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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모래톱이야기
xldj**** 조회수 30,481 작성일2007.05.13

모래톱이야기에 관한문제입니다.

 

가장길게 서술해주시면 감사내공 드리겠습니다.

 

이따한 5시까지 부탁드립니다^^

 

1.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것(주제)은 무엇인지 써 보시오.

2. 이 소설에서 제목 ‘모래톱 이야기’에 담겨 있는 비유적 의미는 무엇인지 써 보시오.

3. 이 소설에서 조마이섬의 운명과 우리 근대사를 비교하여 자신의 견해를 써 보시오.

4. 이 소설이 다른 농촌소설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써 보시오.

5. 이 소설에서 갈밭새 영감의 손자 건우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지 써 보시오.

6. 이 소설에 나타난 정치가들의 행동을 비판해 보시오. 

7. 이 소설에서 갈밭새 영감이 투옥되고 있는데 이것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써 보시오.

8.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면 어느 장면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 보시오.

9. 이 소설의 뒷부분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상상하여 써 보시오. ♣

 

3문제정도만 골라서 해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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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톱 이야기


김정한(金廷漢)


〈전략〉건우 할아버지와 윤춘삼 씨가 들려 준 조마이섬 이야기는 어젠가 건우가 써 냈던 ‘섬 얘기’에 몇가지 기막히는 일화가 붙은 것이었다.

“우리 조마이섬 사람들은 지 땅이 없는 사람들이오. 와 처음부터 없기싸 없었겠소마는 죄다 뺏기고 말았지요. 옛적부터 이 고장 사람들이 젖줄같이 믿어 오는 낙동강 물이 맨들어 준 우리 조마이섬은 ―”

건우 하아버지는 처음부터 개탄조로 나왔다.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땅, 자기들 것이라고 믿어 오던 땅이 자기들이 겨우 철들락말락할 무렵에 별안간 왜놈의 동척(東拓) 명의로 둔갑을 했더란 것이었다.

“이완용이란 놈이 ‘을사 보호 조약’이란 걸 맨들어 낸 뒤라 카더만!”

윤춘삼 씨의 퉁방울 같은 눈에도 증오의 빛이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1905년 ― 을사년 겨울, 일본 군대의 포위 속에서 맺어진 ‘을사 보호 조약’이란 매국 조약을 계기로 소위 ‘조선 토지 사업’이란 것이 전국적으로서 실시되던 일, 그리고 이태 후인 정미년에 가서는 ‘한국 정부는 시정 개선에 관하여 통감의 지도를 수할 사’란 치욕적인 조목으로 시작된 ‘한일 신 협약’에 따라 더욱 그 사업을 강행하고 역둔토(驛屯土)의 대부분과 삼림 원야(森林原野)들을 모조리 국유로 편입시키는 등 교묘한 구실과 방법으로써 농밀들로부터 빼앗은 뒤, 다시 불하하는 형식으로 동척과 일인 수중에 옮겨 놓던 그 해괴 망측한 처사들이 문득 내 머리속에서도 떠올랐다.

“쥑일 놈들.”

건우 할아버지는 그렇게 해서 다시 국회 의원, 다음은 하천 부지의 매립 허가를 얻은 유력자…… 이런 식으로 소유자가 둔갑되어 간 사연들을 죽 들먹거리더니,

“이 꼴이 되고 보니 선조(先祖) 때부터 둑을 맨들고 물과 싸워 가며 살아온 우리들은 대관절 우찌 되는기요?”

그의 꺽꺽한 목소리에는, 건우가 지각을 하고 꾸중을 듣던 날 ‘나릿배 통학생임더’ 하던 때의 그 무엇인가를 저주하듯이 감정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나 그들의 땅에 대한 원한이 컸던가를 가히 짐작할 수가 있었다.

“섬 사람들도 한번 뻗대 보시지요?”

이렇게 슬쩍 건드려 봤더니 이번엔 윤춘삼 씨가 그 말을 얼른 받았다.

“선생님은 그런 걸 잘 알면서 그러네요. 우리 겉은 기 멀 알며, 무슨 힘이 있입니꺼. 하도 하는 짓들이 심해서 한분 해 보고는 해 봤지요. 그 문딩이 떼를 싣고 왔을 때 말임더……”

윤춘삼 씨는 그 때의 화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듯이 남은 술을 꿀꺽 들이켰다.

“쥑일 놈들!”

마치 그들의 입버릇인 듯 되어 있는 이 말을 안주처럼 되씹으며 윤춘삼 씨는 문둥이들과 싸운 얘기를 꺼냈다.

― 큰 도둑질은 언제나 정치하는 놈들이 도맡아 놓고 한다는 게 서두였다.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동포애니 우리들의 현실정이 어떠니를 앞세우것다! 그 때만 해도 불쌍한 문둥이들에게 살 곳과 일거리를 마련해 준다면서 관청에서 뜻밖에 웬 문둥이들을 몇 배 해싣고 그 조마이섬을 찾아왔더란 거다. 그야 말로 섬 사람들에게는 아닌밤중에 홍두깨 내미는 격으로 ― 옳아, 이건 어느 놈의 엉큼순지는 몰라도 필연 이 섬을 송두리째 집어 삼킬 꿍심으로 우릴 몰아내기 위해서 한때 문둥이를 이용하는 거라고 …… 누군가의 입에서부터 이런 말이 퍼지기 시작하고, 그래서 그 섬사람들뿐 아니라 이웃 섬 사람들까지 한 둥치가 되어 그 문둥이 때를 당장 내쫓기로 했더란 거다. 상대방은 자다가 호박을 주운 격인 병신들인데 오자마자 그 꼴을 당하고 보니 어리둥절은 하였지만, 그렇다고 호락호락 떠나갈 배짱들은 아니었다. 결국 나가라거니 못나가겠느니 싸움이 벌어졌다.

“그 때 바로 이 갈밭새 부자가 앞장을 안 섰능기요. 어데, 그 때 문딩이한테 몰린 자리 한분 봅시더―”

윤춘삼 씨는 하던 말을 별안간 멈추고 건우 할아버지 쪽을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골동품 같은 마도로스 파이프를 뻑뻑 빨고만 있는 건우 할아버지의 왼쪽 팔을 억지로 걷어올렸다.

나이에 관계 없이 아직도 우악스러워 보이는 어깻죽지 밑에 커다란 흉터가 하나 남아 있었다.

“한 놈이 영감 여길 어설피 물고 늘어지다가 그만 터졌거든!”

윤춘삼 씨는 자랑삼아 이야기를 이었다.

― 그렇게 악을 쓰는 문둥이, 괭이, 쇠스랑 할 것 없이 마구들이 대고 싸웠노라고, 그래서 이쪽에서도 물론 부상자가 났지만, 괜히 문둥이들이 많이 상하고, 덕택에 자기와 건우 할아버지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야말로 문둥이 떼처럼 줄줄이 경찰에 붙들려 가고 …… 그러나 뒷일이 더 켕겼던지 관청에서는 그 ‘기막힌 동포애’를 포기하고 그 문둥이들을 도로 싣고 갔다는 얘기였다.

“그 바람에 저 사람은 육이오 때 감옥살이 또 안했능기요, 머 예비 검거라카드나……”

건우 할아버지가 이렇게 한 마디 끼우니,

“그거는 송아지 때문이라 캐도……”

“누명을 써도 뺄갱이는 되기 싫은 모양이제? 송아지 뺄갱이는 좋고.”

건우 할아버지의 이런 농에는 탓하지 않고서,

“그런 짓들 하다가 결국 그것들이 안 망했나.”

윤춘삼 씨는 지금도 고소한 듯이 웃었다.

“다른 패들이 나와도 머 벨 수 있더나?”

건우 할아버지는 내처 같은 표정을 하였다.

“그 놈이 그 놈이란 말이지? 입으로만 머니머니 해댔지, 발 맨드라 카니 제우 맨들어 논 강둑이나 파헤지고, 나리 막는다 카면서 또 섬이나 둘러 마실라카이……”

윤춘삼 씨도 그리 밝은 표정은 아니었다.

“×선생님!”

건우 할아버지가 별안간 그 그로테스크한 얼굴을 내게로 돌렸다.

“우리 건우란 놈 말을 들으니 선생님은 글을 잘 씬다 카데요? 우리 섬에 대한 글 한분 써 보이소. 멋지기! 재밌실 낌데이. 지발 그 썩어 빠진 글을랑 말고……”

“썩어 빠진 글이라뇨?”

가끔 잡문 나부랑이를 써 오던 나는 지레 찌릿해졌다.

“와 그 신문 같은 데도 그런 수타 난다 카데요. 남응 보릿고개를 못 냉기서 솔가지에 모가지들을 매다는 판인데, 낙동강 물이 파아랗느니 푸르니 어쩌니……하는 것들 말임더.”

갈밭새 영감이 이렇게 열을 내기 시작하자 곁에 있던 윤춘삼 씨가,

“허허이 우리 선생님이 오늘 잘못 걸렸네요. 이 영감이 보통이 아임데이. 그래도 선배의 씨라꼬……”

핀잔 비슷이 말했지만 건우 할아버지는 벌인 춤이 되어 버렸다.

“하기싸 시인들이니칸에 훌륭하겠지요. 머리도 좋고…… 선생도 시인 아입니커. 그런데 와 우리 농사꾼이나 뱃놈들의 이바구는 통 안 씨는기요? 추접다꼬? 글 베린다꼬 그라능기요?”

입이 말을 한다기보다 차라리 수염이 떨어댄다고 느껴질 정도로 건우 할아버지는 열을 냈다.

“그만 하소, 영감이 머 글이나 이르능기요. 밤낮 한다는 기 ‘곡구롱 우는 소리’지. 어데 그기나 한분 해 부소.”

윤춘삼 씨가 또 참견을 했다.

“곡구롱 우는 소리라뇨?”

나도 윤씨의 그 말에 귀가 쏠렸다. 어떤 고시조가 문득 생각났기 때문이다.

“어데 해 보소, 모처럼 선생님을 모신 자리니.”

하는 윤춘삼 씨의 말에, 그는 괜한 소리를 했구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 꺽꺽한 목청에 느린 가락을 넣기 시작했다.


곡구롱 우는 소리에 낮잠 깨어 니러보니

작은아들 글 이르고 며늘아기 베 짜는데

어린 손자는 꽃놀이 한다.

마초아 지어미 술 거르며 맛보라 하더라.


건우 할아버지는 갑자기 침착해진 채 눈을 지그시 감고 불렀다. 땀에 번지르르 한 관자놀이 짬에 가뜩이나 굵은 맥이 한 줄 불쑥 드러나 보이기까지 하였다. 가락은 육자배기에 가까웠으나 내용은 역시 내가 생각했던 오(吳) 아무개의 고시조였다.

“이 노래 하나만은 정말 떨어지게 잘 한다 카이!”

윤춘삼 씨는 나 못지않게 감탄을 하면서 그가 그 노래를 즐겨 부르는 사연을 대강 말했다. ― 그러니까, 그의 증조부 되는 분이 옛날 서울에서 무슨 벼슬깨나 하다가 그 놈의 당파 싸움에 휘말려서 억울하게 그 곳 조마이섬으로 귀양인지 피신인지를 해 와 살았는데, 그 분이 살아 계실 때 즐겨 읊던 시조란 것이었다.

사연을 듣고 보니 새삼 생각되는 바는 있었다. 그 노래를 부를 때의 갈밭새 영감의 표정에, 은근히 누군가를 사모하는 듯한 빛이 엿보였을 뿐 아니라 그 꺽꺽한 목청에도 무엇인가를 원망하는 듯, 혹은 하소연하는 듯한 가락이 확실히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착각이 아니리라! 동시에 나는 아까 본 건우 군의 집 사립 밖에 해묵은 수양버들 몇 그루가 서 있던 광경이 새삼 기억에 떠오르고, 건우 어머니의 수인사 태도나 집안을 다스리는 범절이 어딘지 모르게 채통이 있는 선비 가문의 후예같이 짚어졌다.

“아드님은 육이오 때 잃으셨다지요?”

내가 술을 한 잔 더 권하며 위로 삼아 물으니까,

“야……큰놈은 그래서 빼도 못 찾기 되고 작은놈은 머 사모아 섬이라 카던기요, 그 곳 바닷속에 넣어 버렸지요.”

“사모아 섬?”

나는 그의 기구한 운명을 생각했다.

“야, 삼치 잡이 배를 탔거든요……”

이러고 한숨을 쉬는 건우 할아버지의 뒤를 곁에 있던 윤춘삼이가 또 받아 이었다.

“와 언젠가 신문에도 짜다라 안 났던기요. ‘허리케인’인가 먼가 하는 폭풍을 만내 시운찮은 우리 삼칫배들이 마구 결단이 난 일 말임더.”

나도 건우 할아버지도 더 말이 없는데 윤춘삼 씨가 혼자 화를 내듯,

“낙동강 잉어가 띠이 정지 바닥에 있던 부지깽이도 띤다 카듯이 배도 남 씨다가 베린 걸 사 가주고 제북 원양 어업인가 먼가 숭내를 낼라 카다가 배만카에는 사람들까지 떼죽음을 안 시켰능기요. 거에다가 머 시체도 몬 찾았거니와 회사가 워낙 시원찮아 노오니 위자료란 기나 어디 지데로 나왔능기요. 택도 앙이지 택도 앙이라!”

“없는 놈이 할 수 있나. 그저 이래 죽고 저래 죽는 기지 머!”

갈밭새 영감은 이렇게 내뱉듯이 해 던지고서는 아까부터 손 안에서 만지작거리고 있던 두 알의 가래 열매를 별안간 세차게 달가닥대기 시작했다. 마치 그렇게라도 함으로써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을 잊어버리기나 하려는 듯이. 어찌 들으면 남은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그 딱딱한 소리가, 실은 어떤 깊은 분노의 분출을 억제하는 그의 마음의 울부짖음 같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이내 따그르르 따그르르 하는 그 소리가 바로 나룻가 갈밭에서 요란스럽게 들려 오는 진짜 갈밭새들의 약간 처량스런 울음 소리와 흡사하다 느꼈다. 한편 또 조마이섬의 갈밭 속에서 나고 늙어 간다는 데서 지어졌으리라 믿어왔던 갈밭새란 별명에, 어쩜 그가 즐겨 굴리는 그 가래 소리가 갈밭새의 울음 소리와 비슷한 데 연유되지나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세 사람은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갓 나온 듯한 흰 부나비 두 마리가 갈팡질팡 희미한 전등불에 부딪칠 뿐이었다. 파닥거리는 소리도 없이.   〈후략〉


줄거리

교사인 ‘나’는 학생 건우를 통해 그의 할아버지인 갈밭새 영감의 삶에 얽힌 조마이섬의 이야기를 알게 된다. 일제 때 조마이섬에 사는 사람들은 외세의 압제와 제도적 모순으로 자신들의 땅을 가지지 못한다. 장마철에 홍수가 나자 섬 사람들이 강둑을 파헤칠 때 방해하는 청년을 갈밭새 영감이 탁류 속으로 던져 버리는 일이 생기고, 그로 인해 영감은 옥살이를 한 후, 건우와 마을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다.

(교과서 수록 부분 : 직접적인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개괄적인 ‘전개’ 부분)


어휘 및 구절 이해

 동척 : 동양 척식 주식 회사의 준말로 일본이 강제로 우리 땅을 빼앗기 위해 만든 단체

 둔갑 : 술법을 써서 마음대로 자기 몸을 감추거나 다른 것으로 변하게 함

 역둔토 : 역의 급전으로 주어진 둔토(屯土)

 꿍심 : 우물쭈물하여 도무지 모를 수작

 어설피 : 짜임새가 없고 허술하게

 켕기다 :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하여 슬그머니 겁이 나거나 거리끼는 것이 있다.

 그로테스크 : 괴기하고 끔찍스러움. 예술상에 나타난 괴이하고 황당 무계한 괴기미(怪奇美)

 이바구 : 잔소리 말

 부지깽이 : 아궁이에 불을 땔 때 쓰는 나무 막대

 숭내 : 흉내

 건우 할아버지는 그렇게 해서 - 사연들을 죽 들먹거리더니 : 낙동강 젖줄이 만들어 준 조마이섬의 소유자가 그 땅에서 살아가며 농사를 짓는 농민들에게 일제의 농간에 의해 점차 권력형 지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을 보여 주는 대목

 “섬 사람들도 한번 뻗대 보시지요?” : 땅의 소유자가 바뀌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농민들의 단결된 힘으로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다는 의지를 보여 주는 것어 어떠냐는 권유로, 농민들의 순박성과 체념에 대한 안타까움이 드러남

 큰 도둑질은 언제나 정치하는 놈들이 도맡아 놓고 한다는 게 서두였다. : 겉으로는 거창한 대의명분을 들먹이지만, 알고 보면 자신의 사리 사욕을 채우기 위해 그러한 명분을 거짓으로 내세우고 있을 뿐인 정치인의 허위 의식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말

 그러나 뒷일이 더 켕겼던지 관청에서는 그 ‘기막힌 동포애’를 포기하고 그 문둥이들을 도로 싣고 간다는 얘기였다. : 관청에서 문둥이들을 조마이섬으로 데리고 오면서 표면적으로 내세운 것은 불쌍한 문둥이들에게 살 곳과 일거리를 마련해 준다는 것은 ‘사회 복지’ 차원의 거짓 명분이었다. 그러나 섬 주민들의 저항이 거세지자, 자신들의 직접적인 이유, 즉 문둥이들을 동원해 조마이섬의 통째로 차지하려던 속셈이 들통날까 봐 문둥이들을 도로 싣고 가 버렸다는 내용이다.

 다른 패들이 나와도 머 벨 수 있더냐? : 섬 주민들의 권력층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을 보여 주는 말로 다른 권력이 들어선다고 해도 섬에 대한 그들의 기본 태도는 바뀌지 않았음을 은연중에 비꼬는 말

 남응 보릿고래를 못 냉기고 솔가지에 모가지들을 매다는 판인데, 낙동강 물이 파아랗느니 푸르니 어쩌니 : 현실의 생활을 외면한 감성적 문학 행위를 사치스러운 것으로 보는 갈밭새 영감의 인식이 드러난다.

 “하기싸 시인들이니칸에 훌륭하겠지요. - 글 베린다꼬 그라능기요?” : 배우지 못한 서민의 처지에 대한 계층 의식과 지식인의 비현실성에 대한 반발심이 나타나 있다.

 나는 그의 기구한 운명을 생각했다. : 건우 할아버지의 파란만장한 삶이 우리 민족의 현대사가 거쳐온 시련의 의미를 떠올리게 할 만큼 전형적임을 규정해 주는 서술이다.

 택도 앙이지 택도 앙이라. : 이루어질 턱이 없다.

 갓 나온 듯한 흰 부나비 두 마리가 갈팡질팡 희미한 전등불에 부딪칠 뿐이었다. : 불나비의 애처로운 삶에 빗대어 고달프고 위태로운 조마이섬 사람들의 비극적 삶의 현실을 연상시키는 암시적 표현이다.


작품 해제

 갈래 : 단편 소설. 농촌 소설

 배경 : 1960년대 낙동강 유역의 조마이섬

 성격 : 현실 고발적. 저항적

 표현 : 농촌의 삶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함.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려는 작가 정신을 발휘함

 주제 : 소외당한 인간의 비참한 삶과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저항


작품 해설

이 작품은 낙동강 하류의 외떨어진 모래톱 조마이섬을 배경으로 일제 시대부터 1960년대에 이르는 주민들의 삶의 역사를 조명한 이야기로, 작가인 ‘나’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이들의 삶의 내력을 보고하는 위치에 서서 소수 유력자와 선량한 다수 민중 사이의 동태를 선명하게 부각시킨 것이 특징이다. 외세의 압제와 제도의 불합리성으로 말미암아 항상 토지를 이용하면서도 한번도 소유하지는 못했던 민중들의 땅에 대한 사무치는 원한은 핍박하는 자에 대한 갈밭새 영감의 살인 행위를 통해 극대화된다. 비참하게 짓밟히며 살아가는 농민들의 삶을 통하여 부조리한 현실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현실의 모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객관적인 태도로 형상화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이는 작품이다.


작품 이해

“모래톱 이야기”의 시점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서술자인 ‘나’는 고발자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인물들과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갈밭새 영감을 주축으로 한 조마이섬 사람들의 강인한 삶과 현실에 대한 저항이 중심 줄거리로서 관찰자에 의해 이야기되므로 이 작품은 액자성(額子性)이 있다고 하겠다.

“모래톱 이야기”의 구조와 역사적 배경

 이 작품은 일제 시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긴 시간이 배경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조마이섬 사람들에게 의미 있게 비추어진 시대적 상황은 권력을 쥔 자(가진 자)들이 못 가진 자를 핍박하는 부조리한 현실이다. 물론 과거를 회상한 부분을 제외한 시대적 배경은 1960년대, 어떤 부조리한 현실에 의해 약속된 낙토(樂土)가 거부되어 있기 때문에, 갈밭새 영감으로 대표되는 섬사람들의 저항이 두드러진다.

 

 

 

 

 

 

 

 

 

 

 

 

 

 

 

 

 

 

‘조마이섬’은 실재하는 섬이 아니다. 김정한은 생전에 문단 후배들과의 모임에서 이런 술회를 한 적이 있다. “몇 해 전 어느 신혼부부로부터 ‘모래톱이야기’ 속의 조마이섬으로 신혼여행을 갈까 하는데 여러 관공서에 문의해도 조마이섬의 위치를 알 수 없다며 전화가 걸려왔다. 그때 조마이섬은 실재의 섬은 아니지만 모델은 을숙도와 일웅도라고 일러 주었다.”
글·사진 = 이경택 / 여행칼럼니스트

 

  

1966년 요산 김정한이 26년 간의 절필 끝에 발표한 단편 ‘모래톱이야기’는 소외 계층이 겪어야 하는 삶의 애절함과 그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소설은 화자인 교사가 낙동강 하구의 가난한 섬마을 ‘조마이섬’에서 살아가는 ‘건우’라는 한 가난한 제자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건우네는 아버지가 삼치잡이 원양어선을 탔다가 죽고, 할아버지 갈밭새영감,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조마이섬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가난하지만 평화롭던 조마이섬에 어느 날 갑자기 장마가 닥치며 위급한 상황이 벌어진다.

섬을 통째로 삼키려고 유력자가 엉터리로 쌓아놓은 둑으로 인해 마을이 수몰될 위기에 처하자 건우의 할아버지인 갈밭새영감이 둑을 허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유력자의 앞잡이인 깡패같은 청년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화를 참지 못한 갈밭새영감이 청년 하나를 탁류에 던져 버린다. 이로 인해 건우의 할아버지인 갈밭새영감은 감옥살이를 하게 되고, 새학기가 되어도 건우는 학교에 나타나지 않는다.
‘모래톱이야기’는 내 땅을 부당하게 빼앗고 섬을 송두리째 집어삼키려는 유력자 有力者에게 저항하는 한 농민의 처절한 투쟁을 통하여 비참한 농촌 현실을 증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소설 속에서 ‘섬의 생김새가 길쭉한 주머니같다고 해 그렇게 불렸다’는 조마이섬은 실재하는 섬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조마이섬’은 실재하는 섬이 아니다.
김정한은 생전에 문단 후배들과의 모임에서 이런 술회를 한 적이 있다.
“몇 해 전 어느 신혼부부로부터 ‘모래톱 이야기’ 속의 조마이섬으로 신혼여행을 갈까 하는데 여러 관공서에 문의해도 조마이섬의 위치를 알 수 없다며 전화가 걸려왔다. 그때 조마이섬은 실재의 섬은 아니지만 모델은 을숙도와 일웅도라고 일러 주었다.”
낙동강 물이 실어 나른 토사들은 강 하구에 이르러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하여 넓은 모래톱을 형성해 놓았다. 그 모래톱이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을숙도’이다.
소설 속에서 “이 고장 사람들이 젖줄 같이 믿어 오는 낙동강 물이 맨들어 준 우리 조마이섬”도 을숙도를 일컫는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리고 을숙도의 당시 상황도 소설속 설정과 비슷하다. 을숙도는 면적 0.08㎢. 부산시청 서쪽 7km 지점에 위치하며 1978년 2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김해군에서 부산시로 편입되었다.
을숙도는 낙동강이 운반한 미세한 토사의 퇴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토양이 비옥하다. 그러나 대부분이 저습지대로 오랫동안 방치되어 갈대밭으로 바뀐데다 홍수 때는 수몰 水沒 될 위험이 컸기 때문에 섬 크기에 비하여 주민이 적었다.

대변항에서 그물에 걸려있는 멸치를 털어내는 모습

그러나 일각에선 조마이섬은 을숙도에서 조금 떨어진 강변포구인 조만포라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남해고속도로 가락IC에서 빠져 둔치도쪽으로 빠지면 조만포라는 갈밭사이의 자그마한 강변마을이 있다. 조만포라는 이름이 경상도식 발음에 따라 ‘조마이포’로 불렸고, 포구 건너편 늪지 한가운데 모래톱도 ‘조마이섬’으로 불렸다는 얘기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조마이섬’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낙동강 하구의 모래톱으로 이뤄진 섬 모두가 조마이섬이고 그 일대가 모두 다 갈밭새 노인의 삶의 터전이며 가난한 민초들의 애환이 깃든 장소다.
작가는 소설 속에서 조마이섬을 또 이렇게도 묘사했다.
“길가 수렁과 축축한 둑에는 빈틈없이 갈대가 우거져 있었다. 쑥쑥 보기 좋게 순과 잎을 뽑아 올리는 갈대청은,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과는 판이하게 하늘과 땅과 계절의 혜택을 흐뭇이 받고 있는 듯, 한결 싱싱해 보였다.”

이러한 정경은 작가가 소설을 발표한 당시에는 그 일대에서 어디나 흔히 볼 수 있는 정경이었다.
그러나 1987년 낙동강하구둑이 건설되며 을숙도를 비롯한 주변 풍경도 모두 변했다.
부산의 중장년층에게 끝없이 펼쳐진 갈대밭으로 인해 추억의 장소로 기억되는 을숙도만 해도 많이 변했다. 을숙도 상단부에는 각종 휴게시설과 체육시설이 들어서 주말이면 가족나들이객들이 몰리고, 하단부는 철새보호지역으로 지정돼 쉽게 접근할 수 없다.
가난한 어민들의 애환이 깃들었던 모래톱에는 이제 국제적인 규모의 인라인 스케이트장이 들어섰고, 섬 주변을 따라서는 자전거 하이킹을 즐기는 데이트족들의 웃음소리가 싱그럽게 울려 퍼진다.
낙동강 중류와 부산 주변 공단에서 배출되는 여러 오염물질과 농업, 축산, 생활폐수의 유입 및 무분별한 남획 등으로 인해 철새 도래지로서의 명성도 많이 퇴색했다. 하구둑이 놓이기 전의 풍경은 이제 소설 속에서나 찾아 볼 수 있을 듯하다.

잠깐동안의 일본유학 기간을 제외하고 평생을 부산에서 머물렀던 김정한은 ‘모래톱이야기’외에도 낙동강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1969년에 발표한 ‘뒷기미나루’는 밀양과 삼랑진 사이의 실제 지명을 빌려쓴 것이고, 작가의 또 하나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수라도 修羅道’ 역시 낙동강 하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부산에는 김정한의 숨결을 느낄 수있는 장소들이 2곳 더 있다.
범어사 자락에 세워진 ‘김정한 문학비’도 그중 하나다.
또 김정한이 태어나 스무 해가 넘도록 살았다는 생가는 ‘부산 금정구 남산동 663-2번지’에 아직도 보존되어 있다. 안내 표지판 하나 없이 골목길 안쪽에 소리 없이 묻혀 있는 낡은 기와집에 불과하지만 요산이 1908년 생이니 집의 오랜 연륜을 짐작할 수 있다. 다행히 이 집은 생가 복원을 앞두고 있다.

김정한의 삶과 문학


평생 대쪽같은 지조로 고향지킨 ‘낙동강 파수꾼’

호는 요산(樂山).
‘민족문학의 큰별’로 불리는 요산은 일제하 4·19, 5·16 등 현대사의 격랑하는 파고 속에서도 평생을 대쪽같은 지조와 양심을 지키며 살았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성품 때문에 위정자로부터는 경계의 대상이었으나, 문단과 사회로부터는 깊은 존경을 받았다.
요산은 경남 동래군 북면 남산리에서 1908년 출생했다.
타협을 모르는 요산의 삶은 동래고보 졸업 후 첫 직장생활인 울산 대현공립보통학교에서 교직을 맡으며 그 단초를 보여준다. 당시 요산은 조선어교육에 대한 간섭과 일인교사와의 차별대우 등에 불만을 품고 ‘조선인 교원연맹’을 조직하다 경찰에 체포돼 첫 번째 옥고를 치른다.
그는 일본 유학 중에도 방학을 이용해 귀국, 양산농민봉기에 연루돼 두 번째 옥고를 치른다.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한 것은 일본에서 학업을 중단하고 돌아온 뒤 33년 남해공립보통학교 교원으로 부임한 이후의 일이다.
193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사하촌 寺下村 ’이 당선돼 문단에 등단한 이후 ‘낙일홍’ ‘추산당과 곁사람들’ ‘월광한’ 등을 잇달아 발표했다.
반골을 연상시키는 그의 삶은 작품 속에도 그대로 반영돼 있다. ‘사하촌’은 일제와 토착지주, 사찰의 수탈로 인해 고통받는 절 아랫마을 사람들의 궁핍을 그린 작품이다. 이로 인해 당시의 친일 승려들이 몰려와 김씨에게 뭇매를 가해 신춘문예 상금을 치료비로 써야 했던 일은 문단에서 널리 알려진 일화다.
요산은 왕성한 창작활동을 벌이면서도 일제의 폭압이 심화되자 문학활동이 무용하다는 생각에 1940년 절필을 선언한다. 절필선언 후에도 요산은 치안유지법 위반 등으로 한차례 더 옥고를 치렀다.
1966년 발표된 ‘모래톱이야기’는 그의 절필선언 이후 26년 만에 요산이 다시 세상에 선보인 작품이다. 요산은 해방 이후에도 여러 차례 옥고를 치르며 자신의 소신을 지켜나갔다.
요산은 고향에서 일평생을 살다가 죽어서도 고향 땅에 묻힌 보기 드문 문학인이다. 말년에 접어들어 협심증과 폐기종에 시달리다가 염수봉 아랫녘 ‘신불산 공원묘지’에 묻힌 것이 96년, 그의 나이 89세였다.
‘낙동강의 파수꾼’이란 자신의 산문집 제목이 이르듯, 평생을 낙동강변을 지키며 부산문화계의 커다란 정신적 지주로도 자리잡았다.
부산문화계인사들은 최근 ‘요산기념사업회’를 결성, 올해 안에 요산생가 복원 등을 추진중이다.

2007.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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