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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본존불이 보는 방향은 정동이 아니라 동동남으로 30도 비스듬히 본다. 이유는 ?
ekth**** 조회수 722 작성일2010.11.07

 

 

 

 

              본존불이 보는 방향은 정동이 아니라 동동남으로 30도 비스듬히 본다. 이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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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
절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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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존불이 보는 방향은 정동이 아니라 동동남으로 30도 비스듬히 보는 이유

 

황수영 박사가 이것은 문무대왕의 대왕암이 있는 동해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한 이래 지금도 많은 일반인들은 대체로 이 학설을 믿고 있다. 황수영 박사는 감은사가 잇는 동해구 대왕암을 바라보는 시점과 비슷함에 주목하면서 신라에서는 왕릉 앞에 석불을 배치했던 예에 따라 조영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즉, 동해의 대왕암과 석굴암을 호국불교, 왜의 침략에 대한 수호, 진골 김씨 왕조의 안녕을 비는 기복신앙, 김대성이 전세의 붐를 위해 지었다는 설화 등을 그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러나, 대왕암의 위치는 석굴에서 정확하게 바라보는 시점에서는 왼쪽(동쪽)으로 조금 밀려 있는 곳(0.9도)이다. 어떤 이는 대략 그 방향이면 그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라인들은 석굴의 구조에서 볼 수 있듯이 '무서울 정도'로 과학적이고 치밀했다. 더욱이 석굴암과 토함산 정상부근에는 대왕암을 훤히 조망할 수 있는 자리가 얼마든지 있는 것에 미루어 보아도, 이 견해에는 무리가 있다.

그런 가운데, 김원용 박사는 석굴의 위치 선정은 '호국용'이 아니라 어떤 정신적 성격일 것이라며 황수영 박사의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969년도 석굴암 논쟁 때 남천우 박사도 그런 '사소한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라고 하면서, 석굴의 정확한 방향은 대왕암(28.5도)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동짓날 해뜨는 방향(29.4도)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표하였다.

이점은 석굴암의 방향에 관한 정확한 견해라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고래로부터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동짓날을 한해의 끝이 아니라 새해의 시작으로 보았다. 그래서 동짓날 아침에는 해뜰 때에 왕과 신하들이 떠오르는 태양에 예배를 올려 그 해의 안녕을 기원하였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신라인들은 석굴암 부처님이 한해를 시작하는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향하여 앉으시어 그의 위력으로 바다의 독룡을 제압하고 온갖 귀신을 항복시켜 한해 내도록 나라와 백성의 평안과 안전을 지켜주시기를 기원하였을 것이고, 이렇게 보는 것이 석굴암의 석굴사원을 조성하게 된 연유에 비추어서도 자연스러운 견해일 것이다.

2010.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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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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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dw****
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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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궁금한게 있는데여 혹시 단구초?

201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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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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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
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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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존불이 보는 방향은 정동이 아니라 동동남으로 30도 비스듬히 보는 이유

 

황수영 박사가 이것은 문무대왕의 대왕암이 있는 동해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한 이래 지금도 많은 일반인들은 대체로 이 학설을 믿고 있다. 황수영 박사는 감은사가 잇는 동해구 대왕암을 바라보는 시점과 비슷함에 주목하면서 신라에서는 왕릉 앞에 석불을 배치했던 예에 따라 조영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즉, 동해의 대왕암과 석굴암을 호국불교, 왜의 침략에 대한 수호, 진골 김씨 왕조의 안녕을 비는 기복신앙, 김대성이 전세의 붐를 위해 지었다는 설화 등을 그 근거로 삼고 있다.

그러나, 대왕암의 위치는 석굴에서 정확하게 바라보는 시점에서는 왼쪽(동쪽)으로 조금 밀려 있는 곳(0.9도)이다. 어떤 이는 대략 그 방향이면 그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라인들은 석굴의 구조에서 볼 수 있듯이 '무서울 정도'로 과학적이고 치밀했다. 더욱이 석굴암과 토함산 정상부근에는 대왕암을 훤히 조망할 수 있는 자리가 얼마든지 있는 것에 미루어 보아도, 이 견해에는 무리가 있다.

그런 가운데, 김원용 박사는 석굴의 위치 선정은 '호국용'이 아니라 어떤 정신적 성격일 것이라며 황수영 박사의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969년도 석굴암 논쟁 때 남천우 박사도 그런 '사소한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라고 하면서, 석굴의 정확한 방향은 대왕암(28.5도)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동짓날 해뜨는 방향(29.4도)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발표하였다.

이점은 석굴암의 방향에 관한 정확한 견해라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고래로부터 중국과 우리나라에서는 동짓날을 한해의 끝이 아니라 새해의 시작으로 보았다. 그래서 동짓날 아침에는 해뜰 때에 왕과 신하들이 떠오르는 태양에 예배를 올려 그 해의 안녕을 기원하였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신라인들은 석굴암 부처님이 한해를 시작하는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향하여 앉으시어 그의 위력으로 바다의 독룡을 제압하고 온갖 귀신을 항복시켜 한해 내도록 나라와 백성의 평안과 안전을 지켜주시기를 기원하였을 것이고, 이렇게 보는 것이 석굴암의 석굴사원을 조성하게 된 연유에 비추어서도 자연스러운 견해일 것이다.

201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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