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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동학농민운동 때 사발통문 주모자
비공개 조회수 4,332 작성일2018.09.09
사발통문이 주모자를 들키지 않기 위해 썼다고 하는데  왜 주모자를 들키지 않으려고 했는지, 사발통문을 쓰지 않은 문서에서 주모자가 걸리면 처벌은 어떻게 받았는지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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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발통문(沙鉢通文)
호소문이나 격문 등을 쓸 때 누가 주모자인지 알지 못하도록 사발 모양으로 둥글게 이름을 적은 통문

어떤 집단이든  시위 주동자 를  철저히  보호하는것은  주요철칙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경찰이 시위주동자 색출할려고  혈안이되어있는것입니다
이조직 주동자를 체포하면  그 조직은  일거에 와해 되기때문입니다 

당시  송두호의 집에서 전봉준등 20명이 모여 고부 농민 항쟁을 계획하고 그 결의를 서명하여 각 리의 집강에게 돌렸는데, 이로써 사발통문은    전봉준의 거사주도자란것을  알게된것입니다

1968년 12월 에  발견된사료에 
 고부농민항쟁이 혁명적 거사 계획에서 치밀하게 진행되었음을 알려주게 되었고  전봉준이  사발  통문   주도자란것을   알게된것입니다 
전봉준은  1895년  4월 24일(음력 3월 30일) 의금부에서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한양으로 압송중인  전봉준
1894년 12월 체포되어 한성부로 압송되는 전봉준 (교자에 포박되어 앉아있는 이)
왜 가마에  타고 압송하는가 하면  각종 고문으로  전봉준은   다리가 이미  절단된상태이라  걸을수없는상태였기때문입니다 

2018.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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