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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태조왕건과 광해군의 일생 급함
비공개 조회수 2,972 작성일2019.11.19

1 태조왕건의 일생


2 광해군의 일생


언제태어나서 몇살때 뭐를했는지 언제죽었는지 주요사건은 뭐가있었는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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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h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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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전에 이건 철처한 저의 생각이고 실제 실록 역사와는 좀 다를 수가 있습니다

1.태조 왕건(877~943) 향년 66세에 신덕전에서 승하

애초에 후삼국시대의 기록은 조선만큼 많지 않습니다

왕건은 877년 송악 성주였던 왕륭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야사에 따르면 태어나던날 황룡이 여의주를 무는 꿈을 꿨다고는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어쨌든 그 시대의 예언가 도선대사의 말에 따르면.... 왕건이 삼한을 통일할 인물이라고 했습니다

뭐 여기까지는 야사고요

이런 송악성주가된 왕건은 무섭게 지역을 넓혀가는 궁예의 밑으로 들어갑니다

나주전투,조령,죽령전투에서 승리하며 승승장구하지만 궁예의 측근들이 그를 없애려고 하죠

이에 왕건은 임기응변으로 매번 궁예의 철퇴로부터 운 좋게 피해갑니다

918년 밤 4기장인 홍유,배현경,신숭겸,복지겸이 왕건의 집을 찾아가 혁명을 일으키자고 하고

그의 첫번째 부인인 신혜왕후 유씨가 친히 갑옷을 입혀줍니다

궁예가 마구잡이라 사람을 죽이니 모든 백성들이 환호를 하며 시중이었던 왕건의 뒤를 따라 황궁을 장악합니다

궁예를 몰아낸 왕건은 나라이름을 고려라짓고 연호를 천수로 하여 황제국 선포를 합니다

이제 왕건은 후백제만 정벌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 전에 궁예심복들이 난을 일으킵니다

충주의 임춘길 장군 환선길,이흔암등이 난을 일으키고 이 난 진압후 얼마 뒤에 신혜왕후가 병으로 피접을 떠납니다

그런 뒤에 권력다툼이 일어납니다 장화왕후 오씨의 아들 무와 신명순성왕후의 아들 태의 정윤자리싸움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태가 일찍 죽어 왕건은 더는 이런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맏아들 무를 정윤에 책봉하고 본격적으로 후백제와의 전쟁을 합니다

하지만 견훤의 전술 앞에선 왕건도 맥을 못춥니다 특히 공산전투때는 왕건의 실수로 심복이었던 신숭겸이 왕의 갑주를 입고 왕건인 척 해서 대신 죽고 왕건은 목숨을 구하는 지경까지 일어났습니다

여러 전투가 일어나고 후백제도 분열되어 아들 신검이 견훤을 금산사에 유폐하자 견훤은 고려로 투항합니다

이에 신라의 경순왕도 천년역사를 고려에 바칩니다 모든 준비가 완료된 왕건은 일리천전투에서 후백제를 이기고 통일을 합니다 이 이후 각 지방 호족들을 규합하기 위해 결혼을 합니다 그래서 부인이 29명인거죠 자식만 34명이 됩니다 왕건은 말년에 신덕전에서 시름시름 앓다가 정윤 무에게 왕을 물려주고 생을 마칩니다

2.광해군 이혼(1575~1641) 66세 유배지에서 사망

광해군은 14대왕인 선조와 공빈김씨에게서 태어난 둘째아들입니다 형은 임해군이죠

어릴떄부터 총명했으며 선조는 그런 광해를 이뻐합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선조는 광해군을 멀리하게 됩니다

이런 와중에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집니다 이에 선조는 도망가기위해 광해를 세자에 책봉하고

광해로 하여금 민심을 잡게합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의병들과 함께 왜적을 몰아내죠

1601년 의인왕후가 승하하자 선조는 새로운 중전으로 인목대비를 앉힙니다

이 인목대비가 적자인 영창대군을 낳았습니다 광해군의 세자자리가 위험한 상황입니다

왜냐면 아버지는 자기를 싫어하고 전쟁때매 어쩔수 없이 세자자리에 앉혔으니깐요

늘 불안한 광해군은 하루하루가 속이 타들어가는 심정입니다

이런 상황인데 갑자기 선조가 죽습니다 유언도 없어서 중전인 인목대비의 결정만이 다음 국왕을 정할수있죠

왕실의 불화를 막기위해 대비는 광해군을 다음 왕으로 책봉합니다 16년 세자시절이 끝나고 왕에 오릅니다

이후 대동법을 실시하죠 하지만 아직 주적들이 남아있습니다 서인과남인 임해군과 영창대군이 남아있는거죠

광해군은 1611년 형인 임해군을 죽이고 1613년 계축옥사로 영창대군을 죽이고 정명공주와 인목대비를 경운궁에 유폐시켜버립니다 하지만 광해의 정치는 실히 놀랍습니다 왜란 이후 광해군은 명나라를 믿지않았고 명나라가 파병요청을 해도 매번 거절합니다 게다가 광해군은 대륙의 정세를 읽고 있었습니다 여진의 후금이 커지는것을 알고

둘의 전쟁에 조선군이 파병되자 도원수 강홍립을 시켜 전세가 좋지않으면 후금에 투항해라고 까지 하는 중립외교를 시행합니다 이것이 인조반정의 명분이되어 능양군(인조)이 서인들을 이끌고 광해군을 폐위시켜버립니다

제주도로 유배간 광해군....하지만 아들인 폐세자 질은 도망가다가 맞아죽고 며느리와 아내는 자살합니다

홀로 18년을 살아갑니다

여기서 보너스 병자호란 1643년에 청의군대가 들어와 광해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다시 복위시켜준다고 하죠....

도움 되셨다면 채택 부탁드려요!!!!!!!!!!!

2019.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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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스
영웅
한국사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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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고요 각각 2개씩 남겨놨습니다.....

링크만 가져다 놓았다고 신고하지 마세요 나름 열심히 찾았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채택부탁드립니다.

추신: 제발 채택안당해도 좋으니 신고는 하지말아주세요....

2019.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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