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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5.18에 관한 사진 아이가 들고있는 사진속 인물 이름
rat1**** 조회수 1,183 작성일2013.05.25
아이가 들고 있는 영정사진속 인물 이름좀요 그리고 저 아이의 이름도 알려주시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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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정을 안고 우는 5살짜리 상주 

그러는 중에 계속 일을 보아주시던 친정아버지가 과로로 쓰러지시는 바람에 아버지를 집에 모셔다드리고 오자 어느새 남편이 상무관으로 옮겨져 있었다. 두 번 씩이나 남편을 잃어버린 줄 알고 놀랐던 나는 상무관으로 옮겨진 이후부터는 절대로 남편 관 옆에서 자리를 뜨지 않았다. 3대 독자인 남편은 빈소를 지켜줄 친척 하나 없었다. 5살에 상주가 된 천호만이 제 아버지 관 위에 영정을 안고 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그때 찍힌 사진이 5·18 관계 자료집에도 나와 있다. 지난 5월 한겨레신문 창간호에 우리 집의 경우가 소개되었다. 

29일 합동 장례식날 남편도 망월동으로 갔다. 선산이 있으면 선산에다 묻으라고 했지만 나는 식구가 한꺼번에 죽었으면 죽었지 다른 곳에 갈 수 없다고 했더니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장례식에는 한 집에서 3명씩만 오라고 했다. 관은 따로 실려가고, 나는 동장님과 함께 따로 망월동으로 갔다. 남편친구 분들은 걸어서 망월동까지 와주셨다. 시체가 부패해서 관이 터지고 시체 썩은 물이 흘러 나왔으나 어떻게 손을 볼 수가 없어 관을 비닐로 싼 채 그냥 묻었다. 지금도 그 비닐은 썩지 않고 그대로 있을 것이다. 

유족회는 발족 당시부터 활동해 오고 있다. 최근에는 직장 관계로 매달 꼬박꼬박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 건강도 좋지 않아 앞장 서서 할 수도 없는 입장이기도 하다. 

1980년 직후에 담당형사가 취직을 시켜주겠다고 했으나 처음엔 내가 거부했다. 그러나 애들하고 살 길이 막막해 1982년에는 내가 시청에다 취직을 부탁했다. 그래서 얻은 직장이 현재 근무하고 있는 어린이대공원인데, 이 공원이 5·18 성금을 모아 지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몹시 꺼렸으나 어쩔 수 없이 취업하게 됐다. 처음에는 매표일을 하다가 햇빛을 받으면 어지럽고 자꾸 쓰러져서 지금은 건물 안(전시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날의 상처는 계속되고 

그동안 나는 화병으로 뱃속에 몽우리가 생겨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고, 근무 도중 피를 토하면서 쓰러진 적도 여러 번 있다. 어느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해보니 뇌종양인 것 같다며 컴퓨터 촬영을 해보자고 했다. 돈도 없고 해서 한약으로 치료해 보려고 남동성당 뒤에 있는 일중당한의원으로 갔다. 원장이 진맥을 해보더니 특별한 병이 있어서가 아니고 정신적으로 충격을 심하게 받아서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했다. 5·18 때 남편이 죽고 그에 따른 충격 등의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원장님이 고맙게도 한 달간 무료로 치료해 주었다. 

5·18 이후 우리 가정은 나뿐만 아니라 그 때 갓난 아기였던 막내까지 21일 남편이 사고난 날부터 29일 장례식날까지 거의 방치상태로 두어 열이 펄펄 끓으며 몇달 동안 앓았다. 지금 국민학교 3학년인 그애는 말도 못 하고 한글도 겨우 읽는 지진아가 돼버렸다. 

시어머니께서도 남편을 입관한 뒤 도청에 와보신 뒤로는 몸져누우셨는데, 작년 대통령 선거 유세장(조선대학 운동장)에 김대중 씨의 연설을 들으러 갔다가 '5·18 사진전'에 천호가 영정을 안고 제 아버지 관 위에 앉아 있는 사진을 보고는 더욱 충격을 받으셨다. 그 후로 꼬박 사흘을 식사 한번 못 하시더니 결국 돌아가시고 말았다. 

게다가 애들마저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세상을 불신하고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만 보려고 든다. 특히 천호는 신문이나 텔레비전 등을 전혀 믿지 않으며 뉴스를 보면서 욕을 하기 일쑤다. 우리 집에서는 천호 때문에 텔레비전도 마음대로 못 본다. 


영정 속의 인물은 조사천씨이고, 영정 속의 아이는 조천호씨입니다.

2013.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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