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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사전

허주

[ 許周 ]

시대 조선 초
출생 - 사망 1359년(공민왕 8년) ~ 1440년(세종 22년)
본관 하양(河陽)
이명 : 백방(伯方), 백공(伯公)
시호 : 간숙(簡肅)
직업 문신
가족관계 아버지 : 허귀룡(許貴龍)
본관 하양(河陽)

고려 말ㆍ조선 초의 문신. 자는 백방(伯方)ㆍ백공(伯公), 시호는 간숙(簡肅). 본관은 하양(河陽). 귀룡(貴龍)의 아들. 문과에 급제, 음보(蔭補)로 벼슬에 나가 여러 관직을 거쳐 전법정랑(典法正郎)이 되고, 1385년(우왕 11) 지양주사(知襄州事)가 되어 왜구(倭寇)의 침입에 대비하여 성을 쌓았다. 1388년 지안성 군사(知安城郡事)ㆍ개성소윤(開城少尹), 1390년(공양왕 2) 장령(掌令)을 역임, 같은해 공부 총랑(工部摠郎)이 되어 경기우도 염문계정사(京幾右道廉問計定使)가 되어 이성계(李成桂) 일파의 전제개혁(田制改革)에 참여했으며, 이듬해에 호조 총랑(戶曹摠郎)ㆍ1392년 경기우도 안렴사(京幾右道按廉使)를 역임하였다. 이해 조선이 개국되자 내부경(內府卿)이 되어 1397년(태조 6)에 사헌중승(司憲中丞)을 겸직하고, 같은해 노비변정도감 도청사(奴婢辨定都監都廳使)가 되어 노비 소유에 대한 소송 사건을 공정히 처리했으며, 1399년(정종 1) 노비변정도감이 폐지 되자 판사수감사(判司水監事)ㆍ지형조사(知刑曹事)를 역임하고, 1401년(태종 1) 판전농시사(判典農寺事)로서 경상도 안렴출척사(慶尙道按廉黜陟使)가 되었으나 새로 개간된 토지 상황을 잘 파악치 못해서 이듬해 양주(楊州)에 유배되었다. 1405년 형조 참의(刑曹參議)를 거쳐 이듬해 호조 좌참의(戶曹左參議)ㆍ판홍주사(判洪州事)가 되었다가 병으로 사퇴, 1409년 다시 전라도 관찰사가 되고, 이듬해 참지의정 부사(參知議政府事)ㆍ한성 부윤(漢城府尹)ㆍ경기도 관찰사를 지낸 뒤 병으로 사직했다. 1416년 개성 유후사유후(開城留後司留後)가 되고, 1418년(세종 1) 판한성 부사(判漢城府事)로 재직 중 병으로 사퇴했다. 시문(時文)에 뛰어났으며 성품이 강직하여 공사(公事)를 공정하게 처리했다.

문헌

  • 고려사(高麗史)
  • 태조실록(太祖實錄)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覧)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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