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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서태지에대해알려주세요~0~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11,173 작성일2005.03.20
숙제가 조아하는 가수에대한건데요
서태지씨에대해서 마니 마니 알려주세욬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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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노래
업적(?)
얼마나 인기있는지...
그밖에등등,,,님께서들려주고픈 말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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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

님이 원하시는 답변이 될지 모르겠으나

저의 생각과 그리고 제가 가지고 있는 자료를 올렸습니다^^ 상당한

스크롤의 압박으로 읽기 귀찮으실수 있겠으나 한번 꼭 읽어보세요.

 

첫번째부분은 저의 생각이구요. 두번째는 서태지의 시나위부터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까지의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세번째 마지막글은 서태지와 아이들 당시 매니저였던 최진열씨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아마도 이 글을 통하여 서태지라는 뮤지션과 인간 정현철에 대해 조금은 느끼실수

있을겁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뮤지션에 대해 알수 있는건 음악을 통해서랍니다.^^ 

 

 

 

서태지는 어렸을적부터 무언가를 만들고 기계를 조립하는 것에

흥미가 있었다고 하네요. 서태지의 아버지의 직업이 발명가인만큼

서태지도 무언가를 만드는것에 흥미를 보였대요.

 

그래서 그는 서울북공고에 입학하게 됩니다. 건축토목과였던가..??

 

그 학교에 입학한 이유는 서태지 자신이 그쪽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었겠죠.

 

하지만 서태지는 고등학교 2학년때 자퇴를 합니다.

본인의 의사로 결정한거죠..

 

자퇴를 한 이유는 음악을 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음악을 하는데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했겠죠.

그리고 그는 그때 락을 하기 위해 머리를 기르려고 했는데

학교에 다니면 머리도 기를수 없으니..

그래서 자퇴를 하기로 한거죠. 정말 음악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한거죠.

 

그리고 그는 열일곱의 나이로 시나위의 베이시스트가 됩니다.

 

여기서 오해하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서태지가 결코 가벼운 생각으로 자퇴를 한것이 아닙니다.

아래는 서태지가 공부하기 싫어하는 10대들에게 해주는 조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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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팬레터를 읽어 보니 공부가 하기 싫어서 고민이라는 친구들이 있더라구.

내가 만점의 답을 줄 수야 없겠지만 오빠 입장에서 형 입장에서

그리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우선 공부가 무조건 하기 싫은 건가 아니면 공부말고 꼭 하고 싶은 다른 일이 있어서인가를 생각해봐.

혹시 다른 일이 있다면 네가 얼마나 그 일을 하고 싶어하는가를 생각해.

만약 그 일이 네 목숨보다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면 난 그 일을 해도 된다고 생각해. '목숨보다 소중'하다는 조건을 내거는 건

여기가 한국이기 때문이야.

우리나라가 좀더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라면 굳이 목숨을 내걸지 않아도

공부 이외의 다른 선택이 가능하겠지.

하지만 우리나라는 사실 아직 그러지가 못해.

현실을 무시할수 없잖아.

그냥 무작정 공부가 하기 싫다면 '아무것도 하기 싫은'마음이 어디서 생겨난건지를 곰곰이 생각해봐.

그리고 그 문제부터 해결해야지.

그 경우를 모두 헤아릴수야 없겠지만 혹 부모님과의 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친구가 있다면 난 이런 얘길 해주고 싶어.

오직 대화만이 문제를 해결한다고.

나도 누구보다 부모님과 많은 대립을 겪었던 사람이야.

하지만 난 늘 안방에서 부모님과 마주앉아 무릎꿇고 얘기를 나눴지.

그래서 난 결국 부모님을 설득했고 최소한 내 입장을 이해시켜드렸어.

음악한다고 학교를 나올 때도 그렇게 했지. 물론 쉬운일은 아니야.

내가 가출했던것도 그런 이유고...

하지만 담을 싸고 입을 다물고 있어봐야 해결되는 일은 없어.

우리 부모님들 결국 지금 나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이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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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어떤 분들은 서태지보고 외국가서 돈 다쓰고 한국에 돈벌러 온다고

하는 분들도 계시던데.. 엄청난 오해입니다.

 

외환관리법이 있기 때문에 외국에 나갈때 가지고 갈수 있는 금액에는 한정이

되있구요.

또한 서태지는 정말 검소한 사람이기 때문에 돈을 다 써버릴수 없죠.

서태지의 정규앨범과 비정규앨범판매량만 합쳐도 1000만장이 넘습니다.

그럼 서태지가 엄청난 때돈을 벌었다고 할수 있구요. 그 외에 씨에프도 있고..

 

서태지는 엄청난 돈을 벌었고 서태지 본인이 돈은 많다고 말했어요.

"미국가서 돈떨어지니까 컴백한거지- 하는 말들. 저도 많이 들었어요.

근데 그건 정말이지 잘 모르는 사람들인게

아니, 외환관리법도 모르나?

한번에 갖고 나갈수 있는 돈도 정해져 있는데다가

외화송금도 한도액도 딱 정해져 있는건데 마치 한국에서 번 돈을 미국으로 다 가져가서

써버린 것처럼 말하다니요.

그리고 미국에서는 생활비외에는 그다지 들어갈 돈이 없었답니다.

그리고- 나 태지는 유명한 서쿠르지라서 절대 돈이 떨어질 정도로 그 기반이 약하지도 않구요." -서태지 인터뷰중.

 

그리고 서태지는 공연에 막대한 투자를 합니다.

한번 공연할때 20~30억을 투자하구요. 물론 자신의 돈으로-_-;

각종 공연 효과와 음향에..투자하겠죠. 이티피때 경우 외국 뮤지션을 초청하기

위해 그런것도 있고..

또한 콘서트 할때 보험도 들구요.

 

그는 음악에 있어서 까다롭고 철저한 완벽주의자 라고들 합니다.

정작 본인은 완벽주의자가 아니라고.. 다른 사람들이 해주는게

성에 안차서 자신이 직접 하는것 뿐이라고 하지만요.

 

그와 함께 일하게 된 스탭들은 많은걸 배우고 좋은 경험을 쌓을수 있는거라고

하네요.

 

이건 들은 얘기인데. 음악캠프나 인기가요에 출연할때 5000만원을 투자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우리나라에 없는 외국의 음향기기들을 가져와서

직접 셋팅했다고도 들었구요.

 

 

서태지는 제가 존경하는 뮤지션중 한명인데요.

제가 '특별히' 서태지를 존경하고 동경하는 이유는

 

음악에 관대한 뮤지션이기 때문입니다. 제 주관적인 생각으로

서태지는 음악에 관대한 뮤지션이라고 생각하고 그의 재능도 훌륭하기 때문이죠.

또한 프로근성과 엄청난 노력.. 정말 멋지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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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그룹시나위는 1집<크게라디오를 켜고> 2집<새가되어가리>에 이어 다소 부족했던

3집이후 멤버갈등으로 분열되었다가 89년 드럼 오경환과 베이스 서태지를 영입해

안정감있고 화려한 사운드를 갖추고 해회진출의 꿈을 실은 4집앨범

를 발매했다.

 

 

 

-당시베이시스트 서태지에 대한 언론평

" 현대적 감각과 미래지향적 연주센스로 속주와 해머링 메틀과 소울적 분위기가

매력적인 베이스연주"

 

-다시 시나위 해체

해외진출의 부푼꿈을 안고 출항했던 시나위는 그러나 멤버간의 음악적 견해차이와

기획과준비부족으로 참담하게 실패해버린 공연의 후유증으로 그만..해체하게 된다.

시나위를 탈퇴한 서태지는 시나위시절의 풍부한 음악적 경험을 바탕으로, 실패와

교훈까지를 가슴깊이 간직한 채 이후 새로운 길을 모색하게 된다.

 

-그의 독특한 스타일

당시에도 파격적인 의상과 염색등의 이미지연출이나 어린나이임이 믿기지않을정도의

무대메너를 지닌 완벽한 자기관리로 독특한 인상을 남겼다. 또한 일반록커들이

배척하는 흑인음악,테크노등 다양한 음악에 관심을 가졌고, 실제로 컴퓨터음악에

관심이 많아서 데모테입을 만들기도했지만 시나위에는 반영되지 않았다고 한다.

 

 

-일지

89.10 시나위재결성

90.4.15 일본글룹 ANTHEM과 공연

90.6.9 일본 FLOWER EXPO 90 출연

90.8.25 88체육관 공연

 

 

<1991>

서태지와아이들 결성

 

-시나위를 그만두고 새 록그룹을 만들 결심하게 된 서태지는 마땅한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당시 한국여건에 그룹만들기가 쉽지않음을 깨닫고 도일을 결심하게 된다.

그러던중 심심풀이로 배우던 컴퓨터음악에 심취하게 되고 한국어로 랩을 만드는 실험을

하고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때 만들어진 노래가 <난알아요> <환상속의그대>

<너와함께한 시간속에서>이다.

 

-메틀을 기본으로 하여 테크노,랩,펑키,소울등이 가미된 젊고 새로운 음악이 만들어지자

이 새로운 컨셉과 음악에 맞는 랩댄스그룹을 만들어 주류에 뛰어들 결심을 하게된다.

이리하여 만들어진 그룹이 90년대 음악과 문화의 상징이 된 <서태지와 아이들> 이다.

 

 

-일지

서태지와아이들 결성

반도음반과 계약

 

<1992>

 

랩,테크노,펑키,소울,메탈,뽕짝까지 어울러진 서태지의 음악은 기존가요계에 대한

반란이었다. 새롭고 실험적인 음악을 세상에 선을 보인 서태지아이들은 데뷔즉시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키며 일약 신세대의 상징이자 최고의 인기스타로 단숨에 군림하게 되었다.

<1집자켓>

 

그러나 그들이 가는 길목들은 아무도 먼저 가본적이 없는 길이었기에

그들의 음악적 행보는 때론 험란한 투쟁의 과정이었다.

그들이 1992년동안 가요사적으로 처음으로 이룩해냈던 일들을 살펴보자

 

- 국내뮤직 비디오시대의 개막

라디브콘서트와 실황뮤직비디오를 시중에 시판함으로써 가요계에서 본격적인 뮤직비디오붐을

일으켰다. 당시 마이클잭슨, 뉴키즈온더블록,마돈나들 외국유명가수의 뮤비가 시장을 거의

점령한 상태였다.

 

- 손배소 불법 뮤직비디오

가수의 권리찾기. 저작권 제자리 찾기의 싸움.

본인의 사인없이 메니저에 의해 게약서가 사용되어 뮤직비디오가 제작 ,발매되는 일이

비일비재하자 자작권침해로 프로덕션과 전매니저를 고소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이례적인 일.

가수는 음악의 창조적인 생산자이지 꼭두각시가 아니라는 이러한 그의 신념의 가수생활

끝까지 관철된다.

 

-요요기획설립, 독자적 시스템의 구축

기획사와 매니저에 가수가 종속되어있는 시스템이 아니라 가수가 기회가와 매니저를

고용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또한 자신의 집에 스튜디오를 갖추어 음악감독으로서의

면모도 구축하게 되었다. 이것은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것으로 가수가 봉건적인

시스템을 극복하고 창작에 있어서의 자유를 획득한 부분이다.

 

- 서태지신드롬

음악과정 전반을 혼자서 해내는 높은 음악성과 거침없는 육체적 표현, 기성에 얽매이지않는

자유로운 이미지는 그들을 새로운 세대의 심벌로 만들었고 억눌려있던 한국젊은이들의 욕망에

불을 지믈며 하나의 서태지신드롬을 형성하게 되고, 기성세대와 구별되는 신세대집단을

형성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일지

92. 3.23 서태지와아이들 1집앨범 발매

3.29 KBS 젊음의 행진에 처음 출연

4.23 MBC 특종티비연예에 출연

8.16 서태지와아이들 첫번째 라이브콘서트

10. 일본 첫 방문

10 '92 내일은 늦으리- 환경콘서트 에 참가(나를 용서해주오)

11.20 TECHNO MIX & LIVE 앨범 발매

12.9 TV저널 올해의스타상 수상

'92 서울가요대상 최고인기상 수상

스포츠서울 올해의 가수상

'92 골든디스크상 수상

MBC 최고인기가요상 <난알아요> 선정

 

 

 

 

<1993>

 

1집의 폭발적인 인기아 주목에 대한 부담과 기대를 한몸에 안고 발표된

2집 <하여가>는 또다른 충격이었다.

한층 강화된 메틀에 속살포처럼 쏟아지는 랩을 가미하고 국악과도 접목시킨

대단한 음악 <하여가>는 각종 가요챠트 정상을 싹쓸이하고 2주만에 시중에 풀린

앨범이 동나고 2백만장 이상이 팔려나가..더욱 강화된 서태지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 KBS TV출연 금지와 보수세력의 반격

2집 음악의 분위기에 맞게 연출된 레게파마 와 힙합패션이 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미칠수 있다는 이유로 KBS에서 출연금지조처를 당하자..이와 때를

같이해서 보수언론들의 대반격이 시작되었다.

중세마녀사냥을 연상시키는 국민일보 사설 를 비롯하여

한국일보<서태지출연제지 잘했다> 조선일보<연예인불량복장머리 '위험수위'>등의

논지는 당시의분위기를 짐작케한다. 이에 서태지는 유연하게 대처했다.

 

- 일본활동2

일본에 음반을 내고 정식으로 진출을 준비하는 협상을 시작했다.

편곡문제와 일본방송,콘서트의상문제..가장 크게는 일본어로 녹음하길 요구하는

소니사와 한국어를 고집하는 서태지사이의 쟁점형성으로 협상은 장기화되었다.

 

- 전문 이미지메이킹회사 IVY프로덕션

잇따른 판권문제나 불법사진집등 계약에 있어서 미숙했던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전문이미지메이킹회사를 통해 초상권, 저작권등에 대한 확실한 대응을 시작하게됨.

IVY는 그전에 정치인 이미지케이킹작업을 했으며 가수로서는 처음있는 일이었다.

 

- '93마지막축제 라이브콘서트

국내공연으로는 사상최대인 8백KW의 조명시설, 특수조명, 컴퓨터시스템의 진행,

3층건물규모의 초대형멀티비젼, 전곡 라이브등으로 한국공연사의 새장을 연 공연으로

평가를 받음.

 

-일지

93.4.14 일본팩스뮤지카에 참가

6.19 특종티비연예에 2집컴백

6.26 서태지와아이들 2집 발표

10 '93 내일은 늦으리 참가(상실)

11 아시아뮤직패스티발 참가(일본)

12 대한민국 영상음반 대상 본상

SBS 서울가요대상 작곡상 기획상 올해의 가수상 최고인기가수상 수상

MBC 10대가수가요제 본상

KBS 가요대상 본상

12.23 라이브콘서트 '93 마지막축제

 

 

<1994> 전반

 

-일본활동4 -한국음악에 대한 인식을 전환!

94팩스뮤지카에 한국대표로 참가함.

팩스뮤지카는 음악을 통해 아시아, 태평양지역의 평화를 추구하자는 취지로

84년부터 시작된 아시아권 톱가수들의공연무대.

서태지와아이들은 <이밤이깊어가지만><너에게> 믹싱한 곡들과 <하여가>를

불러 열광적인 반응을 얻어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국가요는 조용필이아 계은숙,김연자와같은 성인취향의 음악으로

인식되어있었기때문에 그만큼 서태지의 무대는 하나의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

 

 

- 뮤직비디오에 관한 청소년들의 의식변화

팝뮤직이 대부분을 장악하던 뮤직비디오시장이 활성화되고 음악전문채널 MTV개국,

CATV음악채널등은 뮤직비디오의 질적인 향상에 더욱 기폭제가 되었다.

서태지가 이부분에 끼친 영향을 지대하다.

 

다음은 94년초 뮤직비디오에 관한 관심도를 알아보기위한 설문.

- 가장 좋았던 뮤직비디오?

1.하여가(서태지와아이들)

2.93마지막축제(서태지와아이들)

3.너에게(서태지와아이들)

4.우리는(듀스) 핑계(김건모)

 

-뮤직비디오를 가장 잘 만든다고 생각하는 가수?

1.서태지와아이들

2.듀스

3.김건모

4.이승환

5.이승철, 크래쉬

 

-일지

94.1.15 서태지와아이들 '93마지막축제 라이브앨범발매

7.29 국제영상음악제 참가 (7.29- 7.30)

 

 

 

 

<1994>-후반

 

신세대취향의 강한메시지의 얼터너티브록으로 돌아온 서태지와아이들

록이나 얼터너티브음악에 대한 서태지의 본원적 욕구가 마침내 표출된 것.

 

-3집컴백콘서트, '94 여름 새로운 도전

94.8.13-15일 서울 잠실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가진 신곡발표회.

1,2집 히트곡과 함께 <발해를 꿈꾸며><아이들의눈으로><교실이데아>등의

신곡일부를 불렀다.

 

- 3집반응 -시사주간지영역으로까지 번진 서태지론

분단,교육현실등 진보적 접근.. 10대들에 강한 호소력(한겨레)

획일적 교육비판<교실이데아>도 큰 호소력(문화일보)

대중적 기발함보다 음악적 깊이와 성숙도면에서 한층 진일보한 태지보이스(GMV)

물에 기름탄 엉뚱한 시도,파괴력 잠재된 불발탄 우려(주간한국)

해비메탈 도입 통일,교육주제 담은 3집충격, 음악완성도은 떨어져.

끝업이 도전하는 혁명아(한겨레21)

 

-일본활동5 (94.10.24-)

2년간의 지난한 협상끝에 드디어 일본대중음악무대에 본격적 데뷔.

1,2집 히트곡이 수록되어 소니안티노레코드사가 출반한 일본데뷔앨범은

국내가수로는 처음으로 수록곡 모두 우리말로 실리는 쾌거를 이룩했다.

 

서태지의 의지를 알수있는 인터뷰하나..(GMV 94.11인터뷰)

기자: 순전히 한국어로만 된 노래들을 앨범으로 발표하게되면 홍보와 판매에

한계가 있지않을가?

서태지: 우리가 분명 한구가람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심어주려는 것이구요,

나중에 서비스차원에서일본어로 한곡정도는 녹음할수 있겠지만 처음부터

일본어로는 전혀 하고싶지않아요. 그리고 우리의노래가 한국노래들이기때문에

음악을 제대로 전달할수 있는 언어는 한국어뿐이라고 생각해요.

미국엘 가도 마찬가지죠.

 

 

 

- 사탄설(94.10-)

서태지노래를 거꾸로 들어보면 사탄의 메시지가 있다는 괴소문이

전국을 강타해다. MBC뉴스데스크에서 문제가 된 <교실이데아>를 직접 돌려틀어

사실무근임을 밝혀낼을정도였다. 서태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믿으려하지 않았고 일부종교,음악가들은 사탄찬양노래로 지목하기까지하는

헤프닝이 이어져 ..결국 94년 연예계 10대뉴스로 '사탄설'이 오르는 지독한

악마논쟁의 한판을 치뤘다. 서태지와아이들은 거의 방송활동을 하지 않았다.

 

-학계,언론계가 뽑은 광복50년 한국을 바꾼 100인에 선정(월간중앙)

메시지가 강한 3집앨범이 찬사와 비판의 극단적인 평가를 받으며 3집이후로 서태지는

90년대 문화적 담론의 주인공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일지

94. 8.13 서태지와아이들 3집 앨범 발매

'94 여름 새로운 도전, 3집발표콘서트 (8.13-15)

10.21 소니안티노레코드사 일본판앨범발매 (SEOTAIJI ND BOYS 1.2 BEST ALBUM)

10 일본음반 발매기념 TOUR

12 TV저널 선정 94최우수스타상

94 영상음반대상 골든디스크상

 

 

<1995>-전반

 

-'95 다른하늘이 열리고 -6일간의 신체험.

1월11일부터 6일간 잠실체조경기장에서 열린 3집 콘서트.

4억을 투입하고 메이어스피커음향시스템을 국내에서 처음선보여 서태지 스스로

외국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수준의 콘서트라고 자부했다.

이 3집콘서트는 사탄설,군대기피설등의 악재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국내콘서트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95.1.9 타임지 MUSIC SOUTH KOREA TURNING THE BEAT (95.1.9)

'남한음악의 비트를 바꿔' 라는 제목으로 서태지와아이들이 타임지에 소개되었다.

1월9일자 타임지는 세계각국의 대중문화를 알리는 사이팅즈(SIGHTINGS)란에 3집

음반의 내용과 의미를 다뤘다.

'정치,사회문제를 다룬 노래는 대중의 인기를 끌 수 없다는 통념을 깨고 무거운

주제의 노래를 히트시키는데 성공했고, 작은 나라에서 총 5백만장 이상의음반판매고를

올린 톱스타'라고 설명하고 멤버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다.

서태지의 외국진출의 포부도 함께 소개되었다.

 

 

-95.3 일본<논노>지에 소개

누구도 하지 않은 음악이기에 우리는 한다. 서태지의 음악에 대해 소개.

 

 

-일지

95. 1.11 3집콘서트 '95 다른하늘이 열리고 (11~15 서울올림픽체조경기장)

2. 21 일본2집앨범 발매- SEOTAIJI AND BOYS 11 JAPANESE VERS

 

 

 

 

 

 

 

 

 

 

 

 

<1995>-후반

힙합과 얼터너티브록 두가지를 주축으로한 4집의 타이틀 <컴백홈> 은

느린 템포의 갱스랩의 형식을 빌렸으면서도 한국적 리듬감을 읽을 수 있는

서태지의 감각과 '아이들'의 춤이 잘 융합되어 팀색깔을 빛냈다.

동시에 3집에 이어 더욱 성숙된 얼터너티브록은 장르를 스타일화해내는데 성공했다.

첫날 30만장 예약주문 100만장을 비롯 무려 200만장 이상이 팔리는 네번째 돌풍을

일으키며 공륜과의 싸움이라는 이슈가 더해져 사회 전반적인 서태지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 D-DAY 카운트다운을 붙이며 4집에대한 적극적인 홍보

3집에 비해 4집을 언론에 적극적으로 홍보한 것은 3집과는 달리 쉽게 공감갈 수 있는

내용에 웬만한 무대에서도 소화가능한 노래이기때문에 방송활동에 자신감을 보였던 것.

 

- <1996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때> KBS 방송금지 (95.10)

반사회적 가사에 대한 수정요구에 서태지거부

 

- '95 내일은 늦으리 환경콘서트

DJdoc, Ref,강산에, 김건모,룰라,솔리드,NEXT,윤종신 등의 가수들이

대거 참여한 이 콘서트의 백미는 역시 서태지와아이들. 잠실주경기장을

가득 메운 6만명의 관중은 서태지와아이들에게 집중 환호했다.

 

- 1차전: 시대유감 사전심의논란 (95.9.29)

지나치게 사회비판적인 내용이라해서 공윤이 시대유감의 가사수정을 지시하자

서태지가 가사를 전면삭제하고 연주곡으로만 실음.

 

 

-2차전: 공윤 서태지고발 4집 판매금지위기

사전심의에 없던 가사가 무단삽입되거나 바뀌어졌다는 이유로 공윤이 4집을

검찰에 고발함. 필승에 <빌어먹을> 이 삽입되고<너의의미를 없앨거야>가

<널 지울거야>로 <제압>이 <부모의제압>등으로 바뀌었다는 것.

 

-3차전: 국회진상조사단 구성

"서태지와아이들 음반이 제재를 당한것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해달라" 는 탄원서를 계기로 국민회의에서 진상조사단을 구성.

진실규명에 나섰다.

 

- 4차전: 번지는 서명운동, 공윤고발취하

반도음반이 사과광고를 게재하고 시중판을 회수키로 하는선에서 검찰고발을

취하. 그것은 pc통신망 중심으로 불같이 번진 팬들의 공윤항의여론 때문.

이후 이런 여론은 가요사전심의제 철폐의 기폭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때문에 나온것이 "삑!~"소리가 담긴 역사적인 4집 수정판이다.

 

-빅쇼 '세대교감'(95.11.28)

김종서,서태지와아이들이 신세대가수로는 처음으로 빅쇼무대에 함께 올라

음악적인 세대차이를 극복한 감동적인 무대를 선보였다.

 

- "서태지론" 대두, 주목받는 문화인물

10개 전문가집단으로부터 문화예술인 5위로 선정(시사저널 94.10)

인물로 보는 1996년 주목받은 각계50인 대중문화부분-서태지

절대자유와 끝없는 저항을 위한 음악세계(월간 말 95.12)

괴력의 본질은 음악에 대한 열정(월간조선 95.12)

비지니스의 천재 서태지(WIN 12)

10대 등에 업고 공윤 굴복시킨 '서태지파워' (신동아 96.1)

 

-일지

10.6 서태지와아이들 4집앨범발매

12.31 MBC 가요대상 최고인기가요 <컴백홈> 수상

 

 

 

 

 

<1996>

서태지와아이들 은퇴

 

 

- 오래전에 준비된 이별. 4집앨범에 실린 <굿바이>는 그 이별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서태지와아이들 팀의 음악적,육체적 한계가 올 시에는 미련없이 팀을 해체하겠다는

평소의 말이 현실로 다가온 것. 그러나 90년대 문화의 심벌이 되어버린 서태지와아이들의

은퇴선언은 현실화되는 순간 전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몰아넣는 큰 이슈가 되었다.

- 당시 뉴스보도보기 / 은퇴선언문 보기

 

- 서태지와아이들 기념사업회 발족 (1996.2.26)

서태지와아이들의 전국팬클럽연합회가 주축이되고 학계,언론계,대중문화종사자등

700여명이 1차 발기인으로 참여한 서태지기념사업회가 공식 출범했다.

 

 

- <시대유감> 싱글음반 발매 (96.6) '토막난 물고기도 하늘 나는 꿈을 꾼다'

95년 9월 공륜의 사전심의에서가사수정 지시와 함께 반려되어 연주곡으로만 실렸던

<시대유감>이 음반 사전심의제 폐지에 맞추어 싱글앨범으로 발매되었다.

서태지와아이들을 물고기로 비유하여 '희망을 찾아나섰지만 칼든 사람에게

토막난 채 쓰레기통에 쳐박히는 물고기는 그러나 날아오르는 꿈을 잃지않는다'

라는 메시지가 재킷에 담겨있다.

 

 

-컴백홈 MTV 뮤직어워드 수상

서태지와아이들 뮤직비디오 <컴백홈>이 미국 MTV비딩뮤직어워드 부문 가운데 아시아

시청자들이 뽑는 '아시안 뷰어스 초이스'부문에서 인도네시아,필리핀,태구그이 가수들과

치열한 경합을 벌인 끝에 본상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시상식에 서태지는 참석하지 않았다.

 

 

- 96년 10대뉴스

대학생들이 뽑은 이 시대 최고의 연예인 (스포츠조선)

연예계 최고의 톱뉴스 1위 ,서태지와아이들 은퇴(연예가중계)

96년 방송연예계 10대뉴스, 서태지와아이들 충격은퇴(TV저널)

네티즌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 서태지은퇴 1위 (한국일보)

국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문화계인물로는 유일하게 서태지(경향신문)

기자200명 앙케트 영향력있는 인물 베스트10 10위 서태지(뉴스메이커)

 

- 일지

1.19 MBC인기가요 베스트50 마지막둑도공연

1.31. 성균관대학교 유림회관에서 은퇴기자회견, 서태지와아이들 은퇴

2.27 서태지와아이들 굿바이베스트앨범 발매

3.31 서태지와아이들 굿바이뮤직비디오

6. 7 공연윤리위원회 사전 심의제 폐지

7.10 서태지와아이들 <시대유감> 싱글 발매

9.4. <컴백홈> 뮤직비디오 MTV 뮤직비디오 아시안뷰어스쵸이스 어워드 대상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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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를 "놈"이라 할수있는 사람을 만났다
"놈"?웬놈?..누가?어떤놈이..?
오우...노우..!!절대 흥분할 일이 아니다
"놈"도 "놈"나름 아닌가...??

그 놈은 제겐 "신"이예요..어리지만 결코 어리지않은 작은
거인같다고나 할까??막네 동생뻘되는 태지에게 인생을
배웠다면 믿으시겠어요?!
태지놈은,제 영원한 "님"입니다...

어쨌거나...이제 그가 말하는 서태지를 향한 "놈"시리즈를
들어보자..사실을 "님"인 그많은 기억들을...

-----어린놈-----

92년 초여름 마포의 사무실에 태지가 나타났다
현석이와 주노가 태지를 데리고 온 것이다...
(현석이와 주노는 최진열과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있던
서이였다는군...)

현석이 왈.."형!!얘가 태지예요.."
짜자잔...오..그래?어이 반가워요 하고 태지쪽을 돌아보는
순간..에잉??웬 미소년...??아이고 예뻐라...
눈망울이 꼭 천사같네...!!
이게 태지의 첫인상이었다..

T셔츠에 반바지 너무도 편한차림을 하고는 가만히 웃고있는
모습이 어찌나 천진한지..정말 한 15살 소년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20살의 어엿한 청년이였는데도)

그렇게 처음 만난날,태지에게 들은 말이라곤..
"안녕하세요..반갑습니다"이게 다였단다
그때부터 최진열은 알아봤다나...?
음...이 친구는 말이없고 생각이 많은 친구군...이렇게..

----지독한 놈----

그 흔한 사우나한번 같이 간적 없어요
4년을 함께 했는데도요...
현석이랑 주노랑은 무지하게 다녔죠...피곤할때마다
"야!우리 사우나가자..."그게 기본이였는데요..뭐

화장실에서도 절대 밖에서(?) 일 보는 일이 없구요...

근데요..그런것들이 다 태지의 짜여진 각본이라는 생각을
해요..자기관리는 완벽에 가까울만큼 철저했던 거죠..
가장 가까이있었던 저에게 조차도요...
타고난 스타 기질이라고나 할까..어쨋든 대단했어요..
지독하고요...

밥을 먹을때도..기가막히게 철저해요
태지는 식성이 까다롭거나하지는 않는데요...
굳이 뭘 좋아했냐고 물으신다면 돼지고기 삼겹살을
즐겨 먹었다고 대답하겠어요

아..근데,왜 먹는것도 철저하다고 하느냐..!
절대 많이 안 먹어요..한 숟가락만 더,이런게 없다니까요
하루 세끼 그저 때가되면 밥을 먹는데,그 좋아하는
삼겹살이 상에 올라와 있어도 태지의 적량은 밥 반공기?
아니,그보단 조금 더 먹나?
하여간 정해진 양이 있어요..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안먹어요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존경스러울 정도였다니까요
자신에겐 엄격하고...
남에겐 관대하고...그게 태지에요...

----무서운 놈----

태지는 근성으로 똘똘 뭉쳐있어요.,
프로 근성이요..
오죽하면,아니 쟤는 잠도없나 생각할 정도였다까요
지방엘 가거나 할때에도 처에서 절대 자는일이 없어요
중얼중얼 손장단을 맞추기도 하고,항상 뭔가를 한다니까요
그래서,뭘 저리 궁시렁 대나하고,가만히 보면
음악구상 하는거에요..
중얼중얼 마치 주문을 외듯이 그렇게요

그리구요,이런일도 있었어요
그 날은 태지가 아무 스케줄도 잡지않고 하루 쉰다고
했던 날이였거든요...
근데 우연히 압구정동 거리에서 태지를 만난거에요
아,물론 태지의 차를 보고 알았죠...
처음에 (1집 "난 알아요"로 활동중일때)태지가 타고
다니던 차의 번호가 3001 이었거든요
근데,압구정 거리 한복판에 태지의 차가 서있는거에요
그래서 다가갔죠.그랬더니 유리창을 조금 열더니,오히려
저보고 왠일이냐고 묻는거에요...참나

아마 그때 그차에 태지가 타고 있는것을 사람들이
알았더라면 하고 생각하니 아찔해지더라고요
태지를 보호해야할 메니저로써의 직업의식이
발동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저도 똑같이 물었죠...
아니,여긴 왠일이냐구...
그랬더니 뭐라는 줄 아세요..?
"사람구경 나왔어요..."이러는거 있죠?
순간 머리 속이 복잡해 지더라구요..

사.람.구.경....
그게 뭐겠어요...
물론 태지는,사람구경이 바로 또 다른 음악작업을 하겠다는
거예요..아이디어를 얻기위한 감찰?시찰 같은거요..

근데요..저는 그때 왜 그랬을까요..?
태지의 그런모습에서...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구저
차안에서 오가는 많은 또래의 젊은이들을 바라보고 있을
구 모습에서 인간 정현철이 보였어요...
서태지가 아닌 정현철의 모습이요...
20대 초반의 젊은이가 누릴수 있는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 태지에게 인간적인 연민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하지만 뭐,그건 제 생각일 뿐이구요..
오로지 음악이 전부였던 태지에겐 그 정도의 희생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였을꺼에요...

한 사나흘씩 꼬박밤을 세우고도 끄떡없는 태지의 모습은
정말 완젼히 두손두발 다 들게 한다니까요..
음악 작업에 한번 들어가면,마음에 들때까지 나오질 않아요
제발 몸 생각좀 해서..잠좀자라..잠좀자라..
아무리 잔 소리를 해도 요지부동!!!
그 고집에 제 속이 완젼 숯덩이가 된적도 무지하게 많아요

방송출열 때도 그래요
츌연 승낙 조건이 어찌나 까다로운지..중간에서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프로듀서는 노랠를 두곡해라...
태지는 아니다, 한곡에 최선을 다 하겠다...
이런 실랑이도 많았어요...
아니,생각해보세요...
보통 가수들은 되도록이면 노래를 두곡,세곡 하고싶지,
노래는 한곡만 하겠다고 우기는 가수가 어디 흔합니까?
그러니,매니저로서야 조마조마 하죠..
이거 이거 괜히 미운털 박히지 싶기도 하구요

하지만 천만의 말씀...
프로그램마다 어찌나 열과 성을 다하는지,
매일매일의 무대를 꼭 고별무대처럼 생각하는거 같더라구요

거..뭐,그런말도 있잖아요
내일 죽을 것처럼만 일해라..성공이 보인다
그 말이 태지를 두고 한 말이더라구요
그러니 방송국의 프로듀서들도 태지를 미워할수가 없죠
프로그램을 팍 빛내주는데...예쁘지 않겠어요??
그럼 힘이 있었어요..태지는
사람을 당기는 힘이요..

"서태지와 아이들"은 합숙이라는게 없어요
노래와 춤연습을 하다보면 새벽3시는 기본인데도..
잠은 꼭 각자 집에가서 자요..
왜냐..?현석이랑 주노의 의견도 그랬지만..
특히 태지의 주장은 이랬어요
잠이라도 따로 자야 서로를 그리워할수있는 여지가 생긴다

귀하고 소중한 사이일수록,적당히 아쉬움은 있어야 한다
이게 태지의 방식이었으니까요
참...멋있지 않아요??
그래서 그렇게 빨리 은퇴를 했는지도 모르죠...
음악울 팬들을 영원히 사랑하고 싶어서요...

----괜찮은 놈----

태지와 관련한 유명헌 엽서사건이 하나 있어요
태지가 화난 모습을 그때 처음 봤구요...
어..태지가 화낫을땐 어떤줄 아세요?
일단..갸녀란 그 목소리가 아주 낮게 쫙깔려요
그리고는 아주 침착하게 논리적으로 따지기 시작하죠
형..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콩은 콩이고 팥은 팥인데 어떻게 콩이 팥이 되는지
그 이유를 듣고싶습니다...뭐 이런식인데...
그거 안 당해본 사람들은 몰라요..
큰 소리 한번 내지않고 삶을 얼마나 주눅들게 하는지..
완전 깨갱이예요..깨갱..

아..엽서 사건 얘기 해야죠..?
태지는 자기를 사랑해주는 팬들을 엄청 고마워했어요
엽서 한장도 버리지 못하게 했거든요
지금도 사무실 창고에 그대로 보관돼어 있죠

근데..어느날,마침 태지가 사무실에 와있을 때였어요
팬 클럽 회원중 한 아이가,
우연히 쓰레기통에서 엽서 한장을 집어드는 거예요
아마,사무실 직원이 청소를하다가 실수로 버린 모양인데
그게 글쎄 하필이면...
그쓰레기통에서 엽서를 집어든 바로 그 학생의 엽서였지
뭡니까..세상에...
학생이 울고불고 난리가 났죠

그걸 태지가 본 거예요
그 날 태지의 화난 모습은 지금도 잊을수 없어요
찬물을 끼얹은 듯한 싸늘함에 우린 모두 얼어붙었다니까요

그날부터,사무실 식구들 누구도 엽서에 손을 못 댓구요
태지가 일일이다 챙겨갔으니까.
이름만 해도 그래요....
얼굴한번보고 이름한번 듣게 되면 절대 잊어버리지 않아요
윤희야,유미야 안녕?
꼭 이렇게 이름을 기억했다가 불러주는데
그 기억력이 한번도 틀린적이 없다니까요
나폴레옹3세도 그랬다면서요?
한번 스친 사람이라도 꼭 기억해서 먼저 아는척을 하는거
역시,크게 될 사람들은 뭐가 달라도 달라요...그쵸??

....태지는 팬들을 아니,인간을 사랑할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졌어요....

이런일도 있었어요
사람들 앞에 나서는걸 무지 싫어했던 태지지만...
만남을 기다린 친구들이 있었는데...
약 20여 명의 소년소녀 가장들이있었어요

태지가 은퇴할때까지...한 3년 동안 꾸준히 도와준 친구들
이었는데요...한달에 한번씩 함께 식사도 하고...
매달 온라인 입금도 해 주구요...
태지는한달에 한번씩 찾아오는 그날을 아주 좋아했어요



....참참참,잊지 못할일이 또 하나 있네요....

그게 언제였더라??
대전에서 행사를 끝내고 오는 길이었어요
근데 갑자기 앞에가던 차가 마주오던 어떤 차를 들이
받으면서 사고가 났는데...
차 한대가 완젼히 뒤집혀진 거예요...글쎄...

그래서 태지랑 다들 뛰어나가 봤죠
근데 태지가 그러더라구요..
뒤집한 차는 얼릉 시동을 꺼줘야만 불이날 염려도 없고
안전하다구요...
그래서 일단 시동을끄고..차 안에 갇힌 사람들을 구출하기
시작했죠..
일가족이 4명인가?뭐 그랬는데...
다행이 크게 다치거나 하지는 않았는데...
너무 놀라서 그런지 기절해 있더라구요
그래서 어쩝니까,깨어날때까지 기다렸죠...
태지도 걱정이 되니까,
그 사람들 곁에서 떠나질 못하더라구요
근데...이게 웬일이예요..
기절했던 사람들이 깨어났다가 다시 기절햇다는거 아닙니까

생각해 보세요...
깨어났는데,눈앞에 서태지가 서 있었다...
다시 기절하고도 남죠..
웃지 못할 해프닝이었죠...

...그리구요...태지 흉 좀 봐야지...

어..그러니까,"난 알아요"가 3개방송사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을때예요...
기분이 정말 날아갈 것 같더라구요
철 들고 처음으로 울었잖아요...제가...
그래서 멋있게(?) 한마디 했죠...
"장하다 서태지와 아그들,오늘 내가 쏜다..
한턱 단단히 쏜다..어디갈래?우리 나이트가자..
자!!래츠 고우고우.."

그때...갑자기 찬물을 끼얹듯...
태지의 나즈막한 목소리....

"됐어요..그냥 가죠"

태지 때문에 못 갔잖아요...우리 모두다
근데 그래 놓고는 태지가 어딜 갔는 줄 아세요??
곧장 연습실로 향하더라 이겁니다...
어쩜 그렇게 분위기 딱딱 못맞추는지...
차라리 집에가서 잔다고 했으면 제가 이런말도 안해요..
세상에 그런날 또 연습니라니...
나중엔 존경심(?)까지 들더라니까요...
도대체 저 머리 속엔 뭐가 들었나 신기하기도 하고..
애 늙은이 같기도 하고...하여간 못 말리는 태지였어요

그뿐인줄 아세요?
말 나온김에 다 얘기 해야지..
(헤헤..재밌다..이거 옛날 생각이 팍팍 떠오르는게..
아...정말 태지가 보고싶네요...)

태지는 엉덩이에 껌이 붙었나봐요..
차에 한번 탔다하면 내릴때까지 꼼짝을 안해요...

지방공연 한번 하면,몇 시간씩 가잖아요
휴게소에 들러서 볼일도 보고,간식도 먹고 우린(현석이랑
주노랑)신났다고 들락 거리는데...
태지는 꼼짝도 안해요...
배가 고프다 싶으면 우동하나면 끝이죠...
그것도 차안에서 먹는다니까요

식욕도 없고,물욕도 없고,오로지 일 욕심만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태지가 할 줄 아는게 음악밖에 없느냐 하면??
아니죠...태지가 농구를 얼마나 잘 하는데요
(농구를?글쎄..기자의 갸우뚱거림이 보였나보다)

안 믿으실지 모르지만 사실이에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콱 쏜다니까요..골대를 향해서요

언젠가 여러 가수들과 함께 군위문 공연을 간적이 있어요
그때..세기의 게임이 벌어진 거죠...
매니저:가수....!!
짜자잔,저녁 내기 농구시합이 벌어졌는데
아니,우째 이런일이??
완젼히 태지의 목무대 였어요..운동장을 누비너라니까요
글쎄 넣으면 들어가요..그냥...!!
...결국 우리가 졌죠..뭐..그때 태지 정말 대단했어요

작은고추가 맵다는 게 괜히 있는말이 아니라는 걸...
우린 그때 실감했죠...
정현철로 살때는 한번도 안 춰보던 춤을..
서태지로 변신하던 그 순간부터 어떻게 그렇게 잘출수
있었는지,그 이유를 그때야 알았지요
...그에게는 타고난 운동신경이 대단했던거야...
이게 그날 우리의 소감이었어요

그리고...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
태지의 몸 그게 장난이 아니더라구요
몸 골격이나 어깨선이,와...예술이예요.예술

태지가 외소하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정말 편견이죠..
얼굴이 작고,어려보여서 그렇지,몸이 무지하게 좋아요

지금쯤 태지는 얼마나 건장한 청년으로 변해 있을까?

기자가 서태지를 떠올리고 있을때..코털 최진열,
서태지의 매니져였던 그가 이렇게 말했다

태지가 좋아했던 삼겹살이나 먹으러 가시죠..
보고싶은 사람이 있을땐,아무 생각없이 먹는게 최고예요..

-----------------------The end-------------------------

 

2005.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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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사진
beha****
초수
본인 입력 포함 정보
이름→ 서태지 (본명;정현철)

생년월일→ 1972년2월21일

혈액형→ O형

출생지→ 서울 종로구

키→ 172~173cm

가족관계→ 아버지(정상규) 어머니(강명숙) 누나(정혜원)

종교→ 무교

학력→ 서울재동국민학교,대동중학교,서울 북공고2년중퇴
(이후 검정고시로 고졸자격취득)

좋은노래→ 전개인적으로다좋습니다만.......
요즘 많이듣는노래는 take5,너에게,이밤이깊어가지만 등을듣구요

업적→ 시나위에서활동(베이스를맞았습니다), 서태지와아이들로데뷔
해체후 서태지로활동(밴드와함께요)

인기라 함은 좋아하시는분들 싫어하시는분들있겠지만
제주변에는 열렬히좋아하진않지만 좋아하는사람들 많이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서태지컴퍼니의 사장입니다

2005.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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