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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마의태자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흑백논리는?
비공개 조회수 378 작성일2019.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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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연
우주신
한국사 6위, 글쓰기, 화법 1위, 국어, 한문 9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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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논리란 모든 문제를 흑과 백, 선과 악, 득과 실의 양 극단으로만 구분하고

중립적인 것을 인정하지 아니하려는 편중된 사고방식이나 논리를 말합니다.

마의태자의 삶에 대하여 두산 백과사전에서는 이렇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생몰년 미상. 신라 56대 경순왕의 태자.

신라가 고려 태조 왕건의 신흥세력에 대항 할 길이 없어 항복을 논의하자 이를 반대하였다.

결국 고려에 귀부(歸附)를 청하는 국서(國書)가 전달되자

개골산에 들어가 초근목피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의태자 [麻衣太子] (두산백과)

마의태자의 존재는 여러 사서에 등장하지만,

그의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고려 초기 이전까지 장자가 아니라도 '태자'라는 호칭을 썼으므로

그가 경순왕의 장자인지 여부도 알 수 없고요.

그의 동생 덕지 왕자도 처자를 버리고 마의태자와 함께 개골산에 들어갔다가,

이후 화엄종에 귀의하여 중이 된 후에 법수사와 해인사에 머물면서 도를 닦으며

나라 잃은 서러움을 달랬다고 하는데, 승명이 범공(梵空)이라 하네요.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사서에 이름이 전하지 않는 또 다른 '왕자'가 있었는데,

그도 왕에게 항복하지 말 것을 극력 간하였으나 왕이 듣지 않으매

처자를 버리고 형인 태자와 함께 금강산으로 들어갔다고 하고요.

금강산 뿐만 아니라 인제의 상남면에도 마의태장에 얽힌 전설이 있고,

김부리라는 지명도 전하는 것으로 보아서

마의태자의 실존과 행적 자체는 사실인 듯보이네요.

이로 볼 때 마의태자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흑백논리는 이런 것이라고 봅니다.

"충성은 모든이에게 최고의 가치인데, 하물며 왕족에게 있어서랴.

내게 있어서 최고의 백은 충성이다.

비록 부왕과 여러 신하들은 고려에 항복했으나,

천년 사직에서 충성을 지키는 이가 아무도 없다면 얼마나 비참하겠는가?

부왕의 뜻을 따라 흑과 투쟁하는 길인 고려에 대한 저항은 거두지만...

나는 나의 백인 충성의 길을 걷겠다."

개인적으로 마의태자의 존재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아주 소중한 가치라고 봅니다.

이 땅에는 고구려, 백제, 가야, 후백제, 후고구려, 고려, 조선 등

많은 나라가 있었지만 망국을 슬퍼하면서 지절을 지킨 왕족은

신라의 마의태자와 그 형제들 뿐이니까요.

특히 한심한 것은 고종의 아들들...

의친왕은 그나마 망명의 시도라도 했지만,

순종과 영친왕은 무엇을 했단 말입니까?

2019.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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