부처님도 병들어 돌아가셨습니다.
오히려 부처님 같은 수행자도 비켜갈 수 없음을 통해서 인생무상을 더욱 사무치게 공부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의 수행자나 선지식이 아파서 큰 병에 걸리고
치매에 걸려도 그걸 수행과 관련해서 의심하면 안 됩니다.
그로 인해 신심이 사라졌다고 한다면 당신에게는 원래부터 신심은 없었던 것일 수 있습니다.
오히려 생로병사와 인과응보를 이해하고 그분들이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더욱 분발하게 하려는 모습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유마경에 나오는 유마거사병도 그렇습니다.
중생이 아프기에 유마거사도 아픕니다.
유마거사가 아픈 게 아니라 중생이 고통받고 있는데도 유마거사가 평소에 자꾸 지적하고 혼낸다고
문수보살과 십대제자들이 문병을 안 가려고 합니다.
지적공사의 사장이 돼도 충분할 정도로 애정을 갖고 보살과 아라한들을 지도한
유마거사를 알기에 이들은 석가모니 부처님께 혼쭐이 납니다.
결국,
문병을 보낸 석가모니 부처님과 유마경의 뜻은 다른 게 아닙니다.
아라한이나 보살의 경지에 들어갔으면 더는 부처님 곁에만 있으려고 하지 말고
중생 곁으로 가서 보살행을 하란 뜻입니다.
유마거사에게 병문안하러 가라는 게 아니라 고통받는 중생 속으로 얼른 들어가라는 뜻입니다.
상구보리하화중생하라는 심우도의 입전수수가 그런 뜻입니다.
보살과 아라한들도 재가불자에게 가르침을 물었던 부처님 시절이 그립습니다.

아파도 나만 보세요.

사는 게 힘들죠!
아프죠!
괴롭죠!
고통스럽죠!
그런데 많이 아픈가요?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왜 아픈지는 아시고 계신가요?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의사선생님의 정확한 진단을 받으면서 왜 마음이 아프면 가만히 계시나요?
自殺률이 암으로 죽는 사람만큼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울한가요?
정말 마음이 아픈가요?
상처가 큰가요?
그렇다면 더 크게 아프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오직 자기 스스로 바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자신 내면의 변화,
아픔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어떻게 받아들이고 싶어하는지를 보세요.
그러는 과정에서
숨겨진 상처와 마음,
열등감,
소외감,
외로움.
두려움을 미리 살피세요.
이렇게 살펴간다면 어느덧 당신의 마음은 참으로 편해집니다.
이렇게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참 괜찮은 수행자입니다.
그래도 아프다면 정말 아픈 겁니다.
얼른 병원 가세요.

원수를 사랑하라.

마음도 이래저래 참 고통스럽죠.
근데 고통의 원인은 항상 남이죠?
내 탓이 아닌 남 탓을 찾아 항상 밖만 보는 자신의 모습을 지나치지 마세요.
항상 ‘
이뭣꼬’
화두를 잡고 계시기 바랍니다.
오직 자신의 내면만 바라보세요.
그렇게 고통이나 내면을 외면하지 말고 병이 들든,
배신을 당하든,
나를 힘들게 하는 그것들을 관심을 두고 바라보세요.
사랑해 보세요.
그런 고통이 있기에 수행이 늘어갑니다.
우리에게 시련은 이렇게 더 크기 위한 몸부림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런 시련을 주는 원수를 사랑하세요.
만약 미움과 증오로 스스로 마음을 저버린다면 수행은 항상 거기까지입니다.
한번 꺾이면 그 이상 못 큽니다.
마음은 나무와 같습니다.
쭉쭉 뻗어 나가야 할 가지 가운데 현재 큰 상처는 없는지 혹시 꺾인 게 없는지 점검하세요.
고통을 받아들이고 원수까지 사랑하는 게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교입니다.
하지만 진리 관계와 이해관계가 너무 다른 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해의 친구가 아닌 진리의 도반을 얼른 찾기 바랍니다.

※ 禪 칼럼니스트 하도겸 법사는 법륜사에서
매월 3주 일요일 일요법회(오전 11시)와
입보리행론강의(오후 1시),
매월 5주 일요일 일요 사찰순례 그리고 매주 목요명상마당(오후 7시)에서
자원봉사로 자신을 바로 보는 방법을 찾고 있다.
 
또 칼럼을 통해 사회와 종교계의 자성과 쇄신을 촉구하는 입장에서 화합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칼럼 내용 대부분은 제보되거나 인터뷰한 분의 글을 수정·보완했다.

 
www.hadogyeom.kr
dogyeom.ha@gmail.com

<저작권자ⓒ '한국언론 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Tour holic]

 山寺의 하룻밤,

기적을 빌어봅니다

기사입력 2014.04.18 15:55:10

최종수정 2014.04.18 16:28:33

     


     
    `신이시여,
    제가 부름 받을 때는 아무리 강력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내가 들어가서 어린아이를 구하게 하소서/
    나를 일찍 거두어 가시더라도 헛되지는 않게 하소서/
    그리고 내가 그의 내민 손을 잡게 하소서 -
    어느 소방관의 기도(스모키 린) -`

    1958년 스모키 린이라는 소방관이 쓴 시(詩)입니다.
    목숨 걸고 투입된 화재 진압 과정에서3명의 아이를 미처 구하지 못했고,
    그 죄책감에 쓴 글이라는군요.
    스모키 린의 마음이나,
    독자 여러분의 마음,
    아마도 지금은 같을 겁니다.
     
    마음 무거울 때,
    여행글 써야 하는 저 역시 죄송스럽습니다.
    그래서 이번주는 담담하게 마음 추스를 수 있는 곳으로 가 봅니다.
    희망,
    기적,
    그곳에서 다 함께 빌어봅시다.

     

     

    용문사 템플스테이

     
    단식 템플스테이 육지장사
    마음 무거울 때,
    템플스테이만 한 게 있을까.
    육지장사는 서울에서 지척이다.
    불광동으로 빠져 차로 20분만 달리면 끝.
    사찰은 담백하다.
    3만3000㎡에 달하는 절터 한복판에 대웅전이 놓여 있을 뿐이다.
    옥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양옆이 선재당과 수선당이다.

    이곳은 단식 템플스테이의 메카다.
    1박2일 체험형으로 간을 본 뒤,
    마음에 든다면 본격적으로 살과의 전쟁을 펼치면 된다.
    기자가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께.
    일정은 잔혹(?)했다.
    공양이라는 이름이 붙은 저녁 만찬.
    단식팀엔 사과ㆍ
    당근을 갈아만든 주스가 전부다.
    게다가 옆에선 스님들,
     쩝쩝대시며 연신 맛깔스러운 밥과 나물을 비벼 드신다.
    그러면서 쿡 던지는 한마디.
    "공양,
    정성을 들여 먹는 겁니다.
    벌컥 한 번에 마시는 게 절대 아닙니다.
    꼭꼭,
    씹어 드십시오.
    처사님.
    한 숟가락에 자기 나이만큼씩,
    아시겠지요?"

    열이 머리 끝까지 오를 때쯤,
    이어지는 순서가 차담이다.
    글자 그대로 스님과 담소를 나누며 차를 마신다.
    이게,
    기가 막힌다.
    힐링 템플스테이의 하이라이트 수준이다.

    조곤조곤,
    지원 큰스님(주지)의 말이 이어진다.
    "삶이 무겁다"고 하자,
    지그시 웃으신다.
    `그저,
    놓아라,
    다 보내주라`는 의미일 터.

    그러면서 묻는다.
    팔만대장경,
    그걸 딱 다섯 글자로 줄이면 뭔지 아냐고.
    잠깐 뜸을 들이시더니 답을 준다.
    `일체유심조`라고.
    참으로 맞는 말이다.
    모든 종교의 교리라는 게 그런 거다.
    결국 자신의 몫이요,
    마음에 달린 거다.


    108배ㆍ포행하며 마음 다스리기

     
     
    잠들기 전엔 쑥뜸 체험이 있다.
    이게 명불허전이다.
    단전(배꼽 아래 한 뼘 지점)에 쑥뜸 단지를 올려놓고 지지는 시간이다.
    기혈 순환을 도와 오장육부와 내분비선의 기능을 강화해 준단다.
    체온도 1도 정도 높아진다.
    면역성이 가장 강해진다는,
    아기들의 체온,
    37도 그 마법의 온도다.

    잔혹한 하루 일정을 끝내고 잠드는 시각은 오후 9시.
    기상은 다음날 새벽 4시다.

    4시 30분부터 고행이 시작된다.
    새벽 108배.
    옥계단을 올라 대웅전으로 향하는 길,
    안개가 자욱하다.
    마치 세상이 꾸는 꿈 같다.

    텅 빈 대웅전.
    함께 체험에 나선 처자들과 경쟁하듯 108배를 시작했다.
    1배,
    2배,
    진행되는 동안 스피커에선 `
    잠언`들이 귓전을 때린다.
    숨이 가빠왔다.
    다리가 욱신거렸다.
    순간 잡념이 솟는다.
    왜,
    죄 없는 그 많은 학생들이,
    여행객들이 어처구니없는 진도 앞바다 여객선 사고로 그렇게 세상을 떠야 하는지.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오전 간단한 공양을 마치면 마지막 코스,
    포행(布行)이다.
    천천히 걸으면서 선(禪)을 행한다는 말이다.
    포행 뒤엔 사찰 구석구석을 돌며,
    하루를 정리한다.

    3개의 지장보살 동상이 보인다.
    그 표정이 포커페이스다.
    마치 이런 투.
    `붙잡고 있어 봐야,
    소용없다.
    그렇게 집착하면 뭘하니.
    모든 건 그저,
    마음에 달린 거다.
    이젠 다 놓아줘라.`

    ▶▶템플스테이 가려면
    불교문화사업단에서 템플스테이(www.templestay.com)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마음에 드는 곳 콕 찍으면 된다.

    이곳이 힐링 템플스테이 명소
     
      
    1. 원조 템플스테이 미황사
    템플스테이가 처음 시작된 게 2002년 한ㆍ일 월드컵 때다.
    그때 처음으로 산문을 개방한 곳이 해남의 미황사다.
    원조 템플스테이인 셈.
    특히 연중 수시로 열리는
    `참사람의 향기`는 힐링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프로그램.
    풍광도 끝내준다.
    미황사가 자리 잡은 해남 달마산은 `남도의 금강산`으로 불린다.
    (061)533-3521, www.mihwangsa.com

    2. 숲길 힐링 월정사
    오대산 자락에 위치한 월정사는 `
    전나무 숲길`로 유명한 관광 포인트다.
    하늘 끝 닿을 듯 솟구쳐 오른 전나무 숲길을 따라 한 걸음씩 천천히 걷다 보면,
    절로 힐링이 된다.
    3주간 이어지는 이곳 단기출가학교는 경쟁률이 5대1에 달할 정도로 인기 있는 힐링 코스.
    (033)339-6606, www.woljeongsa.org

    3. 최고의 몸값 나무 있는 양평 용문사
    전국에 용문사 이름의 사찰은 3개다.
    남해,
    경상도,
    그리고 이곳이다.
    지형상 용의 머리에 해당하니 영험함 또한 으뜸일 터.
    이곳 용문사는 913년(신라 신덕왕 2년) 대경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1조6000억원대의 대한민국 최고 몸값 은행나무도 있다.
    천연기념물 제30호.
    가을엔 이 열매로 휴대폰 줄을 만드는 체험프로그램도 있으니 꼭 한번 가 보실 것.
    (031)775-5797, www.yongmunsa.org

    4. 찜질방 있는 남양주 묘적사
    묘적사는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특히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을 위해 지은 앙증맞은 찜질방은 인기 최고.
    (031)577-1761

    5. 효의 본찰 화성 용주사
    정조의 애달픈 효심이 담긴 절이다.
    비운에 명을 달리한 친아버지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시고 애타는 사부곡을 불렀던 원찰이어서다.
    그런 정조의 효심을 본받아 `
    부모님의 은혜`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템플스테이를 운영 중이다.
    말썽꾸러기 아이들에겐 딱인 코스.
    (031)235-6886, www.yongjoosa.or.kr

    [신익수 여행·레저전문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

     

     

     

    [세상 속으로] 

    월정사 단기출가 1박2일 동행기

     
    [중앙일보]
     
     
    입력 2014.01.25 00:18
    수정 2014.01.25 01:39
     
     

    1을 버리면 1을 얻고 100을 버리면 100을 얻는다


    발우공양 전에 엎드려 절하고 있는 단기출가학교 한 참가자.
    발우에 밥·국·반찬을 담아 먹는 걸 발우공양이라 한다.
    밥알 한 톨 남기면 안 되고 헹군 물까지 마셔야 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당연한 일이란 없는 거였다.
    서울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나면 당연히 공기업에 입사하는 걸로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시험에 번번이 떨어졌다.
    행정고시에도 실패했다.
    문득 ‘
    공기업에 입사해서 뭘 하려는 거지’라는 의문이 생겼다.
     
    “남들이 좋다면 나도 좋은 줄 알았죠.
    남의 생각에 날 맞추느라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몰랐어요.”

    그녀가 강원도 평창군 월정사 단기출가 학교에 들어온 이유다.
    “학벌이나 직업이 나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생각했죠.
    그게 없는 나는 가치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에 힘들었어요.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살아왔는데,
    이번에는 부모님과 친구들을 떠나 진짜 나와 내가 추구할 내 삶의 가치를 찾고 싶어요.”

    출가를 하며 그녀(25)가 받은 새 이름(법명)은 ‘심전(心田)’이다.
    49명의 행자(학생) 모두 법명을 부여받았다.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계층과 연령의 남녀노소지만 이곳에선 모두 새로 태어나 0세가 된 친구,
    도반(道伴)들이다.
    외국계 회사 최고경영자(CEO)부터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중3 여학생까지 다양한 이들이 모였다.

    행자들은 한 달간 출가 승려의 생활을 하며 자신을 돌아본다.
    세상과는 완전히 단절된다. 전화를 사용할 수 없고,
    외출·
    면회·
    음주·
    흡연도 안 된다.
    TV·신문·잡지도 못 본다.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 108배로 하루를 시작한다.
    예불,
    공양(식사),
    참선,
    염불,
    청소,
    산행,
    강의 등의 하루 일정을 마친 후엔 일기를 쓰고 밤 9시 잠자리에 든다.
    남자들은 모두 삭발,
    여자들은 원하는 사람만 삭발을 한다.

    밥(공양)을 먹을 땐 밥알 한 톨,
    고춧가루 한 조각도 남기면 안 된다.
     
    밥그릇(발우)을 물로 헹궈서 그 물까지 모두 마셔야 한다.
    남보다 빨리 먹거나 늦게 먹어도 안 된다.
     
    세탁도,
    세면도 정해진 시간에 공동으로 하며,
    세탁기는 사용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잘못도 함께 참회해야 한다.
     
    참회는 108배일 때도 있고,
    500배나 700배일 때도 있다.


    "내 돈 내고 대체 왜 이 고생” 울컥하기도
    맨 위부터 도량에 걸려 있는 두 단어 묵언(默言)과 하심(下心),
    발우에 마실 물을 받고 있는 한 행자,
    한 줄로 서서 전나무 숲을 산책하는 행자들의 뒷모습,
    9층 석탑 형태로 배열된 금강경 5900여자를 쓰고 있는 모습.
    한 글자 쓸 때마다 한 번씩 절을 해야 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세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절을 한 적이 있었어요.
    너무 힘들고 지치고 ‘대체 왜 이러고 있는 건가’
    짜증이 났죠.
    그런데 스님이 웃으라고 하더군요.
    그 말에 옆자리 도반이 환하게 웃는 거예요.
    그때 깨달았죠.
    힘들어서 짜증이 난 게 아니란 걸요.
    인식을 바꾸면 마음도 바뀐다는 걸 알았죠.”

    묵언(默言)과 하심(下心)은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수행 방법이다.
    스님의 질문에 답할 때와 몸이 아플 때를 제외하곤 말을 해선 안 된다.
     
    기자가 월정사를 찾은 18일 포행(布行·산책) 중이던 한 행자는 “
    묵언을 통해 말이란 것이 얼마나 불필요한 것인지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현직 교사로 올해 교감 승진을 앞두고 있다.
     
    “다른 이를 위해 조언을 한다지만,
    그 조언이라는 게 오히려 바른 길을 찾는 걸 방해하더군요.
    다시 세상에 나가면 꼭 필요한 말만 하려고 합니다.”

    단기 출가 학교의 실무를 총괄하는
    법철 스님은 묵언이란 ‘마음속에 시시비비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하심은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뜻이다.
    지금까지의 몸과 마음이 익숙했던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
     
    타인을 이런저런 기준으로 판단하거나,
    뭔가를 욕심내거나 시기·질투 등의 감정을 내지 않는 것이다.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은 이를 ‘마음의 빈자리’를 찾는 과정이라고 했다.

    “순간순간 일어나는
    분노,
    욕심,
    질투 같은 감정을 밤하늘의 별이라고 해봅시다.
     
    그 별들이 반짝이는 걸 무심히 바라보는 그 자리가 바로 마음의 빈자리입니다.
     
    밤하늘엔 수많은 별들이 있지만 모두 아름답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욕망과 분노 같은 감정들도 밤하늘의 별들과 같습니다.
     
    그런 감정이 일어났음을 알아차리고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빈자리를 찾아야 합니다.
    때론 어두운 세상을 고요히 비추는 달에 비유하기도 하죠.
    시비와 판단을 벗어난 ‘마음의 달’을 띄우는 것이 수행의 과정입니다.”

    쉽지 않은 육체적 고행은 지금까지 당연시해온 몸의 습관을 버리는 과정이다.

    선각인(禪覺印·53, 이하 법명)은 “
    내 맘대로 먹고 자고 화장실 가고 하는 일상의 그 모든 일들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커피 한잔,
    과일 한 조각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고,
    다리 한번 제대로 펴고 있을 수 없는 생활을 통해 자신이 당연하게 누리고 있던 모든 것들에
    감사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곳에 오기 전 그녀는 사랑을 잃고, 돈도 없는 막막한 상황이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 남편과 함께 호주로 이민 갔던 그녀는 풍족한 삶을 누렸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평탄하지 않았다.
    결국 아이들이 대학에 입학할 때를 기다렸다가 이혼했다.
     
    그 후 한국에 돌아와 옷 가게를 하며 아이들 학비를 댔다.
     
    하지만 경기가 나빠지면서 가게 문을 닫아야 했고,
    수중엔 한 푼도 남지 않았다.
    헤어졌던 남편과 잠시 재결합했지만 결국 더 큰 마음의 상처를 받고 다시 헤어졌다.
     
    그녀는 이곳에서 앞으로의 삶을 걱정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강의 시간에 배운 경허 스님의 말 중 ‘
    지혜로운 자는 과거를 아쉬워하지 않으니 아름답고,
    현재를 붙잡으려 하지 않으니 자유롭고,
    미래는 두려워하지 않으니 새롭다’라는 구절이 제 마음에 들어왔어요.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을 겁니다.
    제게 닥치는 모든 일들을 새롭게 느끼며 살려고 합니다.”

    태고(太古·60)는 지난해 말 33년간의 직장 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을 한 후 이곳을 찾았다.
     
    남들은 하와이나 동남아로 퇴직 여행을 간다고 하지만 그는
    ‘나’를 찾는 게 더 급하다고 생각했다.
     
    삭발을 할 땐 기분이 묘했다.
    머리털 한 올 없이 새로 태어난 기분이었다.
     
    다른 행자들이 ‘
    어르신’이라고 부르기에 ‘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행자님이라 불러달라’고 말했다.
    덕분에 나이 어린 도반들과도 친구처럼 지낸다.

    “제 인생을 돌이켜보니 참 잘못 살았구나 싶습니다.
     
    회사 일에 바빠서 주변을 돌보지 못했어요.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고,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동료나 후배들에게도 많은 상처를 준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제 행동을 바꿀 겁니다.
     
    밝게 살 거예요.
    내가 밝고 행복해야 주변 사람들도 행복하게 느낄 테니까요.”

    다음 날인 19일 새벽 3시40분.
    행자들이 머무르는 문수선원에서 108배가 시작됐다.

    “어디서 왔는가,
    어디로 갈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살아온 죄를 참회하며 절합니다.
    나의 몸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살아온 죄를 참회하며 절합니다.
    배울 수 있게 해준 모든 인연들을 잊고 살아온 죄를 참회하며 절합니다.
    시기심으로 인해 악연이 된 인연들에게 참회하며 절합니다~.”

    법당에 울려 퍼지는 108가지 참회의 말에 맞춰 행자들은 108번의 절을 했다.
     
    이어 예불을 올리기 위해 법당으로 줄지어 갔다.
     
    새벽 하늘,
    달은 말 없이 이동하는 행자들을 고요히 비추고 있었다.
     
    월정사의 새벽 공기는 차가웠다.
    갑작스러운 한파에 수은주는 영하 17도를 가리켰다.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마음만은 행복”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 행자들은 염불을 하며 불상 아래서 절했다.
    법당 안은 고요하고 경건했다.

    6시40분부터는 공양이었다.
     
    남녀 두 줄로 앉은 행자들은 자신들의 발우를 앞에 놓고 먹을 만큼의 밥과 반찬을 덜어 조용히 밥을 먹었다.
     
    강의 시간에는 동국대 정각원의 마가 스님이 ‘자기행복창조’에 대해 강의했다.
    저녁엔 한자리에 모여 그림을 그렸다.
     
    5~6명씩 조를 짜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조각 그림을 색칠했다.
    조각 그림들을 모으니 커다란 부처 형상이 됐다.

    월정사 단기출가 프로그램이 시작된 것은 2004년.
    올해로 10년째 봄 여름 가을 겨울 연 네 차례씩 단기출가 학교가 열렸다.
     
    10년 전 단기출가 프로그램은 실제 출가 승려들의 교육과 동일했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참여가 늘면서 일부 과정을 요즘 시대에 맞게 간소화하고 있는 중이다.
     
    가령 예전에는 하루 세 끼 전부를 발우에 담아 먹는 발우 공양으로 했지만
    이번에는 아침과 점심만 발우 공양을 하고 저녁엔 식당에서 먹도록 하고 있다.
     
    여자 수행자들의 경우 스킨과 로션뿐 아니라 선크림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됐다.
    프로그램의 내용도 현대화되고 있다.
     
    법철 스님은 “
    음악치료,
    미술치료 등 다양한 기법을 프로그램에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일 시작된 39기 단기출가 프로그램은 오는 28일 끝난다.
    삭발과 삼보일배를 시작으로 초반에는 절하는 법,
    걷는 법 등 출가자가 지켜야 할 예절을 몸에 익힌다.
     
    제대로 못하면 불호령이 떨어지고 단체 기합을 받는다.
    행자들 스스로 “특공대가 무색하다”고 말하는 그 수행 중 일부는 탈락한다.
     
    이 단기출가 과정도 처음엔 49명으로 시작했지만 8명이 탈락해 현재 41명 남았다.
     
    건강에 이상이 생긴 행자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있다.

    방송에 소개된 단기출가 학교가 멋있어 보여서 참가했다는 보월(普月·44·사업)은 ‘
    초반엔 내가 내 돈 내고 와서 왜 이런 대접을 받고 있는 건가’라며 울컥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몸에 좋은 채식 먹고,
    좋은 말씀 들으러 오는 힐링 캠프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육체적으로 힘들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견디기 쉽지 않아요.”

    법철 스님은 “
    3000배를 한다는 건 3000번 마음의 갈등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 않던 일들을 하고 따르지 않던 규율을 따르는 데서 갈등을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프로그램 시작 후 열흘이나 보름이 지나면 고된 생활에 지친 행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쏟아져 나오고
    가끔은 폭발합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그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얻어갈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말기암 환자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법화(法華·46)는 “
    고통이 없으면 행복도 없다”고 했다.
     
    그녀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은 언젠가 승려가 되고 싶었던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꿈을 이룬 그는 “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마음만은 행복하다”고 했다.

    그녀는 중학교 때 만난 ‘
    군인 아저씨’에게 반해 15년 동안 시장에서 막일을 하며 뒷바라지했다.
     
    그녀의 희생으로 가난한 검정고시생은 한의사가 됐지만
    그는 그녀를 떠나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두 딸을 낳았다.
    ‘군인 아저씨’와는 결국 이혼했다.
     
    한때 100억원대 재산을 모으며 사업가로 성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기를 당해 모두 날린 후 다시 빈손이 됐다.
    지금은 호스피스와 자원봉사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모두 용서할 수 있습니다.
    진심으로 그의 행복을 빌어요.
    오히려 그와 헤어진 덕분에 호스피스와 자원봉사 활동으로 더 큰 행복을 얻게 됐어요.”

    행자들 가운데는 천주교 교인도 있다.
     
    대입 실패 후 생활습관을 바로잡고 싶어서 왔다는 학운(鶴雲·19)은 “
    불교는 내가 나 자신을 다스리면서 내가 원하는 답을 찾아가는 종교로 신을 믿는
    천주교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외모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모두가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머리를 하고 있는 이곳에서 지내며
    그는 내면의 개성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는 수행 가운데 절하는 걸 가장 좋아한다.
    가만히 있으면 잡생각이 들면서 나에 대해 생각하기 어려워지는데,
    절을 하면 나를 더 잘 들여다보게 된다는 것이다.
     
    “육체적 고행이 정신을 살피는 등불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3000배 하는 건 3000번 갈등 극복하는 것
    대학 졸업반 묘훈(妙焄·26)은 “
    친구들은 지금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울 때지,
    단기출가 같은 거 할 때가 아니라고 만류했지만
    나는 친구들에게 꼭 한 번 단기 참선을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를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웠다”는
    그는 “남이 아닌 내가 중요하다.
    후회 없는 삶을 즐겁게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월정사(月精寺)는 ‘달을 품은 절’이란 뜻도 갖고 있다.
    실제로 월정사 앞마당엔 유난히 선명하고 밝은 달이 뜬다.
     
    고도(650m)가 높고 습도가 낮아 하늘이 유난히 청명한 곳이다.
    오대산 동쪽 만월산의 기운을 받아 달의 기운이 충만하다고 한다.
     
    월정사가 건립된 것은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
    월정사는 10년 전 단기출가 학교를 국내 최초로 도입했으며,
    지난해 여성 단기출가 및 황혼기 단기출가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월정사 회주(會主·법회를 주관하는 법사) 현해 스님은 “
    세상을 사는 목적이 행복을 추구하기 위함인 것처럼
    세간을 떠나 출가하는 목적도 역시 행복을 찾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방법은 다르다.
    한쪽은 욕망의 극대화를 지향하지만 다른 한쪽은 극소화를 지향한다.
    나의 내면을 응시하려는,
    진정한 삶에 대한 열망이 출가를 결심하게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월정사=박혜민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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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민 기자 [acirfa@joongang.co.kr]

    권혁재 기자 [shotgun@joongang.co.kr]

     

     

     

     

     

     

    '수덕사 여승'

     일엽 스님은 숨겨진 선승

     
     
    [중앙일보]
     
     
     
    입력 2014.04.18 00:25
    수정 2014.04.18 00:57 
     
     
     

    제자 경완 스님이 들려준 일화 이혼·자유연애 …

    시대 앞서간 여걸 출가 후

    수덕사 견성암 30년 정진 잠 잘 때 눕지 않는 장좌불와

    스승 만공 선사도 깊은 수행 인정

     

     


    일엽 스님(가운데 맨 뒷줄)이 법문을 하면 가톨릭 수녀와 원불교 교무들도 멀리서 찾아오곤 했다.
    1966년 7월 수덕사에서 법문 후에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 김일엽문화재단]

      
     
    스캔들의 여주인공이 아니라 숨겨진 선객(禪客)이었다.

    주인공은 일엽(一葉·1896~1971) 스님.
    최초의 한국 근대 여성 화가였던 나혜석과 함께 신여성의 대명사로 꼽히는 인물이다.
     
    1910년대 일본 유학,
    두 번의 결혼과 이혼,
    시대상에 맞선 자유연애,
    수덕사 만공 스님을 만난 후의 출가와 수행.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당대의 여걸이다.

    오죽하면 그를 모델로 ‘수덕사의 여승’이란 유행가까지 나왔을까.
     
    ‘인적 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흐느끼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두고 온 님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 적에/
    아 수덕사의 쇠북이 운다.’
     
    이 노래 탓에 수덕사는 한동안 ‘
    비구니 사찰’로 오해를 받았다.
     
    수덕사 사하촌에 ‘수덕사의 여승’ 노래비가 세워진 적도 있다.
    사찰 앞에 어울리지 않다고 본 스님들이 없앴다고 한다.

    ‘일엽’은 늘 연예 뉴스의 초점이었다.
    그 뒤에 숨겨진 ‘수도자 일엽’
    ‘선객 일엽’은 제대로 조명된 적이 없다.
     
    16일 서울 인사동에서 일엽 스님의 4대 손자뻘 제자 경완 스님을 만났다.
    그는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일화들을 하나씩 꺼냈다.
     
    거기에는 날이 시퍼런 일엽의 구도심과 선(禪)적 안목이 깃들어 있었다.
    경완 스님은 “
    수덕사 견성암에서 일엽 스님이 30년간 입승(선방의 반장)을 맡았다”고 말했다.

    견성암은 국내 첫 비구니 선원이다.
    “일엽 스님은 앉아서 주무실 때가 많았다.
    정확한 기간은 모르지만 꽤 오랫동안 장좌불와(長坐不臥·잘 때도 눕지 않고 좌선함)를 하셨다고 한다.”

    신여성 김일엽은 당대의 작가였다.
    일본 유학 시절 만난 춘원 이광수가 그에게 ‘일엽(一葉)’이란 필명을 지어줬다.
    그런 일엽도 출가 후에는 펜을 꺾었다.
     
    거의 30년 만에 다시 글을 쓰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나로부터 시작되지만,
    내가 남과도 연결돼 있다.
     
    그 사람들과 생사고락을 같이 한다.
    그래서 이치를 전하기 위해 다시 글을 쓴다.”
     
    여기에는 나와 세상이 함께 숨을 내쉬고,
    함께 들이마시는 불이(不二)의 안목이 녹아 있다.

    경완 스님은 숨은 일화를 또 꺼냈다.
    해방 전,
    북쪽에서 가장 유명한 선방이 금강산 마하연이었다.
    일엽은 스승 만공 스님을 따라 그곳에 갔다.
     
    만공은 근대의 대표적 선지식 경허의 맥을 잇는 선사다.
    하루는 만공 스님이 일엽에게 농을 던졌다.
     
    “밤새 어느 방을 돌아다니다가 이렇게 늦었나?”
    일엽 스님은 태연하게 침묵으로 답했다고 한다.
    언뜻 들으면 성(性)적인 농담으로 들린다.
    좀 더 들여다보면 상대의 공부를 가름하는 선문답이다.
     
    ‘어디서 헤매다가 이제야 자신을 찾아왔나?’라는 물음에 ‘
    헤매던 그 자리와 내가 선 이 자리가 둘이 아니다.
    올 것도 없고,
    갈 것도 없다’는 답을 침묵으로 던진 셈이다.

    만공 스님은 그런 일엽의 공부를 인가했다.
    그리고 ‘도엽(道葉)’이란 법호를 내렸다.
    ‘세존의 견명성(見明星) 오도(悟道) 소식에’라는 일엽 스님의 게송이 있다.
    ‘예 이제 같은 별이 새삼스레 밝았으랴/
    밥상의 밥을 보고 밥인 줄 뉘 모르랴/
    다만 별빛의 꿈 돌려서 처음의 빛 얻음이라.’
    일엽 스님은 꿈 속의 밥,
    꿈 속의 별을 허물었더니 예나 지금이나 변치 않고 빛나는 밥과 별이 있더라고 노래했다.
    비구니가 아니라 비구였다면 그의 선사적 면모가 이토록 오래 숨겨져 있었을까.

    말년에 건강이 악화됐다.
    수덕사의 환희대란 암자에서 요양하다가 “
    나는 갈 때 대중처소에서 가고 싶다”며
    평생 수행했던 견성암으로 옮겼다.
     
    ‘일엽 스님이 위독하다’는 소문에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들을 보며 스님은 “
    그럴 시간이 어디 있느냐.
    가서 정진하라”고 타일렀다고 한다.
     
    일엽 스님이 출가 후 30년 만에 썼던 책
    『어느 수도인의 회상』(1960년)은 당시 베스트셀러였다.
     
    최근 미국 하와이대 출판부에서 영문판으로 출간됐다.

    백성호 기자
     
    일엽 스님=
    1896년 평남 용강군 출생.
    부친은 개신교 목사였다.
    가족을 모두 잃고 17세에 혼자 남았다.
    외할머니 뒷바라지로 이화전문 졸업.
    1919년 일본 도쿄의 영화학교에서 유학했다.
     
    귀국해
    시인·
    수필가·
    평론가로 활동하다 1933년께 출가했다.
    1971년 입적했다.
    •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2014.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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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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