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예전에
서태지랑 H.O.T랑...등등
가수들중에 음악성(?)이 뛰어난 사람을 물어봤는데요 , *^^*
서태지가..우세더라구요
서태지에 대해서 잘 알고싶구요
그리고 서태지 왜 요즘에 방송에 안나오는거죠?ㅇㅂ ㅇ..
답변자님,
정보를 공유해 주세요.
제가 얼마전에 어느 질문에 쓴 답변입니다.
마지막 질문은 끝부분에 추가합니다.
1.음반 판매량 & 인기
먼저 서태지와 아이들은 데뷔 첫해 170만장을 팔았고 이 기록은 아직까지 데뷔 최다 판매량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2집은 210만장으로 이로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더블 밀리언셀러를 기록합니다. 3집 130만장, 4집 180만장. 여기까지가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판매량이고 솔로 컴백 이후에는 5집 107만, 6집 130만, 7집 50만 장을 팔았습니다.
hot는 서태지가 1996년 1월에 은퇴하고 난 뒤인 그해 10월에 데뷔했습니다. 그리고 1집 80만장, 2집150만장, 3집110만장, 4집140만장, 5집88만장 을 팔았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서태지)
1992 1집 170만- 데뷔 앰범 최다 판매량
1993 2집 210만- 한국 최초 더블밀리언셀러
1994 3집 130만
1995 4집 180만 hot
1996 은퇴 1집 80만
1997 2집 150만
1998 5집 107만- 앨범만 발매 방송활동 안함 3집 110만
1999 4집 140만
2000 6집 130만 5집 88만
2004 7집 50만- 그 해 최다 판매
결론 1.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총 판매량은 정규 엘범 4장에 700만장 이 넘고 솔로 이후까지 계산하면 1000만장이 넘습니다.(공식적으로 1000만장이 넘습니다.)
하지만 hot는 정규엘범 5장에 500만장을 팝니다.
* 오차를 감안했으니 오해 마세요.
이 수치만으로도 충분히 서태지와 hot의 인기를 비교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 사실을 들자면 2000년에 발표한 서태지 6집 판매량은 130만장이지만
같은해 hot의 마지막 엘범 판매량은 88만장입니다. 이거 하나로 결론이 나오죠.
더군다나 태지앤보이즈 은퇴후 4년뒤 5집 솔로 엘범이 발표되었을 때 서태지는 얼굴을 한번 언론에 비친적이 없었습니다. 간간히 뮤직비디오를 공개했지만, 간단히 말하면 엘범 내놓고 땡이었죠.하지만 그 엘범은 백만장 이상 팔렸습니다.
그런 그가 2년뒤 생소한 헤비메탈 장르의 6집을 가지고 나와서 130만 장을 팔았습니다.
*인기만을 비교하는 거니 이부분은 여기까지만 말하죠.
이제 동방신기로 넘어가죠
동방신기는 hot해체(2000년) 뒤 4년 뒤인 2004년에 데뷔를 했습니다.
동방신기는 그해 정규앨범으로 24만장을 팔았고 싱글 앨범까지 합치면 60만장이 좀 넘습니다..
2005년은 70만 장이라고 하는데 정규+싱글 앨범이 5장 이더군요.
한장당 많은 것은 대략 20만 장 넘게 팔린것 같습니다.
지금 동방신기의 판매량을 서태지와 아이들 판매량하고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당시와 지금의 음반판매 환경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죠. 인터넷, p2p, 각종 제생 매체.... 등
인정 하실 겁니다. 그럼 할 수 없이 최근에 발매된 서태지의 솔로 3집 (7집)과 비교 할 수밖에 없는데
결론적으로 현재 서태지의 인기는 동방신기를 포함한 어느 가수보다 높다고 봐야한다는 거죠.
물론 동방신기는 싱글 앨범까지 합치면 2004년에는 60만장이 넘고 2005년에는 70만장에 육박하지만,
서태지같은 싱어송라이터가 1년에 몇장씩 새로운 앨범을 내놓을 수 없다는 것, 동방신기의 곡 대부분은 외부에서 나온다는 것, 동방신기는 정규엘범에 포함된 곡을 편곡해 다시 싱글엘범에 포함시키고 그런 싱글 엘범이 1년에 2,3개 나온다는 것을 감안하면 정규 1장+ 싱글 여러장 은 서태지 정규앨범 하나에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각각 서태지, 동방신기 정규앨범로 범위를 정하겠습니다.
서태지 동방신기
2004 7집 50만- 그 해 최다 판매 2004 1집 24만
2005 2집 22만
결론 2. 서태지 2004년 발매한 7집 엘범 50만 2천장
동방신기 2004년 발매한 1집 24만 2천장 / 2집 22만 2천장
동방신기의 총 정규앨범 판매량을 합쳐도(46만 4천장) 서태지 솔로 3집 (7집) 하나(50만 2천장)의 판매량보다 많지 않습니다.
*2004년 후반에서 2005년 사이 p2p프로그램에 대한 규제를 생각해보면 동방신기의 앨범판매량은 많다고 볼 수 없습니다. 저만해도 mp3를 600여 개를 가지고 있고 소리바다에서 MP(포인트)를 얻는 것은 너무 쉬웠습니다. mp3가 얼마 없었을 어린 학생들은 MP를 올리기 어려웠을 테고, 소리바다가 끝내 폐쇄됐으니 어쩔 수 없이 유료 컨텐치를 구입하거나 음반을 구매했을테죠.
종합. 결론적으로 서태지와 아이들(서태지)의 인기를 hot나 동방신기의 것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겠군요.
2. 인기의 원인
그의 인기의 원인이 흔히 말하는 음악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폭넓은 지지층에서 나오는 폭넓은 공감대입니다.
질문자께서 어리시다면 잘 모르시겠만 서태지와 아이들은 당시에 인기가 있었다, 유행이다 이정도가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현상, 신드롬 이었습니다.
전국에 수많은 팬클럽이 생겼고 그 안에는 어머니들까지 참가해 함께 청소년, 신세대 문화에 대해 토론을 했다고 합니다.
여자팬뿐만아니라 남자팬들도 절반이 되고. 길거리에 뮤직비디오 찍으면 남녀노소 모여드는 군중들, 신세대의 생각을 표출한 힙합바지 염색 레게머리를 오버그라운드에서 최초로 시도, 자신의 음악은 한국어가 가장 잘 표현하니 일본가서 일본어로 부르지 않겠다는 말, 방송 3사 톱뉴스로 은퇴기자회견이 나올때 발표한 주옥같은 회견문. 그리고 그의 음악안에 포함되어 있는 가사들 등등.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한 말을 행동으로 보여줬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당시 억눌러 있던 10대 20,30대를 포함해 일부 기성세대에 까지 지지를 얻고 문화대통령의 칭호를 받으며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후 하나의 전설로 남을 수 있게한 것입니다.
많은 평론가, 대학교수, 경제단체 연구원들이 서태지를 분석, 연구했고 많은 논문, 서적이 나왔으니 그 인기를 실감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hot, 동방신기가 전연령층, 남녀 모두에게서 인기를 얻었다고 보기 힘들것 같습니다.
hot 활동 초기에는 남자팬도 많았으나 3집 이후로 팬층이 여학생층으로 급속히 줄어듭니다.
동방신기의 팬층은 주로 초등학생에서 중학생 까지의 여학생으로 고등학생은 비율이 적죠.
*말해두건데 분명 고등학생, 성인중에서도 동방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제가 서울, 분당에 살면서 싫어한다는 사람은 봤어도 좋아한다는 사람은 한명 보지 못했습니다. 작년에 서울에서 열린 동방신기 콘서트가 끝났을때 근처를 지나간 적이 있는데 고등학생은 몇명 없었습니다. 남자는 초등학생 아빠 빼고는 못 봤구요.
3. 그리고 서태지 요즘에 방송에 안나오는 이유.
서태지의 스타일 입니다. 과거 90년대 초반까지의 가수들에게는 휴식기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당시 가수들은 특별한 휴식기를 갖지 않고 늘상 활동을 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 활동후 휴식기를 언론은 당시에 잠적이라고 표현했고 서태지는 언론에 이것은 잠적이 아닌 잠시 활동을 멈춘거라고 해명을 해야 했습니다. 그만큼 이런 행동은 당시에는 신선한 것이었지요.
이제 이런 휴식기가 가수들에게 재충전의 기회를 주고 상품성의 소모를 줄여주는 효과때문에 보편화 되었지만
솔로 컴백 이후 서태지가 그러면 더 특별해 보이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가 휴식기에 들면 컴백할때까지 시간이 길다는 점, 서태지의 컴백이라면 다른 가수와는 뭔가 다를지도 모른다라는 점, 휴식기 동안 그에 대한 정보를 거의 얻을 수 없다는 점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서태지가 요새 방송에 안나오는 이유를 자세하게 말하면
1. 서태지는 음악가이기 때문에 여타의 아이돌 그룹처럼 음악을 기계적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거기에 서태지 그만의 완벽주의가 컴백의 시기를 늦추는 것이죠.
2. 서태지는 일본에 거주하는 동안 컴백기간을 제외하고 한번도 한국에 온 적이 없습니다.
그곳에선 서태지를 알아보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마음껏 밖에 나다닐 수 있기 때문이죠. 같은 이유로 한국에는 오지 않는 거죠.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엔 극장에서 영화한편 볼 수 없어서 작업실에서만 살았으니까요.
나머지는 시간이 생기면 쓰겠습니다.
2006.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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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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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2.21 1987. 1989. 1990.1 1990 1992. 1992.3.23 1992.12.20 1993.6.21 1994.1.15 1994.8.10 1995.10.5 1996.1.31 1996.2.10 1996.6.7 1998.7.7 |
| 서울출생 |
태지매니아 사이트에서 퍼왔어요.
북서울공고를 다니다가 자퇴해서 시나위에 베이시스트로 들어갔구요
91년에 서태지와 아이들을 결성해서 92년 '난 알아요'로 완전 대박터트렸죠
인기가 그땐 말을 할 정도가 아니었다고 해요. (전 그때 어려서 하하;)
신인상과 대상을 한꺼번에 받았었죠
그리고 2집 '하여가'때는 각종 음악차트 정상을 싹쓸이하고
2주만에 시중에 풀린 앨범들이 다 동이 났다고 해요.
그리고 복장불량, 머리불량으로 TV출연정지도 여러번당했었지만
인기는 아무래도 식어들수가없었죠
그리고 4집 '컴백홈'때 이 노래듣고 가출청소년들이 다시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으셨겠죠?
그리고 4집에 수록된 '시대유감'이라는 곡이 지나치게 사회비판적이라고
해서 공윤이 가사수정을 지시했는데 서태지가 가사를 지워버리고
연주곡만으로 앨범에 실었어요.
그 뒤, 공윤이 서태지를 고발해서 4집이 판매위기상황에 처했는데
"서태지와 아이들 음반이 제재를 당한것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해달라"는 탄원서를 계기로 해서 국민회의에서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고, 진실규명에 나섰었습니다. 그 뒤 서태지팬들이 서명운동을 하고
시위도 하고 해서, 공윤이 고발을 취하했었죠. 그리고 공윤심의가 무너졌어요
그뒤 1996년 1월 31일, 창작의 고통으로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했었구요.
1998년 7월 7일, 서태지 5집 (솔로1집)을 내게 됩니다
방송에 얼굴한번 내비치지 않았지만 선예약주문만으로도 앨범판매량이
100만장을 넘어갔었구요.
2000년 서태지가 삼각김밥머리로(;) 팬들 곁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방송3사와 모든언론기사에서 탑기사로 장식될만큼 극적인 것이었습니다
그 뒤에 빨간레게머리아시죠? 6집활동했었구요
2004년 1월 말, 7집으로 팬들 곁에 다시 돌아와서 왕성한 활동 했었구요
2004년 앨범판매량이 1위였죠.
시간에 쫒겨 적다보니 제대로 적지 못한점이 많네요;
앨범판매량이나 언론기사같은것들도 좀 많이 적었어야 했는데..
더 많이 알고싶으시면 http://www.seotaiji.com이나 http://www.taijimania.org/로
들어오세요~
언론에서 서태지죽이기 어쩌고 하면서
2006.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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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태지매니아, 머리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 결성, 1집 '난알아요' 발표
1998년 7월 솔로 1집 'Take Two' 발표
다른 더 자세한 부분은 여기에 들어가보시는게 좋을듯하네요
http://www.seotaiji.com/ 서태지 닷컴
2006.02.06.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
아마 이거 모르시는 분 많을걸요.재미로 알아두세요.
서태지 할아버지가 연세대 음대 학장님이셨습니다.인간시대에도 그런 설명이 나오지요
글구 2집에 수시아 (유일한 나) 란 노래 제목도 그분이 지어주셨다고 했습니다.
서태지 최고의 뮤지션이죠.그의 살아온 약력만 봐도...자체가 음악인생이죠
중학교때 친구들과 '하늘벽밴드 결성.
고등학교때 '활화산밴드로' 활동.
고등학교 자퇴 시나위에서 활동.
시나위는 한국 헤비메틀계의 전설그룹입니다.
신대철의 제의로, 고등학생의 신분이던
서태지씨는 시나위의 베이시스트로 영입됩니다.(보컬 김종서)
이때 서태지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게 됩니다.
그리고 시나위 4집을 발표합니다.
해체를 했던 시나위가 4집으로 돌아온거죠.
미성년이였던 서태지는 20살이라고 나이를 속이고
시나위 프로무대에 데뷔를 하게 된거죠
서태지씨는 인터뷰에서
당시 전설적인 록그룹 시나위의 맴버가 된것을 믿지못할 만큼 기뻐했다죠.
굉장히 연습벌레라고 들었습니다.1년동안 집밖에 한번도 안나온적이 있었다고 했죠.
전설적인 유명한 얘기로
시나위 해체 전... 서태지가 탈퇴를 했는데
신대철씨가 서태지씨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켰는데
그 이후로 계속 연습실에 오지않아 탈퇴의 의사가 있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2006.02.06.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
일단 서태지와아이들이 데뷔했을때의 시대를 상상해 봅시다.
10대들은 학교에서 선생님말씀 고분고분들으며 공부나했지 사회적으론 아무 영향을
못끼쳤습니다. 당시엔 뭐 대학생이나 되고서야 뭐 어른취급받고. 그나마 존재감있었지요.
그런데 서태지와아이들이 나오고 10대들이 음반시장의 주 수요층으로 등장했습니다.
경제적으로 가치가 있다보니 많은 기업들이 이젠 10대들을 타켓으로 상품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다보니 10대들은 점점 사회에서 중요위치를 점하게 되었고 여태까지 참고있던
학교나 사회에 불만등을 서태지와아이들 노래를 통해서 표출했습니다.
학교에선 다들 교실이데아를 들었고 컴백홈을듣고 가출청소년들이 집으로왔으며
시대유감 가사를 공륜에서 저지하자 10대들은 자신들의 자유를 저지당한양
공륜과 싸워 폐지시켰습니다. 서태지와아이들 노래를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할수록
예전처럼 어른들이 무시하지 못하고 10대들에게 조금씩 양보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당대 서태지와아이들에게 모든 젊은이들이 열광할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서태지와아이들 아니였으면. 지금 너무 당연하게 보이는 10대들의 목소리가
과연 어른들한테 통했을까 의문입니다. 뭐 누군가 이뤄냈겠지만 어쨋든 현시대에는
그게 바로 서태지와아이들이였습니다.
유일하게 방송국이랑 대등한 위치에서 상대할 수 있었고.
정치인들도 종종 접촉하는 등.
사회에서 가수의 위상이 높아졌다고나할까.
요새는 가수로 인지도 생기면 탤런트하고 쇼프로 나가고 그러지만
당시엔 영화배우나 탤런트가 성공하면 가수되서 음반내고 그랬던 시대입니다.
그 이후로 90년대는 어쨋든 정말 음반시장의 초호황기를 맞이할 수 있었고.
정말 서태지씨가 데뷔한게 젊은이들이나 가요계로선 보물이였을겁니다.
뭐 여태 서태지와아이들이 당대에 문화아이콘이였다는걸 얘기해봅니다.ㅋ
다른건 대충 위에 다들 써주셨길래.ㅋㅋ
2006.02.11.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