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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인종차별의 역사좀요
swje**** 조회수 11,031 작성일2017.03.01
인종차별의 역사를 알고싶어서요ㅎㅎ 최대한 빨리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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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er****
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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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영국의 청교도들이 신앙과
직업의 자유를찾아 아메리카대륙에
정착하고나서 영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뒤에 연방정부초기에 흑인을 노예로
부렸는데 인간을 인간으로 안본역사이죠
그래서 북쪽은 노예제도 반대
남쪽은 찬성 그래서 남북전쟁해서
결국 노예제도 폐지되었으나
아직까지도 인종갈등을 겪고있어요
백인경찰이 흑인 막 쏴죽여요

2017.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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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iN초보
달신
기차, KTX, 남북관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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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

사람 밑에 사람 없고 사람 위에 사람 없다!

사람들을 여러 인종으로 나누고, 특정 인종에 대하여 불이익을 주는 것.

엄마는 늘 여동생과 나를 차별대우 하셔. 아무래도 동생이 예쁘고 애교도 많으니까 나보다 더 좋으신가 봐. 오늘도 동생이 다 어질러 놓은 장난감들을 나보고 치우라고 하시는 거야. 그래서 “엄마는 왜 나만 차별대우 하세요? 제가 이 집의 노예예요?”라고 덤비고 말았어. 엄마는 그야말로 눈을 둥그렇게 뜨시더니 못하는 말이 없다며 화를 내셨어. 에이, 괜히 말 잘못했다가 두 배로 혼났네.

인종차별의 원인 - 옛날에 노예제도가 있었어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했다고 하는 미국이지만 불과 150년까지만 해도 노예제도가 있었어. 1800년대 미국 남부에 목화사업이 발달하면서 일손이 턱없이 부족해지자 농장 주인들은 노예상인들을 통해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데려오기 시작했어. 노예상인들은 아프리카 흑인들을 마치 동물 사냥하듯이 억지로 끌고 왔다고 해. 대부분의 백인들은 흑인들을 야만적인 인종이라고 생각했고, 노예로 부리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죄책감은 없었다고 해. 노예의 자식은 당연히 노예였고, 백인 남자와 흑인 여자 노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도 어머니의 신분을 따라 노예가 되었대.

노예제도는 공식적으로는 1865년 남북전쟁 때 북군이 승리하면서 폐지가 되었지만, 여전히 흑인들을 노예 취급 했지. 그 후 법이 제정되어 흑인에게도 투표권을 준다고 했지만 거의 이루어지지는 않았어. 1954년 브라운 토피카 교육위원 사건에서 흑백차별은 위헌이라 판결을 했고, 마틴 루터 킹 같은 목사나 맬컴 리틀 같은 운동가들이 흑백평등을 주장했어.



읽을 거리 노예제를 그린 소설도 있을까?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는 1800년대에 미국의 노예상인들이 아프리카 흑인들을 어떻게 잡아왔고 어떤 대우를 했는지를 그린 소설이야. 한 흑인 소설가가 자신의 뿌리를 찾아서 아프리카까지 간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내용인데, 알렉스 헤일리는 이 소설로 퓰리처상을 수상했어. 또 노예해방 운동가인 해리엇 비처 스토가 지은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란 소설은 당시 흑인 노예들의 비참한 생활을 생생히 그려내서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어. 이 소설은 미국 흑인해방운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받고 있지.

인종차별의 사례 - 여전히 차별받는 흑인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며 흑인인권운동가였어.

남아프리카 공화국 인종분리 정책
남아프리카 공화국(남아공)은 1948년부터 1994년까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만큼 백인들 위주의 인종차별 정책을 썼어.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을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분리, 격리)라고도 하는데, 모든 사람을 백인, 흑인, 유색인, 인도인 등 4가지 인종 등급으로 나누었고, 인종에 따라 사는 곳도 다르게 하고 출입할 수 있는 곳도 구분했어. 심지어 서로 다른 인종 간에는 결혼도 못하게 한 거야.

남아공의 차별정책은 세계적으로 많은 비난을 받았고, 남아공 내에서도 흑인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의 끊임없는 투쟁이 이어졌어. 결국 1994년에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당선되어 남아공 역사 최초로 흑백연합정부가 수립되면서 아파르트헤이트는 폐지되었지. 그렇지만 남아공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 의식은 아직도 쉽게 개선이 되지 않고 있어.


백인 전용을 알리는 아파르트헤이트 표지판을 세워 그 지역에는 백인 외의 인종은 출입하지 못하도록 했어.

LA 흑인 폭동 사건
1991년 3월 3일 LA 경찰국 소속 백인 경찰관 4명이 LA 근교 고속도로에서 과속으로 달리던 차를 뒤쫓아 멈춰 세웠어. 그 차는 로드니 킹이라는 흑인 청년이 운전하고 있었는데 백인 경찰관들은 로드니를 끌어내 마구 때렸어. 로드니는 왼쪽 다리가 부러지고 얼굴도 20바늘이나 꿰매야 하는 큰 상처를 입었대. 과속운전을 한 건 잘못했지만, 그건 누가 봐도 지나친 처사였어. 로드니는 경찰관들을 고발했지만 재판에서 경찰관들은 각각 무죄와 재심사를 판결받았어. 그런데 배심원들은 백인이 10명, 스페인과 아시아계가 각 1명씩이었던 거야.

판결이 발표되자 흑인들은 분노했어. 만약 로드니 킹이 흑인이 아니었다면 단순한 과속운전으로 그렇게 때렸을까? 만약 배심원들이 백인이 아니었다면 경찰관들에게 무죄를 선고했을까? 분노한 흑인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를 시작했고, 마침내 폭동으로 변해 곳곳에서 건물에 불을 지르고 차량을 파괴하고 상점의 물건을 약탈했어. 이게 유명한 1992년 LA 흑인 폭동 사건이야. 안타깝게도 당시 한인 타운도 크게 피해를 입었어. 하지만 이 사건은 다민족 국가인 미국에서 아직도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는 인종차별에 대해 전 세계에 알린 계기가 되었지.

[네이버 지식백과] 인종차별 - 사람 밑에 사람 없고 사람 위에 사람 없다! (시사논술 개념사전, 2010. 5. 14., (주)북이십일 아울북)

2017.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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