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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신사임당님~
비공개 조회수 4,491 작성일2018.04.29
신사임당 대하여 알려주세요!
태어나신 날짜,어떠한 사람 이였는지,인물이 처한 시대의 상항,왜 그러한 선택을 하였는지,업적, 그 외 다른 것 들도 알려 주세요! 8시 까지 부탁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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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 1504(연산군 10)∼1551(명종 6)의 일대기와 업적에 대해서

고려 건국공신인 신숭겸의 18세손 신명화와, 강릉의 참판 출신 최응현의 손녀 이씨 부인 사이에서 1504년, 신사임당이 태어났습니다. 다섯 딸 중 둘째로 세상의 빛을 본 신사임당은 외가인 강릉지역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당시 사임당은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오죽헌에서 시, 그림, 글씨를 전수받았습니다. 조선중기까지만 해도 결혼 후 여성의 거주지를 중심으로 생활했기 때문에 이는 낯설지 않은 문화였습니다. 신사임당의 본명은 신인선이고, 사임당은 호입니다. 스스로 지은 ‘사임당’이란 호에는 태임을 본받는다는 의미를 담았는데요. 태임은 고대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이자 뛰어난 부덕의 소유자였습니다.

신사임당은 7세부터 스스로 그림을 그렸고 뛰어난 화가로 유명한 안견의 몽유도원도, 적벽도 등을 따라 그렸습니다. 특히 풀벌레와 포도를 잘 그려서, 치마에 포도물이 들어 어쩔줄 몰라하는 여인에게 포도를 그려주었다는 신사임당 그림 일화도 있죠. 1522년 사임당이 21세 되던 해에는 이원수와 결혼하고 2년 후부터 아들 선, 딸 매창, 율곡 이이를 낳으면서 4남 3녀의 어머니가 돼요. 그 때까지도 외가에서 생활하였으며, 38세 때 시집에 정착해요. 아들이 없어 더 외가에서 지낸 경향이 있으며, 부친상을 당한 후에도 친정에서 3년 상을 마친 후에야 서울로 올라왔어요.

그리고 48세에 남편이 수운판관이 되면서 평안도로 살림을 옮겼을 때 갑자기 세상을 떠났어요. 기록상에 아팠다는 얘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건강하지는 않았을 수 있다고 예상되죠. 그 때가 남편 이원수의 나이 51세, 율곡이이의 나이 16세 때였어요. 이이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금강산에 들어가는 등의 방황을 했지만 외할머니의 지극한 사랑으로 보살핌 받았죠.

사임당 사후 100년이 지났을 때, 보수적 성격을 띤 송시열이 ‘천지의 기운이 응축된 힘으로 율곡이이를 낳았다’며 사임당의 그림을 찬탄했는데 그 이후로 신사임당은 화가나 예술가보다 율곡이이의 어머니로 유명해지기 시작했어요. 현재 신사임당이 가진 모성이 이미지는 18세기에 와서야 형성된 것이죠. 하지만 실제 사임당은 어머니의 역할에서 나아가 효녀로서 부모님을 잘 섬겼던 깊은 인품의 소유자였어요. 게다가 그녀의 그림은 당대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인정을 받고 있을 만큼 뛰어난데다가, 시와 글씨까지 찬탄받고있죠. 한 마디로 예술가였어요. 남성의 시각으로 꾸며진 신사임당은 ‘율곡이이의 어머니’라는 인식이 가장 크지만, 실제로는 그 자체로 훌륭한 여성이었던 거죠.

2018.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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