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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191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각 시대별 대표문학작품 (내공100!!!)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23,862 작성일2004.08.21
191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각 시대별 대표문학작품을

소개좀 해주세요.

10년 단위로 그 시대를 대표할만한 우리나라의 문학작품이구요.

제목,지은이,줄거리 등을 적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빠른시간안에 부탁드리고요.

내공은 100걸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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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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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 답변
1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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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u****
영웅
재판, 소송 절차, 가족, 이혼, 형벌, 형집행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1910년대

 

무정(無情, 1917년,<매일신보>)

⊙작가:이광수(1892 -1950)

호는 춘원(春園). 평북 정주에서 출생. 일본 명치학원(明治學院) 중학부를 졸업하고 1915년 와세다[早稻田]대학에 입학함. 1917년 <청춘>에 [소년의 비애], [어린벗에게] 등 단편을 발표함. 1917년 <매일신보>에 현대적 장편 [무정]을 발표하여 한국문학사에 신기원을 이룩함. 1924 <조선문단>을 주재하고 <독립신문> 편집국장, <동아일보> 편집국장 등을 역임함. 친일 문학 단체인 조선문인협회장을 역임함. 1940년 일본명 가야마 미쓰오(향산광랑,香山光郞)으로 창씨개명하는 등 친일 행위를 함. 그의 작품 세계는 이상주의에 바탕을 둔 계몽적 민족 의식을 표현하고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역사 의식을 반영하는 쪽으로 나타남. 6.25때 납북되어 생사 불명이었으나 최근 1950년 북한 남포병원에서 벽초 홍명희의 배려로 입원 중 사망했음이 알려짐. 대표작으로 [무정](1917), [유정](1933), [사랑](1939), [흙](1932), [단종애사](1929) 등이 있음.

⊙등장인물

이형식: 근대적 인간형. 과도기의 전형적인 지식인.

김선형: 김장로의 딸. 형식과 결혼.

박영채: 박 진사의 딸. 구봉건 세대의 인습에 희생당함.

김병욱: 자유 분방한 생활 태도를 가진 전형적인 신여성

⊙줄거리

경성학교 영어 교사 이형식은 오후 두시 사년급 영어 시간을 마치고, 내리쬐는 유월 볕에 땀을 흘리면서 안동 김 장로의 집으로 간다. 김 장로의 딸 선형이가 명년에 미국 유학을 가기 위하여 영어를 준비할 차로 이형식을 매일 한 시간씩 가정교사로 초빙하여 오늘 오후 세시부터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음이다.

이야기의 서두는 경성 영어 학교 교사 이형식(李亨植)이 장안의 부호 김장로의 고명딸인 선형(善馨)의 영어 개인 지도를 부탁 받고 첫번 방문하는데서부터 시작된다. 본래 형식은 동경 유학을 마친 당대 일류 지식인이나 일찍이 고아가 되어 역경을 겪은 데다 내성적 성격이라 여성 교제가 거의 없었다. 그러던 중 뛰어난 미모인 선형에게 반한다. 그리고 그 날 밤 하숙집에 돌아와서 형식은 뜻밖의 손님인 박영채(朴英彩)를 만나게 된다. 영채는 이형식이 어릴 때 고아일 적에 형식을 데려다 기르고 자식처럼 대하여 준 은사 박 진사의 딸인데 장차 형식의 아내가 될 사람으로 정혼했었다.

그러나 박 진사의 개화 운동이 세상 사람들의 개화 문명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실패하고 집안이 망하자 형식이는 영채와 이별하게 되었는데 , 7년만에 해후하여 그 뒤 영채가 감옥에 계신 아버지를 도우려 기생이 되고 형식을 사모하며 수절해 왔다는 전말을 듣게 된다. 이 과정에서 형식은 눈물을 흘리는 한편, 그녀가 기생이라는 혐오감과 미인이라는 유혹의 갈등을 주체하지 못한다. 이에 형식은 선형에 대한 연정과 은사의 딸이자 지난 날 아내로 암시되었던 영채에 대한 의무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을 겪게 된다. 또, 기생인 영채를 구해낼 돈 천 원이 없음을 한탄하는 사이에 영채는 지금까지 형식을 위해 지켜 오던 정조를 배학감(명식), 경성학교 교주의 아들인 김현수 일당에게 유린당하고 만다. 그리고 유서를 남긴 채 자살하러 평양행 기차에 오른다.

그녀의 유서를 쥐고 눈물을 뿌리며 영채를 만나려 뒤따라 평양에 간 이형식은 소득없이 돌아와서 오히려 학생들에게 기생을 따라갔다는 오해만 사고 이에 분격하여 급기야 학교를 그만두기에 이른다. 이는 김현수가 거짓소문을 낸 까닭이었다. 이런 형식에게 뜻밖에 김장로댁 선형과의 결혼 신청이 들어오고 형식은 이를 받아 들여 약혼식을 치른 후에 함께 미국에 유학을 할 준비를 하게 된다.

한편, 자살길에 오른 영채는 차 안에서 소위 신여성인 병욱을 만나 그녀의 황주집에 한 달간 머무는 동안 봉건적 사고 방식에서 근대적 합리 주의로 정신적인 발전을 이룬다. 그리고 병욱의 호의로 함께 동경 유학길에 오르던 중, 기차 안에서 미국 유학을 떠나는 형식과 선형을 만나게 된다. 이리하여 형식은 새삼 애정과 의리 간에 갈등에 빠지게 되고 선형과 영채 사이에는 삼각 관계의 불협 화음이 생긴다. 기차는 삼랑진 수재 현장에 이르러 연착하게 되고 여기에서 네 젊은이는 고통을 당하는 수재민을 위해 자선 음악회등 함께 봉사활동을 전개한다. 이 과정에서 그들간의 개인적인 감정은 사라지고 , 그 대신 토론을 통해 허물어진 민족의 장래를 담당할 역군으로서 사명을 다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등장 인물들의 근황이 소개되고 작가의 계몽 의식이 서술된다.

어둡던 세상이 평생 어두울 것도 아니요, 무정할 것도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밝게 하고, 유정하게 하고, 즐겁게 하고, 가멸하게 하고, 굳세게 할 것이로다.

기쁜 웃음과 만세의 부르짖음으로 지나간 세상을 조상(弔喪)하는 '무정(無情)'을 마치자.

 

1920년대

 

감자(<조선문단> 4호, 1925년 1월)

◎작가:김동인

◎등장인물

복녀: 농가 출신의 여자.반어적 명명.

왕서방:중국인

복녀의 서방: 게으르고 질이 나쁜 남자.

◎줄거리

싸움, 간통, 살인, 도적, 구걸, 징역, 이 세상의 모든 비극과 활극의 출원지인, 이 칠성문 밖 빈민굴로 오기 전까지는 복녀의 부처는 (사농공상의 2위에 드는) 농민이었다. 복녀는, 원래, 가난은 하지만 정직한 농가에서 규칙있게 자라난 처녀였다.

농부의 딸인 복녀는 돈에 팔려 나이가 저보다 스무 살이나 더 되는 홀아비에게 시집을 갔다. 생활은 말이 아닌데다 남편은 게을러서, 기어코 평양 교외의 빈민굴로 밀려나와 구걸로써 목숨을 이어 가게 되었다. 마침, 그 때 기자묘 솔밭에 송충이가 뒤끓어 평양부에서는 그 퇴치에 나섰다. 복녀도 그 인부의 한 사람으로 뽑혔다. 복녀는 열심히 송충이를 잡았다.

어떤 날 그녀는 몇몇 아낙네들이 감독과 더불어 웃고 놀며 소일하면서, 품삯은 자기보다 훨씬 더 많이 받는 것을 발견했다. 얼마되지 않아 복녀도 감독에게 몸을 더럽히게 되었으며, 그 날부터 다른 아낙네처럼 놀아날 수가 있게 되었고, 정조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

가을이 닥쳐왔을 때 복녀는 빈민굴 아낙네 들을 본받아, 이번에는 중국인 감자밭에 감자를 도둑질하기 위해 드나들기 시작했다. 어떤 밤이었다. 그녀는 감자 한 광주리를 훔쳐서 막 일어나려는 찰나 중국인 왕 서방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복녀는 중국인을 따라가서 몸을 허락하고 얼마간의 돈을 얻어 돌아왔다. 그 후부터 그녀의 집에까지 왕 서방은 드나들게 되었다. 그들 부부의 생활에는 약간 윤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복녀의 집에 왕 서방이 오면 복녀의 남편은 복녀가 마음놓고 몸을 팔 수 있도록 자리를 피해주곤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중국인 왕 서방이 장가를 들게 되었다. 새로 색시를 사온 것이다.복녀는 타오르는 질투를 참지 못해서 결혼식날 왕 서방을 찾아가서 저의 집으로 가기를 청했다. 이 때에 결혼식장은 수라장으로 변해 갔다. 복녀는 손에 낫을 쥐고 대항하다가 피를 뿜고 죽어 갔다. 이 날 밤 왕 서방은 복녀의 남편과 의사에게 각각 30원과 20원씩을 주었다. 이튿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한방의의 진단으로 공동 묘지로 실려 갔다.

그리고 시체에는 세 사람이 둘러 앉았다. 한 사람은 복녀의 남편, 한 사람은 왕 서방, 또 한 사람은 어떤 한방 의사. 왕 서방은 말없이 돈주머니를 꺼내어 십 원짜리 지폐 석 장을 복녀의 남편에게 주었다. 한방 의사의 손에도 십 원짜리 두 장이 갔다.

이튿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한방의의 진단으로 공동 묘지로 실려 갔다.

1930년대

 

모범경작생 1934 박영준

⊙작가 : 박영준(朴榮濬1911~)

소설가. 호는 만우.평남 강서군에서 목사인 석훈의 차남으로 출생. 평양 광성보를 거쳐 1934년 연회 전문을 졸업, 같은해 장편 <일년>이 '신동아' 현상 소설에 당선, 이어 단편 <모범경작생>이 '조선일보'신춘 무예에 콩트 <새우젓>이 '신동아'에 당선 되어 문단에 등장 했다. 초기 작품은 주로 농촌을 소재로 하였기 ?문에, 문단에서는 이 작가를 흔히 농민 소설 또는 농촌 소설 작가로 불렀으나, 해방 후에는 시야를 돌려 근대적인 사회구조를 가진 도시에 사는 지식인 또는 소시민의 생활 풍속을 추구해 오고 있다. 지금 까지 문단적 시류에 편승하기를,거부하고 문학적인 문학을 추구 하는 가운데 많은 장편과 함께 해마다 10편 이상의 작품을 거의 의무적으로 쓰고 있는 것으로도 그의 문학적 자세의 엄격성을 짐작 할 수 있다. 그의 많은 작품은 여러 종류의 소재를 다루고 있으나 일관된 흐름을 지니고 있으며, 인간의 미묘한 감정의 물결을 첨삭하면서, 인간의 근원적인 윤리성을 끝까지 지켜내는 인간의 성실한 노력을 파악 하고 있다. 한편 그는 문학생활에서 평탄한 길을 걸어오면서도 행동적인 의지를 몸소 구현 하기도 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로 1935년 고향의 '독서회' 사건으로 일경에 피체되어 5개월간 구류를 당했는가 하면 1950년 6·25동란 당시 피난을 못 하고 있다가 인민군에 납치되어 북송 도중 개천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하였다. 1951년에는 종군 작가의 일원으로서 일선에 종군하는 모험도 겪었다. 현재 예술원 회원으로 연세대 물리대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1954년 <그늘진 꽃밭>으로 제1회 아세아 자유 문학상 수상, 1965년 예술원상 수상, 1967년 서울시 문화상을 수상했다. 주요작품집은 다음과 같다. 단편집 <목화씨 뿌릴때>(45),<풍설>(51),<그늘진 꽃밭>(53), <푸른 치마>(56), <방관자>(60), <고호>(64), <추청>(68), <슬픈 행복>(71), 이 있고, 장편 <한류의 어족><애정의 계곡>(54), <청춘병실>(55), <열풍> <파도와 모래 합창>(59), <오늘의 신화>(60), <결혼학교>(64), <종각>(65), <가족>(67), <산이 운다>(68), <고속도로>(69), <이중 남자>(70), <보라색 가면>(71)등이 있다.

⊙줄거리... 주인공 길서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보통학교를 졸업한 젊은이로, 성두의 여동생인 의숙과 사귀고 있다. 그는 군의 농사 강습회 요원으로 선발되어 서울로 떠났고, 마을 사람들은 이러한 길서를 부러워한다. 김매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의숙은 얌전이에게 길서와의 관계를 놀림받고 얼굴이 붉어진다. 길서가돌아온다. 그날 밤 길서는 마을 사람들에게 호경기가 곧 온다니 부지런히 일하자고 말하며 시국에 관련된 이야기까지 덧붙인다. 다음 날 저녁 그는 서울에서 산 비누를 의숙이에게 쥐어 준다. 한편, 의숙의 오래비 성두와 어머니는 빚 걱정이 태산이다. 길서는 면사무소에 들른다. 뚱뚱보 서기는 일본 시찰단에 뽑히도록 힘써 줄 테니 한턱 내라고 하며, 길서는 그러겠노라 대답한다. 면장은 호세를 좀더 내야겠다고 길서에게 말하며, 길서는 애매한 대답을 한다.
병충해로 수확이 반감될 것을 예상한 마을 사람들은 수심에 가득차서 길서에게 지주를 찾아가 감세를 교섭해 달라고 부탁하나 그는 못들은 척 한다. 마을 사람들은 길서의 논 앞에서 '모범 경작생'이라고 쓴 팻말을 원망스럽게 쳐다본다. 길서는 시찰단으로 뽑혀 일본으로 떠나고, 동네 사람들은 지주를 찾아가 감세를 사정하나 거절당한다. 뽕나무 묘목 값은 엄청나게 비싸지고 호세도 크게 오른다. 모두가 길서의 짓이었다는 걸 안 마을 사람들은 누구 하나 그를 좋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일본에 다녀오는 길에 길서는 팻말이 쪼개져 길에 흩어져 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 길서는 의숙을 찾아가지만 그녀는 못 본 체한다. 충혈된 얼굴로 뛰어든 성두를 피하여 길서는 뒷문으로 도망친다.

 

1940년대

 

먼지 ....이태준(줄거리)

1
한뫼 선생은 서울에서 한문과 습자 선생으로 한 중학교에서 20여 년을 살면서 고서적 수집에 봉급을 바친다. '내 장서가 오늘 일본 제국이 조선 문화나 역사를 왜곡, 날조하는 데 이바지할 바엔 차라리 불을 질러 없애고 말겠다!'는 생각으로...... 그는 일제 말년에 평양으로 출가한 작은딸네 집으로 내려왔다. 해방이 되자 장서가 많은 서울로 가고 싶었지만 평양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가 고서 중개인 성씨의 반가워할 얼굴을 머릿 속에 그려보며 종이노 가방에 행장을 챙기었다. 한뫼 선생은 북조선 정치노선이 옳은 줄 알지만 북조선 신문들이 보도하는 남조선 사태를 남조선의 진상으로 믿으려고 하지 않는다. 자기 눈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8월 25일 남북통일 최고인민회의 선거가 발표되자 8·15 해방 기념도 남조선에서 맞아보고 싶어 남으로의 길을 재촉한다.

2
한뫼 선생은 사돈집 일가인 윤면우를 찾아 해주에 간다. 거기서 평양에서 돈벌기 어려워 남으로 가려는 내과의사 심의사를 만나 시변리로 돌아 삭령, 연천 쪽으로 해서 그 강이 바로 38선이 되는 하여울을 건너 8·15 기념 전으로 이남 땅에 들어서는 데 성공한다.

3
남산 밑 심기호의 저택에서는 오늘 저녁에도 미군 관계의 파티가 열린다. 이승만계의 미국인으로 군정 법무국장으로 있었고 정권이양이 끝나면 이승만 개인 고문이 될 '우드'를 접대하는 자리이다. 심기호는 상해에서 갓 돌아온 댄서 도미화는 물론 자기 딸까지 우드를 접대하게 한다. 파타 도중 동대문서에서 형 심의사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5·10단선 이후 서슬이 푸러던 서울에서 심의사와 한뫼선생은 오후 여섯 시가 지났다는 이유로 동대문서에 연행, 감금된다. 유치장 안은 5·10 단선의 산물인, 소위 국회와 정부를 반대하고 8·25 전조선최고인민회의 선거를 위한 남조선에서의 비합법 투쟁으로서의 인민대표선출운동을 하다 잡힌 사람들이다. 한뫼 선생은 남조선 사람들도 온통 북조선 편이라 생각한다. 한뫼선생은 북조선 정치가 다 옳으나 끝에 가서 '그러나......'를 붙이던 이유는 '남북이 화해하도록 그런 정세를 조장, 성숙시키는 게 아니라 한쪽을 무시하고 저만 나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한뫼 선생과 심의사는 기대했던 남조선에서의 8·15 3주년 기념도 유치장 속에서 쇠었고 심기호에게 연락이 닿아 '우드'의 힘으로 심기호의 저택으로 오게 된다. '우드'는 '평양서는 생활난으로 대동강에 빠져 죽는 사람이 매일 몇십 명씩 된다'는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심의사와 한뫼 선생에게 묻고 심의사는 '우드' 각하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많이 빠지구 말구요. 송장에 걸려 낚시꾼들이 낚시질을 할 수 없다'고 대답한다. 우드는 기뻐하며 이승만 대통령에게 심의사를 소개하겠다고 한다. 한뫼 선생은 원삼에 족도리를 쓰고 미군들을 접대하는 심의사의 딸, 도미화, 기생들의 모습에서 조선 풍속이나 문화에 대한 모독감을 느끼고, 심의사 형제가 이야기하는 틈을 타 회석에서 빠져나와 이층 구석방에 들어가 눕는다.

4
이튿날 아침 한뫼 선생은 식전에 심기호의 저택을 나서 큰딸네 집으로 가는 길에 성씨를 찾아 안국동으로 향한다. 얼굴이 쪼그라들고 궁조가 흐르는 성씨를 만나 미군들이 귀중본을 찢어 없앤 이야기, 이조실록이 휴지로 팔리는 등의 딱한 이야기를 듣는다. 또한 모리배 자식 이외에는 학교에 가는 애가 거의 없는 남조선의 현실을 알게 된다. 큰딸네 집으로 왔다. 사위는 좌익으로 몰려 집에 없고 딸은 '눈 바로 배긴 사람은 다 좌익이라' 한다. 한뫼 선생은 '남조선 이런 꼴 내버려 두고 저만 무슨 개혁이다 국유화다 하고 앞질러 가니 통일이 멀어져 간다'고 한탄 하고 딸은 이런 아버지를 '해방 직후 좌우 합작을 떠들던 중간파'라고 걱정한다.

5
한뫼 선생은 인천 친구에게 5천원을 빌려 가지고 고미술협회 경매장으로 갔다. 서적, 서화(書畵), 도자기 등이 경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 사람들 대신 미국 사람들이 군복 차림으로 경매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고판 '완당집'을 발견하였다. 경매가 시작되고 '완당집'은 미국 장교가 2만원(10달러)에 차지해 버렸다. 한뫼 선생은 '왜놈들은 합병시키구 먹더니 이놈들은 원조해준다구 하면서 먹는 재주가 있다'고 탄식한다. 명치정 골목에 들어섰을 때 8·25 남북통일선거에 참여하자고 외치는 노동자, 연판장을 돌리는 청년, 부인네, 소년, 서명하는 군중, 이를 막는 순경, 엠피의 모습을 목격한다. 성씨와 환뫼 선생 앞에도 중학생 하나가 두루마리를 펴들었다. 한뫼 선생은 당황한다. 서명날인하는 것은 유혈낭자한 결사적 투쟁에 가담하는 것이라 느낄 때 한뫼 선생의 손은 움츠러들고 말았다. 중학생은 '당신이 애국자 편이냐 매국노 편이냐?' 하는 듯한 섬광이 번뜩였다. 한뫼 선생은 시험을 받는 듯한 압박이 불쾌했다. 한뫼 선생은 이 긴박한 순간에서 '나는 좌도 아니요 우도 아니다'하는 초연한 안색을 고쳐 부채질을 하며 얼굴을 중학생에게서 돌리고 말았다.

6
심기가 편하지 못한 한뫼 선생은 딸네 집으로 돌아왔다. 사위는 검거되고 딸은 사식을 넣기 위해 예물 금반지를 팔러 나가려 한다. 한뫼 선생은 책 사려던 돈을 주지만 부족하여 돈마련을 나선다. 성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0년 동안 근속한 중학교 교주 박교주를 찾아간다. 대문 앞에서 미군에게 폭행을 당하여 입원한다. 병원을 찾은 딸은, 자식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승만 도당에게 사정을 하러 갔다는 데 치를 떨고 분노했다. 딸은 아버지가 매국노를 변호하는 반동이라하고, 아버지는 불편부당, 공정한 조선 사람이라고 다툰다. 딸은 아버지가 확실한 입장을 표명해야한다고 강변한다. "어름어름하고 떠도시다간 날려버리구 마십니다. 력사의 주인공은 못 되시나마 력사의 먼지는 되지 마세요?" 한뫼 선생은 자기 딸, 동대문 경찰서 유치장에서 본 사람들, 명동 골목에서 본 중학생과 노동자들에게서만 비웃음을 받을 것이 아니라, 자기가 숭상해오던 연암이나 완당 같은 선현들로부터도 비웃음과 꾸지람을 면치 못할 것이라 생각할 때 이마가 화끈 달라 올랐다. 병상에서 후다닥 일어나 병원을 뛰쳐 나온다.

 

1950년대

 

비오는 날 손창섭

●작품 제목의 의미...음산하고 우울한 분위기로 우울하고 절망적인 주제 형성에 기여

● 등장인물

정원구 : 화자(서술자), 동욱의 친구, 동욱 남매를 걱정하는 인물

김동욱 : 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내려와 미군을 상대로 초상화를 주문 받아 소개하며 살아가 는 무기력한 인물

김동옥 : 동욱의 누이동생. 소아마비로 신체 불구자, 오빠가 주선해 오는 사람의 초상화를 그려 생계를 꾸려감.

●줄거리

원구는 오늘 같이 비오는날(회상의 매개체)이면 동욱남매(삶의 방향을 상실한 실존적 인간) 생각이 난다. 원구는 1.4후퇴시 월남해서 부산( 삶의 뿌리기 뽑힌 사람들이 살아가는 절망적 공간)에서 잡화를 팔며 살고 있다. 원래 원구는 법학을 전공한 학생이었다. 원구는 어릴 때 친구인 동욱을 만났다. 동욱은 영문학을 전공한 목사지망생으로 착실한 학생이었고 그에게는 그림을 좋아하는 신체 불구자인 동생 동옥이 있었다. 동욱은 미군에게 초상화를 주문받아 그것을 동옥이가 그려서 생활하고 있다. 우연히 원구가 동욱을 만나자 원구에게 적선하는 셈 치고 동옥과 결혼할 생각이 없느냐고 묻기도 한다. 어느 비오는 날 동욱의 집을 찾아간 원구는 이들 남매가 인가에서 떨어진 외딴 목조건물, 마치 도깨비가 나올 것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 것을 보고 냉소적으로 대하는 동옥을 만남 그 후 동욱은 이제 초상화 그리는 일도 없다며 외로운 동옥을 가끔 찾아 위로해줄 것을 부탁한다. 그 후 동욱의 집을 찾아가 원구는 동옥이,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 모아놓은 돈을 주인 노파에게 떼이고 그로인해 동욱이 동옥을 심하게 구는 것을 본다. 다음에 찾아갔을 때 원구는 동욱남매를 볼 수 없엇고 낯선 사내가 주인이 되어 있었다. 주인이 동옥이의 편지를 남겼는데 아이들이 찢어버렸다고 하고 '그년은 인물이 반반해서 굶어죽지는 않을 거라'는 말에 사창가(최후의 공간으로 황폐화된 삶을 살아가는 공간)로 팔려갔다는 생각으로 자책감에 빠진다.

 

1960년대

 

김승옥(金承玉, 1941 - )

1941년 일본 대판(大阪, 오사카) 출생.
1945년 귀국. 전남 순천에서 정착하여 삶.
1960년 서울대 문리대 불문과 입학 1965년 졸업.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생명연습'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
           김현,최하림 등과 동인지 [산문시대]발간, 동인지에 '건','환상수첩' 등 발표.
1963년 [산문시대]에 '누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등 발표.
1964년 [무진기행],[역사]등 발표.
1965년 '서울 194년 겨울'로 제10회 동인문학상 수상.
1967년 '감자'로 영화감돋 데뷔.
1977년 [서울의 달빛 0장]으로 제 1회 이상문학상 수상.
1980년 <동아일보>에 장편' 먼지의 방' 연재중단 이후 절필.
1995년 "김승옥 소설전집"(문학동네) 출간.
1999년  세종대 국문과 교수로 부임하면서 문단복귀

그의 작품 세계는 주로 자기 존재 이유의 확인을 통해 지적 패배주의나 윤리적인 자기 도피를 극복해 보려는 작가의식을 보이고 있다. 그는 한국 소설의 언어적 감수성을 세련시킨 작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평자들은 흔히 그를 내성적 기교주의자의 대표적 작가로 내세운다.

●제목(서울 1964년 겨울)의 의미

...차고 매서운 현대인의 관계와 60년대의 절망적 현실을 보여주는 배경

●등장인물

안 : 25세, 서울 부유한 집 대학원생, 염세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사람

나 : 25세, 구청직원 시골출신,이기적이고 개인적인 현대 젊은 이들의 표상,

아저씨와 안의 중간적 존재

사내(아저씨) : 30대 중반, 죽은 아내의 시체를 팔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가난에 찌든

서적 외판원, 도시인의 소외와 고독을 상징하는 인물

●작품구성

1.나와 안이 우연히 만나 무의미한 이야기를 나눔...의사 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단절된 관계

2.선술집에서 만난 낯선 사내가 동행하길 원함

3.급성 뇌막염으로 죽은 아내의 시체를 판돈 4000원을 쓸 때까지 함께 있어주길 사내가 원하 고 나와 안은 귀찮아서 도망갈 궁리를 함

4.양품점에서 넥타이를 하나씩 사고 귤을 사 나오는데 소방차 소리가 들리고 우리는 택시를 타고 가서 불구경을 함. 사내는 돈을 불속에 던져 버림

5.우리는 돈을 다 썼으니 가겠다고 말하나 사내는 무섭다고 함께 있기를 애원함.

6.여관으로 가서 한 방을 쓰자는 사내의 제의를 피곤하다고 거절하고 각방을 씀...벽으로 차단 된 공간, 현대인의 소외된 관계

7.다음날 사내는 시체로 발견됨. 우리는 서둘러 떠남...비인간적인 관계

● 해설

이 작품은 60년대적 의식의 방황을 그렸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50년대의 도덕주의적 엄숙성을 지닌 문학의 경향에서 탈피하여 도시에서 소외당한 현대인의 고독과 비애, 그리고 고립을 그리고 있다. 특별한 사건은 없이 우연한 만남을 이룬 세 사나이의 비현실적 대화의 행동을 통해 전망없는 세계에 처한 삶의 부조리성을 드러낸다. 소위 4.19세대가 일으킨 '감수성의 혁명'의 맨 앞자리에 놓이는 김승옥 문학의 대표작으로, 감각적이며 유희적인 문체가 인간 관계의 단절상을 극적으로 제시하게 되는, 반어적인 성취가 이루어진다. 인간끼리의 진정한 자아로서의 만남이 불가능해진 현대사회의 어두운 뒷모습을 '의도된 어색함의 상황'에 담아 보인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대학원생 안씨와 서적 외판원 아저씨를 60년대 우리 사회가 가질 수 있는 전형적(대표적) 개인이다.

 

1970년대

 

박경리의 `토지'(한겨레96/01/10)

동학농민전쟁이 실패로 돌아간 뒤 조선의 식민지화는 걷잡을 수 없는 흐름을 타게 되었다. 러시아와 일본은 각기 아관파천과 명성황후 살해를 통해 조선의 식민지배를 꾀했다. 일본 낭인들의 국모 시해라는 전대미문의 치욕을 맛본 유생들은 단발령을 계기로 수하들과 농민군 잔여세력을 규합하여 전국적인 의병투쟁을 전개하지만, 일본군의 우세한 화력을 뚫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농민군의 분발에 당황하고 일본의 이른바 내정개혁 강요에 몰린 정부는 갑오개혁을 단행한다. 왕권 제한, 조세의 금납화, 도량형 통일, 문벌 타파, 과거제 폐지, 노비법 폐지, 과부의 재혼 허용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갑오개혁은 농민전쟁에서 집약적으로 분출된 봉건체제의 내부모순을 누그러뜨리려는 시도였음에는 틀림이 없으나 그것이 일본의 조선 내 영향력을 강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었다.

박경리(70)씨의 대하소설 <토지>는 농민전쟁과 갑오개혁, 을미의병 등이 차례로 근대사의 연표를 채우고 지나간 1897년 한가위로부터 문을 연다. 이후 일제의 본격적인 식민지배와 민중의 검질긴 독립투쟁, 그리고 2차대전에 이은 해방까지의 긴박한 역사를 큰 호흡으로 훑어내려갈 소설의 첫 장면은 뜻밖에도 평화롭고 풍요롭다.

“까치들이 울타리 안 감나무에 와서 아침 인사를 하기도 전에, 무색 옷에 댕기꼬리를 늘인 아이들은 송편을 입에 물고 마을길을 쏘다니며 기뻐서 날뛴다. (…)고개가 무거운 벼이삭이 황금빛 물결을 이루는 들판에 서는, 마음놓은 새떼들이 모여들어 풍성한 향연을 벌인다.”

그렇기로서니 수상한 세월 힘없는 나라에서 맞이하는 박복한 백성들의 명절이 어찌 평화와 풍요의 겉보기에만 그칠 것인가. 과연 작가는 곧 이어서 “팔월 한가위는 투명하고 삽삽한 한산 세모시 같은 비애는 아닐는지”라며 시의 경지를 방불케 하는 문장을 내밀고 있다. 더구나 그 비애의 속내인즉, 산문적 사실성과 치열성으로 가득차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고많은 이별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흉년에 초근목피를 감당 못하고 죽어간 늙은 부모를, 돌림병에 약 한 첩을 써보지 못하고 죽인 자식을 거적에 말아서 묻은 동산을, 민란 때 관가에 끌려가서 원통하게 맞아죽은 남편을, 지금은 흙 속에서 잠이 들어버린 그 숱한 이웃들을, 바람은 서러운 추억의 현을 가만가만 흔들어준다.”

<토지>는 만석꾼 대지주 최참판댁의 마지막 당주인 최치수와 그의 고명딸 서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토지의 상실과 회복을 둘러싼 대하 드라마를 전개한다. 치수의 어머니 윤씨 부인이 동학 접주 김개주에게 겁탈당해 낳은 자식 김환이 의붓형수인 별당아씨와 밤도망을 치는 사건은 장강처럼 흘러갈 소설의 초입에 물살 급한 여울목을 마련해 놓는다. 상피붙은 남녀를 쫓는 긴박한 추격전이 벌어지는 한편에서는 치수의 고임을 받아 그의 만석지기 농토를 차지하고자 하는 하녀 귀녀의 음모, 치수가 비명횡사한 뒤 최참판댁 재산과 토지를 노리는 그의 재종형 조준구의 행보, 마을 남정네 용이와 무당 딸 월선이의 비련 등 인간사의 오욕칠정이 쉬임없이 피었다 진다. 거기에 동학군 출신인 대목수 윤보, 의병에 가담하는 김훈장,

독립군으로 변신하는 길상과 그 아들, 조준구가 대표하는 상업영농과 서희의 곡물무역의 자리바꿈에서 볼 수 있는 경제의 단계적 발전 등 사회·역사적 변모가 포개진다.

<토지>의 무대는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전북 진안에서 발원한 섬진강이 3개 도 12개 군에 걸치는 남도 5백리를 내려와 하동포구에서 남해로 흘러들기 전에 강의 북동쪽으로 빚어놓은 악양들을 내다 보며 자리잡고 있는 마을이다. 폭이 넓지도 수심이 깊지도 않으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강으로 꼽히는 섬진강은 발원지에서부터 남해 바닷물에

몸을 풀기까지 지리산 자락의 높고 낮은 봉우리들을 좌우에 거느리고 구비쳐 내려오는데, 강을 바투 쫓아오던 경상도쪽 산자락이 문득 멀찍이 물러나 앉으면서 조물주의 선물처럼 이루어 놓은 너른 벌이 바로 악양들이다. 김제·만경의 광활함에는 턱없이 못 미치지만 그래도 근방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규모다. `외지 거지가 악양에 들어와도 1년은 놀고 먹을 수 있다'는 말은 그런 규모가 가능케 하는 풍요와 여유를 가리키는 것일 터이다.

하동에서 멀지 않은 통영에서 출생해 진주에서 학교를 나온 박경리씨는 1960년대의 어느날 화개의 친척집을 방문하는 길에 악양들을 접하고는 이곳을 당시 구상하고 있던 <토지>의 무대로 삼기로 했다. 그러나 소설을 집필하는 도중 평사리를 직접 답사하지는 않았다. 소설 속 동네 구조와 실제의 평사리의 모습이 같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겨울 한복판의 악양들에는 <토지> 서두와 같은 벼이삭의 물결 대신 날선 바람의 갈기만이 휘날리고 있다. 어쩌다 한둘 트랙터로 논을 갈아엎는 이들이 눈에 뜨일 뿐 너른 들에 사람 그림자도 찾아보기 힘들다. 개 짖는 소리와 닭 우는 소리, 소의 음메 소리가 서로 화답하는 마을에서도 사람을 마주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담쟁이 덩굴이 벋어 올라간 오래 묵은

돌담들, 담 옆 헐벗은 나무에 달랑 두 개 달려 있는 까치감, 마루 밑에 넣어 둔 단호박 덩이들과 처마 밑의 메주, 시레기 다발 따위가 대신 사람의 자취와 체온을 전해준다.

악양들의 옥답과는 달리 산쪽으로 다가 앉은 마을에는 유난히 돌이 흔하다. 거의 모든 집의 담이 돌로 되어 있음은 물론 마을 뒤편의 다랑논의 논둑 역시 돌을 쌓아 만들어 놓았으며, 돌을 고르다 못한 언덕빼기는 단감나무 밭으로 알뜰하게 활용하고 있어 땅밖에 모르는 농부들이 박토를 일구며 흘린 땀을 짐작케 한다. 마을 한가운데에는 소설 속 임이네와 강천댁, 두만네, 막딸네 등 아낙들이 시름을 털어놓거나 신세를 한탄하는가 하면 작은 일로 아옹대기도 했음직한 공동우물과 빨래터가 남아 있다.

 

 

 

여기까지 읽어 셨다면 많은 공부 하신거네요...ㅎㅎ

걍 사이트를 알려 드리면 쉬울것을 이렇게 한 이유는 숙제인것 같아서염...

읽어면서 공부도 하시고 그러시라구염...ㅎㅎㅎ

 

참고사이트 알려 드릴테니 그외 알고 싶은게 있으시면 방문해 보세요...

http://www.archestudy.com/kb/modern.htm

 

수고 하세염.......ㅎㅎ

 

2004.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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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1940년대는 우리 문학사에서 '어두움' 과 '밝음' 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시기로 볼 수 있다. 그것은 해방 전까지 일제의 군국주의가 가속도를 더해 감으로써 우리 문학에 시련을 가했다는 의미와 함께, 해방 후 우리 문단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40년대는 크게 두 시기로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가) 해방 전의 문학


해방 전의 상황은 매우 암담했다고 할 수 있다. 언론지의 폐간과 일본식 성명 강요, 황국 신민화 등을 통해서 일제에 의한 탄압이 그 강도를 더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변절의 붓으로 이른바 '부일 문화(附日文學)' 의 길로 나서는 부류와 붓을 아예 꺾거나 옥에서 생을 마감하는 문인들로 나뉘게 되며 그 외의 작가들 역시 살아 남음과 소멸의 기로에서 고통 받아야만 했다.

이 시기를 전후로 문단에 발에 들인 작가로는 황순원, 최명익, 정인태, 현덕, 김이석, 안수길, 김영수, 정비석, 김사량, 최인욱, 곽하신, 최태웅, 임옥인, 지하련 등 이있다.

시에서 출발하여 시적 언어와 산문성을 결함시킨 황순원은 초기 단편에서 소년과 소녀를 등장시켜 그들이 겪어야 하는 통과 제의(通過祭儀) 의 아픔을 그리고 있다.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는 '기러기' , '세레나데' , '별' , '닭제' , '소나기' , '늪' 등이 있는데, 이는 유년기의 소년, 소녀들이 성인으로 가는 시련과 아픔의 과정을 통하여 역사를 헤쳐 나간다는 것의 어려움, 그런 역사에 대해서 비관하거나 절망하지 않는 면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최명익은 마르크스주의적인 세계관을 토대로 모더니즘적 작품 경향을 보여 주는데, 자의식적인 성인을 주인공으로 하여 현실의 상황을 절망적이고 암담한 분위기로 조성하고 있다. 그의 대표작에는 '역설' , '장삼 이사' , '무성격자' , '비 오는 길' , '봄과 신작로' 등이 있다.


(나) 해방 후의 문학


'해방' 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한마디로 '새 출발'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해방기의 우리 사회는 새로운 출발에 앞서 혼란과 대립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 즉, 반도의 허리는 잘려나가고 그 남쪽은 미 군정에, 북쪽은 소련 연방에 편승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사회상에 그대로 반영되어 이데올로기의 혼란과 좌우익의 대립 상황을 만들어 내게 되며, 그것은 48년 정부 수립 이후 극점에 도달하게 된다.

문학에서의 해방의 의미는 우선적으로 '회귀' 또는 '복구' 의 개념을 지니고 있다. 일제 치하의 상황이 '암흑과 실향' 이라면, 이제 잃어버렸던 고향과 파괴된 삶의 원형을 되찾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식을 반영하는 문학으로 김동리의 '혈거 부족' , 계용묵의 '별을 헨다' , '바람은 그냥 불고' , 정비석의 '귀향' , 엄흥섭의 '귀환 일지' , 허준의 '잔등' 등의 작품이 있다.

두 번째로는 남북 분단의 비극에 대한 인식이다. 해방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불행하게도 남북 분단이라는 비극을 낳고 말았고, 한민족은 38선이라는 인위적 조작을 통해 서로간의 왕래마저 통제당한 채 대립과 분열이라는 새로운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인식은 분단 이후 미소 양군의 진주와 군정 등에서 먼저 그려지게 되는데, 그 대표작으로는 염상섭의 '삼팔선' , '이합' , 계용묵의 '별을 헨다' , '이불' , '짐' , 박연희의 '삼팔선' , 함대훈의 '청춘보' , 전영택의 '소' , 이태준의 '해방 전후' , 박노갑의 '사십 년'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염상섭의 '양과자 집' , '두 파산' , '임종' , '일대의 유업' 등의 작품을 통하여 소시민의 범속한 삶의 현장을 묘사하고 있다. 또한, 김동리는 '역마' , '달' 등의 작품에서 현실을 초월한 좀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것에 대한 문제 제기를 통하여 문학의 초시대적 기능에 계속적 관심을 표명하게 된다. 허윤석은 서정적 소설의 양상을 드러내는 '옛 마을' , '유두(流頭) 등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한편, 변명과 반성의 문학 양식이 있다. 이는 일제 치하에서의 지식인의 오류나 범죄와 악행에 대하여 자기 비판의 도덕적인 죄책잠이나 자기 변명적인 인식을 투영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광수는 "조선 민족의 행복을 위해서 일본에 협력하기를 주장했다." 는 글에서 자기 변명을 시도하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채만식의 '민족의 죄인' , '속 민족의 죄인' , 이태준의 '해방 전후' , 지하련의 '도정' 등이 있다.

그러나 8 15 해방 문단에서의 이러한 상황 인식과 그 형상화로서의 소설은 8? 15 해방이 외세에 의한 불완전한 해방이었으며, 결과적으로 남북 분단과 이데올로기의 대립 양상을 낳았다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출발이 되지 못했다는 점을 증언하고 있다.

2008.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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