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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신실한 믿음의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비공개 조회수 2,199 끌올 작성일2015.02.09

본인은 모태신앙으로 유아때부터 교회의 구성원으로 교회에 출석을 해오다가 나름 깨달은 바가 있어 지금은 무교회주의의 신앙으로 생활을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신앙적인문제 내지는 가치와 사상등 여러 가지 문제로 離婚을 하고(아니 당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함) 홀로 살아온지 12년째입니다. 지금껏 많은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를 해왔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우선 회사택시운전을 마감하고 전업소설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십사는 기도입니다. 왜냐? 첫째는 하나님의 자녀된 자로써 온전한 주일성수를 하기위함이요. 둘째는 성도로서의 구별된 삶을 살기위함이며. 나머지 하나는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창작의 은사를 마음껏 펼치기위함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기도제목의 하나가(오늘 인터넷 상담에 上程하는 주된 내용입니다만)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며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하나님만을 섬기는 일본여인을 배우자로 허락하셔서 느헤미야가 예루살렘城을 믿음으로 재건한것처럼 나 또한 믿음의 가정으로 다시 재건해 주실것을 하나님께 간구해왔습니다. (여기서 굳이 일본여인을 선택한 것은 내 나름대로 일본 국민성에 대한 敬慕의 마음이 있어서이고 일본 여인일 때 우선 일본어가 해결(문서 선교를위함)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일본여인은 세계에서도 정평이 나 있듯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으나 남편을 공궤함에는 으뜸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가 아니면 한국여인이라도 - 아이를 낳지 못하는 老處女 내지는 修女와같이 자식놓기를 포기하고 일평생 복음만을 위해 사는 여자를 원했습니다 - 기본적으로 신앙이 바탕이 된채 전반적인 예술은 이해를 하지를 못하더라도 문학만큼은 이해를 하고 남편이 추구하는 가치를 존중해줄수 있는 정도라면)가 그것은 淫行을 막음과 동시에 항차 내가 문서선교사역을 하기위한 발판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의 꿈은 저술사역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를 향해 선교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하나님앞에 이루어가야 될 일생일대의 사명이라 굳게 믿고 있기에 내가 지니고있는 지체장애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오직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겨 무려 10여년 가까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왔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실명을 거론해서 뭣합니다만 나는 인터넷으로 또는 우편으로 선교를 하고 있는 오아불로(오규근) 전도사 부부가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로 말미암마 부부의 연을 맺고 사는 그 분 가정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묵묵부답이시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의 길도 보이지 않습니다. 속된말로 나의 기도가 空念佛이었던가? 인간의 인내심 그 한계는 10년이 고비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를 볼때 그렇습니다. 10년의 마지노선을 넘지 못하고 아내의 몸종 하갈과 取하고 말았다. 아브람의 나이 팔십육세때입니다.(결국 25년후에 응답을 받아 이삭을 얻었습니다만)

 그런데 본인은 지금 한창인 오십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농익은 부부의 性을 耽溺하며 享有할 나이이지요. 아브라함에 비하면 어린아이나 다름없습니다. 나는 사도바울과같이 육체를 거세를 한 뒤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아닙니다. 멀쩡한 남자로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이혼이라는 천형(天刑)으로 원치 않은 신부와 승려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생명이 다하는 그 날까지 이렇게 살아가야만 되는 것인가? 생각만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전립선비대(射精되지 않은 精液이 凝固되어)로 작년에 참으로 엄청난 고생을 했습니다.

 처음부터 부부생활의 빗장을 열지않고 살아왔었다면 이런 질병이 발생하지 않았을찌도 모를일입니다. 그러나 25년간 부부생활을 해오다가 어느날 갑자기 精液이 房事되지않고 고이는것 이것은 연못에 고인물이 섞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이것을 무엇으로 설명하겠습니까? 부부생활을 중단하고 禁慾의 삶을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닌 12년이나 살아왔다고 생각을 해보십시요. 과연 누가 그것이 이해가 되겠습니까? 과부가 아닌자가 과부를 홀아비가 아닌자가 홀아비를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手淫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음행의 연고로 아내를 두라고 사도바울은 말씀합니다. 至當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말이쉽지 현실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聖經적이 아닌 변질된 세상풍조. 시대사조는 세상이나 교회안에서나 묻 남성을 독신으로 늙어가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참으로 참담한 일이 아닐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직업여성(娼妓라고 성경에서 말하는데)과의 교접은 나의 몸에 저주를 입히는 것으로서 매번 양심을 찌르고 있으니….

 12년을 혼자 살면서 그 누구하나 나의 재혼을 위해서 신경 쓰주느니 없었습니다. 원래 初婚은 하늘이 맺어주지만 再婚은 사람이 맺어준다고 하는데 대개는 가족이나 친지들이 나서서 중매를 해줌이 마땅하나 나는 天涯孤兒 · 天涯孤獨의 존재입니다. 아니 다니던 교회에서조차 꿈을 가지라. 믿음안에서의 꿈은 이루어진다라고 꿈을 품으라고 했습니다. 꿈이 없는 자는 이미 묘비에 "종결"선언을 하고 사는 덧없는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꿈을 가졌습니다. 어찌보면 일본여인을 꿈꾼다. 또는 아이를 놓지 못하는자 내지는 수녀와같이 복음만을 위해서 사는 여자를 만난다. 현실에서는 이룰수없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내 주제에 언감생심(焉敢生心)이겠으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시면 못하실일이 없다고 믿기에 얼토당토 않지만 믿음안에서 큰 꿈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출석하던 교회에서조차 그 누구하나 나의 재혼에 관해 관심을 갖기는커녕 정작 재혼의 문제를 입에 거론하는 것을 본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起伏信仰이 만연되어있는 오늘날 교회내에서 나같은 사람은 한낱 거추장스러운 존재내지는 있으나마나한 존재입니다. 언제부턴가 교회는 정상인 사람만 모여서 예배하는 곳이지 비정상인 사람이 치유받고 정상화되는 것을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고로 나같은 사람에게 여자를 소개해줄 신도나 목회자도 없을 뿐더러 올 여자도 없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너는 너 대로 나는 나 대로 갈길이 따로 있구나. 가수 박일남씨의 '마음은 서러워도'의 가사 한대목 그대로입니다. 그러다가 강산이 한번 바뀌고 나서 오십의 인생 頂嶺에 올라서서 처음으로 한 지인의 소개로 과부를 소개 받았습니다. 그의 말에 의할 것 같으면 얌전한 여자라했습니다. 남편은 사별한지 오래되었고 長成을 마친 두 딸은 결혼을 했다고 했습니다. 여자라고는 만나보지를 않은탓에 며칠을 두근거림으로 밤잠까지 설쳐가며 만났습니다. 나이가 좀 들어보였으나 작은 체구가 캄프라치를 해주었습니다. 고생속에서 살아온 탓인지 일하며 손은 몹시 거칠었으나 하체는 통통하였습니다. 50대初半이라고 했습니다. 그제서야 나도 나이가 들었음을 다시한번 더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나이를 잊고 산 것은 아니었지만 세삼 나도 늙었음을…. 자식얘기. 하는 일상. 그간 살아왔던 얘기 글쓰는 얘기 등 서로간의 얘기. 대화의 물고가 트이자 어느샌가 그 여자에게 친근함이 생겼고 볼 수록 마음에 들었습니다. 역시 異性이란것이 이래서 좋은것인가 싶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인근 저수지를 가져간 택시로 드라이버를 하며 손도 잡고 사타구니 또한 설쩍 만졌더니 전기가 온다며 다리를 배배틀기도 했습니다. 단편소설이 수록된 나의 소설집 한 권도 선물로 주었습니다. 3시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데이트를 마쳤습니다. 나로서는 기분이 업되었으며 실타래가 풀어지리라 저으기 기대를 하면서 그녀의 집 부근 목적지에 내려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자한번 보내께요"라며 가는 것이었습니다. 뉘앙스가 묘했습니다. 문자를 보내면 보내는 것이지 한번 보낸다는 것은 또 뭔가?

 다음날 내가 먼저 문자를 보냈습니다. 잠시후 답장이 왔습니다. "아저씨 제가 아닌 측 했지만 부처님 같지는 못할 것 같네요. 죄송해요"

 나는 이 문자를 받고 저녁 내내 음미를 하며 일을 했습니다. 하루가 지난 다음에서야 비로서 그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 이런 일이, 그랬습니다. 그녀가 생각했던것 보다 나는 장애가 심해던 것입니다. 지팡이를 짚는 것도 모자라 보조기를 하고 힘겹게 걷는 모습을 본 그녀. 그녀 입장에서 봤을때 자칫하면 나를 부축하고 다녀야 될찌도 모른다고 생각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자기가 나를 만나 속상한일등 여러 가지 넋두리를 틀어놓고 싶은데 나는 회사택시를 운전하는 적빈하기 그지없는 막장 기사였던 것입니다. 그 날도 나와 대화중 입금 물어넣을것을 몇차례에 걸쳐 걱정을 하였습니다. 자기로서는 남자에게 기대고 싶은데 도리어 남자가 자기에게 기대어야 하는 반대의 기둥역활이 부담스러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나의 곧은 언행과 품성이 그녀를 경직되게 만들었지않나 싶었습니다. 부처님. 소위 석가모니는 자비의 대명사인데. 이 慈悲는 한마디로 말해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중생에게 낙을 주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고통을 없애주는 것".그런데 부처님 같지는 못할 것 같네요. 죄송해요. 라는 말은 자기는 보살축에도 들지 못하는 그저 평범한 여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고백한 셈이었습니다. "죄송해요" 라는 한마디로 단념을 촉구한것입니다.

  낯선 데이트. 그 후유증은 짧았지만 강력한 것이었습니다. 감전의 기분이 아마 이런것이 아닌가? 서글픔이 파도처럼 몰려왔습니다. 그리고는 한없이 울었습니다. (신앙적으로 영적으로 볼때 참으로 가치없는 눈물이겠습니다만) 서슬픈 눈물이 내 가슴을 적시다 못해 아려옴을 느꼈습니다. 여인의 따뜻한 정이 너무나 그리웠고 또 그녀의 조용한 자태와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너무 마음에 들었던것 같습니다. 내가 너무 순진한 것인가? 소심한 것인가? 아니면 마음이 여려서인가? 나 자신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나의 실상이었습니다. 빈사사상태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장애란 단지 조금 불편할뿐이다라고 누가 얘기했던가요? 그러나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결코 불편함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생을 左之右之하기도 함을 나는 자각했습니다. 특히 남녀의 결합에 관한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대체적으로 장애인들은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가리지않는 철모르는 시절에 주로 결혼을 하는 이유가 그래서일겁니다)

 언젠가 어느 유력한 여성 장애인에게 기자가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타인에게 民弊를 끼치지않기위해서라는 말을 들은적이있습니다. 그 말을 바꾸어 생각해보면 자기를 진정으로 위해주고 헌신적으로 보살펴줄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결혼을 할 수 있다는 얘기도 되겠습니다. 왜 그녀라고 결혼을 하고 싶지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어떻게 보면 그녀의 말이 맞을 것입니다. 장애란것이 상대방에게 폐가 됨으로 우리는 여느 사람과같이 이성간의 사랑과 행복은 맞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단지 그네들이 누리는 행복 언저리에 머물면서 아! 행복이 저런것이구나 - 그것을 시로, 수필로, 소설로, 음악으로 만들어 영혼을 달랠뿐. 이것이 또 중심가에서 사랑을 나누며 사는 그네들에게는 아름다움으로 감정을 읊조리는 매체가 되고 있으니 아이러니하지요.

(지금껏 나는 재혼문제로 여러 대형교회 신앙상담 코너나 기독교인 치유상담연구원에 상담을 한바있으나 대형교회의 상담답변은 賣春만은 참으세요. 기도하겠습니다. 였고 치유상담원에서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큰 뜻이 있는것 같으니 꾸준히 기도하세요. 그것이 상담의 답변 전부였습니다. 그러기를 이미 십년이 가까워옵니다. 사도바울이 몸의 질병으로인해 하나님께 고쳐주기를 세 번 기도했으나 네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응답을 받고 더이상 기도를 하지않고 질병을 안은채 평생을 산 것을 봤스니다)

 저 역시 그래야 될것 같습니다. 기도의 제목을 내려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저의 꿈 희망. 이 모두는 영적인것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 육적인 것으로 부질없는 기도라 생각이 듭니다. 고로 나는 점점 더 염세주의로 이끌려 들어가는것 같습니다. 사도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죽어갑니다. 하나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십니다. 나옹선사의 禪詩 (청산에 살라하네)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저 하나님 당신이 이끄는데로 살아갈뿐 나에게는 의식도 필요없고, 자유의지도 필요가 없는것 같습니다. 나의 운명은 이미 프로그램 셋팅이 되어있어 변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기도로서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고 나아가서 나의 운명까지 바꿀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초기화가 안되는 고정된 상태로 살아가는것. 그냥 이대로 하루하루 살다가 당신이 부르면 本鄕으로 들어가는것 이것이 나의 생인것 같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天涯孤兒 · 天涯孤獨을 누리는 것, 소아마비 장애를 가진것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이요. 이혼도 나에게 주신 선물이요. 그와 더불어 외로움에 찌들어 몸부림치며 살아가게 하심도 모두는 선물이 아니겠는가 싶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하나 제대로된 특별한 선물이 하나 있다면 소설가라는 이름의 선물입니다. 그래 그렇게 살아가자. 그렇다면 하나 房事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살아있는 동안 적어도 여자의 육체를 필요로 하는 동안만이라도 남성의 건강(前立腺)만은 지키며 살아야될것인데. 아니 이것마져 완전히 거세(때로는 비뇨기과적인 입장에서 거세를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해야 된단말인가? 육체조차 완전히 부정을할때 비로서 하나님이 나에게 프로그래밍하신 뜻에 온전히 부합되어지는게 아닌가? 데오볼렌테(Deo Volnte - 하나님의 뜻)는 과연 무엇인가?

때로 "나는 자연인이다"의 주인공들이 부럽기도 하답니다. 세속을 등지고 유유자적 은자의 삶을 그들. 그러나 나는 장애와 함께 살고 있다보니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도 없습니다.

저의 글을 읽으시고 깊이 묵상하신 후 믿음으로 상담에 신실히 응해주실것을 바랍니다. 나름대로의 힘과 座標의 향방이 설정되어 질 것을 기대해봅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답변을 주시는 분위에 함께하시길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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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가 무식하고,
내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함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사람입니다.

무식하기에,
형제님에게 담대히 말하고,
무식하기에,
나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기를 낼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산에서 기도 하실적에,
마지막에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마태복음 26 장 39 절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태복음 26 장 42 절
  다시 두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내가 어머니로 말미암아 심히 괴로워,
내 하나님께 울부 짖으며 기도 할적에,
항상 하나님께서 마음으로 말씀 하셧으나,
그때만은 잠잠 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히스기야나,
선지자들 처럼,
통곡하는 심정으로 간구 하였으나,
하나님은 다른 기도는 다 들어주셧으나,
그 기도만은 들어주시지 아니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영적인 완치 말입니다.

그 고난을 잠시 감하게 하시거나,
그 환난을 잠시 감하게 하시기는 하나,
그 환난과 고난을 완전히 없애시지 아니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들어주실 기도는 바로 응답 하시고,
또 세월을 기다려야 하는것들은 그 때 다 응답을 받았습니다.

전도서 3 장 1 절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어느날,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여,
구석에서 한없이 울며 기도 한적이 있습니다.

난 소리내서 울지도 못하는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내 앞에,
내 옆에,
내 뒤에는 모두 아름다운 남녀가 짝을 이루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난 놀라운것을 보게 됩니다.

난 예배중에 감사함에 눈물을 끝 없이 흘리고,
숨어서 그것을 연신 닦아내며 기쁨을 누렸으나,
내 앞이나,
내 옆이나,
내 뒤에 그 아름다운 남녀는 그런 은혜를 못 받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내게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저들에게는 나 외에 만족하는것이 있으나,
네게는 없는 것을 내가 아노라."

"내가 너를 심히 사랑함으로,
네게는 세상의 것을 주지 아니하고,
오직 내게로 부터 난것을 주리라."

"내가 너를 사랑하고,
내가 너를 기뻐함이라."


난 이날,
이 세상에서 사는 그 누구보다,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나는 말입니다,
잘해서 은혜를 받고,
못해서 은혜를 못받지 않습니다.

그저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리하여,
내 어머니께서 칼을 들고,
또 그 칼을 바닦에 깔고 주무시고,
욕하시고,
저주 하시고,
때론 나를 때리시고,
또 집을 수없이 나가시며,
또 때론 정신이 총명하여 용서를 구하시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도,
내가 참을수 있습니다.

내 어머니께서 칼을 들때,
나도 심히 노하여 사랑 없는 말을 내 뱉고,
또 돌아가서 나의 악함으로 시인하고 회개하고 눈물을 흘리며,
다시 힘을 내고 가서,
또 선을 행하려 하고,
이런일들에 반복입니다.

형제님께서 당하시는 고난,
내가 어찌 알겠습니까.

그럼,
형제님은 내가 당하는 고난에 대하여 아십니까.

나는 폐가 심히 안좋고,
내 침에는 항상 피가 묻어 나옵니다.

내 변에서는 피가 물 처럼 나올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난 이것에 대하여 아무런 걱정이 없습니다.

내가 괴로운것은,
정말 괜찮습니다.

내 어머니를 지켜 보는 그 심정을 형제님은 아십니까.

하나님은 나를 그런 자들에게 보내신다 하셨습니다.

"그러니 네 마음도 찢어지는 애통도 겪어 보아야 하고,
그들이 당하는 것에 배로 더 당해보아야 하노라."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형제님을 믿고,
더 많은 이야기를 해봅니다.

제가 심히 낙심할때,
누이가 선교를 나갔습니다.

그때 누이 파트너가 그렇게 말하였다 합니다.

"당신의 동생은 하나님께서 심히 불쌍히 여기시고,
심히 환난과 고난이 중하여,
그 응어리 진것이 많으나,
하나님께서 심히 사랑하시어 그런것이니,
항상 동생 곁에서 기도하고 열심히 도우시길 바랍니다."

귀신을 쫒으시고,
병든자를 고치시는 은사를 가지신분이,
내게 또 이르시길,

"당신은 하나님의 어린 아이라,
세상과 다르게 살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면,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형제님께서 그렇게 사시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면,
그렇게 사셔야 합니다.

난 아무런 직분도 없고,
아무것도 잘하지 못합니다.

내세울것이 단 한가지도 없고,
여기서 많은 사람에게 조롱 받고,
멸시를 받고,
욕을 먹습니다.

그래도 형제님은 하나라도 무엇을 하시지 않습니까.

난 내 어머니 밥을 차려 드리고,
가끔은 다투다가,
회개하고 화장실에서 눈물을 흘리는 그것 밖에 하지 못합니다.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눈물이 내 앞을 가립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날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때론 슬프지 않아도,
눈물이 주루룩 나옵니다.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흘리시는 눈물입니다.


이분에게 은혜와 긍휼과 자비와 무한한 사랑을 체험 하기 위해서는,
넘치는 환난과 고난과 애통을 당해야 합니다.

죄도 수없이 많이 짓고,
그의 은혜로 수없이 사함을 받아봐야,
우리는 예수님의 대하여 조금 알수 있습니다.

형제님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하여 기도 하셨습니까.

아니면 세상에서 의롭게 보이시기 위하여 기도 하셨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십니까.

형제님은 형제님의 마음을 헤아려 달라 하시면서,
한번이라도 하나님께서 형제님에게 이루려 하시는 것들에 대하여,
10년을 붙잡고 기도 해보셨습니까.

내가 증언 합니다.

예수님은 부활 하셨고,
분명히 응답 하시며,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 안에서 사시고 계십니다.

성령을 받으시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8 장 21 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자기를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2015.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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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모태신앙으로 유아때부터 교회의 구성원으로 교회에 출석을 해오다가
나름 깨달은 바가 있어 지금은 무교회주의의 신앙으로 생활을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신앙적인문제 내지는 가치와 사상등 여러 가지 문제로 離婚을 하고(아니 당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함) 
홀로 살아온지 12년째입니다. 

지금껏 많은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를 해왔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우선 회사택시운전을 마감하고 전업소설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십사는 기도입니다.

왜냐? 첫째는 하나님의 자녀된 자로써 온전한 주일성수를 하기위함이요.
둘째는 성도로서의 구별된 삶을 살기위함이며.
나머지 하나는 하나님이 나에게 허락하신 창작의 은사를 마음껏 펼치기위함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기도제목의 하나가(오늘 인터넷 상담에 上程하는 주된 내용입니다만)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며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하나님만을 섬기는 일본여인을 배우자로 허락하셔서 
느헤미야가 예루살렘城을 믿음으로 재건한것처럼 나 또한 믿음의 가정으로 다시 재건해 주실것을 하나님께 간구해왔습니다.

(여기서 굳이 일본여인을 선택한 것은 내 나름대로 일본 국민성에 대한 敬慕의 마음이 있어서이고 
일본 여인일 때 우선 일본어가 해결(문서 선교를위함)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일본여인은 세계에서도 정평이 나 있듯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으나 남편을 공궤함에는 으뜸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가 아니면 한국여인이라도
- 아이를 낳지 못하는 老處女 내지는 修女와같이 자식놓기를 포기하고 일평생 복음만을 위해 사는 여자를 원했습니다 - 

기본적으로 신앙이 바탕이 된채 전반적인 예술은 이해를 하지를 못하더라도 문학만큼은 이해를 하고
남편이 추구하는 가치를 존중해줄수 있는 정도라면)가 그것은 淫行을 막음과 동시에
항차 내가 문서선교사역을 하기위한 발판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의 꿈은 저술사역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를 향해 선교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하나님앞에 이루어가야 될 일생일대의 사명이라 굳게 믿고 있기에
내가 지니고있는 지체장애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오직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여겨 무려 10여년 가까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왔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실명을 거론해서 뭣합니다만
나는 인터넷으로 또는 우편으로 선교를 하고 있는 오아불로(오규근) 전도사 부부가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로 말미암마 부부의 연을 맺고 사는 그 분 가정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묵묵부답이시다. 
최선이 아니면 차선의 길도 보이지 않습니다.
속된말로 나의 기도가 空念佛이었던가?

인간의 인내심 그 한계는 10년이 고비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를 볼때 그렇습니다.
10년의 마지노선을 넘지 못하고 아내의 몸종 하갈과 取하고 말았다.
아브람의 나이 팔십육세때입니다.(결국 25년후에 응답을 받아 이삭을 얻었습니다만)

그런데 본인은 지금 한창인 오십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농익은 부부의 性을 耽溺하며 享有할 나이이지요. 
아브라함에 비하면 어린아이나 다름없습니다. 

나는 사도바울과같이 육체를 거세를 한 뒤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아닙니다. 
멀쩡한 남자로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이혼이라는 천형(天刑)으로
원치 않은 신부와 승려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의 생명이 다하는 그 날까지 이렇게 살아가야만 되는 것인가? 
생각만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전립선비대(射精되지 않은 精液이 凝固되어)로 작년에 참으로 엄청난 고생을 했습니다.

처음부터 부부생활의 빗장을 열지않고 살아왔었다면
이런 질병이 발생하지 않았을찌도 모를일입니다. 

그러나 25년간 부부생활을 해오다가 어느날 갑자기 精液이 房事되지않고 고이는것
이것은 연못에 고인물이 섞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이것을 무엇으로 설명하겠습니까? 

부부생활을 중단하고 禁慾의 삶을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닌 12년이나 살아왔다고 생각을 해보십시요. 
과연 누가 그것이 이해가 되겠습니까? 
과부가 아닌자가 과부를 홀아비가 아닌자가 홀아비를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手淫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음행의 연고로 아내를 두라고 사도바울은 말씀합니다. 
至當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말이쉽지 현실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聖經적이 아닌 변질된 세상풍조. 
시대사조는 세상이나 교회안에서나 묻 남성을 독신으로 늙어가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참으로 참담한 일이 아닐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직업여성(娼妓라고 성경에서 말하는데)과의 교접은
나의 몸에 저주를 입히는 것으로서 매번 양심을 찌르고 있으니….

12년을 혼자 살면서 그 누구하나 나의 재혼을 위해서 신경 쓰주느니 없었습니다. 
원래 初婚은 하늘이 맺어주지만 再婚은 사람이 맺어준다고 하는데 
대개는 가족이나 친지들이 나서서 중매를 해줌이 마땅하나 나는 天涯孤兒 · 天涯孤獨의 존재입니다.

아니 다니던 교회에서조차 꿈을 가지라. 믿음안에서의 꿈은 이루어진다라고 꿈을 품으라고 했습니다.
꿈이 없는 자는 이미 묘비에 "종결"선언을 하고 사는 덧없는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꿈을 가졌습니다.
어찌보면 일본여인을 꿈꾼다. 또는 아이를 놓지 못하는자 내지는 수녀와같이 복음만을 위해서 사는 여자를 만난다. 

현실에서는 이룰수없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내 주제에 언감생심(焉敢生心)이겠으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시면 못하실일이 없다고 믿기에
얼토당토 않지만 믿음안에서 큰 꿈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출석하던 교회에서조차 그 누구하나 나의 재혼에 관해 관심을 갖기는커녕
정작 재혼의 문제를 입에 거론하는 것을 본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起伏信仰이 만연되어있는 오늘날 교회내에서
나같은 사람은 한낱 거추장스러운 존재내지는 있으나마나한 존재입니다.

언제부턴가 교회는 정상인 사람만 모여서 예배하는 곳이지
비정상인 사람이 치유받고 정상화되는 것을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고로 나같은 사람에게 여자를 소개해줄 신도나 목회자도 없을 뿐더러
올 여자도 없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너는 너 대로 나는 나 대로 갈길이 따로 있구나.
가수 박일남씨의 '마음은 서러워도'의 가사 한대목 그대로입니다. 

그러다가 강산이 한번 바뀌고 나서 오십의 인생 頂嶺에 올라서서
처음으로 한 지인의 소개로 과부를 소개 받았습니다. 

그의 말에 의할 것 같으면 얌전한 여자라했습니다. 
남편은 사별한지 오래되었고 長成을 마친 두 딸은 결혼을 했다고 했습니다.
여자라고는 만나보지를 않은탓에 며칠을 두근거림으로 밤잠까지 설쳐가며 만났습니다.
나이가 좀 들어보였으나 작은 체구가 캄프라치를 해주었습니다. 

고생속에서 살아온 탓인지 일하며 손은 몹시 거칠었으나 하체는 통통하였습니다.
50대初半이라고 했습니다.
그제서야 나도 나이가 들었음을 다시한번 더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나이를 잊고 산 것은 아니었지만 세삼 나도 늙었음을…. 
자식얘기. 하는 일상. 그간 살아왔던 얘기 글쓰는 얘기 등 서로간의 얘기. 대화의 물고가 트이자
어느샌가 그 여자에게 친근함이 생겼고 볼 수록 마음에 들었습니다.

역시 異性이란것이 이래서 좋은것인가 싶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인근 저수지를 가져간 택시로 드라이버를 하며 손도 잡고 
사타구니 또한 설쩍 만졌더니 전기가 온다며 다리를 배배틀기도 했습니다.

단편소설이 수록된 나의 소설집 한 권도 선물로 주었습니다.
3시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데이트를 마쳤습니다.
나로서는 기분이 업되었으며 실타래가 풀어지리라 저으기 기대를 하면서
그녀의 집 부근 목적지에 내려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자한번 보내께요"라며 가는 것이었습니다. 
뉘앙스가 묘했습니다. 
문자를 보내면 보내는 것이지 한번 보낸다는 것은 또 뭔가?

다음날 내가 먼저 문자를 보냈습니다. 
잠시후 답장이 왔습니다.
"아저씨 제가 아닌 측 했지만 부처님 같지는 못할 것 같네요. 죄송해요"

나는 이 문자를 받고 저녁 내내 음미를 하며 일을 했습니다. 
하루가 지난 다음에서야 비로서 그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 이런 일이, 그랬습니다. 그녀가 생각했던것 보다 나는 장애가 심해던 것입니다.
지팡이를 짚는 것도 모자라 보조기를 하고 힘겹게 걷는 모습을 본 그녀.

그녀 입장에서 봤을때 자칫하면 나를 부축하고 다녀야 될찌도 모른다고 생각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자기가 나를 만나 속상한일등 여러 가지 넋두리를 틀어놓고 싶은데
나는 회사택시를 운전하는 적빈하기 그지없는 막장 기사였던 것입니다.

그 날도 나와 대화중 입금 물어넣을것을 몇차례에 걸쳐 걱정을 하였습니다. 
자기로서는 남자에게 기대고 싶은데
도리어 남자가 자기에게 기대어야 하는 반대의 기둥역활이 부담스러웠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나의 곧은 언행과 품성이 그녀를 경직되게 만들었지않나 싶었습니다.
부처님. 소위 석가모니는 자비의 대명사인데. 
이 慈悲는 한마디로 말해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중생에게 낙을 주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고통을 없애주는 것".
그런데 부처님 같지는 못할 것 같네요. 죄송해요. 라는 말은 
자기는 보살축에도 들지 못하는 그저 평범한 여인에 불과하다는 것을 고백한 셈이었습니다.
"죄송해요" 라는 한마디로 단념을 촉구한것입니다.

낯선 데이트. 그 후유증은 짧았지만 강력한 것이었습니다.
감전의 기분이 아마 이런것이 아닌가? 서글픔이 파도처럼 몰려왔습니다. 
그리고는 한없이 울었습니다. 

(신앙적으로 영적으로 볼때 참으로 가치없는 눈물이겠습니다만)
서슬픈 눈물이 내 가슴을 적시다 못해 아려옴을 느꼈습니다.

여인의 따뜻한 정이 너무나 그리웠고
또 그녀의 조용한 자태와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너무 마음에 들었던것 같습니다.
내가 너무 순진한 것인가? 소심한 것인가? 
아니면 마음이 여려서인가? 나 자신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나의 실상이었습니다. 
빈사사상태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장애란 단지 조금 불편할뿐이다라고 누가 얘기했던가요?

그러나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결코 불편함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생을 左之右之하기도 함을 나는 자각했습니다. 

특히 남녀의 결합에 관한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
(대체적으로 장애인들은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가리지않는 철모르는 시절에 주로 결혼을 하는 이유가 그래서일겁니다)

언젠가 어느 유력한 여성 장애인에게 기자가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타인에게 民弊를 끼치지않기위해서라는 말을 들은적이있습니다. 

그 말을 바꾸어 생각해보면 자기를 진정으로 위해주고 헌신적으로 보살펴줄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결혼을 할 수 있다는 얘기도 되겠습니다.
왜 그녀라고 결혼을 하고 싶지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어떻게 보면 그녀의 말이 맞을 것입니다. 
장애란것이 상대방에게 폐가 됨으로
우리는 여느 사람과같이 이성간의 사랑과 행복은 맞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단지 그네들이 누리는 행복 언저리에 머물면서
아! 행복이 저런것이구나
- 그것을 시로, 수필로, 소설로, 음악으로 만들어 영혼을 달랠뿐.

이것이 또 중심가에서 사랑을 나누며 사는 그네들에게는
아름다움으로 감정을 읊조리는 매체가 되고 있으니 아이러니하지요.

(지금껏 나는 재혼문제로 여러 대형교회 신앙상담 코너나 기독교인 치유상담연구원에 상담을 한바있으나
대형교회의 상담답변은 賣春만은 참으세요.
기도하겠습니다. 였고 

치유상담원에서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큰 뜻이 있는것 같으니 꾸준히 기도하세요.
그것이 상담의 답변 전부였습니다. 

그러기를 이미 십년이 가까워옵니다.
사도바울이 몸의 질병으로인해 하나님께 고쳐주기를 세 번 기도했으나
네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응답을 받고
더이상 기도를 하지않고 질병을 안은채 평생을 산 것을 봤스니다)

저 역시 그래야 될것 같습니다. 기도의 제목을 내려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저의 꿈 희망. 이 모두는 영적인것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 육적인 것으로 부질없는 기도라 생각이 듭니다. 
고로 나는 점점 더 염세주의로 이끌려 들어가는것 같습니다.

사도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죽어갑니다. 
하나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십니다. 
나옹선사의 禪詩 (청산에 살라하네)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저 하나님 당신이 이끄는데로 살아갈뿐
나에게는 의식도 필요없고, 자유의지도 필요가 없는것 같습니다.
나의 운명은 이미 프로그램 셋팅이 되어있어 변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기도로서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고 나아가서 나의 운명까지 바꿀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초기화가 안되는 고정된 상태로 살아가는것.
그냥 이대로 하루하루 살다가 당신이 부르면 本鄕으로 들어가는것 이것이 나의 생인것 같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天涯孤兒 · 天涯孤獨을 누리는 것, 소아마비 장애를 가진것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선물이요. 이혼도 나에게 주신 선물이요. 
그와 더불어 외로움에 찌들어 몸부림치며 살아가게 하심도 모두는 선물이 아니겠는가 싶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하나 제대로된 특별한 선물이 하나 있다면 소설가라는 이름의 선물입니다.
그래 그렇게 살아가자. 그렇다면 하나 房事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살아있는 동안 적어도 여자의 육체를 필요로 하는 동안만이라도
남성의 건강(前立腺)만은 지키며 살아야될것인데.
아니 이것마져 완전히 거세(때로는 비뇨기과적인 입장에서 거세를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해야 된단말인가? 

육체조차 완전히 부정을할때 
비로서 하나님이 나에게 프로그래밍하신 뜻에 온전히 부합되어지는게 아닌가?

데오볼렌테(Deo Volnte - 하나님의 뜻)는 과연 무엇인가?
때로 "나는 자연인이다"의 주인공들이 부럽기도 하답니다.
세속을 등지고 유유자적 은자의 삶을 그들.
그러나 나는 장애와 함께 살고 있다보니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도 없습니다.

저의 글을 읽으시고 깊이 묵상하신 후 믿음으로 상담에 신실히 응해주실것을 바랍니다.
나름대로의 힘과 座標의 향방이 설정되어 질 것을 기대해봅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답변을 주시는 분위에 함께하시길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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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참 잘 쓰시는군요.
글을 읽으려니 너무 빡빡해서 공간을 여유있게 편집해 보았습니다.
다른 분들이 읽기 편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랬으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님의 인생과 사연에 대해 너무 안타깝고 미안해서
무어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하나님은 가난한 자, 병든 자, 소경, 저는 자, 약한 자들의 하나님이시니
그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산다면 좋은 날이 오게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글이 너무 길어져서 다음의 링크로 답변을 대신하겠습니다.

2015.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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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신
제가 끝까지 읽었는데요
무엇이 사명이고 믿으로 산다는 것인지
모르겠구요
여자가 필요하고 남자가 되고 싶다
인데요! 세상에 님을 이해하며
충족될만한 여자가 있겠나! 싶습니다
님이 생각을 바꾸시구요
내가 누구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거나
스스로 혼자서도 잘노는 자세가
필요해 보입니다

2015.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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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연애코치
지존
연애, 결혼, 이성, 연애 상담, 사람과 그룹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안녕하세요. 저도 작가의 삶을 사는 것 같았지만, 작가보단 심리상담으로 전환해주시네요

저는 심리상담을 벌써 20여년을 하고 살아옵니다.

그러나 심리상담이란게 못먹고 못입고 굶어죽을 지경이라서 항상 배고픈 직종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하기 싫다고 했지만, 지금도 어쩔수 없이 하면서 새로운 심리상담을

하고 있습니다...네 맞습니다..

연애심리학이라는 학문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연애심리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평생 글쟁이로 살길 바라는 기도를 벌써 20여년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저 글쟁이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서 놔두진 않으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루도 평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문의해오는 사람들에 사이에 살고 있고

님의 글을 읽고 많은 감회를 갖게 되는 군요.

그렇지만, 노력과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은 주십니다.

님이 적은 글 한자 한자가 하나님을 알리는 것이고, 님이 말한마디 한마디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기에

꼭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고 일본,,또다른 공간을 찾아 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당.

소설가로서의 삶을 사는 것 자체만으로 이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현실때문에 택시운전이나 장애로 힘들어하실지 몰라도 그 현실이 이어져서 과정이 만들어지지만

소설가라는 직업 글을쓰고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현재의 기도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만들어지는 것일 것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사람들과 공감하는 것이고

특히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평안하고즐겁게 만들어낼 수 있는 예술의 기초라고 생각이 듭니다.

 

현실의 문제 때문에 자책하지마세요.

자책하는 자체만으로 하나님의 지음을 받은 우리가 아프고 힘들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기도제목도 좋고 10여년을 기도했다고 하지만, 그때와 그시기를 이미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제목중에서 하나님께서 꼭 하시고자하시는 일들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욕심으로 인한 기도제목은 님에게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프고 힘들어서 인간에게 의지하는 그런 기도제목은 오로지 더욱 힘들게만 만들고 기대감만 커지게 되

므로서 인간의 육체적 환희를 경험하고 싶어하게 되죠.

님께서 적어 놓은 글중에서 발췌한 것을 적어보겠습니다

 

(지금껏 나는 재혼문제로 여러 대형교회 신앙상담 코너나 기독교인 치유상담연구원에 상담을 한바있으나 대형교회의 상담답변은 賣春만은 참으세요. 기도하겠습니다. 였고 치유상담원에서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큰 뜻이 있는것 같으니 꾸준히 기도하세요. 그것이 상담의 답변 전부였습니다. 그러기를 이미 십년이 가까워옵니다. 사도바울이 몸의 질병으로인해 하나님께 고쳐주기를 세 번 기도했으나 네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응답을 받고 더이상 기도를 하지않고 질병을 안은채 평생을 산 것을 봤스니다)

 

저는 가정상담부터 재혼,이혼 등등의 가족상담을 해오고 있고 사랑을 위한 성격개선에 대해서 교육센타를

 운영하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하고 있습니다. 참 암담한것은 그저 꾸준히 기도하세요라고 말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도라고 보지만, 실질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상담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게 ,,,,,기도를 더많이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힘네세요,,,위로받거나 서로 교제를 원하실경우에 찾아오세요,,

기독교문학을 위해서 노력할수 있길 바랍니다,

 

소설가이시니 글쟁이로서의 삶을 나누길 원하시면 찾아오세요,,,

성경과연애,바인드맵선교센타........같이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고민거리라도 나뉘고 싶으시면 찾아오세요,,

2015.02.09.

  • 출처

    성경과연애,바인드맵선교센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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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rp****
중수
본인 입력 포함 정보

나름 은사를 받아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다렸건만, 응답이 없어 평신도로 살아가고있는 성도입니다.

질문자님께서는 이미 아주 훌륭한 여건을 가지고 계신듯 싶습니다.

문서사역은 지금 당장 시작하십시오.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로 본인의 택시에서부터 시작하세요.

짧고, 간결한 복음의 메세지를 조금 큰 글씨로 출력하여, 택시에 오르는 손님에게 건네세요. 계 중에 질문자님께서 건넨 문서를 읽고, 하나님을 만나게 될 분이 반드시 계실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반드시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아무도 제대로된 복음을 전해주지 못해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러한 질문자님의 역할을 기대하며,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지시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렇게 복음을 전하시다보면, 다른 여타한 문제들은 그냥 술술 풀려나갈껍니다. 확신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녀를 주님은 결코 혼자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눈이 뚫어져라 쳐다보십니다. 왜냐하면 치열한 영적 전투의 현장이기때문입니다. 후방에서 총알이나 물자를 지원하는 사람보다 훨씬 더 관심을 가지고, 주님께서 직접 간섭하심을 경험하게되실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생생하게 살아서 운행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만나게 되실것을 축복합니다. 만약 복음의 본질에 대한 궁금증이나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같이 묵상하고 배워나갈 수 있을듯 싶습니다.  terpmania@naver.com

2015.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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