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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다빈치코드의 진실과 거짓???
juhy**** 조회수 20,411 작성일2006.09.13

얼마전에 다빈치 코드를 읽었는데요..

제가 기독교 신자이다 보니까 다빈치코드를 보면서 충격(?)이란걸 많이 받아서요..

그(다빈치코드)중에서 보면 '시온수도회'란게 나오고 또 그랜드 마스터라는 것이 나오는데요.. 그랜드마스터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뉴턴, 빅토르 위고 등등 우리가 많이 아는 사람도 많아서요.. 이런 사실이 진짜인가요??

그리고 다빈치 코드에서 어디까지가 진짜인가요..??

그리고 기독교에서 마리아 막달레나의 성경을 없앴다고 했는데.. 그것이 사실인가요??  

만약에 그 성경이 있다면 그 성경을 볼 수 있을까요 (아니면 다른 성경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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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코드, 거짓이 알게 한 진실 [1]
조회 1,124

다빈치코드를 둘러싼 이런 정황들은 그리스도인에게 많은 과제를 남겨주었다. 하지만 이 현상들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이 긴 한숨을 내쉬지 않기를 바란다. 왜냐면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고통과 어려움을 잘 견디어 내도록 능력과 신령한 지혜를 주시겠다고 골로새서 1장 11절에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다빈치코드로 일어난 열풍 같은 논란들 속에서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이 반석 같은 믿음을 세울 수 있기를 기도한다.
<다빈치코드>는 2004년 전 세계를 달군 소설로 미국에서만 1000만부가, 한국에서는 6개월 동안 120만부를 돌파했다. 사람들이 <다빈치코드>에 이렇게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히 절묘하게 짜진 추리 소설적 재미 때문만은 아니다. <다빈치코드>는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기독교의 역사적인 사실과 진리들은 거짓이고, 역사를 지배한 교회와 정치권력의 음모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이 충격적인 발언에 적지 않게 놀라면서도 어쩌면 이것이 사실이지 않겠냐는 반응을 보인다.
사실 그동안 기독교의 기본 진리들을 공격하는 논의들은 언제나 있어왔고, <다빈치코드>는 기존의 출판물과 표절심의가 붙을 정도로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기독교 교리를 종교다원주의로 재해석하려하고, 성서의 정경을 거부하려는 시도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다빈치코드>는 사람들의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하는 <다빈치코드>의 논점들을 밝히고, 그것에 관한 저명한 학자들의 반론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다빈치코드>의 줄거리

<다빈치코드>의 작가 댄브라운은 한때 평범한 교사였고, 2003년 <다빈치코드>를 출간 하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미국 언론은 <다빈치코드>의 파장을 보며, 그를 소설계의 빅뱅이라고 한다.

<다빈치 코드>는 파리 루브르 박물관장 소니에르의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소니에르가 죽기 전에 남긴 암호를 추적하여 '성배'(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담았던 잔)의 비밀을 파헤쳐 가는 추리스릴러물이다. 하버드 대학 종교기호학과 교수이며 소니에르의 친구인 로버트 랭던은 피살 현장으로 가서 소니에르의 손녀이며 프랑스 여형사 암호 당담자인 소피 느뵈를 만나게 된다. 둘은 소니에르가 제시한 여러 암호들의 의미들을 추론해 가다가, 마침내 죽은 소니에르가 '시온 수도회'(Priory of Sion)의 지도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온 수도회는 성배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던 비밀단체로서, 지도자였던 소니에르는 진실이 밝혀지기 원하지 않는 로마카톨릭, ‘오푸스데이’에 의해 살해를 당한 것이었다.

랭던과 느뵈는 성배의 비밀을 추적하던 과정에서 오랜 세월동안 성배를 찾아 헤맨 부호 레이티빙을 만난다. 레이티빙은 신약 성경에 관한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면서 특히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와 성배를 새로운 시각으로 볼 것을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로마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자신의 정치적인 야욕을 위해 니케아 공의회에서 투표를 통해 인간 예수를 신의 아들로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이 읽고 있는 ‘정경’은 철저히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는 4복음서만 채택하여 편찬된 것이라고 한다.

한편 랭던과 느뵈와 티빙은 역사상 교회가 대중에게 은폐하려고 노력해온 암호와 문서들을 해독해간다. 그러면서 성배란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이 쓰셨던 단순한 '잔'(chalice)이 아니라 예수님의 후손을 잉태한 여성의 태였음을 알게 된다. 즉,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들이 존재했다는 엄청난 사실이 바로 시온의 수도사들이 2000년 동안 지켜 내려온 성배의 비밀이었다. 그리고 시온 성회의 기사단이었던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그림 <최후의 만찬>은 그 모든 비밀들을 암호로 담고 있었다. 랭던은 마침내 추적을 통하여 성배의 위치를 알게 되지만, 모든 것을 비밀로 하기로 결심한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예수 신격화에 대하여...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로마 최초로 종교의 자유를 선언(밀라노칙령 313년)한 대제였다. <다빈치코드> 저자는 레이티빙을 통해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로마 사회 체제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니케아 공의회에서 아슬아슬한 표차로 예수님의 신성을 통과시켰다고 말한다. 또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당시 80여 개의 복음서 가운데 교회가 인성을 가진 예수를 말하는 복음서를 배척하고 예수의 신성을 강조한 4복음서만 채택했다고 주장한다.

이것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오직 ‘유세비우스’라는 당시 역사가에 의해 기록되었을 뿐이다. 그의 역사 기록에 따르면 콘스탄티누스는 그 회의에 단지 중재자로 참석했을 뿐이며 자신의 주장을 전혀 내세우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니케아 공의회에서 표결을 거쳤던 것은 예수님의 신성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헬라어로 표현할 때, 예수님이 하나님과 '유사한' 존재인지,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인지에 관한 결정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실제 투표 결과도 아슬아슬한 표차가 아니라 318명의 참석자 중 단 두 명의 반대표가 있었을 뿐, 거의 모두가 예수님과 하나님을 동일한 존재로 인정했다고 한다. ( 어원루처, 『다빈치코드 깨기』P.33)
또한 최초의 교회 역사가인 유세비우스는 4개의 복음서들이 정경의 핵심을 이루며 니케아회의가 열리기 200여 년 전부터 예루살렘, 안디옥, 알렉산드리아 및 로마 등의 초기 기독교 중심지에서 이미 널리 사용된 것이었음을 그의 기록을 통해 알려준다. 그리고 4복음서와 다른 신약 성경들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과 같은 존재로 인식하고 있음을 증명해준다. (폴 마이어, 『다빈치코드 진실인가? 허구인가?』P.56-57)

다른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신성을 증명하는 가장 큰 근거는 그의 부활의 증거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무엇으로 믿을 수 있는가? 부활에 대한 첫 번째 신빙성 있는 증거는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빈 무덤을 첫 발견한 사람들이 여인들이었다고 기록하는데, 1세기에는 여성의 지위가 낮아서 기록에 포함시키지 않았던 것을 감안한다면, 얼마나 복음서의 기자들이 충실하게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는가를 반증한다.
두 번째 증거는 제자들의 변화와 순교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시지 않으셨다면 열 두 사도는 생명을 건 복음전파와 순교를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 세상적인 욕심들로 가득했던 제자들의 삶의 변화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증명한다. (행크 헤네그라프, 『다빈치코드 진실인가? 허구인가?』P.92-97)

예수님의 결혼설에 대하여...

<다빈치코드>는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을 했고, 그 사이에 ‘사라’라는 딸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것의 근거로 ‘영지주의 복음서’라는 정경에 속하지 않는 책을 제시한다. 즉, 빌립 복음의 한 구절에서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를 자신의 짝(companion)으로서 입맞추는 장면이 나오는데, 저자는 “짝”을 아람어로 배우자나 부인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것에 대해 고대사 분야에 권위 있는 박사 폴마이어는 빌립복음은 <다빈치코드> 저자의 주장대로 아람어가 아니라 헬라어로 쓰여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원루처 교수는 아람어로 '짝'이라는 말에는 동지, 친구를 뜻하고 배우자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빌립복음이 신뢰할만한 자료가 못된다는 것이다. 빌립복음은 다른 외경 복음서들보다 훨씬 늦게 쓰여 졌다. 예수님의 시대로부터 최소한 2세기 정도 후에 쓰여 진 복음서이다. 종교학자들은 빌립복음에 대해 정경 복음서들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며, 역사적 진실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여 배제시키고 있다. (폴 마이어,『다빈치코드 진실인가?허구인가?』P.37)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와 막달라 마리아가 부부였음을 주장하는 논의는 수없이 반복 되어 왔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제거하고, 인간화 시키는 작업의 일환이었다. 결국 이런 시도의 근본 목적은 기독교 교리를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 성격에 맞추려는 것이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산봉우리로 올라가는 길은 여러 가지이다'라는 것이다. 즉, 인간이 구원받는 길이 하나의 길이 아니라 여러 길이 있고, 예수님은 그 중 하나의 길일뿐이라는 것이다. 시대의 이런 흐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기독교 근본 진리를 공격해온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의 결혼설은 신학적으로 엄청난 소용돌이를 만들 수 있는 충분한 소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빈치의 그림, <최후의 만찬>에 관하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 <최후의 만찬>에 보면 예수님의 왼편에 남자로 보기에는 다소 여성스런 외모의 제자 요한이 앉아 있다. 그리고 예수님과 제자들 앞에 긴 테이블이 놓여져 있는데, 테이블 위에는 예수님께서 포도주를 나누셨던 성배는 보이지 않는다. 이것에 대해 <다빈치코드>의 저자는 예수의 왼편에 앉아 있는 사람은 제자 요한이 아니고 막달라 마리아이고, 이것은 성배가 바로 막달라 마리아라는 비밀을 암묵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다빈치의 암호였다고 말한다.

이 논의에 대해 국민일보에 글을 기재한 바 있는 서양미술사학자 노성두의 반증은 이러하다. 요한이 남성성이 드러나지 않은 어린 나이로 등장하는 것은 레오나르도가 <최후의 만찬>을 그리기 천년 전부터 있었던 화풍의 전통이라고 한다. 또한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수많은 <최후의 만찬> 그림에서는 성배다운 성배가 등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다빈치코드>의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신학적인 논쟁을 떠나 예술사적으로도 신뢰할만한 것이 못된다고 서양미술 사학자 노성두 교수는 최종 결론을 내렸다.

지난 40여 년 동안 기독교와 예수님에 관해서 작가가 주관적으로 해석한 책, 영화 및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것들은 역사적인 사실보다는 가설을 이용한다. 그리고 역사적인 자료의 언어를 문맥에서 따로 떼어 내어, 작가가 자신이 원하는 의미를 가지도록 왜곡한다. 마구잡이식의 조사, 즉 많은 과거의 자료들 중에서 작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극히 일부 자료만을 부각시키는 특징을 가진다. 반면에 예수님과 기독교에 대한 진짜 역사 기록들은 명확하고 일관성이 있으며, 설득력이 있다. 신약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수많은 증거들 이외에도, 비종교적인 일반 학자들의 연구 결과 역시 예수님과 초기 기독교에 관한 자료들이 사실이라는 점을 입증해주고 있다. 초기교회의 역사와 관련해서는 초기 기독교 교부들의 기록에 나타나 있는 자료들과 최초 교회 설립 이후 300여 년을 유세비우스가 상세하게 서술한 역사 등이 기독교 역사에 신뢰성을 더해주고 있다. (폴 마이어,『다빈치코드 진실인가?허구인가?』, P.62~64)

<다빈치코드>를 둘러싼 문제들

<다빈치코드>의 저자는 소설의 첫 장, <사실>이라는 부분에서 "이 소설에 나오는 예술작품과 건물, 자료, 비밀 종교의식들에 대한 모든 묘사는 정확한 것이다." 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소설 속에서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내용들은 전혀 사실이라고 볼 수 없는 근거들을 엮어 작가의 의도에 맞추어진 허구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성경과 기독교 교리는 그 형성과정에 정치 권력이 개입되지 않았고, 철저히 초대교회의 것에 기반을 두었으며, 이것을 증명할만한 기록들은 다양하고 신뢰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결혼설에 관해서는, 이 주장을 뒷받침 하는 근거들은 역사적으로 가치가 없는 것이고, 그것들조차 그리스도의 결혼을 분명히 밝히고 있지 않다. 또한 <다빈치코드>가 주장하는 예술에 나타난 근거들은 철저히 작가의 주관에 끼어 맞추어져서 의미가 왜곡되어진 것들이다. 그렇기에 누구도 <다빈치코드>가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는 허구와 거짓된 정보들에 미혹되어서는 안 된다.

과히 열풍이라고 할만한 <다빈치코드>에 대한 사람들의 호응에 대해 구교형 목사는 전통적인 권위를 파괴하고, 금기에 도전하고 싶어 하는 현대 젊은이들의 욕구가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고 <뉴스엔조이> 인터넷 신문에서 말했다. 그리고 그 젊은이들은 대부분 <다빈치코드>에서 말하는 대로 전통적인 신앙관이나 교회의 가치를 의심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참 진리를 추구하는 자들로, 기독교 신앙과 교회에 대해서는 위선적으로 여긴다고 덧붙여 말했다.
또한 폴마이어는 현대의 가치관은 다른 종교에 대해서 비판을 가하면 편협하고 무지하다는 강도 센 역비판을 받게 되는데, 기독교에 관해서는 예외라고 말한다. 즉, 기독교를 비판하는 행위는 오히려 진보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자유주의적 태도를 옹호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기독교에 관한 세상의 시선과 앞에서 언급한 포스트모더니즘, 세상의 모든 것을 상대적인 잣대로 평가하려는 시대의 분위기는 적지 않게 믿는 자들을 당황스럽게 한다. 이런 세계관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다빈치코드>같은 문화가 세간에 화제가 될 때, 모든 화살은 기독교인들에게로 향하기 때문이다. 이 때, 기독교인들에게 <다빈치코드>에 반박할만한 지식이 없는 것도 문제이거니와, 지식이 있다한들 논쟁이 이 문제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님은 더욱 믿는 자들을 곤욕스럽게 한다.
한편 믿는 자들 안에도 <다빈치코드>에서 주장하는 것들에 혼란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이들은 반기독교적인 입장에 대항하여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두려움을 느낀다. 이들이 경험하는 혼란과 두려움은 시대적인 분위기에서 야기된 문제라기보다는 그들이 예수님을 경험하고 확신하고 있는 것에 있어서, 자아에 의해 가리워졌던 신앙의 문제가 재발견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다빈치코드>를 둘러싼 이런 정황들은 그리스도인에게 많은 과제를 남겨주었다. 하지만 이 현상들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이 긴 한숨을 내쉬지 않기를 바란다. 왜냐면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고통과 어려움을 잘 견디어 내도록 능력과 신령한 지혜를 주시겠다고 골로새서 1장 11절에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다빈치코드>로 일어난 열풍 같은 논란들 속에서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이 반석 같은 믿음을 세울 수 있기를 기도한다.

200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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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m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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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장 1절~4절까지에

 

1 우리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2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4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하려 함이로라

 

위에서 알수 있듯이

그 당시에 너무나도 많은 이가 붓을 들고 썼습니다.

그 중에는 진실도 있을것이고, 당연히 위증도 있을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위경이라는 것입니다.

(최근에 알려진 유다복음 또한 이 위경에 들어갑니다.)

이것은 그 시대의 '다빈치 코드'입니다.

 

그래서 너무나도 많은 문서들을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정경화'인것입니다.

당시 복음서만 30여개가 존재 했다고 합니다.

이레니우스가 주장한데로 그 30여개 중 4복음서만 채택을 하였는데.

그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사도성이 있느냐?(직접서술, 혹은 사도들과 같이 오랜시간을 보낸사람)

② 복음적이 내용이 있느냐?(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를 기준으로 채택하였습니다.

 

정경 외에는 외경, 위경이있습니다.

사도가 썻을지라도 복음적인 내용이 없으면 외경으로 구분했습니다.

즉, 외경은 어느정도의 진실성이 확인된것이죠.

하지만, 성경 그 자체가 아니라 토착적인 이야기등과 결합한 경우가 있어

제외되어있습니다.(현재 카톨릭에서 쓰고 있죠.-

개신교는 초대 교회를 모델로 하고 있는 만큼 최대한 순수한 성경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순수하다는것은 다른것이 첨가되지 않은 성경 그 자체를의미합니다.)

 

그 외에는 전부 위경입니다.

(사실 막달라 마리아 복음은 처음 들어봅니다.)

위경은 수도 없이 많이 있습니다. 정말 소설같은 이야기가 많죠.

아니 소설인 이야기라고 해야 맞을것 같습니다.

유다복음을 예로 들자면,

유다복음 자체도 가룟유다가 쓰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당시 유행했던 이단문서 중 하나입니다.

(이건 벌써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겁니다.)

 

 

외경을 읽는 것은 좋습니다. 단,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파악한후 읽으세요.

그렇지 않다면 왜곡될것입니다.

위경은 읽지 마세요. 그것은 말도 안되는 문서들입니다.

판타지 소설이 그것보다 더 진실할겁니다.

 

 

예수님을 의심하것은 참으로 놀라울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당신 삶 가운데서 경험하는 부분을 사람들의 입술이 그것을 호도하고 있죠.

다른 이의 왜곡된 진실을 보지 말고,

 

자신의 삶 속에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바라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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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에 이의가 있으시다면,

언제나 태클 환영입니다.

200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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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s****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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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도서관에 가보시면 ...

 

책장 앞쪽에 분류번호라고 있어요 ....

 

거기서 다빈치 코드 있는 책장의 분류번호를 보시면

 

800번 때 일겁니다 ..

 

소설이죠 .....

 

있음직한 일을 허구로 꾸며 쓴 일이란 것이죠 ....

 

하지만,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진실이라면 밝혀지겠죠 ,,,

 

거짓은 밝혀지기 마련이니까 ...

200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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