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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제 본관이 성산인지 성주인지 진성인지 헷갈립니다.
비공개 조회수 3,377 작성일2016.12.25
안녕하세요. 본관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산 사람입니다. 제 본관이 성산 이씨인지 성주 이씨인지 진성 이씨인지 알고 싶습니다.
할아버지 성함은 이한옥 아버지쪽은 이동X 제쪽은 이희X입니다. 듣기로 제 다음 항렬은 제인가 재인가 그렇다고 합니다.
가족관계증명서를 보면 성산이라 적혀 있던 적도 있고 성주라 적혀 있던 적도 있습니다. 성주라고 말하기도 하고 성산이라 들은 것 같기도 하고...성산 이랑 성주 이가 합해졌다라나 뭐라나....아무튼 좀 알아봐주세요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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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이씨 중하 이민희
지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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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이씨 시조 이능일(李能一)은 고려 개국공신이다. 그는 신라 말엽 성산 일대를 통치하던 호족으로 12년 동안 왕건을 도와 후삼국 통일에 공을 세웠다. 그 뒤 태조 왕건의 딸 정순궁주와 결혼, 부마가 된다. 후에 성산군에 봉해지자 후손들이 성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한편 지금의 경상북도 성주(星州)는 옛 이름이 ▲성산(星山) ▲벽진(碧珍) ▲광평(廣平) ▲경산(京山) ▲가리(加利) 등 무려 5개나 된다. 성주와 옛 이름 5개 등 모두 6개의 각각 다른 이씨의 본관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이 때문에 성산이씨는 성주이씨, 경산이씨 등으로 불린 적이 많다. 광평이씨도 ‘성산.광평이씨’로 묶어 불리면서 혼동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들은 뿌리가 전혀 다르다. 다만 똑같이 성주를 근거지로 해서 번성했기 때문에 한 집안으로 착각하는 예가 많았다. 이 같은 혼동을 없애기 위해 성산이씨 대종회측은 지난 1914년 문중회의에서 본관을 시조가 살던 신라 때의 당시 지명인 성산으로 못을 박았다.  
성산이씨(星山李氏)는 고려 초기부터 인물을 많이 배출했다. 당시 이견수(李堅守)는 이광(李匡)과 이직(李直)등 4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5부자가 모두 과거에 올라 가문을 빛냈다. 이후 정당문학과 종2품에 오른 이우당(李宇唐), 지인주사(知仁州事)를 지낸 이여충(李汝忠), 금산 군사(郡事)를 지낸 이여신(李汝信), 안염부사(按廉副使)를 지낸 이여양(李汝良)등이 고려시대의 인물이다.
현대 인물은 청담(靑潭) 이찬호(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이효상(국회의장), 이호석(제헌의원), 이영식(사회사업가), 이기욱(경제학박사, 재무차관), 이태영(李泰永. 의학박사), 이태영(李泰榮, 문학박사, 대구대교수), 이헌재(연세대의대 교수), 이상홍(뉴코리아관광개발 대표이사), 이영환(대검 차장검사), 이문희(천주교 대주교), 이민석(해군준장), 이중호(부산산업대학장), 이상연(보훈처장), 이문호(경북대교수), 이병진(대구교대교수), 이수빈(동방생명사장), 이문조(영남대교수), 이진호(숭실대교수), 이중달(경희대교수), 이영기(경영학박사), 이태성(계명대교수), 이영찬(계명대교수), 이방석(건국대 법정대학장), 이규석(국민대학장), 이길영(숭실대교수), 이동호(공학박사), 이영범(대구대교수), 이동구(경북대교수), 이천수(계명대교수), 이주희(부산수산대 교수), 이종국(상명대교수), 이재현(미국 유세에렐대교수), 이우일(경북대교수), 이종덕(재미교수), 이상호(경기은행장), 이정호(국민은행감사), 이호정(재일실업인), 이향기(미국 가주대교수), 이일영(서울고법 부장판사), 이명식(대구대교수), 이창섭(충남대교수), 이동훈(육군준장), 이원영(주스웨덴공사), 이완(자유중국 육군중장), 이태호(농학박사), 이규영(변호사), 이원달(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우석(동아수출공사사장), 이명환(삼성정밀공업이사), 이종석(대산의원장), 이호재(검사), 이종주(재일 실업인), 이기창(코리아헤럴드 이사) 씨 등이다. (무순, 전 현직 구분 안 됨)  
본관 성산(星山)은 경상북도 남서쪽에 위치한 성주(星州)의 옛 지명이다. 주요파는 ▲인주공파 ▲금산공파 ▲정언공파 ▲봉익공파 ▲기국공파 등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58명이 있다. 문과 5명, 무과 15명, 사마시 36명, 음양과 2명이다.  
집성촌은 경북 성주군 성주읍 경산리, 경북 영천시 고경면 용전리, 경북 성주군 선남면 문방리, 경북 성주군 대가면 용흥리, 경북 영천시 고경면 대의리, 경북 성주군 용암면 대봉리, 경북 성주군 선남면 오도리, 경북 의성군 단밀면 주선리 등이다.  
인구는 2000년 현재 75,210명이다. 서울 9,415명, 부산 9,268명, 대구 17,861명, 인천 1,647명, 광주 205명, 대전 993명, 울산 2,052명, 경기 6,751명, 강원 583명, 충북 804명, 충남 576명, 전북 529명, 전남 502명, 경북 12,482명, 경남 11,423명, 제주 119명이다. 대구, 경북, 경남 지역에 가장 많은 인구가 살고 있다. 


성주이씨


성주 이씨(星州 李氏)의 시조인 이순유(李純由)는 알평의 후손으로 신라 말엽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냈으며 경순왕조(敬順王朝ㆍ927~935년)에 재상(宰相)까지 올랐다. 문헌(文獻)에 의하면, 이순유는 아우 이돈유(李敦由)와 더불어 기울어져 가는 신라의 마지막을 지켜본 충신으로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하자 마의태자(麻衣太子)와 함께 민심을 수습하고 천년의 사직(社稷)을 보존하기 위하여 구국의 방책을 기도하였으나, 끝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름마저 극신(克臣)이라 고쳐 지금의 성주읍 경산리(京山里)에 옮겨 숨어 살았다고 한다.

이순유의 12세손 이장경(李長庚)은 고려 고종 때의 인물로 슬하에 다섯 아들 이백년(李百年), 이천년(李千年), 이만년(李萬年), 이억년(李億年), 이조년(李兆年)이 모두 문과에 급제하여 명성을 떨치자 국왕은 그에게 특별히 삼중대광(三重大匡) 좌시중(左侍中) 흥안부원군(興安府院君)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 지전리사사(知典理司事) 상호군(上護軍) 경산부원군(京山府院君)에 봉하였다. 충렬왕 이후 성주목(星州牧)의 지명을 따라 성주 이씨(星州李氏)라고 하게 되었다.

한편, 이천년(李千年)의 둘째 아들 이승경(李承慶)은 원나라에 들어가 벼슬을 지내며 공적을 세워 원나라 황제가 그의 할아버지 이장경을 농서군공(隴西郡公)에 추봉하였으므로 농서 이씨라고도 하였다. 명나라의 장수로 임진왜란조선에 들어온 이여송이 그의 후손이었다


두성씨는 와전히 별개입니다

2016.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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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수

호적등본과

가족관계 증명서를 떼어 보시기 바랍니다

 

다를경우는 동사무소 직원의 옮겨적는 실수입니다

구청에 가서 수정하실수 있습니다.

2016.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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