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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가요계에 영향력이 강한 가수
kb**** 조회수 11,904 작성일2005.11.06

제목 그대로 입니다 가요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가수가 누가 있을까요??

 

예를 들어  모든 가수들이 존경하는 가수라던가..... 아님  방송국에서도 막 최고급으로 대접 해준다던가.....

 

시시껄렁한 요즘 신인가수들 같이 인기를 올리려고 오락프로그램에 나가는 것을 볼수 있는데요 그딴짓 안하고 진짜 진정한 뮤지션!(제 친구들의 얘기 입니다 전 모름 ㅋ)

 

무슨 x맨인가? 거기에 가수들 나와서 생쑈한다고 하던데;;

 (어쨌든 그건 한번 보면 알테고.......)

 

요즘 아이돌은 상대도 안될 정도로 작사, 작곡, 프로듀싱의 실력을 갖춘 사람이 있을까요?

 

궁금합니다^^  제 친구들은..... 조영남?? 조영남인가 조용남인가?? 조영필인가??

 

(이름이 상당히 헷갈린다는...... ㅡ.ㅠ)

 

하여튼 조영남하고 이승철??  이라는 사람이 대단하다고 하던데 ㅋ 제가 티비를 잘 안봐서 가수들을 많이 몰라요 ㅋㅋ

 

그리고 무슨 동방신기?? 던가? 인기가 대단하다고 하던데... 무슨 빠순이는 뭐죠??

 

 제가 중학교3학년인데 우리반 남자 애들이 여자애들보고 무슨;; 동쪽에서 방구나 뀌는 녀석들의 빠순이라던가?(ㅡ.ㅡ 제 친구들이라도 좀 유치한;;예비 고등학생들이;;) 어쨌든 그렇게 놀려 대던데요... 빠순이가 뭔가요??

 

 아, 그리고 음.... 제가 신인가수를 잘 몰라서 앞서 예기한 동방신기를 예로 들겠습니다.

 

음.... 제 친구들이 말한 조영남인가? 뭔가 하는 사람하고 이승철하고요.......

 

신인가수인 동방신기와 작사, 작곡, 프로듀싱 등등, 진정한 뮤지션의 차이는 어느 정도 차이가 날까요??

 

조영남인가? 그 사람은 자기가 부른 노래의 거의 90%가 자기 노래라던데;;(대단하군요)

이승철도 작사작곡 90%라고 하던데......(역시 대단함)

 

신인가수인 동방신기는 대충 자기노래의 몇%를 작사작곡 했을 까요?

 

x맨인가 뭔가에도 동방신기 나와서 쌩쑈 한다고 하던디..... 아, 얘기하다가 이상한 곳으로 점점 나가는것 같은;;;

 

요점을 말하면요;;(ㅈㅅ 너무 길게썼음 ㅠ.ㅠ) 

 

 가요계에서 제일 영향력 있는 사람(방송국에서도 쩔쩔 맬 정도??, 모든 후배들이 존경해 못지않은 사람?? 음악인들에게 노래로 칭찬을 받은 사람??)

 

가수로써 대단한 사람(조영남, 이승철 같은 사람)을 좀 가르쳐 주시구요

 

신인인데도 작사작곡 다하는 사람가르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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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fe****
초수
국내가수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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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길지만 잘 읽어보세요..

 

현재로써는 양현석이나 이수만 박진영같은 기획사들이 영향력이 크겠지만

대한민국가요 역사상 통틀어 보면 서태지가 가장 큽니다.

왜냐면 서태지는 안되는것들을 되게 만든 유일한 뮤지션이거든요..

 

서태지같은 경우는 진짜 모든 잘못된 관행들에 대항해서 팬들과 같이 싸워왔고

그 싸움을 거의 이겼습니다..그런 서태지의 싸움들의 승리로 그나마 가요계 시스템이

많이 발전을 할수 있었죠..대한민국 유일무일하게 최고의 인기를 가진 대형스타이면서

음악도 혼자다 만드는 뮤지션이면서 동시에 잘못된 관행에 맞서싸운 유일한 뮤지션이기에 서태지의 평가가 더욱더 일반가수차원이 아닌 그 단계를 뛰어넘는 무언가로 평가되는

업니다..

 

그가 맞서싸운걸 예를 들자만

 

첫째 기획사 문제..

 

지금도 노예계약이다 뭐니 해서 기획사와 가수들의 불협화음이 언제나 있습니다.

하지만 서태지가 데뷰하던 90년대 초반에는 지금과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정말로 말도 안되게 가수들이 노예처럼 음악활동을 했죠.

 

기획사와 방송국이 하라는대로 무조건 따라야했고 가수들은 힘이 없었죠..

예를들면 조용필씨같은 국민가수도 기획사의 지시대로 본인이 원하지 않는 음반과 타이틀곡으로 활동했어야 했고 김완선씨 얼마전기사 보면 알겠지만 부상당했는데 얼굴에

반이상 붕대를 감고 노래를 불렀다고 할만큼 혹사가 말도 안되게 심했습니다.

 

하지만 서태지같은 경우에는 이런 부조리들을 정말로 전국민적인 팬들의 힘을 뒷바침해서 하나하나 깨어갑니다.

 

서태지가 1집음반을 다 만들고 나서 음반사를 찾아댕기죠.하지만 음악이 너무 어렵다고

모든 음반사들이 거절을 합니다. 그당시에 그런 빠른 랩이 들어간 음악은 정말로 너무나도 어려운 난해한 음악이였습니다. 한국사람들은 미국랩음악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앗습니다.

 

그래서 결국 반도음반이라는 허름한 음반사에서 앨범을 내게 됩니다..이때 서태지와 아이들1집은 서태지가 모든곡을 다 작곡하고 프로듀서했지만 유대영이라는 프로듀서 즉 유대영이라는 사람으로 인해서 가수데뷰를 합니다.

 

1집활동 보면 알겠지만 서태지도 꽤 혹사를 당합니다.진짜 몰래카메라 이딴것도 찍히고

무슨 mc도 보고.. 서태지는 안되겠다 싶어서 서태지와 아이들 1집 활동을 마친뒤

곧바로 유대영씨에게 2집부터는 자신들이 다 알아서 할테니 그만 손을 떼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유대영씨가 당연히 거절했죠.. 하지만 서태지는 그러면 이제부터 가수은퇴한다고 하면서 유대영씨가 두손을 들고 서태지를 놓아줍니다..2집때부터는 100% 서태지의 독자노선으로 활동을 하죠.. 2집때부터 기획사도 본인이 차리고 팬클럽도 상업적으로

이용될수있다고 자진해산 시켜버립니다. 그래서 서태지가 공식팬클럽이 없는겁니다.

 

 

그리고 1집활동을 마치고 그당시에는 상상도 할수 없는 잠적기 시간을 가지죠..이것또한

방송국에서는 용납할수 없는 어떻게 보면 가수생명에 큰 지장이 갈정도로 대단한

모험이었죠.서태지 이전에는 인기가수들이 앨범낼려고 잠적시간을 갖는게 허용이

안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실제로 서태지가 잠적을 한후 방송국에서 서태지 출연금지를

시키려고 했습니다만 2집이 워낙에 폭발적인인기를 끌었기에 결국은 방송국이 손을

듭니다.

 

둘째는 초상권침해와 가사문제..

 

서태지가 워낙에 인기가 높으니 서태지라는 이름을 무단으로 도용해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많았죠..서태지 노트부터 심지어는 서태지마크를 단 아동용 옷도

나왔었습니다.하지만 초상권문제가 그렇게 심각하지 않던 시절이었기에

보통가수같으면 크게 일을 벌리지 않고 넘어갔겠지만 서태지는 그당시 뭐 초상권

침해같은걸로 고소를 하면서 욕을 먹어가면서 까지 고소를 했습니다. 그 결과 초상권에

대한 문제의식을 사회에 심어주었죠.

 

우리나라는 공윤이라는 심의제도가 있었습니다.지금은 방송국에서 방송할때

가사를 검사하지만 예전같으면 공윤이 생각하기에 가사가 안좋으면 앨범조차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대중들에게 인기많은 탑스타나 대중가수들은 대부분의 가사가

사랑타령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서태지는 2집때부터 죽음의 늪같은

마약경고성 노래와 3집에서는 교육제도 비판및 통일의 염원을 바라는 노래등 가사의

영역을 사랑노래만이 아닌 비판적인 노래를 적극적으로 합니다. 탑가수가 교육제도를

비판하고 그러는건 공윤때문에 큰 모험이였죠.. 그리고 정정으로 다다른게 4집

시대유감인데 이때 공윤이 가사를 바꾸라고 지시를 내리는데 이때 서태지는

가사를 완전히 삭제한체 음반을 냅니다.

 

공윤이 열받아서 서태지와 아이들 4집을 판매금지시키려고 하니 전국의 서태지팬들이

서명운동하고  정태춘씨같이 수십년 공윤폐지운동을 해도 관심없던 대중들이 공윤의

문제성을 알게 되고 공윤폐지운동이 일어납니다. 결국에는 정태춘씨의 수십년의 노력과

막판 서태지의 뒷심으로 공윤은 대중에게 크게 이슈화되면서 폐지가 되고 서태지의

시대유감은 싱글앨범으로 가사가 실린채 다시 나옵니다.

 

세번째는 패션에 관한것..

힙합 즉 통넓은 바지를 처음으로 입고 나온것도 서태지고

염색을 처음으로 한것도 서태지죠.

아시다시피 복장규제 옛날에 엄청났습니다. 지금 베트남이나 동남아가수들

보면알겠지만 진짜 예전에는 복장같은게 방송국에서 넘 심하게 다루어서

가수들의 복장제한이 엄청났습니다.

 

서태지가 힙합바지 입고 나오니깐 주부아침토론-_-이런데서부터

뉴스까지 옷이 너무 파격적인게 아니냐고 토론이 엄청났습니다.

 

염색문제도 서태지 이전에는 꿈도 꾸지 못한것들이었죠..

 

 

그외에 서태지의 활약상은 더 많은데.. 대략 큰 줄기는 이것들인거 같습니다..

어떤가수도 저렇게 서태지처럼 자유롭게 자기 뜻대로 활동하지는 못하죠.. 지금까지도..

 

 

 

 

2005.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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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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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인터넷업 공무원, 학사 행정, 제도, 민원, 행정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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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조용필이라고 생각합니다.

 

 

1. 위대한 탄생

 

그의 그룹인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은 우리나라 최장수 록밴드(1979년~)이며 각 분야의 원로급 최정상 세션들이 모인 그룹입니다. 위대한 탄생을 거쳐간 음악가들은 대학의 실용음악과 교수이거나, 요즘 가수들의 레코딩의 세션이나 , (최신가수들의 음반을 사서 보면, 이들의 이름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작편곡 및 프로듀싱 등 음악계 도처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상당의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들만 하더라도 조용필의 음악계에 대한 영향력은 꽤 크리라 생각됩니다. 김광민, 이태윤, 이건태, 송홍섭, 정원영, 유재하 등은 대표적인 인물들입니다.

 

 

2. 그가 남긴 업적

 

그의 가장 큰 업적은, 가요계를 대중가요계 답게 만들어 만들었다고 해야 할까요? 70년대 물론 가요는 있었지만, 음반판매수준이 오히려 팝음악들에게도 밀릴만큼 저조했습니다. 하지만 조용필 등장이후 급반전하여, 대중가요가 대중가요답게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었죠.

또 다른 업적은 많은 장르가 그를 거쳐서 우리나라에 뿌리를 밖았다는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발라드는 조용필에서 시작해서 조용필이 발전시킨 음악입니다. 발라드 외에도 많은 록음악들과 댄스음악들은 물론 심지어 힙합이나 국악, 동요 등 랩을 제외한 모든 음악이 그의 손을 거쳐갔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 입니다. 1집부터 쭉 들어보시면, 가요의 변천이 보입니다. 13, 14집 그리고 7집은 그의 최대명반입니다.

13,14집은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진 못했지만, 수많은 음악인들을 좌절시킨 앨범이고, 7집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앨범 대부분의 곡이 순위권에 드는 기염을 토해냅니다. 7집 나온지 1년 뒤 8집이 나오게 되는데, 모 가요프로그램의 순위가 정말 엽기적이게도, 조용필7집 1위, 조용필7집 2위, 조용필8집 3위, 다른가수 노래 4위.. 이렇게 된 경우가 있었습니다. 즉, 1,2,3위 동시에 오르는 것도 일이긴 하지만, 1년이 지나도록 계속  곡을 바꿔가며 1위를 유지하고 있었단 말이죠.

또다른 업적이라면, 콘서트 문화의 도입이죠. 예전엔 리사이틀 중심의 공연문화였지만, 이젠 가수들이 밤무대 뛰는 일이 그리 흔하지는 않죠. 조용필이 추진한 콘서트문화가 이제는 거의 정착이 되었다고 보여집니다. 역대 최고의 관객동원 콘서트는 93년 조용필의 해운대공연으로 15만명 이상이 관람했고, 올해도 2005년 전국투어로 총25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아 공연계에선 여전히 1위입니다. 90년 이후로 방송출연을 하지 않기 때문에(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입니다. 방송국에선 여전히 조용필은 최고의 vip입니다), TV나 인터넷에서 가요에 대한 정보를 얻는 젊은층들은 그를 잘 모를 뿐입니다.

이러한 업적들이 많기에, 음악계에선 그를 존경하고 대우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3,. 후배들의 선망의 대상 1호

 

제가 외출해야할 시간이 다되서 관련 기사로 대체하겠습니다.

 

 

조용필, 가수가 뽑은 최고 가수 [YTN 2005-09-27 17:30]

 

가수 조용필 씨가 가수들이 뽑은 최고 가수로 선정됐습니다.

음악평론가 임진모 씨가 운영하는 음악사이트 '이즘'이 개설 4주년을 맞아 국내 뮤지션 33명을 대상으로 '나의 명곡'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조용필 씨는 '추억 속의 재회'와 '미지의 세계' 등의 곡으로 5명의 지지를 얻어 최고 가수로 뽑혔습니다.

조용필 씨에 이어 신중현 씨와 밴드 '들국화'가 똑같이 4곡을 추천받았습니다.

외국 가수들 가운데는 영국 록밴드 '레드 제플린'이 1위를 차지했고 '비틀즈'와 'U2', '스팅'과 '프린스'가 뒤를 이었습니다.

이번 설문조사에는 이적과 전제덕, 이상은, 김광진, 신해철 씨 등 33명이 참여했습니다.

 

 

‘가왕’ 조용필의 힘, 후배 40여명 불러 모아 [헤럴드 생생뉴스 2004-12-24 12:26]

 

‘가왕(歌王)’ 조용필이 후배 가수 40여명과 오랜만에 만났다. 조용필은 20일 오후 7시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신승훈, 이승철, 김건모 등 후배가수들을 만나 식사 겸 의사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이날 모임은 조용필의 밴드 ‘위대한 탄생’ 출신 베이시스트 송홍섭이 "후배가수들이 조용필 선배를 만나고 싶어한다"는 요청을 조용필이 수락해 이뤄졌다.

조용필은 이 자리에서 "방송출연을 그만 둔 1990년대부터 후배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많이 줄었다"면서 "이 자리를 통해 여러 후배들을 만나니 정말 반갑다"고 말했다. 조용필은 또 "음반산업이 갈수록 안 좋아지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어려움을 이겨내자"고 강조했다.

이날 모임에는 호스트 조용필을 비롯해 이승환, 이승철, 김건모, 신승훈, 유희열, 김경호, 홍경민, god 등 국내 내로라하는 가수들과 봄여름가울겨울, 윤도현밴드, 롤러코스터, 클래지콰이 등 밴드 멤버들, 한상원, 한충완 등 뮤지션 겸 대학교수들이 참가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윤종신은 "명망있는 가수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건 조용필 선배니까 가능한 일"이라면서 "오늘 모임을 계기로 앞으로 정기적인 만남이 계속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2005.11.12.

  • 출처

    YTN / 헤럴드 기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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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시, 진학, 사람과 그룹, 이종격투기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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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구 선생님이십니다

 

불후의 명곡 눈물젖은 두만강의 주인공이죠

2005.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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