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

질문 호가장 전투랑 항일 유적지 질문
qjwm**** 조회수 3,022 작성일2010.01.17

의외로 호가장 전투에 대해 찾기가 어렵네요;;

 

호가장 전투가 무엇인가요? 궁금하네요

 

글구, 호가장 전투는 일본군에 맞서, 조선의 어떤 독립운동단체가 참가했는지 알려주세요.

 

또, 문제집 풀다가 모르겠어서...질문 드려요.

 

>>항일 유적지를 돌아보며 보고서를 쓴다는 내용의 제시문 입니다.

항일 유적지는 상하이-옌지(연길)-백두산-룽징(용정)-허룽(화룡)-투먼(도문)-왕칭-무단장 입니다.

독립 투사들의 발자취라고 제시되어 있네요.

아래 보기에서 옳지 않는 것을 고르면 됩니다.

1~5 에서 옳지 않은 것과 그 이유, 나머지 보기에 대해서도 간단히 어디에서 일어난 운동인지 알려주세요.

 

보기>>

1. 안중근 의사의 의거 현장 방문하기.

2.청산리 대첩 기념비에 헌화 묵념하기

3.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공원 의거 현장 찾기

4.옛 대성 중학교를 방문해 윤동주의 시비에 헌화하기

5.한국 광복군이 국내 침투 훈련을 받았던 장소 방문하기.

 

 

프로필 사진

답변자님,

정보를 공유해 주세요.

1 개 답변
1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우리가오늘을기억할까
물신
한국사 52위, 예금, 적금, 강남구 14위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호가장 전투가 무엇인가요? 궁금하네요.  글구, 호가장 전투는 일본군에 맞서, 조선의 어떤 독립운동단체가 참가했는지 알려주세요.

조선의용대 화북지대

 

호가장 전투(胡家莊 戰鬪)

1941년 12월 조선의용대 화북지대가 일본군의 습격을 분쇄하고 탈출에 성공한 전투.

1941년 1월 무정(武亭)·이유민(李維民)·김창만(金昌萬:韓得志) 등은 중국 산시 성[山西省] 태항 산[太行山]에서 화북조선청년연합회를 결성했다. 이어 최창익(崔昌益)·한빈(韓斌) 등 조선민족혁명당과 그 산하 조선의용대에서 빠져나와 옌안[延安]으로 북상한 인사들도 연합회에 가담하여 조선의용대 화북지대가 창설되었다. 이들은 일본군 점령지역 침투공작과 선전공작에 참여하여 상당한 전과를 올리고 있었다. 1941년 12월 일본군 점령지대와 중국 해방구의 중간지대 유격구인 원씨현(元氏縣) 호가장 부근에서 조선의용대 대원 30명이 무장선전대를 편성하여 일본군 점령하에 있는 부락민에게 항일선전공작을 수행했다. 공작 후 본대로 돌아가던 중, 호가장 부락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는데 친일파인 구장(區長)의 밀고로 이들은 500여 명의 일본군에게 완전히 포위당했다. 의용대는 결사항전할 것을 결의하고, 대문 밖을 향하여 수류탄을 연속해서 던진 후 대원 전원이 경기관총을 앞세우고 문 밖으로 돌격하여 치열한 육박전 끝에 포위망을 뚫었다. 이때 팔로군이 달려오자, 일본군은 퇴각했다. 이 전투로 대원 박철종(朴喆鍾)·송일봉(宋一峰)·이만갑(李萬甲) 등 4명이 전사하고 대장 김세광(金世光)이 부상을 당했으며, 김학철(金學喆)은 부상당한 채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나가사키[長崎] 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항일 유적지를 돌아보며 보고서를 쓴다는 내용의 제시문 입니다. 항일 유적지는 상하이-옌지(연길)-백두산-룽징(용정)-허룽(화룡)-투먼(도문)-왕칭-무단장 입니다. 독립 투사들의 발자취라고 제시되어 있네요.

아래 보기에서 옳지 않는 것을 고르면 됩니다. 1~5 에서 옳지 않은 것과 그 이유, 나머지 보기에 대해서도 간단히 어디에서 일어난 운동인지 알려주세요.

 

보기>>

1. 안중근 의사의 의거 현장 방문하기.  < 하얼빈(哈爾濱)역 > 

2. 청산리 대첩 기념비에 헌화 묵념하기 허룽(화룡)

3.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공원 의거 현장 찾기 상하이

4. 옛 대성 중학교를 방문해 윤동주의 시비에 헌화하기 룽징(용정)

5. 한국 광복군이 국내 침투 훈련을 받았던 장소 방문하기. 시안

 

안중근의사 의거현장 - < 하얼빈(哈爾濱)역 >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 역에 잠입하여 러시아 군대의 사열을 받고 있던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고, 하얼빈 총영사 가와카미 도시히코 등에게 중상을 입혔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러시아 경찰에게 체포되어 일본 관헌에 넘겨진 뒤 여순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이듬해 1910년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아 3월 26일 사형되었다.
청산리 대첩 기념비
길림성 화룡현 청산리
청산리전투는 1920년 10월 21일부터 26일 사이에 청산리 일대에서 홍범도의 연합부대와 김좌진의 북로군정서군이 연합하여 백운평 전투를 비롯하여 10여 차례 일본군과 싸운 전투다. 2001년 세운 거대한 기념비의 뒷면 벽에는 ‘청산리 항일대첩 기념비’ 의 건립 취지문과 이 기념비 건립의 경위를 밝힌 글이 석판에 새겨져 있다.
윤봉길 의사, 훙커우공원 의거(1932.4.29)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가 상하이 훙커우공원(현 루쉰공원)에서 의거를 일으켰다. 당시 상하이(上海)를 점령한 일본은 훙커우공원에서 대대적인 전승기념 및 천장절(天長節) 기념식을 가졌다. 한인애국단 단원인 윤봉길 의사는 김구의 명령을 받아 폭탄장치를 한 물통과 도시락을 들고 일본인으로 가장, 식장에 들어가 오전 11시 40분경 참석자 전원이 묵도하는 시간에 폭탄을 던졌다.

일본군 사령관 시라카와 요시노리와 거류민단장 가와바타 사다지가 현장에서 숨지고 일본 요인들이 크게 다쳤다. 윤봉길 의사는 자결하려 했으나 시간적 여유가 없어 현장에서 체포된 후, 일본 오사카로 이송돼 같은 해 12월 19일 25세의 젊은 나이에 총살됐다. 이 의거는 일제를 크게 자극하였고, 일본은 한국 교포에 대한 탄압을 강화, 사건과 무관한 안창호 등 11명을 검거했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만보산 사건으로 한때 악화됐던 중국인들과 중국 거주 한국인과의 감정이 호전되었고, 중국정부도 한국의 임시정부에 대해 후대하기 시작했다. 특히, 장제스(蔣介石)는 윤 의사의 의거에 대해 '중국의 100만 대군이 못하는 일을 한국의 한 의사가 능히 해내니 장하다'고 격찬했다.

대성중학교(현 용정 제1중학교)의 윤동주 시비
비암산 선구자비 등 항일 유적이 즐비한 용정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시인 윤동주다. 룡정시 제l중학교 (옛 대성중학교) 경내에는 윤동주 시비가 남아 있고, 교내 역사기념관 이름도 윤동주 기념관이다. 이곳은 일제 시대에 반일 투쟁의 민족주의 교육을 실천했던 곳이다.

한국 광복군이 국내 침투 훈련을 받았던 장소
광복군은 중국에 파견되어 있던 미국전략사무국(Office of Strategic Service:OSS)과 협약을 맺고 특무공작훈련을 실시하였다. 이때 <조선인학도육군지원병제도>의 실시로 한국청년이 강제로 일본군에 편입되어 남양군도(南洋群島)와 중국전선에 배치되었는데, 그 일부가 일본군을 탈출하여 광복군으로 넘어와 시안[西安(서안)]에서 3개월간의 특수공작훈련을 실시하였다. 이들에게 각종 비밀무기를 주어 산둥에서 미국 잠수함에 태워 본국으로 잠입시켜 국내의 요소를 파괴·점령한 뒤에 미국 비행기로 무기를 운반할 계획이었으나, 이 작전계획을 실천에 옮기기 직전에 일본군이 항복하였다. 따라서 광복군은 광복 뒤 미군정 당국의 요구에 따라 무장을 해제하고 귀국하였다.
OSS와의 연합훈련은 광복군 2지대와 3지대에서 시행됐는데 2지대의 훈련은 중국의 서안 근교의 두곡(杜曲)에서 실시되었다고합니다. 3지대의 경우는 1945년 7월 7일 입황(立煌) 오가점(吳家店) 부근의 미군 부대에 도착한 22명의 대원들이 3개월 예정으로 훈련에 착수했지만 기초교육 과정이 진행되던 중 일제의 패망을 맞이했다고합니다.
 
왕칭
중국 지린성[吉林省] 옌볜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에 있는 현(縣).
왕칭[清]이란 지명은 '보루()'를 뜻하는 만주어(滿)에서 비롯되었는데, 이 지역이 변경의 요충지로서 군대 주둔지로 쓰였기 때문이다. 중국 청()의 선통제(, 1906~1967) 때인 1909년에 현()이 설치되었으며, 1900년대부터 한인()이 대규모로 이주해 살기 시작하여 1920년대 항일 독립전쟁의 근거지가 되었다. 1911년 서일()은 왕칭현에서 국외로 탈출한 의병()들을 규합하여 중광단()을 결성했으며, 이를 모태로 1919년에 조직된 북로군정서()도 왕칭현 스리핑[]에 근거지를 두고 사관 양성소 등을 운영했다. 1920년 6월 7일, 홍범도()가 이끈 대한독립군(), 안무()가 이끈 국민회군(), 최진동()이 이끈 군무도독부()의 연합부대가 일본군 제19사단의 월강추격대대()에 큰 승리를 거둔 봉오동전투()가 일어난 곳도 왕칭현이다.
투먼 [圖們(도문), Tumen]
투먼시는 두만강 연안에서는 유일하게 북한과 철도로 연결되어 있어 북한과 교역이 가장 활발히 이루어지는 지역으로, 해마다 2만명 이상이 투먼의 커우안[]을 거쳐 북한을 출입하고 있다.
이 지역은 관광 자원이 풍부할 뿐 아니라, 봉오동전투 등 1920년 초반의 항일 독립운동의 유적들도 폭넓게 분포하고 있다. 국경 지역에 북한 전망대도 설치되어 있어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무단장 [牡丹江(목단강), Mudanjiang]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 남동부에 있는 도시.
쑹화강[]의 지류인 무단강[] 상류 연안, 무자[:] ·무투[:] ·빈쑤이[:] 등 3개 철도의 교차점에 있다. 19세기에 무투 ·무자철도가 개통될 때까지는 외진 마을이었으나, 일본이 만주를 지배하던 기간에 발전하였다. 본래 임업 중심지였으나, 고무 ·기계 ·석유 ·화학 ·전기기구 ·시멘트 ·방직 ·목재 등의 공업이 활발해졌다.
 

2010.01.18.

  • 채택

    질문자⋅지식인이 채택한 답변입니다.

  • 출처

    본인지식 + 인터넷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