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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조회수 2,823 작성일2019.02.01
그리스 로마 신화 책 추천좀여

성인이 읽기 좋은 그리스 로마 신화 책 추천부탁드립니다

중급자가 읽을만한 책과 상급자가 읽을만한 책 으로 나눠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진 이미지도 띄워 주시면 좋겠고요

마지막으로 미하엘 쾰마이어 책을 추천해주신다면 어떤 책을 읽는게 좋나요?? 워낙 종류가 많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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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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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사랑
초인
주거공간, 인테리어, 방, 거실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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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출간된 강남길의 그리스 로마신화 강추합니다.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한눈에 알아볼수있게

작업도 해놨고 무엇보다도 직접 촬영한 수많은 미술작품들이 신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아마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이해하는데 이 처럼 쉬운책은 없을 정도입니다.

202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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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글
절대신 열심답변자
2020 사용자 참여 분야 지식인 #김전일 #해피빈 #명탐정코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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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이야기

하룻밤에 읽는 그리스 신화

심리학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그리스 신화로 보는 우리 내면의 은밀한 심리)
김상준| 보아스 | 2016.03.10
별점
8.93 | 네티즌리뷰 111건 |  14,000원 → 12,600원(-10%)
소개  그리스 신화를 통해 알려주는 우리 내면에 감춰진 복잡미묘하고 은밀한 심리들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을 통해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보다 이 책은 복잡한 그리스 신화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전개하며 우리가...
그리스 신화에서 사람을 읽다
지순호, 홍지희| 보아스 | 2018.03.05
별점
8.83 | 네티즌리뷰 33건 |  14,000원 → 12,600원(-10%)
소개  내 삶과 인간관계가 꼬일 때 읽는 『그리스 신화에서 사람을 읽다』는 다양하지만 한편으로 비슷한 패턴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성격 유형을 9가지로 분류하고, 그것을 인간의 원형을 담고 있는 그리스 신화의 신들에 대입해 독자가 자신과 타인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도록 이끌어주며, 각 성격의...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아폴로도로스| 천병희(명예교수) 역 |  | 2004.06.30

    2019.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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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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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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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un****
    지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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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4 C 초 때의 로마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그리스도교 하나님에 대한 체험 story . - - - ​

    ​( 이 글은 꾸며낸 이야기 = 신화 , 소설 , 동화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요 , 우주만물의 창조주 하나님 전능하신 신의 놀라운 현현 ( 顯現 = 나타나심 ) 사건 story 임을 밝히는 바이다 )

    ( BC 5 세기 , 기원전 400 년대의 그리이스의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 ..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모든 신들은 진짜 참신이 아니라 모두 인간들이 지어낸 조작품 가짜 신들이라고 말하여 , 그것이 고발이 되어 의회에서 독배 사형판결이 내려지게 되었는데 .. ' 악법도 법이니 지켜야 한다 ' 라고 하면서 항거를 하거나 도망을 가지 않고 죽음의 독배를 마신 위대한 철학자 입니다 .

    그리스도교는 .. 그리이스 로마 신화처럼 가상의 허황된 가짜 조작 인물을 목숨걸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

    천국이 거짓 환상이나 가짜 조작품이라면 .. 왜 무엇 때문에 로마제국 초기시대부터 313 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밀라노 칙령 선포 까지 약 280 년간 수많은 사람들이 목이 짤리고 악독한 고문으로 불구자가 되며 사자 밥이 되더라도 .. 왜 예수 그리스도를 천국 구원의 구세주로 믿었겠습니까 ?

    구약 성경책은 3500 년 전부터 , 신약 성경은 2000 년 전부터 역사적 사실로 증명이 되었어며 , 또한 신앙과 믿음을 통하여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기적 능력이 많이 나타났기 때문에 .. 이를 확신한 사람들이 구원을 받아 영생복락 천국에 진짜 들어가기 위하여 힘을 다하여 믿는 것입니다​​ . )

    ( 고기에 해당하는 저차원의 개 돼지 원숭이 같은 .. ) 동물 짐승과는 달리 존귀한 인간은 .. ​ 근본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도덕 윤리적 선한 성품과 동시에 죄악의 성질과 이기적 ( 利己的 ) 욕망과 정욕을 같이 가지고 태어나는데 .. ( 다만 그런 것이 속사람 내면에 타인보다 많으냐 ? 적으냐 ? , 크냐 ? 작으냐 ? .. 의 차이일 뿐 )

    ​육신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 가지만 .. 우주 만물의 창조주 거룩하신 전지전능의 ( 여호와 ) 하나님의 심판에 의하여 .. 속사람 영혼은 .. 영원고통 유황불 지옥이나 영생복락 영광의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며 .. 그 때에는 황제 임금이든 평범한 시민이든 모두 똑같이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심판을 받습니다 .

    4 세기 초반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 .. 전쟁 전날 저녁 하늘 공중에 .. ' 빛나는 광채의 십자가 형상과 in hoc vince ' ( 뜻 = 이것으로 정복하라 ) .. 라는 글자가 찬란하게 나타난 기적을 체험함으로 인하여 대승리 후 전지전능의 하나님 예수님이 인류의 구세주 되심 성경 말씀이 천국구원의 진리 인 것을 확신하여 다음해 313 년에 밀라노 칙령 을 선포 하였으며 ,

    20 세기 초반 인도 썬다싱 ( 1889 ~ 1928 년 ) 은 .. 고교시절 기독교를 미워하고 싫어하여 성경을 불태우고 선교사들에게 돌맹이를 던지곤 했는데 .. 양심의 가책으로 인한 너무나 괴로운 마음에 자살을 결심했는데 새벽 자살직전에 찬란한 영광중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체험하고 부터는 회개하고 완전히 개종하여 예수님을 구세주로 마음에 영접한 후의 삶에서 기적이 많이 일어난 기독교의 위대한 성인 이 되었으며 ,

    대한민국 조용기 목사님 ​( 1936 ~ 2021 년 ) 은 .. 고교시절 심한 폐결핵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예수 전도를 받은 후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어 기적으로 폐결핵을 고침받고 , 기독교로 개종을 한 후 신학교에 들어가 최자실 집사님 을 만나 함께 동역하여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벙어리가 말을 하고 수많은 병고침과 기적의 응답이 일어나게 되어서 전세계 최대의 큰 교회 를 이루었습니다 )

    ​​히브리서 13 : 8 절 말씀 = " 우주 만물의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과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는 .. 옛날이나 지금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게 역사 ( 力事 ) 하시느니라 ."

    - - - ※. 4 C 초 때의 로마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그리스도교 하나님에 대한 체험 story . - - -

    < .. 로마 제국 콘스탄티누스 대제 .. ( 생애 = 274 ~ 337 년 , 황제 재위 = 306 ~337 년 ) 이야기 .. >​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 로마제국 시대에 , 1 세기 중반부터 ~ 4 세기 초 까지 그리스도교에 대한 공포의 박해 시대 였으나 .. 313 년 로마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 = 모든 종교 자유령 선포 , . .390 년경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 그리스도교의 공인 국교령 선포 ' 로 급속히 부흥 발전을 하였는데 ..

    7~ 8 세기 경에 성경교리 논쟁으로 인하여 서부유럽 로마 카돌릭 , 동부유럽 동방 정교회 ( 東方 正敎會 )로 갈라지고 .. 그 후 로마 교황청을 중심으로 크게 발전한 서방 카돌릭이 .. 16 세기 초에 면죄부 문제로 인하여 종교개혁 혁명이 일어나게 되어 .. 독일의 마르틴 루터 , .프랑스의 장 칼뱅 , .스위스의 쯔윙글리 , .영국의 윌리엄 틴데일 , 존 낙스를 중심으로 ' 성경적 참된 순수신앙으로 돌아가자 . ' 라고 종교개혁을 일으킴 .

    그리하여 서방 기독교 세계가 옛날 교리를 그대로 이어받은 로마 카돌릭 ( = 천주교 ) 와.. 개혁 교리의 ' 개혁 개신교회 ' 로 또다시 갈라짐으로 인하여 .. 그리스도교 세계는 크게 나누어 .. ' 로마 카돌릭 ( = 천주교 ) , 동방 정교회 ( 東方 正敎會 ), 개혁 개신교회 ' .. 3 세계로 나누어져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

    - - - 로마 제국 때의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 약 280 년간 로마제국의 발전과 전통에 장애가 된다고 하여 .. 그리스도교를 무섭게 핍박 , 박해 , 감옥 , 잔인한 고문 , 목 짤림 , 사자 먹이밥 .. 등으로 인해 ..

    잔인한 고문으로 인한 수많은 불구자들과 .. 목 짤림 , 사자 먹이밥이 된 수많은 순교자들과, 무서운 박해를 피하여 숨어 지내기 위해 로마시의 땅 밑에 길고 긴 약 800 ~ 900 km의 카타콤베 지하 땅굴이 생겼을 정도 였는데 ..

    ​따라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 당시 로마제국 전통으로서는 있을 수 없고 상상을 초월할만한 .. 이러한 특별한 교회 혜택의 획기적인 조치를 취한 배경을 알아 본다 .

    1 .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어떠한 사람인가 ?

    부친 콘스탄티우스는 .. 로마 귀족가문 장군인데 젊은 교관 시절에 .. 평민 어느 여관 주인 집의 교회를 다니는 아주 예쁜 아가씨를 좋아하여 사랑의 연애를 하여 로마 귀족이 아닌 줄 알면서도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였는데 .. 이 여성이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 ' 헬레나 ' 이다 .

    콘스탄티누스는 .. 모태 신앙인으로 어릴 때 부터 , 열렬한 기독교 신앙인 이었던 어머니 헬레나의 손을 잡고 교회에 다니게 됨으로 인해 , 어머니에 의해 그리스도교 신앙이 마음에 심겨지게 되었으며 ..

    ( 부친 부황제 콘스탄티우스는 3 명의 다른 황제와는 달리 크리스트교에 대한 박해를 거절하고 , 그저 모든 종교에 대한 너그러운 관용자 였으며 .. 그래서 아내와 아들이 교회에 다니는 것을 묵인 하였다 . )

    콘스탄티누스는 .. 20 대 중반에 동방 로마 정황제의 궁궐에 몇년간 있게 되었는데 , 이 때 그는 이스라엘을 방문하여 훌륭한 그리스도교인이요 , 위대한 교회사 저술가인 유세비우스를 찾아가 몇일간 같이 지내는 동안 성경기록의 역사적 사실 확인과 깊은 신앙의 감동과 많은 은혜를 받았었는데 .. 이로 인하여 그는 그리스도교에 대하여 매우 호의적 이었다 .

    ​서방의 부황제 부친 콘스탄티우스는 .. 중병에 걸리자 신하들을 보내어 동방 정황제의 궁궐에 있는 아들 콘스탄티누스를 데려오게 하였는데 .. 콘스탄티누스는 부친의 신하들과 몇일간 지낸 후 사냥놀이를 하러 나간다는 핑계로 궁궐을 나와서 그 길로 유럽 대륙을 횡단하여 서방 부친에게로 와서 몇 년 후 부친 휘하 ( 麾下 ) 모든 장군들의 지지를 받고 부친의 뒤를 이어 서방의 부황제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

    2 . 서방 정황제 자리 다툼의 전쟁 발발 - - -

    프랑스 , 스페인 지역을 다스린 부친 콘스탄티우스의 뒤를 이어 서방 부황제 자리에 오른 콘스탄티누스는 .. 312 년 서방 정황제 자리를 두고 .. 이탈리아, 아프리카 북부의 로마 통치자 막센티우스와 서방 정황제 자리 다툼으로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 ( ※ 막센티우스는 .. 콘스탄티누스의 황후 파우스타의 오빠이다 . 황후 파우스타는 후에 딸 공주들 외에 세명의 아들 왕자를 낳았다 . )

    콘스탄티누스의 군대는 알프스 산맥을 넘어 이탈리아 북부에서부터 여러 성을 속속 점령 , 계속 승리를 거두면서 중부까지 내려와 드디어 로마 근처 북동쪽 12km 지점 티베르강의 밀비안 다리에서 양쪽 대군이 진영을 치며 대치를 하게 되었다 .

    계속 패전을 맛본 막센티우스는 .. 최후의 항전과 같은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 콘스탄티누스 군대보다 2배 갑절의 병력을 끌어 모았으며 .. ( 콘스탄티누스 군대 = 약 4 만명, . 막센티우스 군대 = 약 8 만명 )

    최고의 살인술수 마법사를 고용하여 콘스탄티누스 형상 인형을 만들어 살인 주문을 하면서 칼로 인형 심장을 찌르면서 각종 살인 마법을 베풀며 .. 갑절 8 만명의 수많은 군대를 밀비안 다리 지역에 끌어 모았다 .

    3 . 막센티우스는 어떠한 자인가 ?

    막센티우스는 ..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황후 파우스타의 오빠인데 .. 그는 방탕하고 잔인한 성격에 음흉한 마법 숭배자로서 기독교를 매우 싫어하여 그의 부친처럼 기독교를 많이 박해 하였으며 .. 마법사를 통하여 마법 주문으로 악귀를 불러내거나 , 마법으로 상대 적수를 죽이거나 치명타를 입힐수 있는 살인 술수 마법사를 많이 고용하여 ..

    살인 마법으로 지난 날 여러 번 전쟁에서 적수를 죽이고 승리를 여러번 거두기도 한 적이 있는 .. 그리스도교를 매우 미워하고 크게 박해하는 마법숭배 로마 통치자였다 .​

    . ( 막센티우스는 .. 이 전쟁 전에 로마에서 부친 막시미안 황제를 강제로 좇아내고 황제위를 찬탈 하였는데 .. 그 때 막시미안 황제는 약간의 병사와 신하들을 데리고 도망을 하여 사위 콘스탄티누스 에게로 피하여 왔었는데 ..

    막시미안은 .. 사위 콘스탄티누스가 북쪽 국경군대 시찰을 하기 위해 궁궐을 비운 사이에 .. 사위 콘스탄티누스의 부황제 자리를 강탈하기 위해 재빨리 궁궐을 장악하고 반역을 도모 하였으나 .. 자신의 생각 예상 외로 더빨리 군대를 몰고 돌아온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제압 당하고 체포 구금된 후 얼마 후에 죽음에 처하여졌다 . )

    물론 당연히 이 전쟁 때에도 막센티우스는 .. 최고의 살인술수 마법사를 고용하여 콘스탄티누스 형상 인형을 만들어 살인 주문을 하면서 칼로 인형 심장을 계속 찌르며 .. 각종 살인 마법을 베풀게 하면서 갑절 8 만명의 수많은 군대를 밀비안 다리 지역에 배치 하였다 .​​

    4 . 전쟁의 승패 - - -

    드디어 312 년 10 월 28 일 , 로마 근처 북동쪽의 밀비안 다리 양쪽에서 양군이 대치해 있을 때 .. 콘스탄티누스는 저녁 하늘 공중에 .. ' 빛나는 광채의 십자가 형상과 in hoc vince ' ( 뜻 = 이것으로 정복하라 ) .. 라는 글자가 찬란하게 나타난 것을 보았는데 ..

    놀라며 의아해 하는 중에 이 날 밤 꿈에서 .. " 군기 라바룸에 십자가를 그려 넣고 .. 모든 병사의 방패에 그리스도의 표시 글자를 새기고 나아가면 크게 승리하리라 ." 라는 그리스도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

    다음날 아침 , 그대로 실시한 콘스탄티누스의 4만명의 군대는 .. 배나 많은 8만명의 병력과 살인술수 마법사를 고용한 막센티우스의 군대를 크게 격파하고 대승을 거두고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로마시에 입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

    5 . 콘스탄티누스가 .. 312 년 서방 로마 정황제가 된 후 ~

    ① . 다음 해 313 년 , 동방 정황제 리키니우스와의 합의 하에 ' 밀라노 칙령 선포 ' 로 .. ' 그리스도교 박해 중지와 모든 종교 자유령 ' 을 선포. . . 크리스트교 교회의 예배의 자유와 모든 종교의 자유도 인정함 ,

    ② . 약 280 년 간의 그리스도교 박해로 인한 억울한 피해에 대한 합당한 보상과 강제 몰수된 교회 재산을 모두 환원 , 회복 조치 .

    ③ . 교회토지 면세 특별 혜택부여 , 교회건물 건축 장려와 정부 보조금 지원 , 또 막대한 금액을 교회에 헌금함 .

    ④ . 후에 로마 동서방 전체의 유일한 통일 황제가 된 후 .. 황후 파우스타의 죽음 후에 황후 전용의 화려한 라테란 궁전을 로마 교회에 하사하여 기증함 . ( → 지금의 로마 교황청이 됨 )

    ⑤ . 교회 감독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일요일을 ' 법정 국가 공휴일 ' 로 선포함 .

    ⑥ . 그리스도교를 제국의 중요 종교가 되게하여 .. 4 C 말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 기독교 공인 국교령 선포 ' 의 발판을 마련함 .

    6 . 313 년 밀라노 칙령 발표와 10 년 후 로마 제국 전체의 통일 황제 가 됨 .

    다음 해 313 년 동방 정황제 리키니우스와의 합의 하에 모든 종교의 자유령 곧 밀라노 칙령을 선포하였는데 ..

    5 ~ 6 년 정도 지난 후 동방 백성들이 서방 로마를 칭찬하며 흠모하는 분위기 여론이 일어나자 .. 이에 마음과 감정이 상한 리키니우스 황제는 ..

    기독교를 싫어하고 로마제국 전통을 중요시 여기는 신하들과 합작하여 또다시 기독교를 박해하는 반기독교 정책으로 돌아서게 됨으로 인하여 밀라노 칙령 ​10 년 후 동서방 로마 격돌의 대전쟁이 발발하게 되었음 .

    서방 콘스탄티누스의 군대는 동방 정황제 리키니우스의 군대를 계속 격파하고 진격하여 나아갔으며 바다 해전과 마지막 전쟁에도 승리하여 .. 콘스탄티누스는 전 로마 제국의 유일한 통일 황제가 되었다 .

    이로 인하여 그리스도교인들에게는 이 땅이 천국처럼 변하는 축복의 기분이었는데 .. ( 이는 280년간 다른 종교는 로마제국 황제숭배와 신상에도 다같이 절했기 때문에 핍박 박해를 받지 않았고 .. 오직 그리스도교만 거부하여 공포의 핍박 박해를 받아 왔기 때문이다 .)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 그리스도교 박해로 인한 억울한 모든 피해에 대해서는 합당한 보상을 실시하도록 지시를 내렸으며 ..

    일평생 기독교를 위하여 많은 정부의 혜택을 베풀고 , 거액의 헌금과 황후의 죽음 후 황후 전용의 화려한 라테란 궁전을 교회에 하사 기증하고 , 교회를 세우는데 많은 후원을 하였으며 ..

    따라서 많은 교회들이 부흥이 일어나 교회를 크게 짓기 위해 큰교회 공사가 활발히 많이 일어나게 되었다 .

    ​콘스탄티누스는 가끔씩 신하들과 호위병들을 거느리고 궁궐 밖 교회에 가서 예배에 참석하기도 하였으며 .. 그 교회가 크게 부흥하여 사람이 너무 많아지자 새건물 큰교회를 짓게 되었는데 ..

    하루는 소문을 들은 콘스탄타누스가 신하들과 많은 호위병들을 거느리고 교회 건축공사 현장에 시찰 겸 구경하기 위헤 나가 보았는데 ..

    교회 감독자들과 직분자들이 환영하는 중에 .. 콘스탄티누스가 보니까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다고 하여 아이 어린이들도 나와서 벽돌과 모래와 물건들을 나르며 기뻐하고 즐거위 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

    한동안 물끄러미 구경하고 있던 콘스탄티누스는 .. 신하들에게 일꾼의 허름한 옷을 한벌 가져오라고 지시 하였다 . . . 영문을 몰라 당황한 신하들은 어찌저찌 해서 허름한 일꾼 옷을 한벌 구하여 갖다 드렸는데 ..

    콘스탄티누스는 그 자리에서 화려한 황제의 옷을 벗고 일꾼의 허름한 옷을 갈아 입은 후 여러 교회 감독자들과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일꾼들 속에 들어가 일꾼들과 아이들과 함께 그들과 같이 한동안 벽돌과 모래와 물건을 나르는 일을 하였다 .

    ​얼굴에 땀이 나도록 한동안 노동을 한 콘스탄티누스는 .. " 이 일이 제국을 다스리는 정사 일보다 더 기쁘고 즐겁군 . ".. 라고 말하면서 어린이처럼 웃으며 기뻐하고 즐거워 하였다 .

    또 이 당시에는 누구나 자신이 죄인임을 시인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고백하면 .. 교회 감독자들이 누구에게나 천국 구원의 세례를 베풀어 주었으며 , 어린 아기도 부모의 신앙고백으로 구원의 세례를 베풀어 주었는데 ..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 많은 교회 감독자들과 신하들이 .. ' 사람이란 언제 죽을지 잘 모르므로 천국 구원을 위해서는 교회에서 속히 세례를 미리 받아 놓는 것이 좋습니다 .' 라는 간곡한 권면에도 불구하고 ..

    " 나는 천국 구원을 받기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부족한 죄인이요 ." ​ 라고 하면서 다음으로 미루고 ..

    교회 감독자들과 신하들이 ' 괜찮습니다 ' 라고 아무리 말해도 .. " 나는 아직도 여전히 부족하오 .".. 라고 하면서 세례를 차일피일 미루고 미루다가 30 년 정도 미루었는데 ..

    ​337 년 죽음 직전에 .. 교회 초신자 세례용 흰옷을 내게 가져오라 ." 고 한 후에 황제의 화려한 옷을 벗고 .. 교회 감독자들과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초신자 세례용의 초라한 흰옷을 입고 교회 감독자에게서 세례를 받았다 .

    그 당시에는 누구나 교회에 나와서 자기를 죄인으로 시인하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후 사흘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다는 믿음의 신앙고백만 하면 .. 누구에게나 구원의 세례를 베풀어 주었고 , 또 천국 구원을 위해 서로 먼저 세례를 받을려고 하는 시대에 말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세례 후 몇일간 죽음 직전까지 ' 교회 초신자 세례용의 흰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는데 .. 죽음을 앞둔 유언에서 .. " 이 세례용 흰옷을 나에게서 벗기지 말라 ..관에 넣을 때에도 그대로 넣도록 하라 ' 고 지시 하였으며 .. 그는 그 초신자 세례용의 초라한 흰옷을 입은 채로 2 ~3 일 후 육신의 숨을 거두고 이 땅의 일생을 마치었다.

    콘스탄티누스는 .. 막센티우스와의 마지막 결전 때의 312년 10 월 28 일에 저녁 서쭉 하늘에 찬란한 십자가의 형상과 in hoc vince ( 뜻 = 이것으로 정복하라 ) .. 라는 글자가 찬란하게 나타난 놀라운 현상을 일평생 여러번 증언 하였으며 .. 훗날 7 ~ 8 세기경 그리스도교 세계가 서방 동방으로 나누어 졌을 때 .. 동방 정교회 총회에서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에게 ' 이사포스톨로스 ( = 사도들의 동료) ' 라는 칭호를 시성 ( 諡聖 = 성인 칭호를 부여함 ) 하였다 .

    7 . 콘스탄티누스 황제에게 있어서의 마음 아픈 사건들 . ​

    콘스탄티누스는 .. 20 대 초반에 어머니 헬레나의 권면에 의하여 신앙이 좋은 그리스도인 예쁜 여성과 결혼을 하여서 낳은 크리스푸스 라는 아들이 있었다 . . 그러다가 30 대 초반에 부황제로 오를 때 부친의 권면에 의하여 로마 황족 여성을 황후로 새로 맞아 들였는데 그 여성이 파우스타 공주이다 . . 파우스타는 황후가 된 후 딸 공주들 외에 세명의 아들 왕자를 낳았다 .

    밀라노 칙령 반포 10 년 후 발발한 동방황제 리키니우스 와의 대전쟁에서 .. 전처 아들 크리스푸스 왕자는 젊은 청년의 나이로 바다 해군 총사령관에 임명이 되었는데 .. 바다 해전에서 크게 승리를 하여 그의 위상 ( = 位相 ) 이 크게 올라가게 되었다 .

    몇달 후 황후 파우스타는 크리스푸스 왕자를 초청하여 승전축하 큰 파티를 열어 주었는데 .. 이 자리에서 크리스푸스 왕자는 자기가 이미 황제가 된 것처럼 교만한 행동을 하였으며 , 자신의 세아들 왕자를 무시하고 조롱하는 말을 하였으며 , 황후 파우스타를 희롱 농간 하였다는 고발이 들어와 수사를 하였는데 .. 증거가 발견이 되었다 하여 안타깝게도 크리스푸스 왕자는 사형에 처하여지게 되었다 .

    그러나 헬레나 태후가 이 수사가 잘못 되었다고 강력히 반발하여 재수사를 요구 하였는데 .. 재수사 결과 크리스푸스 왕자의 무죄함과 억울함이 많이 밝혀지게 되었다 .

    재수사 몇달 후 황후 파우스타가 궁궐 전용의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는 중에 .. 누가 죽였는지 ? .. 왜 죽었는지 ? . 를 모르는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 황후의 장례식 후 황후 전용의 화려한 라테란 궁전을 교회에 하사 기증 하였는데 .. 이것이 지금의 로마 교황청이 되었다 .

    8 . 모친 헬레나 태후 는 로마 평민 출신으로서 .. 귀족 출신 남편 콘스탄티우스가 군대 교관 시절에 사랑의 연애를 하여 결혼을 하였으며 ..

    후에 남편 콘스탄티우스가 군단 대장군에서 부황제로 오를 때에 로마 궁궐의 황족 여자를 새로이 황후로 맞아 들였기 때문에 .. 헬레나는 황후 자리에는 한번도 앉아보지 못한 채 아들이 황제가 되자 막바로 태후가 되었다 .

    헬레나 태후는 아들 콘스탄티누스를 어릴 때부터 교회에 데리고 다니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의 구세주로 믿는 그리스도인으로 키운 분이며 .. 늘 배후에서 아들을 위해 전능의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해 주신 분으로서 ..

    태후가 된 후 많은 호위병들과 시녀들을 데리고 머나먼 동방 이스라엘 기독교 성지를 탐방 , 순례하면서 교회에 많은 헌금과 후원을 하였으며 ..

    ​예수님의 탄생지 ( = 베들레헴 ) 와 승천지 ( = 감람산 ) , 갈릴리 호수 등 여러 신앙의 유적지에 교회와 성당 , 수도원을 많이 세웠으며 ..

    ​성지 예루살렘을 순례중일 때 .. 300 년 전 예수님을 심문하였던 유대 총독 빌라도의 계단이 발견 되었는데 .. 헬레나 태후는 그것을 신앙의 역사적 기념물로 지정 , 로마로 이송하도록 지시 하였으며 .. ( → 이것이 예루살렘의 빌라도의 계단이 로마에 있게된 이유이다 )

    후에 서방 카돌릭 로마 교황청에서는 .. 참회록을 쓴 아우구스티누스 ( 354 ~ 430 년 ) 의 모친 ' 모니카 ' 와 함께 .. ' 헬레나 태후 ' 를 .. ' 하늘이 내리신 특별 성녀 ' 반열로 추대 하였습니다 .

    2024.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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