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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백과

한창

[ 漢昌 ]

요약 중국 5호16국시대 전조의 은제 유찬 때 사용된 연호(318년).

중국 5호16국시대 ‘한조(漢趙)’라고도 불리는 전조(前趙)의 제4대 황제 은제(隱帝) 유찬(劉粲, 재위 318) 때의 연호이다. 318년 음력 7월부터 음력 10월까지 3개월 동안 사용되었다.

은제 유찬은 318년(인가 3) 8월 31일(음력 7월 19일) 아버지 소무제(昭武帝) 유총(劉聰)이 죽자 뒤를 이어 제위에 올랐다. 그는 즉위한 뒤에 연호를 ‘인가(麟嘉)’에서 ‘한창(漢昌)’으로 바꾸고, 그 해를 원년으로 하였다. 은제 유찬은 즉위한 뒤에 태후 근월광(靳月光)과 황후 근씨(靳氏)의 아버지인 근준(靳準)을 대장군으로 삼아 지금의 허베이성[河北省] 싱타이[邢台]인 양국(襄國)에 주둔하고 있던 석륵(石勒)을 공격하려 했다. 그러나 근준은 사촌동생 근명(靳明)을 거기장군(車騎將軍), 근강(靳康)을 위장군(衞將軍)으로 삼아 군권을 장악한 뒤에, 정변을 일으켜 유찬을 비롯해 도성 안에 있는 유씨(劉氏) 황족들을 모두 죽이고 자신을 천왕(天王)이라 칭했다.

그러자 장안(長安, 지금의 시안[西安])을 지키고 있던 상국(相國) 유요(劉曜)는 근준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토벌군을 이끌고 수도인 평양(平陽, 지금의 린펀[臨汾])으로 향했다. 그는 음력 10월에 지금의 산시성 허진[河津] 인근인 적벽(赤壁)에 이르러 호연안(呼延晏) 등의 추대를 받아 제위에 올라, 연호를 ‘광초(光初)’로 바꾸고 그 해를 원년으로 하였다. 그리고 음력 12월에 근씨 일족을 모두 죽이고 반란을 평정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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