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측, 16시간 동안 기존 입장 고수… 한국인 근로자 휴직, 관세 등 美 압박 카드 많아
  • ▲ 정은보 한미방위비 분담협상 대사.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정은보 한미방위비 분담협상 대사.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미국 워싱턴에서 지난 3일부터 이틀 동안 제11차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4차 협상이 열렸다. 협상은 16시간 동안 진행됐지만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언론들 사이에서는 연내 타결이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내일신문 등에 따르면, 정은보 한국 측 방위비 분담협상 대사는 귀국길에 기자들과 만나 “한미가 이번 협상에서 구체적인 결과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정 대표는 이어 “미국은 구체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전까지는 기존의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고, 우리도 ‘기존의 협정(SMA) 틀’ 속에서 협상이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해까지 지켜왔던, 연 평균 8% 안팎의 분담금 인상률을 고수한다는 의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영국 런던에서 “방위비 분담금을 인상하지 않는 동맹국은 무역으로 그 비용을 받으면 된다”고 한 발언과 관련해 정 대표는 “무역 등은 늘 언급이 된다”며 “그러나 주한미군 철수라든지 이런 주제는 협상 테이블에서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의 시한 내 타결(연내 타결)에 대해서 그는 “그런 부분과 관련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제10차 SMA 기한 2019년 12월 31일 지나면….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의 관건은 금액이다. 2018년 제10차 SMA 협상 때도 금액이 문제였다. 결국 연말 시한을 넘기게 되자 미국 측은 “주한미군에 근무하는 한국인 근로자 8700명에 대해 2019년 4월 15일부터 무기한 무급휴직을 실시하겠다”고 압박했다. 주한미군에 근무하는 한국인 근로자는 약 1만2000여 명. 미군은 이 가운데 8700명, 약 70%를 무기한 무급휴직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한국 정부는 2019년 2월, 방위비 분담금으로 전년 대비 8.2% 오른 1조289억 원 부담하기로 미국 측과 합의했다. 5년 시한이던 SMA도 1년마다 재협상하기로 약속했다. 한국이 75% 이하를 부담하던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 부담 제한도 없앴다. 제11차 SMA 협상이 연내 타결되지 못하면 또 한국인 근로자 무기한 무급휴직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높다.
  • ▲ 주한미군 노후장비를 대체하기 위해 들여오는 신형 장비 적재 모습.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한미군 노후장비를 대체하기 위해 들여오는 신형 장비 적재 모습.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에 한국인 근로자들은 지난 10월 “우리는 무급휴직이 되더라도 꿋꿋하게 버틸 테니 정부는 안심하고 미국 측과 협상해 달라”고 밝혔다. 주한미군은 비슷한 시기 미군 식당에서 일하던 한국인 근로자들을 정리해고 했다. 주한미군은 동시에 2020년 10월까지 모든 식당 운영을 외주업체에 맡기기로 결정했다. 주한미군 한국인 노조 측에 따르면 500여 명의 근로자가 실직하게 된다.  주한미군은 이처럼 내부적으로 이미 한국인 근로자 수를 줄여나가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의 두 번째 카드는 무엇이 될까. 일단 주한미군 철수는 상·하원에서 통과시킨 2020 국방수권법 때문에 어렵다. 주한미군 철수가 미국의 안보이익에 부합하는지, 필요한 일인지를 정부가 의회에 설명,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떤 카드를 꺼낼까.

    관세 → 장비 철수 → 병력 철수 이어질 수도

    현재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무역규제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국 런던에서 “동맹국들이 방위비 분담금을 인상하지 않으면 무역을 통해 받아내겠다”고 밝혔다. 이 말은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회원국이 1차 대상이지만, 한국과 일본도 그 범위에 들어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미국 상무부는 세계 자동차 회사들과 개별적으로 관세 부과 협상 중이라고 밝혔다. 만약 미국 상무부와 한국 현대·기아차의 협상이 제대로 되지 않고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도 타결이 되지 않을 경우 미국은 한국산 차량에 25%의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있다.

    세 번째는 병력은 유지하는 대신 전투장비들을 본토로 철수시키는 카드다. 2020 국방수권법은 주한미군을 현재의 2만8500명으로 유지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여기서 병력을 줄이려면 정부가 미군 철수의 당위성을 의회에 보고하고 설득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한국을 압박할 방법이 바로 주력 전투장비의 철수다.

    미국이 한국에게 요구한 50억 달러(한화 5조9600억 원)에는 주한미군 운용비용뿐만 아니라 전략자산 전개 비용도 포함돼 있다. 괌이나 오키나와, 하와이, 미 본토에서 날아오는 전략 폭격기와 항공모함 강습단 운영 비용은 물론 한반도 인근에 배치해 놓은 고속수송선단 유지비용도 포함된다. 미군은 한반도 주변에 사단 병력이 완전무장할 수 있는 장비와 물자를 실은 고속 수송선 여러 척을 상시 배치해 놓는다.
  • ▲ 기동훈련 중인 美태평양 함대 소속 항공모함들. ⓒ뉴데일리 DB.
    ▲ 기동훈련 중인 美태평양 함대 소속 항공모함들. ⓒ뉴데일리 DB.
    이런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보내지 않거나 다른 지역으로 철수시키고, 주한미군에 배치된 전차, 장갑차, 헬기, 정찰기, 수송기 등을 본토로 돌려 보내면, 한국 언론들은 당장에라도 주한미군이 철수할 것처럼 보도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한국 정부에게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한다.

    마지막은 주한미군의 실제 철수다. 지난 5일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주한미군 철수와 관련해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의 경고를 전했다.

    리비어 전 수석 부차관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 주둔하는 미군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했다”며 “나는 이것(주한미군 감축설이 트럼프의) 협상 전술이기를 바란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미국 대통령 자격으로 한 말이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국방수권법에 따라 주한미군 병력감축이 쉽지 않다고 해도 대통령이 정말 철수를 결심하면 결국에는 그렇게 된다는 지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