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고백 안 받으면 일나겠네?…춘천 '조폭' 공공조형물 어떻길래

2019-11-25 16:23

add remove print link

김원근 작가의 ‘춘천 프로포즈' 논란…“흉물스럽다” vs “작품일뿐”

강원 춘천시 약사동 약사천 공원에 설치된 공공조형물 '춘천 프로포즈'  / 이다빈 기자
강원 춘천시 약사동 약사천 공원에 설치된 공공조형물 '춘천 프로포즈' / 이다빈 기자
강원 춘천의 한 공원에 조폭(조직폭력배)을 연상시키는 공공조형물이 설치돼 지역사회의 갑론을박이 뜨겁다.

일반시민은 물론 미성년자들이 드나드는 대로변 공공장소에 비주얼적으로 위화감을 느낄만한 캐릭터를 영구 전시하는게 적절하냐는 민원이 나오면서다.

해당 작가는 일명 '깡패 조각'으로 인지도를 쌓아왔다는 점에서, 이벤트를 겨냥한 노이즈 마케팅(고의적인 구설수를 이용해 인지도를 높이는 마케팅 기법)이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공공조형물 설치 기준의 핵심인 ‘시민 친화성’ 부합 여부를 놓고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갑자기 풀린 날씨 탓에 24일 오후 춘천 시내와 조금 떨어진 약사천 공원은 시민들의 발걸음이 잦았다.

공원 한 켠 조경수 사이로 2미터가 넘는 남녀 형상 조형물이 시선을 끈다. '차도녀'와 '순정남' 조각상이다.

이곳에 설치된 다른 9점의 작품들보다 이 콘크리트 석상이 유독 눈에 띄는 것은 크기만큼이나 강렬한 남성상(男性像) 때문이다.

남자는 영화에서 나오는 '조폭' 모습 그대로다.

험상궂은 얼굴에 '깍두기' 머리. 작은 키에 통통한 체구에 무표정하거나 멍한 얼굴. 화려한 하와이안 셔츠와 금목걸이. 주머니에 찔러 넣은 왼팔에는 '일수 가방'을 꼈다.

오른손에는 누군가에게 프로포즈를 하려는지 선물할 꽃다발을 들고 있다.

해당 조형물은 지난 9월 춘천시가 주최한 춘천조각심포지엄에 출품된 김원근 작가의 작품 '춘천 프로포즈'다.

춘천조각심포지엄은 당시 홈페이지에 "오월의 내 사랑이 숨 쉬는 그곳 '춘천 가는 기차' 노래 가사처럼 설레는 사랑의 감정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그런 감정을 깔고 보니 일견 시골 동네의 착한(?) 건달 또는 겉으론 강한 체 하지만 속은 정 많고 순진한 이미지처럼 투영되기도 했다.

주말 공원 방문객들은 뜬금없는 인물상에 신기해하는 반응이다.

벤치에 앉은 어르신은 조용히 작품을 응시했고, 한 무리의 중학생들은 비슷한 포즈로 사진을 찍고 꺄르르 웃고 가기도 했다.

이 모씨(52)는 "처음엔 영화 광고물인줄 알았다"며 "남자의 묘한 인상이 자꾸만 눈에 간다"며 미소를 지었다.

산책 중이던 신 모씨(48)는 "금목걸이에 배바지까지 그냥 건달이네. 건달이 옛날 애인을 만나는 건가. 옛 애인은 이미 마음이 떴고"라고 풀이하기도 했다.

반면 시민들의 쉼터에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불편한 시각도 있었다.

고교생 채 모양(17)은 "여기 어울리지도 않고 밤에 보면 무서울 것 같은 조각을 왜 세웠는지 모르겠다"며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정 모씨(32)는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보기좋은 그림은 아닌 것 같다. 세금낭비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춘천조각심포지엄은 지난 9월 9점의 조형작품을 선정해 시내 일대의 주요 공공장소에 배치했다.

심사 기준은 작품성, 안전성, 시민친화성 등이었는데, '프로포즈' 선정 이유로 'B급 문화에 대한 우호적인 접근'이라고 설명했다. 거친 삶을 살고 있거나 험악해 보이는 이웃에게도 순정이 있다는 것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김수학 춘천조각심포지엄 운영위원장은 기자와 통화에서 "(항의) 민원이 들어오긴 했다"며 "작품에 호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호불호는) 자연스러운 일이다"고 단언했다.

이어 "조폭을 선양하거나 폭력문화를 조장하기 위해 설치한 작품이 아니다"며 "시민들이 보이는 표면만이 아닌, 이면에 어떤 이야기가 숨어있는가를 입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미의식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작품 선정 기준으로 '시민과의 소통'을 우선적으로 꼽았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소통이라는 게 보기좋고 대중적이기만 한 게 전부가 아니다. 공공조형물이 너무 뻔하기만 하면 권태가 느껴질 수 있다"며 "선정에 있어서 어떤 (주관적) 잣대를 정해두지 않아야한다"고 부연했다.

'춘천 프로포즈'에 대해 “제작 과정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던 작품이고 감상할 때 스토리가 보이는 작품이다”며 "작가가 여태 만들어온 자기 작품의 방향성이 고려됐고 미술 행사였기에 작가 주관성, 작업의식, 작품관이 많이 강조됐다"고 평가했다.

김원근 작가는 국내외에서 수십 회의 개인전과 그룹전, 아트페어, 미술제 등에 참가해온 중견 작가다. 터키, 샌프란시스코, 대만 등 해외에서도 작품이 소장돼 전시 중이며, 지난주 금보성아트센터로부터 올해의 창작상을 수상했다.

강원 춘천시 약사동 약사천 공원에 설치된 공공조형물 '춘천 프로포즈' / 이다빈 기자
강원 춘천시 약사동 약사천 공원에 설치된 공공조형물 '춘천 프로포즈' / 이다빈 기자
home 이다빈 기자 story@wikitre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