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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대한민국 정국
비공개 조회수 6,655 작성일2018.01.22
제가 진짜 정치를 하나도 모르는데 곧 성인이 되서 대한민국 정국을 좀 파악해야 될거 같아요
노무현 정부 때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추진한 정책 들이나 중요한 사건들 자세히 알려주세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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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i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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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 최대한 정치적인 관점을 빼고 객관적으로 서술하기 위해서 노력하겠습니다.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진보성향)가 제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보수성향)를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됩니다.]

제 16대 대통령 노무현 정부(2003년 2월 25일~2008년 2월 24일)는 '참여 정부'라고도 합니다. 원래 제 14대 대통령 김영삼 정부와 제 15대 대통령 김대중 정부도 각각 '문민 정부', '국민의 정부'라는 별칭이 있었습니다. 이런 별칭이 있다는 것은 그 정부가 추구하는 궁극적 이상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노무현 정부는 정의롭고 효율적인 사회를 위한 합리적인 개혁 정부, 국가적 갈등 구조를 해결하는 국민 통합 정부, 국민과 수평적·쌍방향적으로 소통하는 열린 정부, 모든 국민에게 꿈과 용기를 주는 희망의 정부를 지향하였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와 마찬가지인 민주당 세력의 정부로 대북정책을 평화노선으로 펼치는 정부입니다. 그래서 김대중 정부를 이어 남북 대화를 계속해나갔고 2007년 10월 2일부터 4일까지 제 2차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주요 정책으로는 노인 연금 제도와 주5일제, 이라크 파병, 신개념 인사추진, 사스 전염병 사전방역, 태안 기름유출 사건 대응, 청와대 내의 열린 정책 토론의 장 마련, 작전통제권 회수 시도, 부동산 정책, 고용노동부 개칭, 한-미 FTA 타결, 호주제 폐지 등등 다양합니다. 그러나 이 노무현 정부는 험난한 가시밭길 정부였습니다. 일단 집권 초기에 노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의 국회의원의 수가 40명 남짓 밖에 되지 않아 입법을 근거로 한 제대로 된 국정운영을 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행정 수도를 서울에서 세종으로 옮겨 지역 균형을 실시하고자 한 공약 역시 위헌이라는 결정을 받았고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의 온갖 양쪽 공격으로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또한 17대 총선 직전에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이 총선에 승리하기를 바란다"라고 말 한마디를 했다가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의 일부에서 "대통령이 정치적 중립을 어겼다"면서 기습적으로 탄핵 소추안을 가결시켜 버렸습니다. 탄핵이 가결되면서 노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되어 버렸고 헌정 사상 최초로 탄핵으로 임기 도중에 쫓겨날 위기에 처해버렸습니다. 그러자 전국의 20대 30대 젊은 세대들이 촛불을 들고 "탄핵 반대! 탄핵 무효!"라고 외치며 노 대통령 탄핵은 옳지 못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을 기각시켜 노 대통령의 권한이 회복되었고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150석 이상의 과반의석을 차지하여 여당이 되었습니다. 노 대통령은 탄핵 정국에서 벗어나고 이해찬 열린우리당 의원을 국무총리로 임명하였는데 이때 이 총리가 헌정 사상 제 2 공화국의 장면 총리와 김영삼 정부(문민 정부)의 이회창 총리와 더불어 얼마 없는 '책임 총리'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책임 총리란 대통령에게 '할 말을 하는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총리'라는 뜻으로 대통령의 그늘에 가려졌던 역대 총리들과 다르게 소신있게 일한 총리를 말합니다.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이 싫어하는 이재정 의원과 이상수 의원을 장관으로 임명하려는데 또 한나라당이 싫어하는 유시민 의원을 장관으로 임명하려하자 이 총리가 "이러면 청문회 통과가 어려울 것 같으니 유시민 의원 임명은 다음으로 미루시지요."라고 했다가 노 대통령과 이 총리가 대판 싸웠던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고집으로 결국 3명 의원이 전부 임명되었습니다. 노 대통령은 진보성향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FTA나 이라크 파병과 같은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보수 정책을 많이 내서 임기 말에 진보 성향 여당인 열린우리당 유력 의원들과의 마찰 때문에 험난하게 국정운영을 간신히 해나갔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비난을 받았지만 FTA나 이라크 파병은 노 대통령의 정책들은 결과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진보 성향이 편을 안든다고 해서 보수 성향인 한나라당에서 노 대통령 편을 드는 것도 아니니 당시로는 외로운 싸움이었죠. 게다가 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조선일보와 사이가 안좋았으니 국민 여론 역시 굉장히 싸늘했습니다. 오히려 노 대통령은 집권 시기 때보다 퇴임 후 봉하마을에서 따뜻한 서민적인 이미지로 큰 인기를 얻었지요. 노 대통령은 임기 말에 남북 정상회담을 성공시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노 대통령의 업적으로는 노인들에 대한 연금 제도를 마련해 노인 복지 확대가 있고 양성평등 장려 정책과 권위주의 청산 정책, 그리고 비주류 존중 정책이 있습니다. 노 대통령이 가장 신경을 썼던 것은 권위주의 철폐이기도 합니다. 제왕적 대통령에서 벗어나 '친구 같은 대통령', '아버지 같은 대통령'으로 남기 위해 서민적인 행보, 격의없는 행보도 많이 보이셨습니다. 하지만 노 대통령과 여권 열린우리당의 분열로 인해 다음 정권은 보수진영에 의해 뺏기고 맙니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보수성향)가 제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진보성향)를 여유있게 누르고 당선됩니다]

제 17대 대통령 이명박 정부(2008년 2월 25일~2013년 2월 24일)는 아무 별칭이 없는 정부입니다. 다만 '실용 정부'라는 비공식적인 별명이 있기는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과 달리 보수진영이기 때문에 대북정책이 평화노선이 아닌 대립노선입니다. '선진화를 통한 세계일류국가'를 국가 비전으로 삼은 이명박 정부의 주요 정책으로는 유괴 범죄 근절정책, 4대강 경제정책, 기획재정부 통합설립, 방송 규제, 방송통신위원회 신설, 한-미 전략동맹 시도 등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 또한 국정 운영 초반이 굉장히 험난했습니다. 광우병 파동 때문이었죠. 미국산 소고기가 광우병에 걸려 국민들의 건강에 위협이 된다는 의혹이었죠. 그래서 한때 광우병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들의 촛불시위가 열린 적이 있었죠. 하지만 노 대통령과 달리 이명박 대통령 탄핵 사건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집권 초기 때는 열린우리당이 과반이라 마음만 먹으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의 한나라당 역시 다음 총선에서 승리하여 과반을 얻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하면 떠오르는 또 하나의 정책은 바로 어린이 유괴 근절정책 입니다. 제가 초등학생이었을 때인데 그때는 정말 어린이 유괴 범죄가 엄청나게 많이 일어났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로 유괴 범죄가 크게 근절되어 이 대통령의 업적으로 상기되어지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 중 가장 욕을 얻어 먹었던 것은 방송 규제 정책이었습니다. 공영방송인 MBC와 KBS의 사장을 정부의 입맛대로 세워 정부를 비판하는 연예인을 출연정지를 시키거나 하는 정책이었습니다. 때문에 당시 MBC와 KBS에서는 이런 정책에 반발하여 방송연예인들과 스태프들과 아나운서들, 기자들이 엄청난 총파업이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혹시 지금말고 2008년부터 2012년 쯤 사이에 잠깐 동안에 무한도전 방영 안하던 때 기억나시나요? 그때입니다.)
가장 유명한 정책으로는 역시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4대강 정책'입니다. 옛날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미국의 대공황으로 온 나라 경제가 휘청거릴 때 뉴딜정책으로 일자리를 늘리고 수요와 공급의 밸런스를 맞춰 경제를 살린 것을 토대로 만들었다는 4대강 직강 공사 정책으로 경제를 크게 살릴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결론을 말하자면 생각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증가하여 일자리가 늘었다면 4대강 정책은 모든 일을 대부분 기계가 했기 때문에 제대로 되지 않았죠. 게다가 우리나라의 4대강에 엄청난 녹조 현상이 나타난 것도 이때부터 인데다가 공사를 하청에 하청에 하청을 맡기는 바람에 이상하게 흘러가고 말았습니다. 4대강 정책의 실패로 국민들이 혈세를 날렸다는 실망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야심차게 시작했던 이명박 정부 최대의 정책이 무너지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지만 다음 정권은 역시 보수 정권에 넘어갑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제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근소하게 누르고 당선됩니다]

제 18대 박근혜 정부(2013년 2월 25일~2017년 3월 10일 -탄핵 인용 기준입니다)도 역시 아무 별칭이 없는 정부입니다. 하지만 공약이나 슬로건을 살펴서 가장 적합한 별명을 붙혀 본다면 '창조경제 정부'? 정도 되겠네요. 박근혜 정부는 다른 정부와 달리 유독 음.. 큰 사건 없이 전체적으로 국정지지율이 최대 40% 50% 최저 20% 정도밖에 안됬습니다. 그런데 탄핵 정국 때는 4%까지 내려가는 불명예스러운 일을 맞았습니다. 주요 정책으로는 민영화 사업, 국정교과서 집필, 담뱃세 인상 등등이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에 찾아온 첫번째 난관은 전임 정부의 여론 조작 논란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 과정에서 이명박 정부가 댓글 알바들을 고용하여 여론을 유리하게 형성하였다는 의혹입니다. 이것은 해당 담당 경찰 고위직이 책임지고 사임을 하면서 화제에서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다음 난관은 정부 내각 인선 문제였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첫번째 국무총리를 임명하는 과정에서 무려 4명이나 치명적인 흠결이 있어서 낙마를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결국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총리를 유임시키면서 겨우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젊은 층에게서 완전히 신뢰를 잃은 사건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세월호 사건입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 탄 배 세월호가 황해안과 남해안 바다 사이 한가운데서 침몰을 하고 만 참사 사건입니다. 충분히 다 살 수도 있었던 사고였음에도 불구하고 발빠르게 구출하지 못했다는 무능한 정부라는 오명을 쓴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요구도 제대로 수용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세월호가 침몰한 지 7시간 동안 도대체 무엇을 했느냐"라는 의혹도 끊이지 않고 있어서 국민들의 신뢰를 크게 잃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인식을 나쁘게 했던 것은 바로 메르스 사건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전염병이 들어온 사례가 유명한 것이 '사스'와 '메르스'가 있었는데요. 노무현 정부 때 들어왔던 사스는 노무현 정부의 발빠른 사전 대응으로 감염자나 사망자 한 명 없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물론 김치의 도움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 때 우리나라는 사스 모범 방역국으로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 시절 메르스 사태 때 우리나라는 첫 감염자가 나온 후에야 겨우 방약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정부가 발표한 예방법이 '낙타를 만지지 말고 낙타 고기를 먹지 말라'는 다소 황당한 내용이라서 국민들이 신뢰를 잃었습니다. 또한 사망자가 꽤 나온 뒤에서야 메르스 사태가 끝나서 "박근혜 정부가 책임을 다했다"라고 주장하기에도 좀 체면이 안 서는 게 사실입니다. 가장 유명한 정책은 아무래도 국정교과서 정책이겠습니다. 한국사에 근현대사의 내용을 대폭 줄이고 고대와 중세 역사를 대폭 늘리는 교과서 내용을 채택하는 것인데 왜 인지는 몰라도 국정교과서 집필 위원 중에 군과 관련된 사람이 있었다는 의혹을 받기 했습니다. 국정교과서는 근현대사 왜곡 논란이 좀 심해서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시위가 한때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 다음 이슈는 담뱃세 인상 정책입니다. 그냥 인상을 했으면 박근혜 대통령이 비난을 받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국민의 건강 증진이라는 명분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 시절 한나라당 대표였을 때 노무현 대통령이 담뱃세를 올리자 "서민들은 어떻게 하라고 그러냐"라고 비난을 했던 경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자기가 한 말도 까먹은 것이냐"라며 비난을 받았죠. 그리고 다음에는 개헌 정국을 준비하였으나 이미 20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제 1당이 된 상태였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 마음대로 개헌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역사를 뒤바꾼 핵폭탄급 사건이 터지고 맙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는 것이지요. JTBC에서 최순실의 테블릿 PC를 찾아내서 최초 보도하여 만천하에 들어난 사태인데요. 비선실세인 최순실이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치고 국정 운영에 심각하게 개입한 것으로 드러나 온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결국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전국의 대부분의 국민들이 "박근혜는 하야하라"라고 외치기 시작했고 그것이 광화문 광장의 촛불 집회로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최순실과의 관계를 인정하면서도 하야는 안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국민의 여론은 식지 않았고 촛불집회는 전국적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제 7차 촛불집회가 열리던 시기 쯤에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결국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되었고 탄핵 정국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촛불집회가 열리자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와 '어버이연대'가 한 데 모여 촛불집회와 탄핵정국에 반대하는 태극기집회가 생겨 나게 됩니다.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는 헌법재판소의 결정 직전까지 팽팽하게 맞서 대립하였고 결국 2017년 3월 10일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박근혜의 탄핵 소추안을 최종 인용하고 피청구인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을 주문 선고하면서 박근혜 정부가 끝이 나고 맙니다.
(쓰다보니까 박근혜 정부에는 부정적인 사건 밖에 없었네요. 그래도 객관적으로 서술하기 위해서 국민 여론이 좀 긍정적인 사건을 찾아보려 했지만 생각보다 별로 없더라고요. ㅠㅠ)

[5월 조기 대선 정국]

이제부터는 '박근혜 대통령 없는 박근혜 정부'가 되는데요. 대통령의 자리는 당시 국무총리이자 탄핵 정국 시작 때부터 그 직무를 대신해오던 황교안 국무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이 계속해서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현행 헌법상 대통령이 파면되면 국정 공백을 막기 위해 차기 대통령을 하루 빨리 선출해야 합니다. 그래서 5월 9일을 대통령 보궐 선거일로 정하여 대선 정국이 펼쳐집니다. 그런데 역대 대선과는 약간 다르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하여 보수 지지층이 완전히 붕괴되어 버려서 대선 지지율 1,2위 후보가 전부 진보진영 후보로 채워지는 이변이 일어나게 됩니다. 1위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이고 2위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성남시장이었습니다. 원래는 무소속의 보수후보인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 꽤나 유력하였지만 일반적인 시민이라면 기본적으로 할 수 있는 생활상식을 할 줄 모르는 모습이 공개되서 '남자 박근혜'라는 이미지가 강해져서 지지율이 낮아지고 결국 불출마를 선언합니다. 하지만 이 순위는 또 얼마 안 가 뒤바뀌게 됩니다. '통합'을 주장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안희정 충남지사가 보수표를 흡수해 2위로 올라선 것입니다. 이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으로 문재인-안희정-이재명 3파전 중 문재인 전 대표가 최종 대선 후보로 결정됩니다. 그 무렵 박근혜 대통령의 구속이 확정되자 보수 지지층은 다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쪽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양자대결 시나리오에선 문재인 대선 후보를 앞서기도 하는 등 선전을 하다가 자신이 제안한 스탠딩 토론에서 지지율을 훅 떨어뜨려 버립니다. 그 점점 하락하는 보수층 지지율은 다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흡수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쯤에는 이미 대선이 5일째 밖에 안남던 시절이라 더 이상 여론조사 결과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안철수 후보와 홍준표 후보 중 누가 2위를 했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알려지지 않은 채 5월 9일 대선이 치뤄지고 그날 저녁 출구조사 결과 발표와 개표가 시작되었습니다. 출구조사 결과는 문재인 후보 1위 홍준표 후보 2위 안철수 후보 3위로 발표되었습니다. 그리고 역시 저녁 때 시작되어 새벽까지 이어진 개표 결과 문재인 후보 1위 홍준표 2위 안철수 3위였으며 문재인 후보가 제 19대 대통령으로 최종 당선되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진보성향)가 제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보수상향)를 여유있게 누르고 당선됩니다.]

제 19대 대통령 문재인 정부(2017년 5월 10일~2022년 5월 9일)도 역시 아무 별칭이 없는 정부입니다. 하지만 공약과 내걸어놓은 비전을 보고 별명을 하나 붙인다면 '적폐청산 정부' 정도가 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정부는 진보성향 정부로서 예전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남북 평화노선의 대북 정책을 쓰는 정부입니다. 전례 없는 대통령 탄핵 때문에 제 6공화국 시대 이후 최초로 대통령 정부 인수위원회가 없이 바로 출범하는 정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정부보다 어쩔 수 없이 실수가 잦을 수 있는 위험이 있지요. 국회에서 간소한 취임식을 가지고 대통령으로 취임한 문재인 당선자는 당선된 지 하루만에 국정 운영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먼저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 비서관들을 임명하고 청와대 대변인과 부대변인, 차관들을 임명하여 내각의 절반을 갖추었습니다. 그리고나서 국정원장에 서훈 씨, 국무총리를 이낙연 현직 전남지사로 지명하였는데 이것 때문에 이낙연 전남지사는 지위를 사퇴하고 국무총리 청문회에 출석합니다. 외교부장관에는 UN 외교 전문가 강경화를, 공정거래위원장에는 재벌 개혁의 선구자 김상조 교수를 지명하는데 국무총리나 장관들은 국회에서 청문회를 거쳐서 임명해야 합니다. 게다가 장관들은 청문회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아도 대통령이 부담을 감수하고 임명을 강행하면 임명할 수 있으나 국무총리는 국회에서 인준 투표를 해서 부결(반대)가 많으면 임명할 수 없습니다. 다행히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에서 가결(찬성)을 많이 눌러 임명이 가능하게 되어 국무총리로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위장전입 문제로 야당들의 반발을 사게 됩니다. 결국 두 분의 청문보고서가 채택이 되지 않자 문재인 대통령이 부담을 무릎쓰고 임명을 강행하였죠. 이런 식으로 힘겹게 힘겹게 문재인 정부 1기 내각은 야당과 한창 씨름을 한 끝에 완성되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다른 정부들과는 달리 굉장히 국정 지지율이 높은 정부입니다. 최대 지지율이 제 6공화국 시대 이후 최고치라는 문민정부의 김영삼 전 대통령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1% 오르고 내리는데 '대폭 상승', '대폭 저하'라는 표현을 써서 의아한 감이 좀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정부는 다른 정부와 달리 아직 집권 1년차도 되지 않아서 주요 정책을 벌써 선별하긴 그렇지만 여태까지의 정책들이라도 본다면 적폐청산 수사 지시, 남북 평화노선 소생, 소방관 국가직 전환 지시, 국정 교과서 폐지, 최저임금 1만원 때 진입 시도, 대체공휴일 대폭 확대, 세월호 수색 지시, 5.18 기념식 상징곡 '님을 위한 행진곡' 부활 등등 나름 다양하게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이 대부분 대선 기간에 약속했던 공약과 일치하기 때문에 국정 지지도에서 보면 국민들의 큰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정책은 남북 평화노선 소생과 적폐청산 수사입니다. 적폐(그동안 사회에 쌓여있던 폐단)를 청산하기 위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들과 MB 국정원 댓글조작 주범들, 비리 정치인들, 비리 기업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 작업을 검찰에서 벌이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한 평창 동계 올림픽에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여 남북의 평화적 대화 노선을 확실하게 부활시키는 것도 현재 주요한 정책 중 하나입니다. 또한 문 대통령은 서민들과 격의 없이 대화하고 가까히 다가가 이야기를 들으려 하는 등의 과거 노무현 대통령과 흡사한 소통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다만 차이점은 "대통령으로서 할 수 없는 저급한 행동"이라며 언론에 질타를 받았던 노 대통령과 달리 문 대통령의 소통 행보는 굉장한 호평을 받고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시대가 변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그리고 대한민국은 현재 여기까지 와있습니다.

대충 정리하면 이 정도가 되겠습니다. 2003년부터 2018년까지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네요. 답변이 마음에 드셨다면 채택 부탁드리겠습니다.

2018.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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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건위주로 알려드리지만 제가 진보적인 성향이 있어 글이 진보적임을 알려드립니다. 보수쪽에서 보고 싶으시면 이미 달렸을테고 중도로 보고 싶으면 둘을 섞으세요. 네.

김대중 국민의 정부가 끝나기 전, 2002년의 양당 후보는 노무현vs이회창입니다. 이회창이 Dj(김대중의 약칭)한테는 졌어도 노무현은 이길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노무현이 당선됩니다. 노무현은 당 내에서도 인지도가 처음에는 없었지만 파격적 연설로 지지를 얻고 후보로 선출됩니다. 네. 쨌든 노무현 참여정부가 출범한 이후 2004년에 큰 사건이 일어납니다. 총선을 앞둔 당시에 노무현이 국회에서 탄핵 가결이 나며 탄핵될 이기에 처하는데요. 표결도 못하게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의장석을 점거하고 있었으나 잠을 잘 때 끌려 나가서는 표결이 되고 전체 195(가193 부2)로 직무정지 됩니다. 그러나 헌재는 대통령직 파면감은 아니라며 기각을 선고합니다(박누구누구랑은 반대죠). 그리하여 한나라는 총선 참패 열린우리당은 대승을 거둡니다. 이 사이는 저도 모르니 생략. 2007년, 17대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대세론에 위협을 주는 의혹이 제기됩니다. BBK주가조작사건. 에리카김의 동생 김경준 씨와 이명박 당시 의원이 세운 bbk라는 회사가 있는데 이 회사가 다스에게 190억을 투자 받습니다. 이 돈을 다스는 도곡동땅 팔아서 만들었고요. 근데 bbk가 잘 안되자 나와서는 옵셔널밴처스라는 투자회사를 만들고, 5000여명에게 투자를 받습니다. 그런데 김경준씨가 주가조작으로 무려 384억(비공식 8000억)의 이익을 보고는 미국으로 튑니다. 그 돈들은 세계돈 다모이는 스위스은행에 넣어두고는요. 그래서 이 사건에 이명박 대통령이 개입헀나는 얘기가 나오는데 같이 공개된 영상이 이명박이 직접 'bbk는 내가 세운 회사다'라고 말합니다. 특유의 목소리로요. 그리하여 문제되는 줄 알았지만 상대가 정동영이여서 이명박이 당선됩니다. 당선인 시절 숭례문도 불탔지만 중요한건 bbk사건 수사 입니다. 당시 특검을 정호영을 중심으로 세워 수사했으나 무혐의 처분납니다. 그리하여 이명박은 대통령에 취임하고 공약중 하나인 한반도 대운하가 반음이 싸늘하자 사대강 사업으로 이름을 바꿔서는 사업을 하는데 녹조라떼라 하는 녹조가 생겨나서는 혈세낭비사업으로 평가받습니다. 22조 날리고~ 사대강 보도하다가 망한 언론도 있는데요-->kbs가 이것을 보도하자 이명박 대통령은 kbs여의도에 경찰을 투입해서는 이사회를 열고 '공영방송을 바로 잡기 위한 절차'라 주장하며 정연주를 해임시키고 김인규를 낙하산으로 보냅니다. 그 이후 YTN도 구본홍이라는 낙하산 사장이 내려오며 양측 언론에서 많은 언론인이 잘려 나갑니다.

2008년 미국에서 광우병 소고기 도입에 대한 문제가 있자. 촛불집회가 열렸고, mb는 이를 예전처럼 탄압하였습니다. 연행하고 입막고.... 이런 광우병을 MBC PD수첩에서 보도하자 다음날 검찰이 들어오고 결국 엄기영도 해임됩니다. 그 이후 MBC는 김재철이라는 사람이 오게 되고 민주주의 국가서 일어나면 안되는 3가지 중 1가지가 일어나게 됩니다. 권력의 언론점령

그리고 2010년. 외신의 방문을 안 이명박은 다시 광화문 광장을 열어줍니다. 이때쯤 bbk 사건 수사가 미국에서 이루어 지는데 김경준vs다스, 김경준vs투자자 로 재판이 열립니다. 대한민국은 이때 자원외교라는 외교정책을 펼치는데 투자할 때 마다 다 亡합니다. 그래서 57조 날리고 방산비리도 있는데 이거 110조. 사.자.방 비리라 불리는 금액 : 189조.

김경준은 다스에게서 승소, 투자자들에게 패소 해서 투자자들에게 190억을 돌려줘야 하는데 다스에게로 190억이 갑니다. 재산이 동결됬는데도. 김경준은 이명박이 그랬다고 지금까지 주장중입니다. 2012년 18대 대선이 다가올 때 국정원. 군인들이 개입하여서는 여론을 조작했다는 댓글사건도 논란이 되는데. 국정원은 댓글부대를 만들어 베스트 댓글 300개당 300민원씩 주었다는 논란입니다. 여기에 18대 대선 부정선거 논란(최초로 기계가 표를 분류했는데 51.6vs48.0, 3.6%p차이인데 그당시 미분류표가 되며 무효표가 된 표가 전체의 3.6%)까지.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며 13년x `14년에는 세월호가 침몰하는데 7시간 30분동안 미용받았다는 의혹. 메르스가 퍼질동안 박근혜는 시술받으며 전문가에게 전염률 낮다고 발표시키기. 16년 국정농단. 17년 파면.

국정농당~파면은 잘 아실거라 생각

지금. 이명박이 다시 한번 수면 위로 오르는데 아들인 이시형씨가 초고속 승진. 140억의 도망(140억을 여러 차명계좌로 나누어 입금.)등 mb는 여러 의혹과 이상은(mb큰형) 운전사, 김백중 등의 측근 증언 등으로 궁지에 몰렸습니다.

(p.s.MB구속되길)

2018.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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