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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세례명 관련
비공개 조회수 2,116 작성일2016.04.21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한가지 목적을가지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 성공한"
"자기자신과 타협하지 않음"
"끝까지노력함"
이런 삶을 살아가신 성인분들 모두 알고 싶습니다
아니면 비슷한삶을 살아가신분ㄴ이라도 괜찮으니 알려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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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애리
바람신
가톨릭 11위, 와인, 과실주 95위, 종교 66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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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알아가기 위해, 그리고 올바른 수도생활을 위해 고생하며 완덕에 이른  십자가의 성 요한을 소개합니다. 1542년 6월 24일 에스파냐의 아빌라(Avila) 근교 폰티베로스(Fontiveros)에서 직조공이었던 곤살로 데 예페스(Gonzalo de Yepes)와 카탈리나(Catalina Alvarez) 사이의 세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가족들은 극심한 빈곤과 궁핍 속에서 생활하였고 아버지와 형 루이스(Luis)는 요한이 어릴 때 사망하였다. 그래서 요한은 어머니와 함께 메디나 델 캄포(Medina del Campo)에 정착해 살며 교육을 받았고, 17세 때에는 그곳의 예수회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한편 메디나 병원장을 위해 일하기 시작했다.

   1563년 그는 메디나 델 캄포의 카르멜 수도원에 입회하였고 이듬해에 성 마티아의 요한(Juan de Santo Matia)이라는 수도명으로 서원을 하였다. 1564년부터 4년간 살라망카(Salamanca)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1567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후 성 요한은 고향집을 찾았을 때 아빌라(Avila)의 성녀 테레사(Teresia, 10월 15일)를 만났다. 그 당시 카르멜회의 환경과 생활 방식에 만족하지 못해 더 고적하고 깊은 기도생활을 할 수 있는 카르투지오회로 옮기고 싶다는 뜻을 성 요한이 피력하자, 성녀 테레사는 그를 설득하여 카르멜회에 남아 함께 개혁운동을 하자고 권유하였다.

   1568년 11월 28일에 그는 두루엘로(Duruelo)에서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의 도움으로 개혁된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성 요한은 카르멜회의 최초 규칙으로 돌아가 실천하겠다는 서약을 하였으며, 이때 이름을 십자가의 요한으로 바꾸었다. 그는 열렬한 기도와 보속의 생활을 하면서 인근 마을들에서 사도직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1년 뒤 두루엘로에 최초의 맨발의 카르멜회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그는 개혁 카르멜회의 보급을 위하여 진력을 다하던 중, 1577년 10월 2일 수도회 개혁을 반대하던 완화 카르멜회 수도자들에 의해 납치되어 톨레도(Toledo) 수도원 다락방에 감금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1578년 8월까지 9개월간 ‘어두운 밤’을 체험하였다. 이 당시의 체험을 바탕으로 그는 신비적, 영성적, 문학적인 성장을 이루게 된다. 감옥 안에서 그는 몇 편의 시를 썼다. 9개월 만에 감옥에서 탈출한 그는 개혁 카르멜회의 여러 직책을 맡아 활동하는 한편 저술활동을 계속하였다. 1579년 맨발의 카르멜회는 인정을 받았고 수도원도 세웠다. 그는 바에사에 개혁 카르멜회 대학을 세우고 학장이 되었으며, 1582년에는 그라나다(Granada)의 로스 마르티레스 수도원의 원장을, 1585년에는 안달루시아(Andalucia) 관구장이 되었다.

   그러나 1590년 카르멜회의 분쟁이 재현되었다. 결국 이로 말미암아 요한은 1591년 6월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 멕시코로 가게 되었다. 하지만 병에 걸려 그대로 에스파냐에 남게 된 그는 그 해 9월 말 우베다(Ubeda) 수도원으로 옮긴 후 병고와 정신적 고통을 겪은 후 12월 13일 밤 자정이 지난 무렵에 사망하였다.

   그는 교회의 가장 위대한 신비가 중 한 명이며, 그의 저서들은 가장 유명한 영성신학의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카르멜의 산길”, “영혼의 노래”, “사랑의 산 불꽃” 등이 가장 유명하다. 요한은 1675년 교황 클레멘스 10세(Clemens X)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1726년 교황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리고 1926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교회학자로, 199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에스파냐 언어권의 모든 시인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3) 십자가 성 요한의 생애 ①

데레사 성녀와 쌍벽 이루는 ‘위대한 신비가’

 

자가의 성 요한.


위대한 신비가 십자가의 성 요한

가르멜의 성인들 가운데 성녀 데레사와 쌍벽을 이룰 만큼 영성사에 큰 획을 그은 성인이 있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의 성 요한이라는 분으로 교회 역사상 ‘위대한 신비가’ 중에 한 사람으로 불리는 분입니다. 성인은 하느님에 대한 깊은 신비 체험을 하신 분이자 이 체험을 체계적인 철학적, 신학적 개념을 바탕으로 전해서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분이 쓰신 작품들, 예를 들어 「가르멜의 산길」 「어두운 밤」 「영혼의 노래」 같은 책들을 보면,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영혼이 어떤 과정을 통해 세상과 자신에게서 이탈하고, 또 어떻게 정화되어 가는지, 그리고 정화된 다음 어떻게 하느님과 신비적으로 합일하는지 아주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흔히 가톨릭 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회자되는 분이 13세기에 활동하셨던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입니다만, 그건 신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이고, 영성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역사적으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에 버금가는, 아니 그 이상으로 위대한 성인으로 주저하지 않고 십자가의 요한 성인을 꼽습니다. 그것은 그분이 하느님에 대한 깊은 신비 체험을 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다른 사람들도 이해하고 자신들의 영적 여정에 적용할 수 있는 영성생활의 중요한 원리들을 주옥같은 작품들을 통해 체계적으로 소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십자가 성 요한의 영성에 대해 나누기 전에, 먼저 그 영성이 피어난 그분의 생애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톨레도 출신의 개종 유다인

십자가의 성 요한은 1542년 6월 24일 스페인의 중부 지방인 폰티베로스에서 태어났습니다. 성인의 부모님은 본래 스페인의 중심지인 톨레도 출신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은 곤잘로 예페스이고 어머니는 카타리나 알바레스로, 아버지는 톨레도의 유력한 가문에 속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집안 사람들은 여러 해 동안 성직자로 혹은 거상으로 지내면서 상류 계급에 속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집안은 개종한 유다인 혈통이었습니다. 당시는 가톨릭 신앙만이 절대적인 사회 규범이었고 순수 스페인 혈통만이 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개종한 유다인, 아랍인들은 그 출신 성분 때문에 사회에서 불이익을 많이 당하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유다계 혈통 집안이었던 십자가 성 요한의 아버지, 할아버지는 이러한 가문의 비밀을 숨기고 상인으로 열심히 살아서 마침내 성공한 부자 반열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 요한의 조부모께서 일찍 돌아가신 탓에 아버지 곤잘로는 부모 슬하에서 유복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숙부댁에 얹혀살면서 숙부님을 도와야 했습니다. 장사 일을 도와야 했기에 자연히 많은 출장을 다녀야 했고, 중부 지방의 작은 마을인 폰티베로스에도 들르곤 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장차 아내가 될 카타리나 알바레스를 만나게 됩니다. 카타리나 역시 톨레도 출신인데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친분이 있던 폰티베로스의 한 부인을 도우며 얹혀살던 차였습니다.


지극히 어려웠던 유년 시절

결국 두 사람은 사랑에 빠졌고 일생을 함께 하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성인의 아버지 집안에서는 두 사람의 결혼을 심하게 반대했다고 합니다. 아내가 될 카타리나의 집안이 이슬람계 노예 집안 출신이었는데, 결혼 때문에 두 집안의 신원 조사가 이루어지게 되면 결국 출신 성분이 드러나 가문이 위기에 처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집안의 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1529년 폰티베로스에서 결혼을 했습니다. 이 결혼으로 인해서 곤잘로는 톨레도의 자기 집안과 완전히 관계가 단절됐습니다.

곤잘로 부부는 폰티베로스에서 당시 그 지방 여인들이 쓰던 챙 없는 모자와 머릿수건 짜는 기술을 배워 근근이 생계를 꾸려나갔다고 합니다. 1529년에 결혼해서 1542년까지 이 부부는 아들을 셋 두었는데 요한은 그중 막내였습니다.

성인이 어린 시절 아버지 곤잘로는 친척으로부터의 소외, 생계에 대한 부담으로 인한 과로와 영양실조로 결혼 생활 15년 만에 중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당시 어린 요한은 병환으로 누워있던 아버지 대신 어머니를 도와 베 짜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요한이 8살 되던 1549년 폰티베로스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성인의 실질적 고향 메디나 델 캄포

생활고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성인의 어머니는 자기 가족에게 보다 나은 가능성을 줄 수 있는 좀 더 번화한 도시로 이사할 것을 결심합니다. 그래서 폰티베로스 근처의 아레발로로 이사를 하게 되는데 그곳에서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자 1551년 보다 큰 도시인 메디나 델 캄포로 이사를 하게 됩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 살던 당시의 메디나 델 캄포는 대도시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번영을 구가하던 곳이었습니다. 특히 이 도시에는 상업이 번성했으며 일 년에 두 차례 5월과 10월에 국제 무역 시장이 열렸습니다. 십자가의 요한은 이런 도시의 분위기를 한껏 만끽하며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성인은 10살에 이 도시로 이사해 가르멜 수도원에 입회해서 서원하는 21살까지 지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중·고등학교 시절, 그리고 질풍노도의 시기인 사춘기를 여기서 보낸 셈입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비록 성인이 태어난 곳이 폰티베로스이긴 하나, 성인의 실질적인 고향은 메디나 델 캄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화신문, 2015년 4월 26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4) 십자가 성 요한의 생애 ②

1564년 ‘성 마티아의 요한’ 수도자로 거듭나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 4년 동안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살라망카대학.


홀어머니를 도와 간호사가 되다

남편을 여의고 두 아들을 키워야 했던 십자가 성 요한의 어머니는 결국 국제무역으로 유명한 메디나 델 캄포에 둥지를 틀게 됩니다. 당시 그곳에는 가난한 집안 아이들이나 고아들을 위한 교리학교가 있었는데, 어린 요한은 여기서 읽고 쓰는 것을 배우며 처음으로 정규 공부를 하게 됩니다. 요한은 나름대로 공부를 잘 따라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도시에 있던 아우구스티노회 수녀원에서 미사 복사도 했습니다. 요한은 어머니를 도와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놀기도 했지만 일찍부터 고생을 하며 자라서 같은 또래의 다른 소년들에 비해 한결 민감하고 생각이 깊은 아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아우구스티노회 수녀원의 지도 신부셨던 알론소 알바레스 신부님은 이 어린 요한을 눈여겨보았습니다. 그런데 알론소 신부님은 메디나 델 캄포의 ‘부바’라고 하는 병원의 책임자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신부님은 성실하고 사려 깊은 이 어린아이를 도와주기로 하고 자신의 병원에서 남자 간호사로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홀어머니를 도와줄 수 있는 일자리를 갖게 된 것이 매우 좋았던 요한은 그때부터 병원에서 성심껏 일하게 됩니다.


예수회 학교에서의 학업

이런 요한이 마음에 들었던 병원장 알론소 알바레스 신부님은 당시 그 도시에서 예수회 신부님들이 새로 설립한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습니다. 그곳은 오늘날에 비교하자면 중·고등학교로 성인은 여기서 문법, 수사학, 형이상학, 라틴어, 스페인 고전 등을 배우게 됩니다. 요한은 1559년부터 1563년까지 4년간 이 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이렇게 병원에서 일하고 학교에서 공부하는 과정을 거치며 소년 요한의 마음 안에는 점차 하느님에 대한 사랑,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자리를 잡게 됩니다. 학교에서 공부를 마칠 무렵, 병원장이신 알론소 신부님은 요한이 사제품을 받아서 병원의 원목으로 일할 수 있도록 제안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되면 병원 입장에서는 미사와 고해성사를 병자들에게 마음 놓고 줄 수 있고 요한의 입장에서도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에게 새로운 미래를 열어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분의 그러한 호의를 알면서도 보다 깊은 자기 내면의 원의에 따라 그것은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정중히 거절했다고 합니다.


가르멜 수도자가 되다

당시 메디나 델 캄포에는 1560년에 설립된 가르멜 수도원이 있었는데, 요한은 1563년 예수회 학교를 마치자 이 수도원에 입회하게 됩니다. 성모 신심이 깊었던 요한은 다른 수도회보다 가르멜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시는 가르멜 수도회에 마음이 끌렸다고 합니다. 여기서 요한은 1년간 수련을 받았습니다. 당시 수도원은 아주 작았으며 요한의 방은 아주 비좁고 어두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요한은 굳은 결의를 하고 헌신적으로 수도 생활에 정진했습니다.

요한은 천성적으로 상냥하고 감성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고 이런 성격은 병원에서 일하면서 많이 계발됐지만, 다른 한편으로 침묵과 고독을 참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련기 동안 함께 살았던 수사님들은 엄격하고 침묵과 고독을 추구했던 그의 모습으로 인해 조금은 기이한 사람으로 여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형제들은 그의 성실하고 진지한 모습을 칭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가 지나치게 열성적이라고 생각했다 합니다. 그래서 훗날 요한이 장상이 됐을 때 이 초기의 인상 때문에 많은 수사님은 그가 지나치게 엄격하리라고 예상하고 요한이 장상으로 임명되는 것을 두렵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예상과 달리 요한은 자신에게는 엄격했지만, 공동체 형제들에게는 따스한 형제애를 전했고 특히 아픈 형제들에게는 지극 정성으로 대했다고 합니다. 요한은 1564년 5월 21일 메디나 델 캄포의 가르멜 수도원에서 ‘성 마티아의 요한 수사’라는 이름으로 서원을 했습니다.


살라망카에서의 철학과 신학 공부

수련을 마치고 서원을 한 청년 요한 수사는 학업을 위해 메디나 델 캄포를 떠나 학문의 도시인 살라망카로 가게 됩니다. 이 도시는 중세 당시 가톨릭 교회에서 스콜라 신학이 크게 번창한 곳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중세 때 교회의 학문적 전통을 지탱해 주던 도미니코 수도회를 비롯해 여러 수도회의 많은 학자 신부님들이 철학과 신학을 가르쳤습니다. 당시 살라망카대학은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의 신학대전을 바탕으로 철학과 신학을 가르치던 요람으로, 20세기 중반에 개최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이르기까지 교회 모든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를 주도한 당대의 최고 석학 신부들이 소위 ‘살라망카 학파’라는 학자 그룹을 이뤄서 활동하던 곳이었습니다.

요한은 바로 여기서 만 4년 동안 철학과 신학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성인의 여러 작품을 보면 학문적인 토대가 탄탄하며 체계적인 틀을 갖고 자신의 사상을 전개해 나간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것은 그 시절 최고 학부인 살라망카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제대로 공부하셨기 때문입니다. 당시 성인은 이곳에서 다양한 학문과 사람들을 접하면서 학업뿐만 아니라 예전보다 훨씬 더 균형 잡힌 성품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에게는 엄격했지만 주위 사람들에게는 따스하고 정이 많았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던 성인의 성품은 살라망카 시절에 형성됐습니다. [평화신문, 2015년 5월 3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5) 십자가 성 요한의 생애 ③

사제품 받은 요한 수사, 데레사 수녀를 만나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 학생 수도원 원장으로서 학생 수사들을 지도하며 신학 석·박사 과정을 공부한 알칼라대학. 스페인 왕실에서 설립한 이 대학은 살라망카대학과 더불어 당대 최고의 대학이었다.


성녀 데레사와의 역사적 만남

십자가의 성 요한은 1563년부터 1568년까지 살라망카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학업을 마쳐갈 무렵이던 1567년, 살라망카 주교좌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첫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그해 여름, 고향인 메디나 델 캄포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당시 그곳에는 두 번째 개혁 가르멜 수녀원 창립을 위해 제자 수녀들과 함께 와 있던 성녀 데레사가 있었습니다. 성인은 함께 사제품을 받은 친구 신부의 주선으로 성녀 데레사를 만나게 됩니다.

영성사에서는 당시 이 두 분의 만남이 역사적인 사건이라고 자주 회자하곤 합니다. 두 분 모두 영성사에 큰 획을 남긴 대단한 영성가이자 교회박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두 분의 만남으로 인해 남자 맨발 가르멜 수도원 탄생의 결정적인 계기가 마련됩니다.

당시 성녀는 관상적이면서 동시에 사도적인 자신의 이상을 함께 할 남자 맨발 가르멜의 창립을 절실히 원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철저한 침묵과 고독 그리고 희생과 기도를 특징으로 하는 봉쇄 수녀원을 설립했지만, 성녀는 교회 가르침을 곳곳에 전하고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1000개의 목숨이라도 바칠 만큼 영혼 구원과 성화에 헌신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남존여비 관념이 팽배했던 중세에 수도자가 된 여인들은 수많은 제약 가운데 봉쇄 수녀원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성녀는 자신의 이상을 함께 나눔과 동시에 교회에 실질적인 봉사를 하게 될 남자 맨발 가르멜의 창립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반면, 요한 수사 같은 경우에는 사제품을 받을 즈음에 더욱 엄격한 수도 생활을 하고 싶은 거룩한 열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가르멜 수도회에서 엄격한 은수 생활을 하는 카르투시오 수도회로 이전하려는 고민 중에 있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친구 신부는 요한 수사에게 성녀 데레사를 소개해 주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1567년 여름, 메디나 델 캄포의 가르멜 수녀원에서 두 성인의 역사적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성녀 데레사는 그런 열정을 갖고 있던 요한 수사를 설득해서 남자 맨발 가르멜 수도원의 첫 번째 멤버가 되도록 부탁했고, 요한 수사는 그런 성녀의 계획을 들으며 성녀와 의기투합을 하게 됩니다.


개혁 가르멜 수도자가 되다

이렇게 해서 맨발 가르멜의 첫 번째 수사가 된 요한 수사는 성녀 데레사가 마련해 준 첫 번째 남자 맨발 가르멜 수도원에서 1568년 11월부터 생활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요한 수사는 기존 가르멜에서 사용하던 성 마티아의 요한이란 수도명을 버리고 ‘십자가의 요한’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사용하게 됩니다.

성녀 데레사가 창립한 첫 번째 남자 수도원은 아빌라에서 멀지 않은 두루엘로라는 조그마한 마을에 은인의 주선으로 희사받은 작은 집을 고쳐서 만든 것이었습니다. 성녀가 초창기 가르멜 수도원, 수녀원의 역사에 대해서 쓴 「창립사」 14장을 보면, 당시 몇몇 수녀들과 이곳을 보기 위해 방문하고 나서 받은 강한 인상과 감동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십자가의 요한을 비롯한 세 분의 초창기 맨발 가르멜 수사들은 엄격한 고행과 기도 속에서 온전히 세속을 이탈하고 주님의 법을 묵상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마을에 나가 강론과 성사 집전을 통해 영혼 구원과 성화를 위해 일했습니다.


알칼라 학생 수도원 원장 시절

점차 이들의 수도 생활에 대한 명성이 널리 퍼지면서 이들과 함께하려는 지원자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1570년 두루엘로 수도원을 폐쇄하고 이곳에서 가까운 만세라라는 마을에 희사받은 좀 더 큰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571년, 십자가의 요한은 알칼라라는 대학 도시에 창립된 새로운 학생 수도원의 원장으로 부임하게 됩니다.

당시 알칼라에는 스페인 왕실에서 나라의 인재들을 키우기 위해 설립한 알칼라대학이 있었는데, 이 대학은 살라망카대학과 더불어 스페인의 당대 최고 대학이었습니다. 성인은 이 도시에 설립한 새로운 학생 수도원 원장으로서 알칼라대학에서 공부하던 학생 수사들을 지도하며 동시에 이 대학에서 신학으로 석·박사 과정을 공부했습니다.


아빌라의 강생 수녀원 지도 신부

십자가의 요한 성인의 생애를 따라가다 보면 성녀 데레사의 생애와 겹치는 부분이 종종 나옵니다. 1572년 성녀 데레사는 장상 신부님들의 명에 따라 자신의 친정집과 같은 아빌라의 강생 가르멜 수녀원의 원장으로 부임하게 됩니다.

성녀는 이 큰 수녀원이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쇄신 작업을 하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당시 알칼라 가르멜 수도원의 원장으로 있던 십자가의 요한 수사를 강생 수녀원의 영적 지도 신부로 초대한 일이었습니다. 성녀는 요한 수사의 온화함과 영적 생활에 대한 깊은 지식이 수녀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요한 성인은 1572년부터 1577년까지 만 5년을 아빌라에서 살면서 150명이나 되는 수녀들을 영적으로 지도했으며 미사, 성사 집전을 비롯해 다양한 강의를 통해 수녀들의 영적 쇄신을 도모했습니다. 성인은 이곳에서 봉사하며 많은 일을 성공적으로 해냈습니다. [평화신문, 2015년 5월 10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6) 십자가 성 요한의 생애 ④

톨레도 감옥에서 영혼의 ‘어두운 밤’ 체험

 

납치되어 톨레도 수도원 감옥으로 이송되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1572년부터 1577년까지 아빌라의 강생 수녀원 지도신부로서 수녀들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나 개혁 가르멜 수사들의 숫자가 많아지면서 개혁 가르멜 운동에 탄력이 붙자 이를 두려워한 기존의 원 가르멜 수사들은, 맨발 가르멜 운동의 정신적인 지도자 격인 십자가의 성 요한을 납치해서 회유한다면 개혁 운동의 기가 완전히 꺾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1577년 12월 2일 밤, 십자가의 성 요한이 강생 수녀원 근처의 작은 집에서 끝기도를 바치고 있을 때 성인을 납치했습니다.

납치된 다음 날, 성인은 톨레도의 가르멜 수도원으로 이송되어 수도원의 쪽방에서 감금된 채 8개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당시 성인은 원 가르멜 수사들로부터 갖은 협박과 회유, 인격 모독을 받으며 정신적, 육체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성인이 옥살이했던 방은 폭이 2m, 길이가 3m 정도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방인 데다가 창문도 없어 빛이 전혀 들어올 수 없는 구조에 견고한 나무문으로 닫혀 옴짝달싹할 수 없던 곳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침대처럼 쓰도록 갖다 둔 나무 널빤지 두어 장과 낡은 담요 한두 장 그리고 변기로 사용한 통이 전부였습니다.

이 어둡고 냄새나는 방에서 성인은 인생 최대 위기를 맞게 됩니다. 성인에게 주어지는 음식은 아주 조금밖에 되지 않았고 그나마 수사들이 먹고 남은 찌꺼기였다고 합니다. 또한, 매주 금요일이면 성인은 식당에 끌려가 식당 한복판에서 무릎을 꿇고 약간의 빵과 물만 먹어야 했으며 식사가 끝나면 원장 신부의 인격 모독 발언을 수없이 들어야 했습니다. 원장 신부의 야단이 끝나면 모든 수사는 시편 50편을 읊조리며 차례로 성인을 채찍질했다고 합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 직접 그린 '가르멜 산 등반 여정'


영혼의 어두운 밤을 체험하다

그뿐만 아니라 어느 때부터는 뇌물과 명예를 약속하며 끊임없이 성인을 회유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성인이 맨발 가르멜 운동을 포기한다면, 원장 자리를 약속한다거나 금으로 된 십자가를 주겠다며 성인을 꼬드겼다고 합니다.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에 열악한 환경, 빈약한 식사 등으로 인해 성인은 이질을 비롯해 여러 가지 질병으로 고생해야 했습니다. 성인은 이런 상황에 직면해서 심지어 목숨의 위협까지 느꼈다고 합니다. 그래서 차라리 하느님께서 자신의 목숨을 거둬 가시길 바랐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이런 물음이 성인의 마음속에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왜 내게 이런 고통이 주어지는 것일까?” “하느님은 어디에 계시다는 말인가?” “혹시 나를 버리신 것은 아닌가?” 이러는 가운데 성인은 그간 자신이 믿어왔던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리는 체험,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체험, 자기 나약함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런 암흑의 고통 속에서 성인은 점차 정화되어 갔고 하느님의 부재(不在) 속에서 오히려 선명하게 빛나는 하느님의 현존, 하느님의 깊은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마침내 성인은 고통과 시련 속에서 영적으로 새로 태어나기에 이릅니다.


톨레도 감옥에서의 탈출

당시 성인은 옥살이를 하며 알게 된 마음씨 좋은 간수 수사로부터 필기도구와 종이를 얻어 주옥같은 이 체험을 시로 써내려갔습니다. 이 재료는 훗날 영성사에 길이 남을 명작인 「가르멜의 산길」 「어두운 밤」 「영혼의 노래」 「사랑의 산 불꽃」의 모티브가 됐습니다. 이렇듯 톨레도에서의 어두운 밤 체험은 성인의 인생에 있어 커다란 전환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곳에서 옥살이하며 갖은 고생을 하던 성인은 1578년 성모 승천 대축일 밤에 경비가 허술한 틈을 타 몰래 만든 밧줄을 타고 창문으로 내려가 수도원과 톨레도 성벽이 이어진 높은 담벼락을 따라 간신히 탈출했습니다. 그 후 성인은 성녀 데레사가 창립한 톨레도 맨발 가르멜 수녀원에 잠시 피신해 있다가 스페인의 남부인 안달루시아 지방으로 내려갔습니다. 또 다른 박해가 있을 것을 염려한 맨발 가르멜 회원들이 성인을 남부 지방으로 피신시키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갈바리오 수도원 시절

이렇게 해서 십자가의 성 요한은 스페인 남동부 지방의 갈바리오라는 조그마한 마을에 신설된 수도원의 원장으로 발령을 받아 가게 됩니다. 성인은 그곳에서 수도 생활을 하며 주말에는 그곳에서 가까운 베아스의 가르멜 수녀원을 방문해서 수녀님들을 위해 미사도 봉헌하고 고해성사도 주며 영적 지도도 했습니다. 그리고 수녀님들의 끈질긴 청원에 못 이겨서 성인은 톨레도 감옥에서 지었던 시들에 대한 해설서를 쓰게 됩니다. 그래서 탄생한 작품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져 오는 「영혼의 노래」라는 책입니다.

또 성인은 그곳 수녀님들을 위해 「영적 권고」도 썼습니다. 그리고 완덕을 상징하는 가르멜 산의 정상을 향해 나아가는 영적 여정을 그림으로 표현한 유명한 ‘가르멜 산 그림’도 그때 그려서 베아스 수녀님들에게 선물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십자가 성 요한의 영적 가르침 전체를 집약하는 상징적인 그림으로서 성인의 영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화신문, 2015년 5월 17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7) 십자가 성 요한의 생애 ⑤

하느님 향해 나아가는 ‘완덕의 길’ 밝힌 큰 빛

 

세고비아 가르멜 수도원 내 경당에 있는 십자가 성 요한의 무덤.


바에사, 그라나다, 세고비아 시절

톨레도 감옥에서 탈출 후 2년간 갈바리오에서 지낸 십자가의 성 요한은 스페인 남부의 대학 도시인 바에사로 가게 됩니다. 그곳은 그라나다와 갈바리오 중간에 있는 도시로 16세기 스페인에선 꽤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스페인이 자랑하던 바에사대학이 있었는데, 맨발 가르멜 회원들은 이곳에 학생 수사들을 위한 수도원을 창립하기로 하고 십자가의 요한을 그곳의 초대 원장으로 임명했습니다. 그래서 성인은 1579년 여름 이곳으로 오게 됩니다.

여기에서의 생활 역시 성인에게는 평범한 일상이었지만 이 일상을 통해서 그분은 더욱 깊이 성성에 나아갔습니다. 지극한 청빈의 정신을 살았지만, 공동체 형제들에게는 관대했고 형제애를 베풀었으며 찾아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늘 희사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손수 집안을 돌보고 수리했으며 자주 밤마다 2~3시간만 자면서 깊은 기도에 빠지곤 했습니다. 간혹 틈이 나면 갈바리오에서 집필을 시작한 「가르멜의 산길」과 「영혼의 노래」에 대한 해설을 계속 써나갔습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을 영적 지도에 바쳤는데, 학생들은 물론 그곳의 평신도들이 성인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1581년에는 알칼라에서 처음으로 맨발 가르멜 회원들의 총회가 열렸습니다. 당시 이 총회에서 십자가의 성 요한은 독립된 맨발 가르멜 관구의 참사로 선출되어 약 8년 동안 장상으로서 수도회를 위해 봉사했습니다.

1582년 십자가의 성 요한은 스페인 남부의 대표적인 도시 가운데 하나인 그라나다에 신설된 수도원의 원장으로 부임해서 약 6년간 활동하면서 상당히 많은 일을 하게 됩니다. 아마도 그라나다 시절이야말로 성인의 생 애에서 가장 많은 결실을 본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성인은 이곳에서 「영혼의 노래」 시(詩)에 대한 해설서 집필을 완전히 끝내고 「사랑의 산 불꽃」 해설서도 썼습니다. 그리고 갈바리오 수도원 시절에 시작한 「가르멜의 산길」과 「어두운 밤」 해설서도 완성했습니다. 쉽게 말해, 오늘날 우리가 접하고 있는 성인의 책 대부분은 그라나다에서 다 완성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 후, 성인은 1588년 스페인 중부의 세고비아 수도원의 원장으로 부임해 수도원 신축 공사에 직접 참여했으며 틈틈이 도시의 신자들과 수도자들을 대상으로 영적 지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갈바리오 수도원 시절에 영적 지도를 했던 베아스 가르멜 수녀들을 계속해서 편지로 지도해 주었습니다.


수도회 장상들로부터의 박해

1590년 수도회 부총장 회의가 열렸을 때 십자가의 성 요한은 당시 수도회의 총장 신부와 몇 가지 사안에 대해 의견 충돌이 있었습니다. 성녀 데레사의 개혁 정신을 잘 알고 있던 십자가의 성 요한은 가르멜 수녀들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일련의 조치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성인은 수도회 내에서 탄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성인은 부총장직을 사임해야 했고 세고비아 수도원 원장직에서도 해임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에 오지나 다름없던 멕시코로 강제적으로 선교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병으로 인해 당시 성인의 건강은 많이 악화되어 갔습니다. 특히 오른쪽 다리에 염증이 생겨 많이 곪았다고 합니다.

수도회 장상들은 치료를 위해 성인에게 우베다와 바에사 두 수도원 가운데 한 군데를 선택할 자유를 주었습니다. 그를 아끼는 많은 사람은 우베다보다는 예전에 사목 활동을 했고 그래서 그를 아는 사람이 많고 다른 곳보다는 좋은 의약품을 구할 수 있는 바에사로 가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반면, 우베다 수도원에는 성인이 예전에 장상으로 있던 수도원에서 평수사로 지내며 성인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적이 있던 수사가 원장으로 있었고 그 신부는 평소에 성인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다고 합니다. 더욱이 우베다 수도원은 신설 수도원이라 상당히 가난해서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인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동참하기 위해 이런 상황을 알면서도 우베다로 가기를 자청했습니다.


우베다 수도원에서의 임종

예상대로 성인은 우베다 수도원에서 죽기 전까지 병고에 시달리면서 그곳 원장 신부로부터 많은 부당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거처했던 병실은 아주 허술하고 작은 쪽방이었으며 병이 심했지만 헐한 음식이 주어졌고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또 중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체 시간에서 어떠한 예외도 받지 못했습니다.

이런 부당한 처사를 지켜보다 못한 젊은 간호 수사가 당시 그 지역 관구장이자 초창기에 두루엘로에서 성인과 함께 개혁 운동을 시작한 안토니오 신부에게 편지를 보내 사태를 수습하게 됩니다. 그때가 1591년 11월 하순으로 당시 성인은 이미 죽어가던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성인은 1591년 12월 14일 우베다 수도원에서 수사들에게 둘러싸인 가운데 임종을 맞았습니다.

메디나 델 캄포의 병원에서 병자들을 정성스레 간호했던 착한 청년이었고 맨발 가르멜의 첫 수사였으며 톨레도에서는 죄수로 갇히기도 했고 후에 맨발 가르멜의 부총장이기도 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지극히 사랑했던 사람, 십자가의 요한 수사는 이렇게 해서 생애를 마쳤습니다.

그분의 영적 가르침은 「가르멜의 산길」 「어두운 밤」 「영혼의 노래」 「사랑의 산 불꽃」에 담겨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하느님을 향해 길을 가는 수많은 사람에게 큰 빛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성인은 1726년 베네딕토 13세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1926년 비오 11세 교황에 의해 교회박사로 선포되었습니다. [평화신문, 2015년 5월 24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2016.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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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이시죠-^^


주님피 목숨 회개만이 천국!! 주님 피 회개 믿어도 회개치 못하며 죄가 하나라도 있으면 지옥!!

 

 

 

 

 

 

 

저는 병고침 받았습니다..

 

 

 

 

제 아버지 당뇨 합병증이셨는데, 당뇨망막증 장님 다 되셨는데.. 완치로 눈 온전히 보이시고 정상생활..

 

 

 

 

당뇨 고쳐주시고..

 

 

 

 

제 어머니 피부병..

 

 

 

 

저 만성충농증.. 회개할때 주님께 고쳐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주님께서 자동 고쳐주심..

 

 

 

 

제 목디스크 회개후 바로 그자리에서 즉시 고쳐주심...

 

 

 

 

제 동생 학교 휴학에서 건지심..

 

 

 

 

저는 왕따였습니다.. 주님꼐서 함께 하시고 이기고 견디게 하심...

 

 

 

 

제 동 생 도 왕따였는데 마찬가지로 건디게 하심...

 

 

 

 

제 이모 암병 걸리셨는데, 암병에서 삼일금식시키시고 완치.. 암에서... 온전히....

 

 

 

 

제 아버지 불의의 교통사고로 감옥살이에서.. 죄없는 누명에서.. 유전무죄인데.. 돌릴수없는 법률에서 출옥하게 하심...

 

 

 

 

저 폭력에서 현장에서 학교폭력에서 현장에서 사람붙이셔서 일진, 짱에게서 건지심..

 

 

 

 

학교에서 괴롭힘에서 건지심....

 

 

 

 

사회에서 금감원과 걸린, 국가도 대기업회장도 못이기는 금감원과의 싸움에서, 법적으로 다 걸렸는데, 건져주심... 1000만원 가량의 벌금에서 건지심.. 참고로.. 저는 당시 통장잔고가 0원.... 빚내기 불가...

 

 

 

 

신불자.. 감옥살이가 정답이였습니다...ㅠㅠ

 

 

 

 

또, 사회에서 각종 불의한 일을 만나 싸움에서 경찰불러서 건지심..

 

 

 

 

또, 각종 악한 일에서 성폭행등과 같은 일에서 건지심..

 

 

 

 

회사 상사에서 직장에서 불의한 일에서 돈못벌고 모든 것 중단에서 건지심...

 

 

 

 

평생에 건지시고 고쳐주시고 구해주시고 사해주시고 행하시고 함께 하시고 사랑해주신 나의 주 하나님..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내 주 예수님을 전합니다.. 당신에게 당신을 죽기까지 사랑하시고, 당신을 위해 십자가피죽음의 피와 목숨으로 죽기까지 사랑하시며,

 

 

 

 

아래 글 그대로 믿어요..

 

 

 

 

" 주님께서 찔리심은 님의 허물때문이요. 주님께서 상하심은 님의 죄악때문이라. 주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님은 나음을 얻고, 주님꼐서 징계를 받으심으로 평화를 누리도다..." 주님께서 님의 병의 고통을 가져가셨습니다.. 그러니까, 님은 행복하고 병고침과 자유함과 기쁨과 평화와 즐거움을 누리고,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대신 님의 병의 고통과 힘듬과 병을 고난을 당하시고 맞아 살찢고 피흘려 십자가피죽음의 피와 목숨으로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을 믿어드리십시요...

 

 

 

 

그리고, 주님 피 목숨 회개 후 주님께 돌아오십시요..

 

 

 

 

제가 한번은 목디스크에 걸렸었는데요.. 죽지는 못하고 딱 기절해서 정신을 잃으면 고통이 없을 것 같았던 고통이 였습니다.ㅠㅠ

 

 

 

 

그런데요.. 주님께 무릎꿇고 주님께 부탁했습니다ㅠㅠ

 

 

 

 

" 주님 저는 항상 주님꼐서 도구로 쓰셔서 위와 같이 전하게 하셨는데요.. 제가 지금 목디스크로 너무 아파요.. 딱 한번만(거짓말이였습니다ㅠㅠ) 고쳐주세요.."

 

 

 

 

그러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너 직장 갔을때, 직장에서 해고한 상사 미워한 것 있지않느냐? 미워한 거 회개해라.."

 

 

 

 

그래서 바로 " 주님 잘못했습니다ㅠㅠ 미워한 것 용서해주세요..ㅠㅠ"라고 회개했습니다ㅠㅠ 사실 저는 미워한 줄도 모르고 그저 억울한 줄 알았습니다ㅠ 그런데 제 중심을 보시고 주님께서 미워한 줄 알고 계셨습니다.. 그걸로 병이왔습니다ㅠㅠ 목디스크.. 디스크 걸려봐요.. 수술도.. 약도.. 답도 없어요..ㅠㅠ

 

 

 

 

그말한마디에 갑자기 기도하고 있는 눈감고 있는 제 머리위로, 주님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새까만 발이 나타났습니다ㅠㅠ 그리고요.. 주님의 십자가에서 제 병의 고통과 제 죄악과 지옥의 고통을 대신 벌받아 죽으신 주님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새까만 나무에, 하도맞으셔서 새까만 발에서 못박혀 계시는데, 그 십자가에 제 죄악과 지옥과 병의 고통을 대신담당하시며 못박혀 계신 십자가의 주님의 발에서 제 목위로 못박히셨으니 피가 나잖아요? 그런데, 뚝뚝 제 목디스크의 제 목위로 떨어졌습니다ㅠㅠ

 

주님의 십자가에서 못박히신 발에서.. 제 목위로.. 주님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발에서 떨어지는 피가...ㅠㅠ

 

그리고, 주님께서는 저를 통해 말씀하셨듯, 지금처럼요....ㅠㅠ 이 모든 것 주님께서 주시고, 주님께서 행하신 것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제 죄악과 지옥과 병의 고통을 대신 당하시고 벌받으시고 죽으시고, 제 죄악을 주님 피로 씻어주시고, 제 지옥을 대신 벌받으시고, 제 병을 대신 고통당해주시고, 저는 그자리에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못박히신 발에서 떨어지는 피로 제 목디스크는 현장에서 고쳐주셨습니다!!^^

 

 

 

 

님에게 주님께서 지금 병을 이렇게 고쳐주실겁니다..

 

 

 

 

먼저 주님을 믿고, 주님께 기도하시고, 회개하십시요..!!^^

 

 

 

 

그리고, 주님께서 님의 병의 고통을 가져가시고, 대신 병의 고통을 당하시고, 님의 죄악을 대신 벌받으시고, 대신 지옥의 죽음을 십자가피죽음의 피와 목숨으로 죽기까지 사랑하시고 주님꼐서 대신 벌받고 당하시고 주님께서 그 자리에서 저처럼 주님께서 고통을 가져가시고, 주님께서 병의 고통을 대신 당하시고, 님은 병의 고통에서 자유, 병고침, 행복을 받고 누리시면 됩니다!!^^

 

 

 

 

주님께서 이 모든 지혜, 말씀, 병고침, 사랑, 모든 것을 주시고, 행하셨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의 십자가피죽음의 피로 목숨으로 죄를 하나라도 회개치 않으면 지옥갑니다....

 

 

 

 

 

 

 

 

 

 

주님께서 당신대신 살찢고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아이가 부모에게 잘못했다고 빌듯, 피로 용서받고 천국가세요!

 

 

 

혹시, 고통있으신가요? 병으로 고통당하고 계신가요? 외로움으로 힘에 겨워 지쳐 계신가요? 두려움에 싸여 헤어나오지 못하고 힘들어 하고 계신가요? 좌절과 낙망 속에 다시 일어날 수 없어 주저 앉아 계시진 않으신가요?

 

하지만 주님을 모르는 당신을 위해 죽음으로 사랑하셔서 해결해 주시고자 하시는 주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내 고통을 대신 고통당해, 내 힘들고 어두운 고질 병을 대신 고통을 당해, 힘들고 지친 외로움을 대신 당해, 해결불가능한 두려움에서 싸인 나를 건져주시고자, 좌절과 낙망 속에 일어날 수 없는 나를 보시고, 나보다 내 고통이 더 안타까우시고 더 아프시고 더 슬프셔서 피눈물 흘리고 계신 주님이 지금 귀하신 분을 보고 계십니다. 귀하신 분을 사랑하시며... 내 짊어진 고통을 주님께서 다 대신 짊어지시고 고통스럽게 죽어 해결해주신 분이 계십니다. 그러나 내가 믿지 않고 주님을 외면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다 해결된 나의 문제에 아무 손을 쓰실 수도, 도움을 주실수도 없습니다. 해결해 주실수 있는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창조주 주님께서 나를 보고 나보다 나를 더 잘아시며, 나의 고통을 더 아파하시며 슬퍼하시며 피눈물을 흘리며 단 한순간도 빼지 않고 보고 계시지만, 주님을 무시하고 외면하고 버렸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피눈물만 흘리며 주님을 무시하지 않고 외면하지 않고 버리지 않고 다시 찾고 만나주시길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님은 나의 인격,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싫다고 거부하면 결단코 강압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 주신 자유와 인격은 결단코 누구도 침해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내 탓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보고 피눈물 흘리며 기다리시는 거 모르시죠? 주님께서 나보다 나를 보고 더 슬퍼하시며 내대신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심정 그대로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사랑하셨다는 모르시죠? 죽기까지 사랑해서 주님 본인의 목숨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셔서 목숨걸고 죽으시고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도 모르시죠? 전능하시고 전지하시고 창조주이신 내가 버린 주님께서 지금 천국에서 피눈물을 뚝뚝 떨어뜨리시며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거 모르시죠? 그렇게 죽기까지 주님께서 지금 사랑하고 있다는 거 모르시죠? 내 고통, 내 고질병, 나의 외로움, 내 두려움, 나의 좌절과 낙망 해결해 주시고 도움을 주고 싶으셔도 내가 주님을 무시해서, 내가 주님을 외면하고 주님의 사랑을 짓밟아서 주님께 도움을 구하기는 커녕 주님을 무시하고 배신하고 사랑을 잔인하게 짓밟고 살아서 주님께서 나보다 아프시고, 주님 본인 목숨보다도 나를 사랑하시건만 주님께서 아무것도 할수없이, 이런 나를 보시며 안타까워하시며 사랑하시며 나보다 더 아파하시며, 나는 배신하고 무시하고 사정없이 주님의 사랑을 잔인하게 짓밟고 주님은 그런 나를 보며 주님 본인보다 더 사랑하시고, 내 고통을 보며 더 아파하시고 슬퍼하시고 해결해주고 싶어하시고, 죽기까지 사랑하시며 그 사랑 그대로 그저 한없이 기다리고 피눈물 흘리시는 주님께서 당신을 해결해 주고자 피눈물 흘리시며 죽기까지 사랑하신 심정 그대로 사랑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내 고통이 너무 마음 아프셔서, 너무 슬프시고 해결해주고 싶으셔서 한가지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죄없는 나를 만드시고, 온 우주와 모든 태양과 천지 만물을 만드시고, 나무과 공기와 바람을 만드시고, 물과 음식과 몸과 부모와 모든 것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직접 죽으시고 댓가를 치르시고 해결해 주시면 되는 겁니다. 나는 수없는 죄를 지었습니다. 음란하고, 남의 것 탐내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욕심부리고, 도둑질하고, 미워하고, 주님을 무시하고 등 수없는 셀수 없는 죄를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지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어떤 사람이 직장을 다녔습니다. 사회에서는 다 자기마음이니, 계속 가는 곳마다 계속 짤렸습니다. 그래서 그리고 그 사람은 직장 상사를 미워했습니다. 그런데, 상사를 미워한줄도 모르고 자신이 잘하고 억울하다고 생각하면서 그저 억울하다고 생각하면서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주님께서 기도하는 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 상사 미워한 거 회개해라.’라고요. 그 사람은 상사에게 억울하다고는 생각했지만, 미워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아셨습니다. 중심을 보시는 주님께서는 그 사람이 미워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본인도 당연한 일에 억울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미워했다고 생각지 않고 속고 있었는 데... 그 사람은 그 자리에서 회개했습니다. 누구나 이런일이 빈번합니다. 태어나서부터 미워한 사람만 손에 꼽아봐도 그 죄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죄값은 반드시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경찰서에서 벌금을 내거나, 감옥에 갇히거나 해서 죄값을 치르지만,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창조주이신 주님 앞에서는 죄값은 세상에서 저주와 질병과 고난과 고통과 가난이고, 죽어서는 영원히 지옥에서 형벌받는 것입니다. 죄값은 누구나 받게 되어 있습니다. 누구나 예외는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누구도 없습니다. 주님도 죄를 짊어지셨을 때는 죄값으로 맞아 죽는 사형의 벌을 받으셨습니다. 이렇게 수없이 지은 죄값으로 받는 지옥의 형벌(조금만 설명 드려볼께요. 영혼이 있다는 거 아시죠? 꿈 속에서 나와 똑같은데 몸은 자고 있고 두려움과 슬픔과 기쁨의 감정을 느끼는 영혼이 있습니다. 그 영혼은 몸은 나이들거나 어떤 일로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습니다. 그 감정을 지닌 영혼이 지옥에 떨어지는 데, 귀신들이 커다란 칼로 목을 쳐버리고, 온 몸이 불로 타고 살을 못으로 깍아내고, 뱀이 눈으로 들어갔다 발로 나왔다 하고, 장기를 뱀이 다 먹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의 형체를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고문을 줘서 형벌 받는데, 고문 당해 머리가 잘려도 영혼이기때문에 다시 재생됩니다. 이걸 몇 년 당해야 되냐면 100년도 아니고, 1000년도 아니고, 이제는 죽지못하고 끝없이 1조년도 아니고 영원히 형벌만 당해야 됩니다. 기회도 없고, 쉴수도 없고, 끝이 있거나 죽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영원히 쉬지 못하고 죽지 못하고 기회 없이 영원히 형벌당합니다. 고통을 귀신이 주는 데 이게 상상할 수 없는 고통에 세상에서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지옥의 고통에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끝이 없는 죽을 수 없는 1조년정도에 끝나지도 않는 쉬지않는 영원한 형벌의 고통의 지옥... 지옥이라는 죄값으로 가는 형벌장소가 조금 이해되시나요?) 수없이 지은 죄값을 세상에서는 법망을 피할 수 있을 지라도, 지옥에서는 작은 거 하나하나 다 죄값으로 지옥에서 숨기지 못하고 다 죄값으로 벌을 받게 됩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수없는 죄를 지은 죄인입니다. 아니라고 말하실 수 있습니까? 미워한 것만 해도 열손가락도 넘어갈텐데... 그 죄 때문에 죄값으로 귀신이 당신에게 고통과 저주와 문제와 병과 두려움과 외로움과 모든 고통을 줬습니다. 그리고 지옥을 갑니다. 죄값의 형벌과 고통을 어떻게 피해갈 수 있습니까? 지금 내 지긋지긋한 고통, 고질병, 두려움, 문제, 외로움, 좌절과 낙망, 어려움은 다 죄값이고, 귀신이 죄값으로 주는 고통입니다. 이 죄값는 벌받는 방법 밖에 없는 데 다 죄값을 벌받는 죄인인데 해결해줄 수는 없고 죄값으로 벌받는 것밖에 남은 것이 없는 사람들의 모임이 지구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서두에 말씀드렸듯 주님을 모르는 당신을 위해 대신 주님 목숨을 버려 죽음으로 사랑하셔서 주님께서 대신 해결해 주셨습니다.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만이 유일하게 죄가 없으신 분이 십니다. 죄 지은 우리를 버리고 지옥가고 고통과 저주가운데 살다 지옥에서 영원히 살도록 내버려 두시고, 다른 인간을 만드셔서 다른 지구를 만드셔서 주님께서 만드셔도 되는데, 주님께서는 버리시지 않습니다. 죄없는 유일한 인간을 만든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인 나를 대신해서 죽으시면 유일하게 해결될 수 있었습니다. 죄가 없는 유일하신 죄없으신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죄값을 대신 치르시면 죄를 대신 짊어지고 옮겨져 죄가 없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죄값을 대신 치르셔서 죄없는 분이기 때문에, 인간은 죄를 치르면 전부다 죄값이 있기 때문에 죄 있는 사람은 죄를 대신 짊어질수가 없습니다. 그냥 너도 나도 지옥 형벌과 저주와 고통인데 죄가 옮겨 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죄없는 유일하신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죄를 대신 고통당해 옮겨져 죽으시면 인간의 죄는 하나님께 옮겨지고 끝납니다. 이제까지 내가 수없이 지은 음란하고, 남의 것 탐내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욕심부리고, 도둑질하고, 미워하고, 주님을 무시하고 등 수없는 셀수 없는 죄를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지은 것들은 내 몸 속에 다 차곡차곡 쌓여 있습니다. 죄는 한번지으면 결단코 시간이 지나서 없어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죄값의 형벌을 치러야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죄값의 형벌을 단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기억못해도 그 어떤 거의 나도 모르는 작은 죄라도 다 죄가 쌓이고, 죄값으로 귀신이 저주와 고통과 지옥을 줬습니다. 내게 지긋지긋한 고통, 고질병, 두려움, 문제, 외로움, 좌절과 낙망, 어려움, 그리고 지옥이 왔습니다. 나의 죄와 죄값, 고통, 지옥을 죄없는 하나님께서 대신 짊어져 죽으시위해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셔서 대신 채찍에 맞아 고통당해 살찢고 피흘려 홀로 외로이 쓸쓸이 죽음의 해골의 골짜기라고 불리우는 사형장을 걸어가셨습니다. 나보다 내 고통이 더 안타까우시고 더 아프시고 더 슬프셔서 피눈물 흘리고 계신 주님이 지금 귀하신 분을 보고 계십니다. 귀하신 분을 사랑하시며... 내 짊어진 고통을 주님께서 다 대신 짊어지시고 고통스럽게 죽어 해결해주신 분이 계십니다.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창조주 주님께서 나를 보고 나보다 나를 더 잘아시며, 나의 고통을 나보다 주님의 모든 관심과 고통과 슬픔을 온전히 인간인 나에게 주님의 모든 것을 쏟아부으시며 나보다 나를 보고 더 아파하시며 슬퍼하시며 피눈물을 흘리며 단 한순간도 빼지 않고 보고 계시며 단한순간도 놓지 않고 돌아오기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심정 그대로 죽는 현장으로 돌아가더라도 다시 죽으실 주님께서 애절하고 애타게 주님을 찾아주기를, 주님을 만나주기를, 주님을 불러주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나의 인격,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싫다고 거부하고 무시하고 외면하고 멸시하고 천대하고 배신하여 짓밟아버리면 결단코 나를 보고 계시고, 피눈물 흘리시고, 도와주고 싶으시고, 해결해주고 싶으셔도, 아무것도 못하시고 피눈물흘리시며 기다리고 사랑하며 참고 기다리고 피눈물 흘리고 계십니다. 내가 주님을 반역하고 사랑하는 데 기다리기 지치시고 힘드셔도 참고 참고 참으시며 피눈물 흘리시며 혹시 돌아올까나 피눈물 흘리시며 사랑해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돌아와서 회개만 하라고 그 즉시 주님께서 죽음의 피를 가득 부어주시며 용서해주시며 잘못했다고만 하면 홀로 외로이 쓸쓸하게 십자가를 지고 수없이수없이 채찍에 그렇게도 수없이 내죄 때문에 수없이 수없이 맞으시면서 단한번도 소리한번 안지르시고 생색한번 안내시고, 다만 사랑한다고 회개만 하면 내가 대신 죄값으로 벌받아 죽었으니 모든 죄를 용서해주겠다고 너는 행복하라고 기쁘고 모든 문제에서 해결되라고 사랑한다고 그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죄없이 주님께서 억울하고 외롭고 쓸쓸하게 내 고통, 내 고질병, 나의 외로움, 내 두려움, 나의 좌절과 낙망을 해결해주시려고, 모든 고통에서 행복과 기쁨과 자유와 사랑을 가득부어 주시기위해 자유하게 해주시고, 피 다 쏟고 죽기를 기다리시고 죽기까지 목숨걸고 진심으로 사랑하신 창조주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하나님이신 주님, 나를 그렇게 죽기까지 목숨걸고 대신 죽기까지 채찍에 맞아 살찢고 피흘려 죽으신 주님께서 그렇게 죽기까지 목숨걸고 진실로 사랑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죄없이 주님께서 친히 대신 수없이수없이 소리한번 안지르시고 참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견디시고 채찍에 맞아 살이 까맣게될 때까지 수없이수없이 맞으시고 소리한번 안지르시고, 피 흘리시고, 사랑하는 제자에게서 버림받으시고, 홀로 외로이 쓸쓸이 해골의 골짜기라고 불리우는 사형장을 십자가 나무를 지고 수없이수없이 맞으시며 살찢고 피쏟아 십자가의 죽으러 가셔서 죽어야 이루지는 주님의 십자가 지신 나를 향한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사랑하기 때문에 참고 사랑하기 때문에 죽기를 기다리신 나무에 손과 발 못 박혀 피 다 쏟고 아무 죄없는 억울한 주님께서, 죄없는 의로우신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렇게 내 죄를 대신 벌받고 대신 고통당하고 대신 형벌받아 대신 채찍에 맞아 고통당하고 모든 죄값, 내 고통, 내 병의 고통, 내 두려움, 내 외로움을 아픔을 가져가셔서 행복과 기쁨과 자유로 해결해주시고자 살찢고 피흘려 십자가에서 내 죄를 대신 벌받아 내대신 죽으셨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죽기까지 목숨걸고 모든 것을 버리고, 채찍에 맞아 살찢고 피흘려 십자가에서 손과 발 못박혀 피 다쏟고 나를 위해 죽기를 기다리셨다 죽으셨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그렇게 죽기까지 목숨걸고 진심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지금도 피눈물흘리시며 더 이상 해줄수가 없어 기도하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채찍에 맞아 살찢고 피흘려 십자가에서 손과 발 못박혀 피 다쏟고 나를 위해 죽기를 기다리셨다가 죽으셨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그렇게 죽기까지 목숨걸고 진심으로 사랑하셨습니다. 내 고통, 내 고질병, 나의 외로움, 내 두려움, 나의 좌절과 낙망 다내가 주님을 무시해서, 내가 주님을 외면하고 주님의 사랑을 짓밟아서 주님께 도움을 구하기는 커녕 주님을 무시하고 배신하고 사랑을 잔인하게 짓밟고 무시하고 살아서 주님께서 나보다 아프시고, 주님 본인 목숨보다도 나를 사랑하시건만 주님께서 아무것도 할수없이, 이런 나를 보시며 안타까워하시며 사랑하시며 나보다 더 아파하시며, 나는 배신하고 무시하고 사정없이 주님의 사랑을 잔인하게 짓밟고 주님은 그런 나를 보며 주님 본인보다 더 사랑하시고, 내 고통을 보며 더 아파하시고 슬퍼하시고 해결해주고 싶어하시고, 죽기까지 사랑하시며 그 사랑 그대로 그저 한없이 기다리고 피눈물 흘리시는 주님께서 당신을 해결해 주고자 피눈물 흘리시며 죽기까지 사랑하신 심정 그대로 사랑하고 계십니다. 내 고통, 내 고질병, 나의 외로움, 내 두려움, 나의 좌절과 낙망, 지옥이 내가 수없이(미워한 것만 해도...) 지은 죄로 말미암아 귀신이 준 내 고통, 내 고질병, 나의 외로움, 내 두려움, 나의 좌절과 낙망, 지옥이 왔습니다. 이것을 나보다 내 고통이 더 안타까우시고 더 아프시고 더 슬프셔서 피눈물 흘리고 계신 주님. 내 짊어진 고통을 주님께서 다 대신 짊어지시고 고통스럽게 죽어 해결해주시고자 하시는 주님. 그러나 내가 믿지 않고 주님을 외면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다 해결된 나의 문제에 아무 손을 쓰실 수도, 도움을 주실수도 없습었습니다. 이제 해결해 주실 수 있는,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창조주 주님께서 나를 보고 나보다 나를 더 잘아시며, 나의 고통을 더 아파하시며 슬퍼하시며 피눈물을 흘리며 단 한순간도 빼지 않고 보고 계시는 주님. 나는 주님을 무시하고 외면하고 버렸지만, 주님께서는 피눈물만 흘리며 주님을 무시하지 않고 외면하지 않고 버리지 않고 다시 찾고 만나주시길 피눈물을 흘리며 보고 계시고 기다리고 계시고 피눈물을 쏟으며 사랑하며 보고계시며 애절하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님께 내 죄를 다 말하며 잘못했다고 용서받고 주님께서는 죄가 없어야 온전히 만나주실수 있습니다. 주님께 잘못했다고 주님께서 나를 위해 채찍에 맞아 살찢고 피흘려 십자가에서 손과 발 못박혀 피 다쏟고 나를 위해 죽기를 기다리셨다가 죽으신 주님의 나를 위한 죽음의 피와 주님께서 찢으신 살, 그리고 주님의 십자가 나대신 벌받아 죽으신 죽음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살찢고 피흘려 죽으신 죽음의 피로 내 죄를 씻고, 용서받으십시오. 그리고 귀신이 준 내 고통, 내 고질병, 나의 외로움, 내 두려움, 나의 좌절과 낙망, 그리고 영원한 쉬지않고 죽지못하는 지옥에서 해결받아받으세요. 그리고 병에서 완전히 자유, 고통에서 완전히 자유, 외로움에서 사랑받아 행복하시고, 두려움과 좌절과 낙망에서 자유해서 기쁘고 행복하고 주님의 사랑 받으십시오. 지금 이순간 주님의 살찢고 피흘려 죽으신 죽음의 피로 내 죄를 씻고, 용서받으십시오. 그리고 귀신이 준 내 고통, 내 고질병, 나의 외로움, 내 두려움, 나의 좌절과 낙망, 그리고 영원한 쉬지않고 죽지못하는 지옥에서 해결받으세요. 이시간 주님의 살찢고 피흘려 죽으신 죽음의 피로 내 죄를 씻고, 용서받으십시오. 주님께서 피눈물흘리시며 간절히 애절하게 기다리십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덧붙여...

 

혹시 의심이 드신다면, 이 모든 것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이여야 되니까요.

 

종교는 다 똑같고, 어디에나 구원이 있고, 나를 믿고, 다 미신이고, 거짓이고 사기고 종교로 돈벌이 한다고 생각하실 수 있으니까요.

 

저는 목디스크에 걸렸었습니다. 목디스크에 걸려보셨어요? 내 자신의 목숨을 끊을 순 없고 고통을 못느끼도록 기절했으면 좋겠는 고통이 목디스크였습니다. 저는.... 목이 머리와 연결되 있기 때문에 목에 통증이 있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고통이 왔습니다. 머리가 깨질듯한 딱 기절하고 싶은 고통의 병이였습니다. 고통 중에 주님 앞에 무릎꿇었습니다. “주님, 저는 남에게 주님께서 당신의 고통을 가져가셨다고, 당신은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고 주님께 나아오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이시여 저는 그렇게 전했는데, 제가 아파 죽겠습니다. 주님 저도 한번만 고쳐주세요. 주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병 고쳐주시잖아요. 주님 저도 고쳐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간절히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데 주님께서 바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 직장다니면서 상사 미워한 거 회개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미워한 줄도 몰랐는데, 미워했었습니다. 주님께 회개했습니다. “주님 제가 미워한 거 용서해 주세요. 제가 그 사람들을 미워했어요... 주님 용서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주님께서 기도하는 제 머리 위에 바로 주님께서 나무에 매달리셔서 못박힌 발이 나타났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에 못박힌 발은 새까맸습니다. 나무도 까맸지만, 못박힌 발은 아마 많이 맞아서 생살이 아니라 까맣게, 그리고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는 피가 굳어 발이 그렇게 맞아 피가 굳어 새까맸나봅니다. 그 나무에 못박힌 발이 제 머리 위로 미워한 것을 회개하자 기도하는 중에 제 머리 위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십자가에서 못박힌 채찍에 너무 많이 맞아 새까맣고, 피가 굳어 새까매진 발에서 제 고통스런 목으로 피가 뚝뚝 떨어졌습니다. 피가 뚝뚝 떨어졌습니다. 주님께서 나무에 달려 너무 많이 맞아 쌔까매진 발에서 피가 굳어 새까매진 발에서 나무에 못박힌 주님의 발에서 피가 제 목으로 피가 뚝뚝 떨어졌습니다. 정말 주님은 제 고통을 대신 고통당하시고, 대신 고통을 가져가셔서 고통을 가져가시고 제 고통이 없어졌습니다. 고통을 대신 가져가시고 저는 고통에서 자유하고 행복하고, 기쁘고 편안하고 즐겁게 행복하게 해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저를 위해 대신 채찍에 너무 발이 새까매질때까지 저주를 받으시고, 피 쏟아 발에 못박아 죽으신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게 주님께서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은 전지하십니다. 주님은 전능하십니다. 주님은 창조주십니다.

 

주님께서 살아계시다는 증거를 또하나 확실하게 말씀드리고 거짓이나 사기치지 않고 종교를 포교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증거하고 말씀드리고 정말 사실로 주님께서 사랑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절대 사기치거나 거짓말하지 않겠습니다.

 

가위 눌려 보신 적 있으신가요? 귀신이 한없이 고통스럽고 두렵게 고통주는 것이 저녁에 잘 때 가위 눌리는 것입니다. 분명 내 정신은 멀쩡하고 내가 고통을 느끼는데, 거부할 수가 없습니다. 귀신이 마음대로 고통주고, 두렵게하고, 한없이 나를 가지고 놉니다. 귀신이 존재하고, 가위 눌리는 것이 존재하고, 가위눌리는 상태에서 내 육이 내 눈에 보여서 귀신이 괴롭히는 영적인 귀신이 보이고, 육신인 내 몸이 보이잖아요? 그 육신을 보고 있는 내 영의 존재를 아시죠? 내 영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죠? 내 영이 보고 있다는 것을 아시죠? 영은 존재합니다. 내 영이 존재합니다. 귀신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육신인 몸이 죽어 흙에 묻혀 무덤에 묻혀 흙으로 썩어 부패하기 시작하면 영은 영원히 천국아니면 지옥에서 죽지 않고 살게 됩니다. 그때부터 영의 세상이 시작되는 겁니다. 가위 눌리며 보았던 내 영이 귀신에게 죄값으로 말미암아 고통받는 형벌받는 지옥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피로 회개하면 영혼이 죄값으로부터 자유, 더러운 죄로부터 깨끗해져 천국에서 영원히 주님과 살게 됩니다.

 

가위 눌려보시고, 귀신을 보시고, 고통스러워 보셨다면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아실 겁니다.

 

물론, 불교나 제사나 굿에서도 귀신이 보입니다. 그리고 천국을 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두렵습니다. 공포스럽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귀신이 주기 때문에 귀신이 불행을 잔뜩 저주로 부어줍니다. 고통과 병은 말할 것도 없구요. 그리고 거짓말의 아비인 귀신은 죽은 부모라고 속입니다. 언제 부모님이 두렵고, 명절에만 음식 받아만 먹기 위해 힘들게 하기 위해 존재했습니까? 사랑해서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해주고 가지? 부모님이 아닙니다. 영물이면 항상 찾아와야지, 꼭 제사로 받을 때만 옵니까? 명절에만 음식만 받아먹고 갑니까? 영물로 기차탈 필요도 없는 데 더 자주 만나주시고 격려하시고 영물이니 많이 알려주시고 해야지? 부모가 아니라 귀신입니다. 이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제사는 귀신에게 한다는 것을, 물떠놓고 비는 것은 어떤 신령에게 비는 건데, 그것은 귀신이라는 것을.... 귀신이 무서워 굿하고, 점치고, 제사지낸다는 것을... 아무튼 귀신은 존재하고 제사 지내는 불교 등 다른 종교는 다 귀신이 받고 있습니다. 제사를 지낸다는 것으로 증명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 목디스크 나은 걸로 주님만 유일하신 하나님, 유일하신 신이시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만 유일하시고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영광과 찬양과 감사와 기쁨과 사랑을 받으실 분은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 한분 뿐이십니다. 주님의 피가 이순간 이 글을 읽는 현장에 넘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가위 눌리는 것 말고도 귀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귀신의 종들인 무당에게서입니다. 굿하는 겁니다. 일반 사람들보다 평상시에 귀신의 말을 순종하고, 귀신을 섬기고, 귀신의 일을 극진히 하거 보셨습니까? 굿할 때 무당의 모습을 보셨습니까? 왜 누구도 범접하고 건들이지 못하죠? 상식이 벗어난 선이 있습니다. 바로 귀신이 지키고 보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굿할때요... 그리고 눈빛이 정상 사람의 눈빛이 아닙니다. 인정미나 사랑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찾아볼수가 없습니다. 굿할 때 점쟁이나 무당을 보셨나요? 귀신의 귀신내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귀신내림이 가짠 줄 아십니까? 사기치는 건 줄 아십니까? 아니요. 정말 귀신내림 받습니다. 귀신내림이라는 것이 귀신이 그 사람에게 임해서 귀신의 종이 되는 겁니다. 귀신이 들어가는 겁니다. 귀신내림 받는 다는 것 모르시나요? 이거 사실입니다.

 

귀신이 존재합니다. 무당이 굿할 때 귀신이 와서 받습니다. 귀신이 와서 귀신에게 부탁하는 겁니다. 귀신이 지켜주고 보호해주고 조금이라도 귀신에게 벌을 덜 받고 귀신이 벌을 덜 주라고 제사드려 귀신에게 부탁하는 고, 귀신을 더욱 섬기고 사랑해서 귀신이 크게 쓰고 귀신이 더욱 함께 하고 귀신이 더욱 말을 들어주는 사람일수록 용한 무당이라고 해서 점보고 굿하죠? 이 사람들이 귀신내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귀신이 존재합니다.

 

한분이 귀신내림 받으라고 귀신이 쫓아다녔습니다. 밤낮없이 3년을요... 날마다... 거부하자 병을 줘서 앓아 눕게 했습니다. 그리고, 아무 일도 못하게 3년을 병상에 누워 귀신내림 받으라고 날마다 강요하며 병을 주며 고통을 주며 쫓아다녔습니다.

 

귀신내림받으면 그때부터 인간의 본성인 내 본성이 사라지고 귀신의 본성으로 살아야 됩니다. 그리고, 귀신이 누구랑 자라고 하면 자고, 누구를 원치 않는데 해코지하라고 하면 해코지 해야 됩니다. 주변의 가족은 한명씩 죽어가고, 병들고, 일가 친척에게 귀신내림은 대물림 되어, 자식과 자자손손에게 평생 귀신이 귀신내림으로 저주로 그 집안을 쫓아다닙니다. 이것이 귀신내림입니다.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죽을 고통을 주며 3년을 쫓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기적적으로 하루는 교회다니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병상에 누워 귀신이 귀신내림 받으라고 쫓아다니는 그에게 찬양을 불러 줬습니다. “주의 보혈 능력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그 어린야으이 매우 귀중한 피로다.”라고 불러줬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찬양을 믿고 받아들이며 찬양을 모르지만, 마음으로 음률을 따라가며 주의 보혈을 찬양했습니다. 그 순간 그를 3년이나 하루도 밤낮으로 날마다 괴롭히던 지긋지긋했던 귀신내림 받으라고 했던 귀신이 빛의 속도 보다 빠르게 눈알이 빠지게 도망갔습니다. 주님의 피 앞에서 약해져서요..... 주님의 피가 임하는 순간 주님께서 임재하시고 귀신이 쫓겨간 겁니다. 그리고, 그는 병상에서 자리를 툴툴 털고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귀신은 쫓겨가고 병과 모든 귀신의 결박에서 자유했습니다. 주님께서 대신 채찍에 맞아 살찢고 피흘리신 피의 주님의 십자가의 피 능력이 현장에서 나타났고 주님께서 현장에서 나타나셔서 그 사람을 사랑하시고 죽기까지 사랑하신 주님께서 주님을 받아들이고, 주님의 피를 받아들이자 주님께서 귀신을 친히 쫓아내시고, 주님의 피를 가득부어 그를 살리신 겁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를 사랑하셨습니다.

 

귀신도 거부하면 3년을 쫓아다니기만 하고, 고통만 줄 수 있지 더 이상은 못 건듭니다. 다만, 죄가 있으면 죄를 타고 얼마든지 귀신의 지배아래 있습니다. 그러나 거부할 수 있고, 죄도 안지을 수 있고, 순교하기까지 귀신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내맘이고, 자유고, 내 권리고, 주님께서 주신 자유의지고,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자유의지입니다. 주님께서 부여하신 인격입니다.

 

주님께서도 이것을 침해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다 해주실수 있고, 내 고통을 나보다 더 잘아시고, 나를 나보다 더 잘아시는 주님께서 아무것도 해주실수가 없습니다. 내가 주님을 받아들이고,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내가 주님께 다가가고 마음문을 열지 않으면, 그래서 주님께서 목숨걸고 죽으시고 십자가 피로 회개만 하면 천국가도, 지금도 천국은 거의 못가고, 지옥만 쓰레기장에 쓰레기 퍼붓듯 거의가 다 떨어져도 주님께서 피눈물만 흘리시지, 이미 죽으셔서 그 죽음값으로 대신하고 피로 죄를 씻고 용서만 받으면 되는 쉬운 일만 남았고, 불가능한 일은 단 한가지도 없는데도 주님께서 피눈물 흘리시며 침해하지 않으시고 기다리십니다. 주님께서 친히 죽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죽으신 고통과 죽음과 주님의 죽음이 헛되고 값없이 버려짐에도 불구하고 아무 가치없이 쓰레기 버려지듯 버려짐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피눈물만 흘리시며 기다리십니다. 내가 주님을 받아들이고,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손을 내밀고 다가가면 주님께서 바로 만나주시고, 주님께서 사랑하십니다. 이제, 지금 이순간 주님의 살찢고 피흘려 죽으신 죽음의 피로 내 죄를 씻고, 용서받으십시오. 그리고 귀신이 준 내 고통, 내 고질병, 나의 외로움, 내 두려움, 나의 좌절과 낙망, 그리고 영원한 쉬지않고 죽지못하는 지옥에서 해결받으세요. 이시간 주님의 살찢고 피흘려 죽으신 죽음의 피로 내 죄를 씻고, 용서받으십시오. 주님께서 피눈물흘리시며 간절히 애절하게 기다리십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다시 위의 읽고 싶은 말미를 읽으셔서 필요한 부분에서 주님을 사랑으로 모든 귀신이 준 내 고통, 내 고질병, 나의 외로움, 내 두려움, 나의 좌절과 낙망, 그리고 영원한 쉬지않고 죽지못하는 지옥에서 해결받으십시오. 그리고 이시간 주님의 살찢고 피흘려 죽으신 죽음의 피로 내 죄를 씻고, 용서받으십시오. 주님께서 피눈물흘리시며 간절히 애절하게 기다리십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주님과 사랑하며 만나십시오.

 

그러나 한번만 문제해결받고 주님을 버리시면 안됩니다. 주님은 이렇게 영원히 사랑하십니다. 이런 사랑을 한번만 이용하고 주님을 버리면 다시 이보다 더 힘든 고통과 병과 지옥이 올겁니다. 평생에 날마다 또 죄지은 거 용서받고, 모르게 어릴때부터 지은 죄도 용서받고, 특별히 죽기 직전에 용서받고 지옥이 아닌 주님계신 천국 가세요. 죄짓는 순간 바로 용서받으세요. 죄는 한번만 용서받고 천국 못갑니다. 한번 용서받고 죄지어도 되니까 살인저질러도 된다는 개같은 법은 없습니다.

 

내 고통, 내 고질병, 나의 외로움, 내 두려움, 나의 좌절과 낙망, 그리고 영원한 쉬지않고 죽지못하는 지옥에서 해결받으십시오. 그리고 이시간 주님의 살찢고 피흘려 죽으신 죽음의 피로 내 죄를 씻고, 용서받으십시오. 주님께서 피눈물흘리시며 간절히 애절하게 기다리십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주님과의 신앙생활 : 날마다 주님의 죽음의 피로 모든 죄 용서받으시고! 날마다 주님의 죽음의 피로 모든 죄 용서받으시고! 죄짓는 순간 바로 주님의 죽음의 피로 회개하시고! 특별히 죽기직전에 회개하시고!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신 피 죽음의 사랑하나만으로 주님한분만으로 기뻐하시고 사랑하시고 감사하시고! 성경을 통한 주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시고, 날마다 회개 외에 무릎꿇고 기도 많이 하시고, 2시간이상, 주님의 피복음 전해서 영혼살리는 도구되시다, 환란 핍박 끝가지 견뎌 주님주신 힘으로 주님께 승리드리고 순교하셔서 주님계신 천국에서 만나시게요!

주님 피 회개! 천국! 기쁨! 사랑! 평안! 행복!

주님께서 님을 살찢고 피흘려 피죽음으로 죽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2016.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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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안녕하세요?


질문자님의 질문 잘 봤습니다.

질문에 대해 제 나름대로 해석을 붙여봤습니다.

그리고 답변은 간단하게 하겠습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 자신의 감정과 욕구(오욕 칠정)를 극복한


 "한가지 목적을가지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 성공한" - 목적 외에 다른 것에 흔들리지 않고 이겨낸 것.
"자기자신과 타협하지 않음" - 자신의 나약함으로 환경이나 타인, 물질, 가족 등에 타협하지 않은
"끝까지노력함" - 목적을 이루고 삶을 다할 때까지 초지일관 생활함
이런 삶을 살아가신 성인분들 모두 알고 싶습니다
아니면 비슷한삶을 살아가신분ㄴ이라도 괜찮으니 알려주십쇼.


가톨릭의 모든 성인들은 질문자님이 원하는 모든 것을 다 실행하신 분들입니다.


물론 초기에 방황하다가 바른 길을 찾아 온 분도 있고, 도중에 흔들렸던 분들도 있지만

전체 인생을 두고 보면 그분들은 흔들릴 때도 한가지 목적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위해 자신을 갈고 닦으면서 살았기 때문에 성인이 되신 것입니다.


위에 다른 분이 말씀하신 "십자가의 성 요한", "예수의 데레사", 최근 성인이 되신 "요한 바오로 2세", 지금 복녀이신 "마더 데레사" 는 가까운 시기에 사셨던 분들입니다.


그 밖에도 궁금하시면 천주교 성인전을 읽어보시면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참고 될만한 사이트를 링크하겠습니다.


http://info.catholic.or.kr/pds/pds/default.asp?infogubun=info&orggubun=101&bbsgubun=pds


http://info.catholic.or.kr/saint/

2016.04.23.

  • 출처

    가톨릭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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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us Caritas est
중수
가톨릭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뭐... 답변들이 하도 장황하여 저도 올려보고 갑니다.


아무래도 세례를 앞두고 계신 것 같습니다.^^ 먼저 기나긴 예비신자 생활과, 가톨릭에 입교하기 위해 고생하신 그 모든것에 대해 노고의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세례명을 가진다는 것은 단순히 내가 또하나의 애칭 혹은 별명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신앙적인 모델을 설정하는 것이기도 하며, 내가 본받고자 하는 모범을 정하는 것이기도 하는 동시에, 내가 앞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신앙의 모습을 비추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아무래도 질문자님 께서 위와 같은 조건들을 붙이신게 아닐까 싶습니다.


따라서, 위와같은 삶을 사신 분들을 몇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하지만, 다른 답변들 중에 '가톨릭 성인 모두가 저 삶을 사신 분들'이라는 말에 저도 동의합니다)

자세한 정보는 생략하겠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인터넷에 몇번만 치면 나오기때문에, 저는 개괄적 정보만 올려드리겠습니다.


1. 히에로니무스 (예로니모 - 아마 세례받으실 때에는 예로니모라고 표기될것입니다)

이분으로 말씀드리자면, 본래 히브리어, 또는 고전 그리스어로 조각나있던 성경을 한데 모아 당시의 영어격이었던 '라틴어'로 모두 번역하여 현재 우리가 보고있는 성경의 원본격(Vulgata성경)을 만들어 내신 분입니다. (평생을 그곳에 쏟아부으신 분) 간략한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라틴 교부. 교회학자. 347년경에 태어나 419년에 사망. 교황 다마소(Damasus)의 비서로 봉사하다가 교황 사망 후에는 베들레헴(Bethlehem)으로 가, 그곳에서 정주하면서 학문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는 암브로시오(Ambrosius),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그레고리오(Gregorius)와 더불어 라틴 교회의 4대 학자로 지칭되는데 교부 중에서도 가장 박식하며, 특히 언어학 · 역사학의 지식에 있어서 뛰어난 신구약성서의 충실한 전승을 위해 불가타(Vulgata)의 완역 등 불후의 공적을 남기었다. 상징물은 십자가·해골·모래시계·책·두루마리이며,  학자·학생·고고학자·서적상·순례자·사서·번역가·수덕생활을 하는 사람의 수호 성인이다.


2.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세례명상 김대건 안드레아

오로지 신앙의 불모지인 조선에 참 가톨릭 신앙을 전파하고자 목숨을 무릎쓰고 조선 최초의 사제가 되어 돌아오시자마자 1년만에 순교하신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이자 피의 순교자로 유명하신 김대건 신부님입니다. 이분은 따로 설명 겯들이지 않겠습니다.


3.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 -세례명상 최양업 토마스

우리나라의 두번째 신부님으로서, 김대건 신부님의 명암에 가려져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시지만, 이분이야 말로 우리나라 가톨릭 신앙의 토착화를 위해 일 평생을 애쓰신 (오죽하면 선교 도중 과로로 쓰러져 돌아가신) 분으로서, 흔히 "땀의 순교자"로 표현하는 분입니다. 이분도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만, 유투브나 기타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 PBC평화방송에서 나온 최양업 신부님에 대한 짧은 영화가 있습니다. 한번 보시길 추천합니다.


4. 요한 크리소스토모 (또는 요한 금구-황금의 입-)

지금의 이스탄불의 주교였으며, 보석과같은 강론들로 유명한 달변가인 성인이십니다. 높은 지성과 카리스마로 당시 사회와 황실에 대한 분명하고도 직설적인 강론을 서슴치 않던 분이시기에, 황제의 미움을 사 유배 도중 사망하신 분입니다. 간략한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의 주교. 교회학자, 설교가의 주보(主保). 축일은 9월 13일. 안티오키아 출신. 이교 대가들에게서 법률, 철학수사학을 공부, 안티오키아학파의 지도자 타르소의 디오도로(Diodore)에게서 신학을 배웠다. 은둔생활(373?~381년?)을 거쳐 381년 부제로, 386년에는 사제서품받았다. 은둔생활 중 자신에게 부과한 지나친 엄격성으로 건강을 해쳤으며, 서품설교에 종사, 이 때 ‘황금 입’(크리소스토모) 즉 ‘금구’(金口)라는 뜻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리스도교 도시 안티오키아의 개혁에 대한 설교, 교훈 및 일련의 신약성서 설교로 최고의 그리스도교 설교가라는 찬사를 받았다.


5.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선교자들의 수호성인이시며, 예수회의 개국맴버이신 이분은 동방 선교를 위해 자신을 버리고, 오로지 복음전파의 신념 하나로 일생을 살아오신 분이십니다. 선교를 위해 인도, 나아가 일본까지 건너가 복음을 전파하시며 일생을 보내셨으며, 중국 선교를 목표로 하시다 끝내 돌아가신 분이십니다. 간략한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1506-1552년. 스페인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코는 대학에서 고등 지식을 배우기 위해 파리로 갔다. 그는 이냐시오 데 로욜라의 지도로 첫 예수회원이 되었다. 그는 1537년 로마에서 사제서품되었고 자선 사업에 몰두하였다. 1541년 그는 동방으로 가서 인도와 일본에서 10년 동안 지칠 줄 모르며 복음을 선포하였고 설교를 하여 수천 명을 회개시켰다. 그는 중국 전교를 위해 입국 허가를 기다리는 동안 중국 해변에서 선종하였다. 그는 외국 선교사들의 수호성인이다. 전례 거행은 12월 3일(기념일)이며 주제는 신앙에 대한 열정이다.        


6. 사도 바오로 (세례명상 바오로)

가장 유명하고도 위대한 사도중 한명인 바오로 사도입니다.  따로 설명이 필요없어 보이지만, 혹여나 싶어 간단한 설명 덛붙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방인들의 사도이며 신약성서에서 열세 개의 책을 쓴 저자이다.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였던 이 유다인은 환시 중에 그리스도를 뵈었다. 그 사건은 그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는 교회유다인들뿐 아니라 이방인들도 그리스도교개종시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오로는 이방인들이 유다인들의 법을 따르지 않으면서 그리스도인이 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전교 여행을 통해 거대한 그리스도교 공동체 체계를 구성하였다. 결국 바오로는 투옥되었고 로마에서 순교하였다. 그는 병원 섭외 활동가들의 수호성인이다. 전례 거행은 6월 29일(대축일)이며 주제는 교회는 공번되고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장 생각나는 것은 이정도입니다만, 찾아보면 더욱 많은 성인들이 있을 것입니다.


아무쪼록, 세례명을 정하실 때에 심사숙고하여 정하시길 바라며, 동시에 세례를 앞둔 그 설렘과 감동을 끝까지 유지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축하드리며, 또한 감사합니다^^




2016.04.24.

  • 출처

    내 머리, 한국 가톨릭 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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