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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이호웅 어떤 국회의원인가요?
lemi**** 조회수 7,553 작성일2003.04.19
국회의원 이호웅 들어본적이 있는데
어떤 의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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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h8****
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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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명 : 이 호 웅 (Ho Woong - Lee, 李 浩 雄)
• 본 적 : 인천시 남구 주안동 170번지
• 출 생 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서창동 538 태평2차아파트 206-207호
• 생 년 월 일 : 1949년 8월 1일 (53세)
• 학 력 : 인천 학익초등학교 졸업 (1962년)
인천중학교 15회 졸업 (1965년)
제물포고등학교 12회 학생회장 (1968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입학 (1969년), 학생회장 (1971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4년졸업 (1981년)
• 병 역 : 육군 병장 만기제대 (1974년)
• 가 족 관 계
- 처(妻) : 박인혜 (46세)
현, 한국여성의 전화 연합 상임대표
전, 인천여성의 전화 회장
- 자(子) : 덕주 (21세), 성주 (19세), 봉주 (15세), 용주 (15세)

• 주 요 경 력
· 긴급조치 9호위반으로 구속(2년형)(75년)
· 도서출판 형성사 대표(79년 ∼ 85년)
· 5.18광주민주화 운동관련 수배(80년)
·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의장(84년)
· 민주통일 민중운동연합 의장(84년)
· 대통령 직선제 개헌 시위주도로 구속(2년6월형)(86년)
· 인천 민주 시민학교 교장(88년)
· 인천지역 민족민주운동연합의장(89년)
· 남동구 무료법률 상담소 운영(91년 ∼ 95년)
· 범민주 야권통합 추진위 협상 대표(92년)
· 새정치국민회의 인천 남동을지구당 위원장(95년 ∼ 99년)
· 새정치국민회의 당무위원(95년 ∼ 99년)
· 새천년민주당 인천남동을 지구당 위원장(2001년 현재)
· 새천년민주당 제3정책조정위원회 부위원장 역임
· 새천년민주당 수도권 과밀해소 정책기획단 위원 역임
· 새천년민주당 총재 특별보좌역 역임
· 새천년민주당 원내 부총무 역임
· 16대 국회 예산결산 특별위원회 위원 역임
· 16대 국회 운영위원회 위원 역임
· 새천년민주당 대표 비서실장 역임(2001.3.27~2001.9)
· 16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 역임
· 새천년민주당 대통령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조직본부장 역임(2002.9.30~2003.1)



• 현 활 동
· 환경운동연합 국정정책위원 : 2000. 6 ∼
· 인천환경운동연합 지도위원
· 새얼문화재단 운영위원(지용택 이사장) : 1994. 4 ∼
· 국민정치연구회 지도위원(이재정 이사장) : 2000. 5 ∼
· 새시대전략연구소(김원길 이사장) 감사 : 2001. 3 ∼
· 해병전우회 인천 남동구회 고문
· 인천대학교 행정대학원 7기 원우회 고문
· 새천년민주당 인천 남동을지구당 위원장 : 2000. 3 ∼
· 새천년민주당 인천시지부 수석부지부장 : 2001. 1. 6 ∼
· 16대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 : 2000. 6 ∼
· 16대 국회 기후변화협약대책 특별위원회 간사 : 2001. 3 ∼
· 16대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위원
· 새천년민주당 조직위원장
· 새천년민주당 정치개혁 특별위원회 운영소위 위원



• 국회 연구단체 활동
· 국회 환경경제 연구회 책임연구위원
· 국회 나라와 문화를 생각하는 모임
· 국회 아시아 · 태평양 정책연구회
·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모임


• 기타 의원활동
· 정치개혁을 위한 의원모임
· 여의도정담
· 화해와 전진을 위한 포럼
· 새벽 21

2003.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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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kk****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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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일단 16 17대 남동을 국회의원이었습니다. 중간에 의원직을 상실하긴 했지만 다시 복권 되셔서 이번 18대 총선 에 나온다는군요. 그 와 관련해서 이호웅 의원의 홈페이지에 있는 소명서를 퍼왔습니다. 이호웅 의원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데 도움이 될 것 같네요,

 

소   명   서


 

 


 

저는 인천남동을 지역구 공천 신청자로 지난 3월 5일 당 공천심사위원회에서 의결되고 당 최고위원회에서 인준된 공천심사기준에 의해 공천심사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이에 저는 제 사건에 대해 소상하게 소명하는 한편 예외 없는 원칙이 없듯이, 정상참작의 여지가 충분한 저의 경우에 대해 공천심사자격을 부여 해 주시길 바라며 지난번 제출했던 1차 소명에 이어 2번째로 소명을 하는 바입니다.

 


대검 중수부는 2003년 9월경부터 2002년 여·야 대선 불법자금 수사를 본격화 했는데, 제가 처음 조사를 받은 2004년 2월 25일 즈음은 검찰의 대검수사가 마무리 되던 시기였습니다.

 

제가 수사선상에 오르게 된 것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대우건설 입찰비리를 수사하던 중 협력업체인 하이테크하우징 박문수 회장의 수표 1억(100만원권 100장)이 대선당시 조직국의 전영구 부장 계좌에 입금 된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대검 중수부에 이첩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2002년 대선 당시 중앙선대위 조직본부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자금의 모금은 이상수 총무본부장이 하는 것이고, 저는 집행을 하는 위치였습니다.

 

대선 3일전 아침 김원기 고문으로부터 전화로 “박문수가 돈을 가져 올 테니 받아서 집행하라”는 지시를 받고 박문수 회장으로부터 1억 5천만 원을 수령 하였습니다. 원래는 이상수 본부장이 수령했었어야 했는데 마침 자리에 없어서 제가 대신 받게 된 것입니다.


 

또한 그 자금은 얼마 전부터 호남지역지원금으로 사용할 용도로 당 지도부에서 논의 되고 있었으며, 박문수가 돈을 가져 올 거라는 것은 김원기 고문 외에도 정대철 선대위원장 등이 알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검찰수사를 받을 당시, 김원기 고문도 같은 시기에 대선자금 관련 수사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저는 이 사실을 검찰에서 차마 진술하지 못했습니다. 김원기 고문은 이 내용을 후일 공판과정에서 진술서로 확인해준 바 있습니다.

2월 24일 박문수가 검찰에서 이와 관련하여 조사를 받고나서 저녁 무렵 그 사실을 저에게 알려주었는데, 그 때 처음으로 제가 대선자금 수사선상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날 밤 수사검사가 제 보좌관을 통해 2월 25일 오후에 조사 할 사항이 있으니 출석 할 수 있느냐고 전화가 왔었고, 그 보고를 받은 저는 정치자금영수증을 발급 해 주지 않은 것은 잘 못이지만 그 돈을 당일 조직국의 이재언 국장 등에게 전액 호남지역 지원금으로 집행한 사실이 분명히 기억나므로 복잡할 것도 없고 꺼리 낄 것도 없고 해서, 오히려 저는 다음날 오전에 출두하겠다고 하고 조사를 받았습니다.


 

그 때만 해도 저는 이 사건이 그렇게까지 복잡하게 꼬일 거라고는 꿈에서 조차 생각해 본적이 없었고, 다만 그 때가 17대 총선이 시작 되던 시기라 선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만 염려 하였습니다.

 


박문수 회장은 저에게 자기 수표가 전영구 통장에서 발견되었다는 것과, 전영구는 그 수표를 재정국에서 받았다고 진술 했다는 것, 처음에는 그 돈을 저를 보호하려고 이상수 본부장에게 줬다고 했다가 대질 끝에 할 수 없어서 저에게 주었다고 한 점, 전영구 통장에 자기 수표가 입금된 날짜가 12월 17일이라고 들어서 12월 17일에 주었다고 진술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참고인 조사과정에서 이 사건이 매우 복잡하게 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사당시에는 열린우리당과 새천년민주당으로 분당된 직후라 감정적인 골이 깊은 상태였고 (이xx국장과 박xx부국장은 새천년민주당에 남아 있었고, 전xx 부장은 열린우리당 소속이었음), 2년 전 사건이라 기억력의 한계도 있었습니다.


 

저는 대선 당시 박문수의 수표 1억원(100만원권 100장)을 이xx 조직국장에게 주고 이를 현금으로 잘 바꿔오라고 지시한 사실이 있어서, 그 말을 듣고 그 때 이xx이 재정국에 가서 수표를 바꿔왔나 보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짐작만을 믿고 검찰수사와 1심 재판에 임한 것이 저의 큰 실수였으며, 그 이유는 전xx가 거짓진술을 했으리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2월 27일 저는 이xx 국장과 오랜만에 휴대폰으로 통화하면서 그 때 그 수표를 어디서 바꿨냐고 물어보려 했는데, 그는 수표에 대해 자기는 전혀 모르고 본적도 없다고 완강히 부인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분당으로 인해 감정의 골이 깊어서 그랬다고 생각했는데, 2월 27일 2차 통화에도 그는 완강히 부인하였습니다. 저에게 유리한 진술을 해준 다른 참고인들은 자기가 생각나는 대로 진술을 하니, 일관성이 없었습니다.

그 때 대검 중수부는 대선자금사건 중간수사발표를 앞두고 제 사건을 서둘러서 종결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저는 직감적으로 이 상태에서 수사가 종결되어서는 곤란하다고 판단되어 담당검사에게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자금의 유입과 집행에 대해 철저히 밝혀 줄 것을 요구하였으며,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제 요구를 일축하고 영수증을 발급하지 않은 것만 갖고 정치자금법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검찰은 한나라당과의 형평성 논란이 있어서, 조직본부장이었던 저를 사법처리 함으로서 숫자적 형평성을 고려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전xx가 박정옥으로 부터 수표를 받았다고 했는데, 박정옥에 대한 참고인 조사는커녕, 전화확인 조차도 하지 않은 부실 수사였습니다.



특히 공판과정에서 수사기록을 확인해 보니, 전xx는 제가 조사 받기 1달 쯤 전인 2004년 1월 30일 이상수 총무본부장 사건과 관련하여 참고인 조사를 받으면서 이 수표가 자기 계좌에 입금된 이유에 대해, “2002년 12월 17일 1억 4,500만원이 입금되었는데, 이 돈은 재정국에서 부국장으로 근무하던 박정옥씨로 부터 받았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같은 날 입금했다가 같은 날 송금한 이유에 대해서는 “재정국에서 증거를 남기라 해서 그랬다”, 1억은 100만 원권 수표 100장이었는데 어떤가에 대해서는 “정확히 기억 할 수 없다. 저는 분명히 재정국에서 받아서 그대로 제 계좌에 입금하였다가 곧바로 집행하였을 뿐이다. 나중에 박정옥씨에게 그 자금의 출처를 확인하여 알려드리겠다”고 진술하였습니다.


 

그는 제 부하직원이었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면서 함께 참여한 동지였는데, 검찰에서 제가 관련된 조사를 받았으면서도 그 사실을 일언반구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저에게 보고해 줄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은 것입니다.


 

나중에 공판 증인심문과정에서 변호인이 왜 이호웅 본부장에게 말 안했냐고 물었을 때 그는 “검찰이 누구한테도 조사받은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해서 그랬다”고 진술하곤, 당이 다른 이xx 에게는 이야기 했다고 진술하였습니다. 더군다나 재정국 박정옥 부국장에게도 이와 관련하여 어떠한 질문이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1심 재판부는 제가 그 돈을 유용하였다는 판단 하에 중형을 언도하였습니다.


 

이xx, 전xx, 박xx의 진술은 마치 짜서 맞춘 듯이 일치하였고, 법원은 그 것을 믿은 것 같았습니다.

 


 1심 판결 직후 박정옥은 저를 만난 자리에서, 자기는 전xx가 자기에게 받았다고 하는 자금을 결코 준 적이 없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라도 재정국에서 조직국으로 100만원권과 같은 고액 수표를 줄 수 없다고 했으며, 만일 자금이 수표로 들어오면 당 금고(국민은행)에 입금했다 현금으로 교환해서 지원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공식자금의 경우에는 기안은 조직국에서 하지만 집행은 조직국을 거치지 않고 재정국에서 직접 온라인으로 송금하기 때문에 전xx에게 자금을 주는 것은 대부분 비공식 자금이므로 100만원권 100장이 포함된 자금을 결코 줄 수 없다 했습니다.


 

박정옥은 전xx가 검찰조서와 공판 증인심문과정에서 자기로부터 받은 1억 4,500만원을 전액 공식적인 정당연설회비용으로 지구당 별로 500만원씩 나눠주었다고 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했으며 장부를 보여주었습니다.그 장부는 공식·비공식 자금 입·출입을 기록한 것인데, 가지급금 내역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때 이번 사건이 이xx과 전xx 등이 공모하여 자금을 횡령해서 문제가 복잡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2심 재판에 임하면서 저는 변호인과 상의하여 검찰조서와 1심 증인심문 조서 내용 중에 사실과 다른 부분들을 모든 사실 그대로 바로잡아 재판에 임하기로 하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이xx, 전xx등을 위증혐의로 고소 할 것도 심각히 고민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때 함께했던 부하직원들이라는 점 때문에 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박정옥의 진술과 새로운 증거자료가 있어서, 이정도면 사법부가 상식적인 판단을 해주겠지 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저의 항소를 기각하였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조금만 사회경험이 있거나, 정당에 대해 안다면 상식적으로 이런 판결이 나오지 않았을 텐데....



대법원에 상고한 직후 저는 전xx와 이xx 등을 서울지방경찰청에 위증혐의로 고소하였습니다. 또한 횡령혐의로 고발하였습니다. 경찰에서는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보고를 하였고,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담당검사 박길배)에 배당되어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검찰에 박정옥에게 받은 가지급금내역이라는 비공식 장부도 제출하였고, 검찰은 이상수 대선자금관련 계좌도 조사하는 등 대대적인 수사를 하였습니다.


 

얼마나 철저하게 하였는지 한때 검찰이 2002년 대선자금 수사를 재개하는 것이 아니냐하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습니다.


 

검찰수사결과 전xx가 그동안 주장한 박정옥에게 받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고, 그 돈은 전xx가 이호웅으로 부터 직접 받았거나 이재언 조직국장을 통하여 받은 것으로 확인하였습니다,


 

또한 박문수로부터 정치자금이 지원된다는 것은 김원기 고문도 알고 있었던 점 등과 그 돈이 12월 17일 1억 5,000만원 전액이 특별지구당지원금으로 사용된 것으로 확인한 점을 들어 이호웅이 개인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면서 오래된 사건이라 기억나는 대로 진술한 것이므로 이재언 등에게 혐의 없음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는 이 수사결과를 변호인을 통해 대법원 주심대법관에게 제출하는 한편 공판기일을 연기해서, 수사기록을 검토 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또한 원심 판결이 제가 그 돈을 유용하였다는 판단을 전제로 중형이 내려진 것이니, 이제 그 돈이 당에 전액 유입되었고, 전액 당의 대선자금으로 사용된 것이 확인되어 유용혐의를 벗게 된 만큼 사정변경사유가 되니 원심파기환송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주심대법관은 영수증을 발급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므로 무죄가 될 수 없고 대법원은 양형을 다루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일을 연기하지 않고 수사기록조차 검토하지 않은 채 상고기각 판결을 내려, 원심대로 형량이 확정되어(2006년 9월 14일,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 1억 5천만 원 추징) 의원직을 상실한 것입니다.



정치자금을 수령한 당사자로서 당으로 하여금 정치자금영수증을 발급하도록 책임지지 않은 것은 분명 잘못이고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제가 중형을 받은 것은 분명 사법부가 그 정치자금을 제가 유용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분명 벌금형 처벌을 받고 의원직도 유지 되었을 것입니다. 제 사건과 비슷한 금액 및 내용의 경우 유용혐의가 없는 사건들은 모두 벌금형에 처해졌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누명을 써서 의원직을 상실한 것입니다.



검찰수사 결과로 인해 뒤늦게나마 저는 누명을 벗을 수 있었습니다. 당의 지도부는 검찰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도 저의 결백을 믿고 있었습니다.


 

박문수 회장은 저도 전부터 잘 알고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제가 대선자금을 가져오란다고 그 분이 가져 올 정도는 아닙니다. 당 지도부에서 돈의 용처에 대해 며칠 전부터 의논을 했었고, 자금이 부족하자 김원기 고문과 정대철 선대위원장이 그 분께 간곡하게 요청해서 대선자금을 지원해 주신 것입니다. 저는 단지 김원기 고문의 연락을 받고 수령만 했을 뿐입니다.


 

그러한 성격의 돈을 제가 유용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정당구조를 어느 정도 아는 분이라면, 사회구조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분이라면 상식적으로 판단 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만약에 그랬다면 재판결과에 관계없이, 저는 당으로 부터 벌써 오래전에 매장 당했을 것이며 그 누구도 결코 저를 비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의원직을 상실한 후 동료의원들이 마련한 위로자리에 100명도 더 되는 의원들이 참석해서 저를 위로해주고 함께 마음아파 했습니다.


 

어떤 의원은 의원총회보다 더 많이 왔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당 재정국에서 조직국으로 비공식 지원금(불법지원금)을 100만 원권 수표 100장으로 내려 보냈다는 것 또한 상식을 초월한 것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그 주장은 결국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조사과정에서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습니다. 재판부에서 내린 판결은 미리 입을 맞춘, 그래서 일면 일관성 있게 보여지는 이xx과 전xx 등의 주장에 손을 들어준 것입니다.


 

사실오인에 의한 판결인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러한 판단 하에 이호웅이 억울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손학규 대표님, 박상천 대표님, 그리고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님!


 

금번 당에서 확정한 금고이상의 형사범은 공천심사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심사기준으로 저는 공천심사 대상에서조차 제외되게 되었습니다.


 

누명을 쓰지 않았으면 결코 그 기준에 저촉되는 형량을 받지 않았을 것이고, 공천심사대상에서 제외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외 없는 원칙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심사기준이 확정된 날, 당 대변인은 “억울한 희생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 또한 지도부의 확고한 입장이다. 선의의 피해자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당과 공심위차원에서 대책을 강구해 나가겠다.”는 발표를 한 바 있습니다. 진실에 입각해서 저의 문제를 판단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진심으로 간곡히 요청합니다!


 

옥석을 가려 주십시오!

 


그래서 제가 당의 공천을 받고, 개헌선을 넘어가려는 한나라당의 위세를 저지하고 선진·평화·민주·개혁세력의 진지를 구축하기위한 역사적 행렬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2008년 3월 10일

통합민주당 인천남동을 공천신청자 이호웅 드림

 


통합민주당 손학규· 박상천 공동대표 귀중


통합민주당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  귀중

2008.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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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9****
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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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망했다..ㅠ.ㅠㅠ.ㅠ

2008.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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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
지존
번역, 통역, 팝, R&B, 인체건강상식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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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이호웅 약력 (1949.08.01)16대 국회의원

교섭단체: 새천년민주당
소속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윤리특별위원회,환경노동위원회
당선시도: 인천광역시
선거구: 남동구을
당선횟수: 1선 (16)
약력: 제물포고,서울대정치학과졸·학생회장,도서출판형성사대표,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의장,새정치국민회의당무위원,환경운동연합 국정정책위원,국민정치연구회 집행위원,새천년민주당총재 특별보좌역(2000.10.11~)
자택주소: 인천광역시 남동구 서창동 태평2차APT 206-207
사무실전화: 784-3867
보좌관: 박순환 정희윤
비서관: 이정민

기본사항
성별 : 남자
출생지 : 인천
본적 : 인천 남구 주안동 170
본관 : 재령
종교 : 천주교
직업 : 정치인 - 국회의원
직장주소 : (150-702)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1 국회의원회관 708호
E-Mail : ehoung@hanmail.net
홈페이지 : http://www.leehoung.com
군별 : 육군 기간 : 1971.11-1974.9 최종계급 : 병장
신장/체중 : 168cm/75kg
주량 : 소주 1병
취미 : 바둑
특기 : 수영
자격/면허 : 운전면허
좌우명 : 항상 깨어 살자

<한국일보> 2003년 3월 7일

"6월까지 새 팀 창단"

“6월까지 한개팀을 새로 창단해 침체된 민속씨름을 활성화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지난달 초 한국씨름연맹 총재에 취임한 이호웅 총재는 6일 취임후 첫 공식 기자간담회를 갖고 가장 시급한 씨름단 신생팀 창단에 대한 의지를 이같이 밝힌 뒤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민속씨름 중흥을 위한 중ㆍ장기적인 계획을 발표했다.
이 총재는 신생팀 창단과 관련, “현재 삼성 등 몇군데 오너들에게 의사를 타진해 놓은 상태”라며 “아직까진 긍정적인 대답을 받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방향에서 팀창단을 모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신세대 씨름팬들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민속씨름의 미래가 달려있다”며 “청소년들이 학교나 집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씨름을 접할 수 있도록 하고 다양한 이벤트를 만들어 청소년들이 경기장으로 찾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연맹은 이를 위해 동ㆍ하계 청소년 캠프 개최, 재즈공연ㆍ힙합댄스대회 등 대회 식전행사 다양화, 홈페이지를 통한 씨름팬 확보 등 팬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연맹은 또 일반인들이 씨름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은퇴한 프로선수를 관장으로 한 상설 ‘씨름 전수관’을 운영할 계획이다.

[고건 인사청문회] 이호웅의원 “전두환에 왜 박수” 질타 <조선일보>

20일 인사청문회에서는 민주당 신주류이자 고건 후보의 서울대 정치학과 후배인 이호웅 의원이 고 후보의 5·17 이후부터 최근까지의 행적을 날카롭게 추궁해 눈길을 끌었다.
재야운동가 출신으로 대선 때 민주당 선대위 조직본부장을 맡아 ‘노무현 승리’에 기여했던 이 의원은 “고 후보는 80년 5·17 이전부터 신군부와 교류가 있었고, 비상계엄 확대를 미리 통보받고 잠적했으며, 이후 신군부에 협조하기로 하고 교통부장관으로 입각한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그는 또 “87년 4·13 호헌 조치가 취해진 직후인 5월 18일 민정당 군산 옥구 지구당대회에서 ‘4·13 호헌조치는 구국의 결단이고, 평화적 정권이양을 이룩한 전두환 대통령에게 우렁찬 박수를 보내자’고 하지 않았느냐”며 당시 신문기사를 제시하며 몰아쳤다.
이 의원은 “95년 국민회의가 서울시장 후보를 제의했을 때는 거절했다가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뒤 수락했다”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합류요청을 거절한 것은 당선 여부가 불투명했기 때문 아니냐”고 집요하게 따졌다.
이에 고 후보는 “신군부에 협조할 것이었다면 왜 사표를 냈겠느냐”고 반박하고, 전두환 전 대통령 칭송 발언에 대해선 “지구당 당원교육에서 그랬던 것 같다”고 시인했다.


[고건후보 인사청문회]대학후배-親盧 이호웅 ‘매서운 추궁’ <동아일보>

민주당 이호웅(李浩雄) 의원은 20일 고건 총리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고 후보자의 서울대 정치학과 후배이자 민주당 신주류임에도 불구하고 야당 의원보다 더 날카롭게 추궁해 눈길을 끌었다.
재야 운동권 출신인 이 의원은 고 후보자의 5, 6공화국 참여 행적을 집중적으로 문제삼았다. 그는 “1980년 5·17 때 계엄 확대 사실을 미리 알고 잠적했다는 의혹도 있다. 신군부에 협조 약속을 하고 내각에 들어가기로 약조한 것 아니냐”고 따졌다.
고 후보자가 “고명승(高明昇) 장군을 통해 국보위에 참여하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고사했다. 신군부에 협조할 것이면 왜 (대통령정무비서관) 사표를 냈겠느냐”고 반문하자 이 의원은 “5·16 직후 고시에 합격해 공무원이 됐는데 5·16은 군사정권이 아니라고 생각했느냐”며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이 의원은 또 “87년 4·13 호헌 조치 직후인 5월18일 민정당 군산-옥구 지구당 전당대회에서 ‘헌정 사상 처음으로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하게 되는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에게 박수를 보내자’고 말했지 않느냐”고 몰아붙였다.
이 의원은 또 “지난해 대선 때 노무현(盧武鉉) 후보가 도움을 요청했는데 거절한 것은 당선 여부가 불투명해서 그런 것이 아니냐”고 따졌다. 이에 고 후보자는 “정치색을 배제하는 국제투명성기구의 한국 대표를 맡고 있어서 정치 활동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2003.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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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명 : 이 호 웅 (Ho Woong - Lee, 李 浩 雄)
• 본 적 : 인천시 남구 주안동 170번지
• 출 생 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서창동 538 태평2차아파트 206-207호
• 생 년 월 일 : 1949년 8월 1일 (53세)
• 학 력 : 인천 학익초등학교 졸업 (1962년)
인천중학교 15회 졸업 (1965년)
제물포고등학교 12회 학생회장 (1968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입학 (1969년), 학생회장 (1971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4년졸업 (1981년)
• 병 역 : 육군 병장 만기제대 (1974년)
• 가 족 관 계
- 처(妻) : 박인혜 (46세)
현, 한국여성의 전화 연합 상임대표
전, 인천여성의 전화 회장
- 자(子) : 덕주 (21세), 성주 (19세), 봉주 (15세), 용주 (15세)

• 주 요 경 력
· 긴급조치 9호위반으로 구속(2년형)(75년)
· 도서출판 형성사 대표(79년 ∼ 85년)
· 5.18광주민주화 운동관련 수배(80년)
· 인천지역 사회운동연합 의장(84년)
· 민주통일 민중운동연합 의장(84년)
· 대통령 직선제 개헌 시위주도로 구속(2년6월형)(86년)
· 인천 민주 시민학교 교장(88년)
· 인천지역 민족민주운동연합의장(89년)
· 남동구 무료법률 상담소 운영(91년 ∼ 95년)
· 범민주 야권통합 추진위 협상 대표(92년)
· 새정치국민회의 인천 남동을지구당 위원장(95년 ∼ 99년)
· 새정치국민회의 당무위원(95년 ∼ 99년)
· 새천년민주당 인천남동을 지구당 위원장(2001년 현재)
· 새천년민주당 제3정책조정위원회 부위원장 역임
· 새천년민주당 수도권 과밀해소 정책기획단 위원 역임
· 새천년민주당 총재 특별보좌역 역임
· 새천년민주당 원내 부총무 역임
· 16대 국회 예산결산 특별위원회 위원 역임
· 16대 국회 운영위원회 위원 역임
· 새천년민주당 대표 비서실장 역임(2001.3.27~2001.9)
· 16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 역임
· 새천년민주당 대통령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조직본부장 역임(2002.9.30~2003.1)



• 현 활 동
· 환경운동연합 국정정책위원 : 2000. 6 ∼
· 인천환경운동연합 지도위원
· 새얼문화재단 운영위원(지용택 이사장) : 1994. 4 ∼
· 국민정치연구회 지도위원(이재정 이사장) : 2000. 5 ∼
· 새시대전략연구소(김원길 이사장) 감사 : 2001. 3 ∼
· 해병전우회 인천 남동구회 고문
· 인천대학교 행정대학원 7기 원우회 고문
· 새천년민주당 인천 남동을지구당 위원장 : 2000. 3 ∼
· 새천년민주당 인천시지부 수석부지부장 : 2001. 1. 6 ∼
· 16대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 : 2000. 6 ∼
· 16대 국회 기후변화협약대책 특별위원회 간사 : 2001. 3 ∼
· 16대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위원
· 새천년민주당 조직위원장
· 새천년민주당 정치개혁 특별위원회 운영소위 위원



• 국회 연구단체 활동
· 국회 환경경제 연구회 책임연구위원
· 국회 나라와 문화를 생각하는 모임
· 국회 아시아 · 태평양 정책연구회
·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모임


• 기타 의원활동
· 정치개혁을 위한 의원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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