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유재석’ 만든 박현우 작곡가 “15분 만에 신곡 완성…‘박토벤’ 별명 얻었죠”

이윤주 기자

‘유산슬’ 예명으로 트로트 데뷔한 유재석의 ‘합정역 5번 출구’ 작곡

“예능 출연 이후 많이 알아봐서 어색…하루 2~3편씩 곡 의뢰 받아”

‘박토벤’ 박현우씨는 1960년대 말부터 유명 가수들의 히트곡들을 작곡했다. 생활고 탓에 중간에 공백 기간이 있기는 했지만 서울 동묘역 인근에 사무실을 낸 후 30년째,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해 곡 작업을 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박토벤’ 박현우씨는 1960년대 말부터 유명 가수들의 히트곡들을 작곡했다. 생활고 탓에 중간에 공백 기간이 있기는 했지만 서울 동묘역 인근에 사무실을 낸 후 30년째,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해 곡 작업을 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서울 동묘역 인근 낡은 건물 꼭대기 3층. 트로트 신인 유산슬(본명 유재석)의 데뷔곡 ‘합정역 5번 출구’가 15분 만에 완성되고, 즉석에서 가사를 건넨 ‘경향신문 로고송’도 20분이면 멜로디를 갖추는 마술같은 공간이 있다. ‘박현우 작곡 사무실’이다.

지난 21일 이 사무실에서 ‘박토벤’이라는 별명과 함께 요즘 인기가 치솟고 있는 작곡가 박현우씨를 만났다. 그는 MBC 주말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개그맨 유재석에게 트로트곡을 주면서 얼굴이 알려졌다. 해당 예능에서 그는 “사람들이 나를 ‘박토벤’이라 부른다”며 다소 무표정해 보이는 얼굴로 뚝딱 곡을 완성한다. 그러고는 “자넨 영재”라며 아마추어 가수 유재석에게 노래를 지도한다. 불쑥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까지 보여주니, 단숨에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으며 하나의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 박씨는 “음악을 한 지 60년이 넘는데 가사가 좋으면 장르와 멜로디가 바로 떠오른다”면서 “박토벤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도 워낙 작곡을 빨리 하는 스타일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사무실 문에 붙여 놓은 달력에는 각종 방송 출연과 언론사 인터뷰 일정 등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방송으로 유명해지면서 요즘은 곡 의뢰가 하루에 2~3편씩 들어온다고 한다. 꽤 ‘핫한’ 작곡가인 셈이다. 박씨는 “요즘 사람들이 많이 알아본다”면서 “그게 어색해서 자꾸 택시를 타는 통에 하루 택시비가 5만원은 나오는 것 같다”며 머쓱해했다.

갑자기 얼굴이 알려지긴 했지만, 1960년대부터 시작된 작곡가로서의 그의 이야기는 한국 대중음악사와 함께했다. 안동 출신으로, 나이만은 절대 공개하지 말아달라는 박씨는 어린 시절 안동극장 뒤편에 살면서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를 따라부르며 자랐다고 했다. 박씨는 “학교 소풍이나 졸업식에서 합창을 하면 빼놓지 않고 솔로로 나서 노래를 불렀다”고 말했다.

“집안 형편이 여의치 않아 나무 합판에 건반을 그린 가짜 피아노로 음악을 익히고, 일요일에 교회 예배가 끝나면 오르간을 눌러 실제 소리를 들어보곤 했습니다.”

중3 때 음악 선생님의 바이올린 소리에 크게 감명받은 후 본격적으로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그는 “한 번 레슨을 받고 6개월씩 혼자 연습하기를 반복해, 스무 살에 부산교향악단 오디션까지 붙었으니 영 재주가 없던 것은 아니었나 보다”며 웃었다.

군예대 제대 후 그는 1968년 발표된 은방울자매의 ‘포항아가씨’를 작곡하면서 대중가요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박우철의 ‘천리먼길’(1973)이 크게 히트했고, 정훈희의 ‘스잔나’, 강병철과 삼태기의 ‘물레방아’ 등이 대표곡이다. 문주란, 현미 등 당대의 인기가수들과 작업했다. 가요 외에도 임권택 감독의 <비 내리는 선창가> 등 영화음악 70여편, 동요 100여곡 등 지금까지 1000곡이 넘는 곡을 만들었다. 장르불문, 시대불문이다.

박씨의 활동 초기만 해도 저작권 개념이 없던 탓에 작곡만 해서는 ‘밥 벌어먹기’가 쉽지 않았다. 박씨는 “소주 한 병에 짜장면 한 그릇이면 곡 하나씩 왔다갔다 하니, 도저히 먹고살 수 없어 작곡을 20년 이상 접었다”고 했다. 10인조 악단을 구성해 주로 야간업소 등에서 연주활동을 이었다.

그사이 또 시대가 바뀌어 대형 악단이 설 무대가 거의 사라지고, 30년 전 자리 잡은 곳이 지금 동묘의 사무실이다. 이곳에 30년째,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해 작업했다고 한다. 좁은 공간의 벽에는 바이올린과 기타, 콘트라베이스, 그간 작업했던 영화 포스터들이 빼곡히 차 있다. 박씨는 “악기를 모으는 게 취미”라며 “좋은 그림을 보는 것처럼 벽에 걸린 악기를 보는 게 참 좋다”고 했다. 작곡 지망생들에게도 “클래식이든 대중음악이든 먼저 좋은 연주자로서 양식을 쌓은 후에 작곡을 하면, 창작도 깊이가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일에 대한 열정만큼은 ‘영원한 청춘’처럼 보였다. 나이 공개를 꺼리는 것도 나이의 틀에 얽매여 평가받고 싶지 않아서라고 했다. 그는 “보통 정오쯤 출근해 오후 7시까지 작업하다 들어간다”며 “가족들이 명절에는 좀 쉬라고 하지만 나는 여기가 천국이어서 죽기 전까지 펜을 들 수 있는 힘만 있으면 작곡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시 키보드 앞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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