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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세례명 좀 지어주세요!!
비공개 조회수 1,513 작성일2011.12.18

 제가 이번 크리스마스날 세례를 받거든요 ~

생일은 양력으로1995년1월10일생이구요 음력으로 1994월12월10일 이거든요

예쁜 세례명좀 지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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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
세례명 추천하고 갑니다~
세례 잘 받으세요 ^^

 성녀 데레사, Teresa (10월 01일) 1897년 리즈외 동정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1873-1897)


축일 : 10월 1일

"나는 모든 황홀한 환시보다도 숨은 희생의 단조로움을 선택합니다. 사랑을 위해서 핀 한 개를 줍는 것이 한 영혼을 회개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은 프랑스 리지외의 봉쇄 수녀원에서 숨어 살던 갈멜 수녀인 예수 아기의 데레사가 한 말이다.
그리고 그녀의 숨은 희생에 대한 사랑은 참으로 영혼을 회개시켰던 것이다.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성인들 가운데서 이 젊은 수녀보다 더 유명한 사람들은 얼마 안된다. 그녀의 자서전과도 같은 '한 영혼의 이야기'는 전세계에서 읽혀지며 사랑을 받고 있다.
데레사 마르탱은 15세에 수녀원에 들어가 24세가 되던 1897년에 세상을 떠났다.
갈멜 수녀원에서의 생활은 참으로 평온 무사한 것이었고 주로 모든 집안 일을 하는 것이었다. 데레사는 시간을 구속한다는 거룩한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시간은 따분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은밀한 고통 안에서 구원의 고통을 보았으며 그 고통은 참으로 그녀의 사도직이 되었다.
데레사는 "영혼을 구하고 사제들을 위해 기도하기 위하여 갈멜 수녀원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죽기 얼마 전에 "나는 지상에서 선행을 하면서 나의 천국에서 지내고 싶다."고 썼다.

설명 : 데레사는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 '소금'이라는 말과 그 이미지에 대하여 많이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위험하리만큼 자의식이 강한 사람들이 되었고 성취욕을 고통스러울 정도로 강하게 느끼고 있으면서도 아직 그렇게 되지 못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데레사는 다른 성인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기를 원했고 자신의 밖에 있는 어떤 것을 하려 했으며 조용한 사랑의 행위로써 자신을 잊으려고 애썼다.
데레사는 우리가 생명을 잃으면 그 생명을 얻고, 땅에 떨어진 씨앗이 살기 위해서는 썩어야 한다는 복음적인 역설을 실지로 살아간 위대한 본보기 가운데 한 사람이다. 자신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 현대인들을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며, 동료들과 떼어 놓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유리되게 만든다.
현대인은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을 배워야 하며, 자신의 밖으로 자신을 끌어 낸 하느님을 관상하며 자신의 궁극적인 표현으로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것을 다시 배워야 한다. 이것이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가 지닌 직관이며 그것은 그 어느 때보다도 오늘날 더 가치 있는 것이다.

인용 : 성녀 데레사는 일생 동안 병으로 고통을 받았다. 어렸을 때 데레사는 석 달 동안이나 병석에 누어 있었는데 그 어려운 고비를 겪고 의식을 잃어 정신이 계속 희미했다. 그 후 그녀는 계속 허약했으나 그래도 수녀원의 식당과 세탁실에서 힘든 일을 했다. 데레사는 심리적으로 신앙의 빛이 모두 꺼진 것처럼 보이는 끝없는 어둠의 시기를 겪었다.
데레사는 그녀의 생명이 다해 가던 마지막 해에는 폐결핵으로 서서히 탈진되었다. 그래도 죽기 얼마 전인 9월 30일 그녀는 "아직도 나는 고통을 덜 받았다."고 중얼거렸다. 데레사는 참으로 장한 여인이다. 그녀는 결코 자신의 병과 고통을 하소연하며 운 적이 없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힘을 아는 한 위인의 위대한 점이다. 허약함과 병까지 포함해서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 대한 봉사와 구원의 힘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하느님의 연금술이기도 하다.
데레사가 선교의 수호자가 된 것에 대하여 이상한 점이 있을 수 있을까? 자신의 고통을 사랑 안에서 받아들이는 사람들 이외에 누가 참으로 세상을 회개시키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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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녀를 옛날에는 '소화 데레사' - '소화데레사'라고 불렀습니다. 소화는 작은 꽃

 

 성녀 베아트리체, beatrice (02월 13일) 1309 오르나시외 동정

베아트리체(brtrice)

축일 : 2월 13일

오르시나외 가족성에서 태어난 성녀 베아트리체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파르메니의 카르투시오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녀는 지극히 엄격한 생활을 오히려 즐기는 사람처럼 살았는데, 그녀의 천상 정배를 옆에 모신듯이 행동하였다고 한다. 그녀의 오랜 수도생활에서 그녀는 우리 주님을 수차례나 목격했는데, 볼 수 있는 형상의 주님이 그녀 곁에 서 계셨다고 한다. 그녀는 특히 주님의 수난을 깊이 묵상하고 항상 함께 나누려는 마음을 지녔음으로, 부엌에서 주방일을 할 때에는 불로 자기 팔을 지지기도 하였으나 상처나 감각을 느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일들로 인하여 그녀는 신비가로 널리 알려졌는데, 가끔씩은 악령의 출현도 보았다고 한다. 또 성체에 대한 그녀의 신심은 너무나 지극하여, 성체를 모시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미사에 완전히 빠져들어 탈혼상태가 계속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교회는 성 베아트리체가 감실 안에 숨어 계시는 주님의 현존, 즉 성체조배 신심의 개척자로 간주한다. 또한 그녀는 주님의 다섯 상처를 환시로 자주 보았던 뛰어난 신비가였다.

 성녀 이사벨, Isabel (02월 26일) 1270년 프랑스 동정

이사벨(Isabel)

축일 : 2월 26일

성 루이 왕의 동생이자 루이 8세의 딸인 그녀는 여러 곳의 혼처를 거부하고, 하느님께 동정을 서원하였다. 그녀는 주로 병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던 중, 그녀의 모친이 사망한 뒤에는 파리의 롱샹프에 프란치스칸 수도원을 세우고, 엄격한 수도생활에 전념하였으나, 수녀가 되지는 않았고, 더우기 원장은 한사코 거절하였다.

 성녀 크리스티나, Christina (02월 13일) 1458년 스뽈레또 동정

크리스티나(Christina)

축일 : 2월 13일

성녀는 밀라노의 비스꼰띠가의 딸로서 크게 조숙한 소녀였다. 불과 다섯 살때 그녀는 이미 기도와 고행을 잘 배워 실천하였다. 10살이 되자 그녀의 부모는 결혼시키려 하였으나, 수녀가 되겠다고 끝까지 항거하였다. 그러나 12세 때 그녀의 부모는 거의 강제적으로 혼인을 시켰으므로, 밤을 틈타서 하녀와 더불어 도망하였다고 한다. 그길로 성녀는 아우구스띠노의 은수회에 들어가려 하였으나, 거의 일년 동안을 방황하면서 지내야 했다. 주거를 정할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20세 되던 해에 크리스티나는 아씨시로 순례하였는데, 스뿔레또를 지나다가 갈리씨아라는 부인을 만나 함께 생활하였다. 아씨시를 방문한 후 그녀는 오로지 기도에만 전념하고, 성당에서 온밤을 지새우기가 일쑤였다. 그러다가 그녀는 병원을 찾아서 자원봉사도 하였지만,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얼마 후에 갈리씨아가 찾아와서 다시 함께 지내며 덕을 닦도록 힘쓰자는 제안을 받아들이고 생활하다가, 22세의 나이로 병이들어 운명하였다. 그녀의 덕은 아주 뛰어났다. 그러므로 그녀에게 간구하면 치유의 은사가 주어진다고 믿는 사람들이 지금도 많이 있다. 그녀는 정규 수도회의 회원도 아닌 평범한 동정녀였다.

 성녀 헬레나, Helen (11월 07일) 1242년 아르첼라 동정

헬레나(Helen)

축일 : 11월 7일
헬레나는 희랍어로 '태양'이란 뜻이다.

1220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파두아 교외 아르첼라에 있던 클라라회의 서원식에서 엔셀리미 귀족 가문의 딸인 그녀의 허원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늘 병으로 고생하였으나, 위대한 인내로써 오히려 오히려 천상의 위로를 받았다. 한번은 그녀가 간선자들의 영광을 잠시 바라보는 은혜와 더불어 연옥을 구경하였다. 또한 그녀는 성체만으로 몇 주간을 지낸적도 있다.

 성녀 아나스타시아, Anastatia (03월 10일) 6세기경 이집트 동정 은수자

성녀 아나스타시아 빠트리시아 (ANASTASIA PATRICIA)

축일: 3월 10일

자세한 생애는 알 수 없지만 성녀 아나스타시아가 에집트 출신으로서 콘스탄티노블 궁중의 시녀였음에는 틀림없다. 그녀의 미모가 극히 뛰어나 황제 유그띠니안의 마음을 사로잡앗음으로, 황제의 총애와 황후의 질투가 극에 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성녀는 온순하고 마음이 착한 사람이엇고, 또 늘 하느님을 두렵게 여기며 살았으므로, 황제의 총애와 황후의 질투를 피할 양으로 밤중에 알렉산드리아로 피신하여 수녀원으로 숨어버렸다. 황제는 밤낮으로 그녀를 잊지 못하다가, 테오도라가 죽은 뒤로 그녀를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이 소식이 그녀의 귀에 들어갔을 때, 성녀 아나스따시아는 사막으로 은신하여 지내다가 다니엘 원장이 지도하는 공동체에 들어갔는데, 다니엘은 그녀를 어느 동굴에서 지내도록 배려하였다. 이리하여 그녀는 기도와 고행에 전념하여 높은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그후 그녀의 유해는 콘스탄티노블로 이송되어 성대하게 안장되었다.

2011.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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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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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세례명을 정할때 많은분들이 자신의 생일과 축일이 같은 성인을 세례명으로 정하니, 1월 10일의 성인으로 하신다면, 성녀 세트리다 를 권해 드릴 수 있겠구요, 꼭 성녀를 세례명으로 하시지 않아도 됨을 알려 드립니다.

남자 이름 중에서도 여자의 세례명으로 하시는 경우가 많으며, 이럴경우 남자 성인이름의 뒷부분을 여성화 시키시면 됩니다. 두명 이상의 세례명을 묶어서 사용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요한바오로 라는 세례명은 요한과 바오로 두 성인의 이름을 합쳐 사용하는 세례명입니다. (마리요셉은 마리아와 요셉입니다)

대부모님께 세례명을 지어 주십사 부탁을 드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되리라 권해 드리며, 세례명이란 자고로 그 성인의 신앙을 본받고자 하는 의미가 크니, 세례명으로 정하실 성인이 어떤 분인가를 먼저 알아보시고 정하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듯 싶습니다.

2011.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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