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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내공다~걸어요! 대왕세종,,,
df**** 조회수 560 작성일2008.11.14

대왕세종

지금 문종,수양대군,안평대군역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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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지식인
은하신
사회, 도덕 46위, 메이플스토리 12위, 국어, 한문 94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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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諱)는 도(祹). 군호는 충녕(忠寧)

외로운 사람이다.
왕실에서 왕자로 태어나, 삼자(三子)임에도 본의 아니게 세자가 되고 또한 군왕이 되어서 그는 외롭다. 아니 어쩌면 이런 파행을 거쳐 왕이 되지 않았다 해도 군왕이라는 자들이 원래 다 외롭다. 그의 결정이 많은 이의 행불행을 좌우하고, 때로는 그의 결정이 전쟁을 만들기도 하여 하 많은 사람들의 목숨마저 좌지우지 하니, 그 결정을 쉼 없이 해야 하는 자에게 외로움은 어쩌면 숙명이다.

추운 겨울날, 삭풍에 사정없이 흔들리는 용포를 수습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묵연히 서 있는 뒷모습, 그것이 그의 이미지다. 가장 아끼는 신하를 정적들로부터 보호하지 못했을 때, 하여 그의 죽음을 목도해야 했을 때 종당에는 아내마저 폐서인을 하여 내쳐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원치 않은 여인네를 품어야 했을 때, 전쟁을 하자 한 신하들을 설득하여 화친을 했으나 그 결정으로 인해 수많은 백성들의 목숨을 날려야 했을 때, 대국에게 실리를 위해 자존심 버리고 머리를 조아려야 했을 때 그는 바로 저 뒷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어깨에 얼마나 많은 한숨과 눈물이 배어 있었을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외롭지 않은 사람이다.
소년시절부터 서충(書蟲)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배우고 때로 익히는 것을 진심으로 즐길 줄 아는 이라서, 설령 폐서인이 되더라도 당신의 진정을 의심치도 또한 당신을 원망치도 않겠다한 맘결 고운 아내 소헌이 있어서, 정치의 저 모진 삭풍을 온몸으로 함께 막겠다한 충직한 신하들이 있어서, 때로는 기껍게 때로는 아프게 사랑해야 할 백성들이 있어서 그는 외롭지 않다. 무엇보다 꿈이 있으므로 그는 외롭지 않다. 만인지상인 자신으로부터 그저 평범한 하나하나의 백성에 이르기까지 조선에 난 것을 기껍다 여길 만큼 아름다운 나라를 건설할 꿈이 있는데 그가 어찌 외로울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그는 꿈이 가지는 큰 위력을 아는 자다.
혼자 꾸는 꿈은 그저 꿈일 뿐이지만 여럿이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 진실에 먼저 눈뜬 자. 그래서였을 것이다. 우리민족 최고의 문화유산이자 지적자산인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은... 500여년 전 그가 목 놓아 강변했던 그 소리가 들려온다.

“조선의 말에 걸맞는 조선의 글, 우리 고유의 글이 필요하다. 나는 이를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이름 할 것이다. 조선이 천하대국이 되지 말란 법이 어디 있는가. 이민족을 칼로써 누르고 영토를 크게 확장하는 것보다 더 크고 가치있는 길은 천하의 백성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문화대국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조선이 문화대국으로 우뚝 서는 순간, 온 나라 민족은 앞 다투어 조선의 언어를 배우고자 할 것이며, 허면 이 나라 조선의 민족혼은 천하로 뻗어나가게 될 것이다.”


소헌왕후 심씨 (昭憲王后, 1395~1446)_
이윤지

세종의 정비
이해심 많고 맘결고운 후덕한 이다.
세종 즉위 직후 아버지 심온이 역적으로 몰려 사사되고 친정은 멸문지화를 당해 친정어미가 관기의 신세로 전락하는 것을 목도할 수 밖에 없었던 비운의 여인. 아버지 심온의 옥사를 주도했던 박은 등이 후환이 두려워 폐위를 주청하여 왕후의 지위가 위태로워지기도 하나 군왕 세종이 끝끝내 그를 윤허하지 않아 그 위기를 모면한다.



경녕군(1395-1458)_윤영준

효빈 김씨의 아들이자 태종의 제 1 서자. 이름은 비
천성이 어질고 학문에 밝아 주위의 칭찬이 자자했으며, 태종 이후 5조에 걸쳐서 왕실의 자문위원으로 국정에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줌. 세종초에 사은사로 명나라에 가서 사신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기도 했음.



효빈 김씨_김성령

김점(金漸)의 딸로 원래 태조비 신덕왕후 강씨의 시비였으나, 뛰어난 미모로 태종에 총애를 받아 상전인 신덕왕후 강씨를 배신하고 태종의 후궁이 되어 태종이 잠저(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 즉 개성의 정안군 방원의 사저)에 있을 때 아들 경녕군을 낳았고, 그 공으로 태종이 왕위에 오른 다음해인 1401년 빈에 봉해졌다. 뛰어난 외모 때문에 신덕왕후 강씨조차 그녀를 이성계앞에 내놓기를 꺼렸다고 하는데 결국은 태종의 후궁이 되었다. 태종의 총애를 이용해 아들 경녕군을 권좌에 올리기위해 노심초사한다.

200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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