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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증고택(尹拯古宅)은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위치하고 있다. 이 마을은 조선시대의 정치 및 학계의 중심 인물들이 많이 모여 살던 곳으로 ‘충청도 양반’의 본거지이다. 마을 주변에는 향교를 비롯하여 윤증고택과 궐리사(闕里祠)가 있어 충청도의 유학을 이끌어 가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이 ‘교촌리’라고 불리우게 된 것은 노성 향교가 있어서 ‘향교말’이라 불리다가 ‘교촌’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노성 향교는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 308번지에 윤증고택과 나란히 있다. 원래 노성면 송당리 월명곡 근처(현 노성초등학교 자리)에 세웠다 하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며 대략 1398년경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1700년경에 현재의 자리로 향교를 다시 이전하였다 하나 정확한 연대나 이전 사유는 알 수 없다. 중국의 4성 5현 10철 및 국내의 18현에 대하여 위패를 봉안하고 봄, 가을로 유림들이 모여 제향(祭香)을 지내고 있다. 윤증 고택은 충청남도...

  • 동대문(東大門)은 흥인지문(興仁之門)으로 오행 중 목(木)에 해당되는 인(仁)을 표시하였다. 목은 동쪽이므로 풍수지리 적으로 약한 동쪽을 보완 해주기 위해 흥인(興仁)이라 하고 지(之)자를 더 넣었다. 또 옹성을 쌓아 허함을 보강하였다. . 서대문(西大門)은 돈의문(敦義門)으로 오행 중 금(金)에 해당되는 의(義)를 표시하였다. 서쪽에는 중국과 통하므로 중국과 의리를 더욱 돈독히 한다는 의미다. . 남대문(南大門)은 숭례문(崇禮門)이며 오행 중 화(火)에 해당되는 예(禮)를 표시하였다. 남쪽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불로서 다스린다는 의미고, 불이 잘 타오르도록 세로로 현판을 하였다. . 북대문(北大門)은 숙정문(肅靖門)이며 숙청문(肅淸門)이라고도 하였다. 이 문은 사람의 출입을 위하여 사용한 적은 거의 없이 수 백년 동안 닫혀 있었다. 이 문을 열어놓으면 북쪽은 수기(水氣) 즉 음기(陰氣) 많아 장안의 부녀자들이 풍기가 문란해지고 놀아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름도

  • 녹우당 앞 들(野)가운데서 사방을 바라본 국세는 풍수학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런가 하면 녹우당 주산에 올라 내려다 본 국세는 “풍수란 이런 것이구나”하고 깨우치게 한다. 그렇다. 풍수학이 지향하는바가 혈(穴)과 터(址)라면 바로 이런 곳이다. 사신사가 또렸하다. 덕음산이 서향으로 솟아있고 좌우 대칭으로 거의 정확한 방위로 내 외 겹으로 된 청룡백호가 명당공간을 이뤄가며 서쪽으로 미끄러져 내려 녹우당을 감싼다. 입향조인 어초은의 묘와 녹우당 추원당 사당이 모두 덕음산 중출맥에 자리하고 있다. 봉황이 날개를 벌여 새끼를 품안에 안듯이, 어머니가 아기를 품에 안듯이, 게가 앞발을 벌여 자신을 방어하듯이, 중출맥상의 풍수대상에 대한 물형(物形) 또한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 들판 건너 말매봉 문필봉 등 안산은 더 멀리 있는 조산과 어우러져 수려한 형국을 이룬다. 이러한 풍수적 길지라서 그런지 해남 윤씨 家는 많은 인물을 배출하고 지금도 번영을 누리고 있다. 녹우당에서...

  • [곤륜산의 맥을 잇는 백두산] 풍수의 목적은 땅의 생기를 탐으로서 흉함을 피하고 길함을 추구하는 것이다. 만물이 생겨나는 것은 바로 땅의 생기인 지기(地氣) 즉 땅속의 것(地中者)에 힘입지 않은 것이 없다. 이것은 땅속에 생기가 있기 때문이며, 생기를 타면 길하고 반하면 흉하게 된다. 이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땅속의 생기인 지기는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인가. 생기가 어디서 오는가의 문제는 풍수용론(風水龍論)에 해당되는 것이며, 풍수이론에서 제일 먼저 등장하는 개념이다. 풍수에서 산을 용이라 이름하는 것은 그것이 크고 작고, 엎드리고 일어서고, 뒤틀고 쪽 뻗으며, 숨고 드러내기도 하여 변화막측, 조화무궁한 것이 마치 용과 같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을 맥이라 표현하는 것은 사람의 맥락(脈絡)이 기혈(氣血)의 운행됨을 관장하여 맥이 맑으면 귀하고 탁하면 천하며, 길하면 안녕하고 흥하면 위급하니, 땅의 맥도 역시 그러한 까닭이다. 용을 말하면서 그 용맥의 근원이 어디로부터...

  • 우리 한반도는 그림에서 보듯이 호랑이 모습을 하고 있다 오래 된 민화나 속담, 전래 동화에는 호랑이가 자주 등장한다. 우리 민족은 그만큼 호랑이를 가깝게 여겼다. 백수의 왕이라고 일컬어지는 호랑이를 딛고 살아갈 만큼 우리 민족의 기상은 드높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정의와 민족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마다하지 않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힘없고 약한 사람들은 도와주고, 잘못을 뉘우치는 사람들은 포용해 왔다. 조선 시대 우리 선조들은 약탈하는 왜구들을 가차없이 응징했다. 하지만, 용서를 비는 왜구들에게는 관용을 베풀어 우리 나라에서 살 곳을 마련해 주기도 하였다. 임진왜란과 같은 침략에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의병들이 떨쳐 일어나 민족과 우리 국토를 보전해 왔다. 1903년, 일본인 지리학자 고토 분지로라는 자는 한반도의 지질 구조도를 발표하면서 한반도는 토끼 모양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우리 나라를 침략한 일제가 의도적으로 확산시켰다. 그 결과, 지금도...

  • 아이들 여름 방학이 끝나 가는 무렵 초등학교 3학년인 큰아들 녀석이 갑자기 "아빠! 우리는 산에 같이 안가요?"하고 묻는다. 그러자 2학년인 둘째 녀석이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맞아! 아빠와 산에 간지 오래되었다. 산에 좀 데리고 가지. 아빠와 같이 산에 가면 재미있는데..."한다. 아내의 눈치를 살피니 아이들의 요구가 당연하다는 표정이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과 같이 답사를 다닌 것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인터넷에 풍수사이트를 개설하기 전에는 한 달에 서너 번씩 아이들과 답사를 다녔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무엇을 알까마는 잘 정비된 묘지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이었다. 도시에 태어나 도시에서 자라는 두 아들에게 아빠가 시골에 자라면서 체험한 것을 모두 하게 할 수는 없어도 자연만은 충분하게 접하게 해주겠다는 것이 나름대로 아이를 키우는 방침이었다. 산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서 산의 흐름과 변화현상을 이야기 해주면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빨리 이해한다. 이...

  • [교통정보] 약도 주소 주소 : 서울 종로구 세종로 1-1 (우110-820) 전화 : (02) 732-1932 팩스 : (02) 732-1933 교통편 교통편 지하철 : 3호선(경복궁역 5번 출구), 5호선(광화문역 2번 출구) 버 스 : 경복궁,광화문에서 하차 162,171,212,272,601,606,1012,1020,1711,7012,7018,7020,7022,9602,9700,9702,9711,9712 기타정보 | 3 ∼ 4 월 9 ~ 10 월 | 5 ∼ 8월 | 11 ∼ 2월 | | 평일 | 주말 (토·일·공휴일) | | 매표 | 관람 | 매표 | 관람 | 매표 | 관람 | 매표 | 관람 | | 09:00∼17:00 | 09:00∼18:00 | 09:00∼17:00 | 09:00∼18:00 | 09:00∼18:00 | 09:00∼19:00 | 09:00∼16:00 | 09:00∼17:00 | | ※ 휴관일 : 매주 화요일 ※ 관람소요시간 : 1∼2시간 | | |

  • 김덕령 장군의 묘소는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에 있는 충장사 뒤 선영의 묘소 아래에 묘셔져 있다. 처음에는 북구 금곡동 배재마을 뒷산에 있던 것을 1974년 11월 19일에 이곳으로 이장하였다. 묘를 봉안한지 378년이나 지났는데도 육탈이 되지 않았고 매장당시에 입었던 수의와 목관이 그대로 출토되어 충장사에 전시되어 있다. 충장공 김덕령(忠壯公 金德齡 ; 1567~1596 자는 경수, 시호는 충장공)은 1568년 (선조 원년) 12월 29일 광주시 충효동(옛 석저촌)에서 아버지 김붕섭(金鵬燮)과 어머니 남평반씨 사이에서 6남매 중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1587년 종조부 김윤제와 우계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92년 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6월 형 덕홍(德弘)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수백의 군사를 이끌고 고경명과 함께 전주까지 진군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형의 당부에 의해 곧 바로 귀가하여 노모를 봉양하였다. 그 후 형 덕홍은 의병장 조헌(趙憲)이 이

  • 88고속도로 남원나들목에서 내려 남원에서 순창 가는 24번 국도로 갈아타고 비홍(飛鴻)재를 넘으면 풍계서원이 있는 전북 남원시 대강면 풍산리 산촌마을로 이 마을 뒷산 중턱에는 풍수를 하는 사람이면 한번쯤은 반드시 답사하는 명묘가 하나 있다. 황희(黃喜) 정승의 조부인 황균비(黃均庇)의 묘다. 이 묘가 유명하게 된 것은 조선왕조에서 대표적인 관료로 꼽히는 황희정승이 바로 이 묘의 발복에 의하여 배출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황씨(黃氏) 중 황희정승의 본관인 장수황씨(長水黃氏)의 세계(世系)를 보면, 그의 증조부 황석부(黃石富)를 1세조로 하여, 2세 황균비(黃均庇), 3세 황군서(黃君瑞), 황군서의 아들인 황희가 4세조로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이름이 알려진 성씨가 아니었고, 현달한 인물도 없다. 그런 장수황씨가 황균비 묘를 쓰고 태어난 황희가 조선 태종 때부터 세종대에 걸쳐 6판서를 두루 거치고, 참찬과 찬성,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라 유명해지고, 또한 그의

  • [교통정보] *교통편 현지교통 : (24, 24-1, 46, 46-1번 시내버스) ================================================================ 구 분 타는곳 내리는곳 운행시간 배차간격 소요시간 ---------------------------------------------------------------- 시내버스 수원역 융건릉 05:15-23:30 수시 운행 0:30 " 남 문 " " 병 점 " ================================================================ 도로안내 : 1) 서울과 오산을 잇는 1번 국도의 태안읍 병점육교에서 서쪽으로 약 3km 정도 가면 안용중학교를 지나 용주사가 나오며, 약1.5km쯤 더 가면 삼거리 우측에 위치해 있다. 2) 경부고속도로 신갈IC에서 수원시내로 진입, 동수원 사거리에서 좌회전해 계속 직진하다 7.8km 지점인 병점 주유소앞

  • 남연군묘는 우리 나라 근대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조선과의 통상 교섭을 요구했던 서구 열강들이 실권자인 대원군에 의해 모두 실패하자 급기야 1868년 4월 21일 야음을 틈타 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묘를 도굴하기 시작한다. 대원군의 강력한 권한이 아버지 묘가 명당에 묻혔기 때문이라는 조선 천주교도인들의 말에 미국인 잰킨스를 자본주로, 프랑스인 페롱을 통역관으로 삼아 약 100여명의 중국청년을 러시아병사로 위장하여, 조선 천주교도인들의 안내로 저지른 남연군묘 도굴 사건이다. 이 사건을 주도한 유태계 독일인 오페르트 일당은 남연군묘를 파헤쳐 흥선대원군의 기세를 꺾고, 유골을 확보함으로서 개방에 대한 최고의 협상카드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무덤은 단단한 석회석으로 다져 놓았기 때문에 쉽게 파지 못했고, 조수(潮水) 시간 때문에 철수함으로서 실패하고 만다. 이 소식을 접한 대원군은 부모도 모르는 천인공노할 오랑캐들과는 상종할 수 없다며 척화비를...

  • 부산시 부산진구 양정동 화지산(和池山 또는 華池山:142.4m)자락에 터 잡고 있는 동래정씨시조 정문도(鄭文道)선생의 묘는 동래정씨문중에서 예천군 지보면 지보리 익장(益庄)마을에 터 잡은 조선 초기의 문신 정사(鄭賜)선생의 묘와 더불어 양대 정묘(鄭墓)로 일컬어지고 있는 명묘 중 하나다. 후손들은 이들 양대 정묘(鄭墓)를 전국에 있는 명혈 중의 으뜸이라 여기고 있고, 많은 풍수연구자들도 필답코스로 찾아보는 유명한 묘들이다. 정문도(鄭文道): 고려초기의 인물. 일반적으로 동래정씨 시조로 알려져 있으나 동래정씨족보에 의하면 시조는 신라 때의 인물 정회문(鄭繪文)이며, 기세조는 고려초기의 인물 정지원(鄭之遠)이며, 정문도는 2세다. 특히 정문도선생의 묘는 그의 생전 벼슬이 아전임에도 불구하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정문도는 읍에 속한 아전이었는데, 세 아들이 모두 과거에 급제하였고 묘는 현의 서쪽 7리에 있다”라고 성명과 묘의 위치까지 기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후...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구미리 무량산(586.4m) 아래에는 고려 때부터 터를 잡고 살아온 남원양씨(南原楊氏) 종가가 있다. 우리 나라 양씨는 버드나무 양(楊)자 쓰는 양씨와 들보 양(梁)자 쓰는 양씨로 크게 나누는데 양씨(梁氏)의 시조는 탐라 개국설화에 나오는 고씨(高氏), 부씨(夫氏)와 함께 삼성혈(三姓穴)에서 탄생한 양씨(梁氏)다. 제주도(탐라) 양씨에서 분포된 본관 중 충주양씨(忠州梁氏)와 남원양씨(南原梁氏)가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이중에서도 남원양씨(南原梁氏)가 압도적인 수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런데 버드나무 양(楊)자 쓰는 양씨가 또 남원을 본관으로 하고 있어 일반인들이 혼동하기 쉽다. 양씨(楊氏)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역사책에서 제일 처음 등장하는 양씨(楊氏)는 고구려의 양만춘(楊萬春)장군이다. 그러나 양만춘 장군을 선조로 하는 양씨(楊氏)는 지금 하나도 없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우리의 많은 역사기록이 단절되고 없어졌다는 것을 알 수

  • 해치(해태)는 요순시대에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상상의 동물이다. 해치, 신양, 식죄, 해타 등으로 불렸다. 해치의 성격과 특징에 대해 [논형(論衡)] ''시응편 (是應篇)''이런 기록이 있다. "개호 라는 짐승이 있는데이 짐승은 뿔이 하나밖에 없으며 죄를 지은 사람을 찾아내는 신통한 재주가 있다고 한다. 고요 (皐陶)라는 사람이 순 임금 때 법관으로 있었는데, 죄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 이동물로 하여금 그사람을 들이 받게 하였다. 죄가 있는 사람이면 뿔로 받고 죄가 없는 사람이면 받지 않았다."라고 했고, 일설에는 해태는 불을 보면 물을 뿜어 불을 막는다고 하여 광화문앞에 세웠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현판은 가로로 되어 있는데 숭례문 현판은 화재가 날 경우 빨리 타지 못하게 세로로 달았다. 관악산 정상에 못을 파서 관악산의 화기를 누르기 위해 만든 연못 근정전앞에 드므를 설치하여 거기에 물을 가득 채워 놓고 침입해 오던 화마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 달아나기를

  • [산줄기찾기] 가. 대동여지도 읽기 1) 대동여지도 현대지형도는 지형이해를 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따라서 지형도를 읽을 수 있으면 대지의 선정이나 건축물의 좌향을 결정할 때 매우 유익하다. 따라서 지형도 읽는 공부가 필요하고, 형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산도를 그릴 수 있어야 하는데 대동여지도와 산경표가 많은 참고가 된다. 대동여지도의 대동(大東)은 우리나라를 중국의 동쪽으로 보는 사상에서 비롯된 이름이며, 청구도에서의 청(靑)도 방위의 개념에서는 같은 것으로 해석된다. 여지도(輿地圖)의 여(輿)는 수레바퀴의 뜻으로 천하도의 형태와 관련이 있는데 종합적인 지도의 의미를 가진다. 2) 대동여지도 제작의 목적 국가발전의 기틀로서 국세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하여 좌도(左圖)로서의 지도와 우서(右書)로서의 지지(地誌)의 필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국토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여지학자(輿地學者)로서 풍부한 학문적 지식을 통하여 모든 사람이 쉽게 활용하고 쉽게 이해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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