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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다윗은 군인 이었습니다.근데 여호와의 증인들은 군대 왜 거부합니까.
du**** 조회수 2,850 작성일2004.09.22
성경에서 보면, 여호수와나 모세, 아브라함 등은 군대를

거느리고 전쟁을 했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골리앗을 죽였고요.. 성경으로 볼때 하나님은 군대를 만들고, 그들을

도우셨는데..

여증들은 왜 군대를 반대 합니까.. 살인때문에 그런다는 건 아는데.

하나님의 말씀중에 살인은 이유없는 살인을 말하는것 아닌가요?

구약의 유월절에 양의 피를 바르지 않은 가정은 모두 하나님께서

죽이셨고, 율법을 어기는 사람은 모두 돌로 쳐 죽이도록 하셨는데..

성경에서 다윗과 여호수와 등이 군대에가서 전쟁을 한것에

대해서 여증들의 입장은 어떻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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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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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에 질문자께서 질문하셨으니 끝까지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고대 이스라엘에게는 전쟁을 하도록 허락하신 것이 사실이지 않는가?

맞습니다.여호와께서는 고대 이스라엘에게 전쟁을 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고대 이스라엘에게 상속 재산으로 지정해 준 땅을 그들이 차지하게 하기 위해 그리고 타락한 행위와 참 하느님에 대해 무시하는 태도 때문에 여호와께서 더 이상 살아 있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여기신 사람들을 처형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신명 7:1, 2, 5; 9:5; 레위 18:24, 25) 하지만 여호와에 대한 믿음을 나타낸 라합과 기브온 사람들에 대해서는 자비가 베풀어졌습니다. (여호수아 2:9-13; 9:24-27) 율법 계약에서 하느님께서는 자신이 승인하시는 전쟁에 관한 규칙을 명시하시면서 병역이 면제되는 경우나 그러한 전쟁을 벌이는 방법에 대해서도 규정하셨습니다. 그러한 전쟁은 참으로 여호와의 거룩한 전쟁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세상에서 벌어지는 어떤 나라의 전쟁도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 회중이 설립되면서 새로운 상황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세의 율법 아래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은 모든 나라의 사람들을 제자로 삼게 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나중에는 참 하느님의 숭배자들이 그러한 모든 나라에 있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나라들이 전쟁을 벌일 때 그 동기는 무엇입니까? 온 땅에 대한 창조주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자국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서입니까? 어떤 나라에 사는 참 그리스도인들이 다른 나라에 대항하여 벌이는 전쟁에 참여한다면, 그들은 동료 신자들에 대항하여, 그리고 같은 하느님께 자신들처럼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하는 사람들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 됩니다. 적절하게도 그리스도께서는 추종자들에게 칼을 내려놓으라고 지시하셨습니다. (마태 26:52) 하늘에서 영광스럽게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참 하느님과 그분의 뜻을 무시하는 태도를 나타냈던 사람들에 대해 앞으로 직접 사형을 집행하실 것입니다.―데살로니가 둘째 1:6-8; 계시 19:11-21.

**군복무를 하는 것과 관련하여, 세속 역사에서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나타냈던 태도에 대해 어떤 점을 알려 줍니까?

“입수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주의 깊이 검토해 보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기원 161년부터 180년까지의 로마 황제] 시대까지는 군인이 된 그리스도인이 없었으며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계속 군복무를 한 군인도 없었음을 알 수 있다.”―「그리스도교의 출현」([The Rise of Christianity] 런던, 1947년판), E. W. 반스, 333면.

“전쟁과 서로 죽이고 죽는 일과 온갖 악으로 가득 찬 생활을 하던 우리 각자는 땅 전역에서 전쟁 무기를 바꾸어 칼을 보습으로 창을 농기구로 만들었으며, 십자가에 못박히셨던 분을 통해 아버지 자신으로부터 우리가 받아서 가지고 있는 경건함과 의와 박애와 믿음과 희망을 발전시키고 있다.”―순교자 유스티누스의 “유대인 트리폰과의 대화”([Dialogue With Trypho, a Jew] 기원 2세기), 「니케아 이전의 교부들」([The Ante-Nicene Fathers] 미시간 주, 그랜드래피즈; 1885년 에든버러판의 재인쇄판) A. 로버츠와 J. 도널드슨 공편 제1권, 254면.

“그들은 민정이나 로마 제국의 국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을 일절 거절하였다. ··· 그리스도인이 더욱 거룩한 의무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군인, 행정관 또는 군주 직책을 맡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그리스도교사」([History of Christianity] 뉴욕, 1891년판), 에드워드 기번, 162, 163면.)

***질문자님처럼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고 전쟁에 개입했을때 어떤 현상이 생기는지 한 사례를 보시지요...

종교가 정치에 개입함으로 인류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초래하였읍니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한 배후의 사실들을 고려해 보십시오. 일부 사람들이 역사책에서 지워 버리고 싶어할 만큼 추잡한 사실입니다. 1924년 5월에 나치당은 독일 의회에서 32석을 차지하고 있었읍니다. 1928년 5월에는 의석 수가 12석으로 감소하였읍니다. 하지만, 1930년에 전세계적으로 대공황이 밀어 닥치자, 나치는 공황의 여파를 타고 괄목할 만한 회복을 하여, 1932년 7월의 독일 총선에서 총 608석 가운데 230석을 차지하였읍니다. 얼마 후, 전임 수상이며 교황의 기사 수사인 프란츠 폰 파펜이 나치의 도움을 구하러 왔읍니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폰 파펜은 새로운 신성 로마 제국에 대한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수상으로서의 자신의 짧은 재임 기간이 실패로 끝났기 때문에, 폰 파펜은 이제 나치를 통해 권력을 얻고자 하였읍니다. 1933년 1월 무렵, 폰 파펜은 경제계의 유력 인사들을 부추겨서 히틀러를 지원하게 하였으며, 간교한 책략을 사용함으로 1933년 1월 30일에는 히틀러가 독일 수상이 되게 하였읍니다. 폰 파펜 자신은 히틀러에 의해 부수상으로 발탁되어, 독일 가톨릭계의 지원을 얻어 내는 일에 사용되었읍니다. 권력을 장악한 지 2개월 만에, 히틀러는 의회를 해산하고 수천명의 반대파 지도층 인사들을 강제 수용소에 보냈으며 유대인을 압제하는 공개적인 운동을 시작하였읍니다.
1933년 7월 20일, 파첼리 추기경(나중에 교황 비오 12세가 된 인물)이 로마에서 교황청과 나치 독일 사이의 정교 조약에 서명함으로써, 로마 교황청이 새로이 부상하는 나치주의 세력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읍니다. 폰 파펜이 히틀러를 대신하여 조약서에 서명하였으며, 그 자리에서 파첼리는 폰 파펜에게 교황의 최고 훈장인 비오의 대십자장을 수여하였읍니다. 티보르 코에베스는 그의 저서 「실크 모자를 쓴 사단」(Satan in Top Hat)에서 그 일에 대해서 이렇게 기술합니다. “정교 조약은 히틀러에게 커다란 승리를 의미하였다. 그것은 히틀러에게 외부 세계로부터의 최초의 도덕적 지원을, 그것도 가장 높은 근원으로부터의 지원을 베푼 셈이었다.” 정교 조약은 교황청이 독일의 가톨릭 중앙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것을 규정함으로써, 히틀러의 일당 체제의 “절대적인 국가”를 정식으로 인정하였읍니다. 더우기, 정교 조약 제 14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대주교와 주교 및 이와 유사한 직책의 임명은, 독일 제국에서 지명한 관리가 제반 정치적 고려 사항과 관련하여 전혀 의혹이 없음을 충분히 확인한 다음에만 효력을 발한다.” 1933년(교황 비오 11세가 “성년”으로 선포한 해) 말경에, 히틀러가 세계 지배를 추진하게 만든 주된 요인은 교황청의 지원이었읍니다.
소수의 사제들과 수녀들이 히틀러의 잔학 행위에 저항하였으며, 그로 인해 고통을 겪었지만, 로마 교황청과 아울러 가톨릭 교회 및 대다수의 가톨릭 교직자들은 나치 폭정에 대해 적극적 지원 내지 무언의 지원을 하였으며, 나치 폭정을 세계 공산주의의 발전에 대항하는 보루라고 생각하였읍니다. 교황 비오 12세는 교황청에서 유리한 처지에 있으면서, 유대인에 대한 대학살과 여호와의 증인 및 그 외 사람들에 대한 잔인한 박해에 대해 아무런 비평도 하지 않고 그러한 일이 계속되게 방임하였읍니다. 1987년 5월에, 독일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어느 진실한 사제의 반나치적 입장에 영예를 돌린 것은 참으로 쓴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일입니다. 히틀러의 공포 정치 기간중에 다른 수천명의 독일 교직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읍니까? 제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때인, 1939년 9월에 독일의 가톨릭 주교들이 발표한 교서는 그 점을 분명히 밝혀 줍니다. 그 내용의 일부는 이러합니다. “이 중대한 시간에 우리는 우리의 가톨릭 병사들이 총통께 순종하여 자신들의 의무를 수행하고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희생할 것을 권고하는 바이다. 우리는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섭리가 이 전쟁을 축복된 승리로 인도하기를 간구하는 열렬한 기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한다.”
그러한 가톨릭의 외교술의 예는, 지난 4,000여 년 동안 권력과 이권을 얻기 위해서 종교가 정치적 국가들에 매달려 자행해 온 음란 행위가 어떠한 것인가를 명확히 해줍니다. 종교와 정치의 그와 같은 관계는 대규모적으로 전쟁과 박해 및 인간의 비극을 조장하였읍니다. 큰 음녀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이 다가왔다는 것은 인류에게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와는 대조가 되는 종교단체의 행동을 보시고 참 믿음이 무엇인지 숙고해 보시지요...

‘종교적인 이유로 박해를 당함’
“마우타우젠 강제 수용소에는 오로지 종교적인 이유만으로 박해를 당한 일단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열성적인 성경 연구생’파 곧 ‘여호와의 증인’ 성원들이었다. ··· 히틀러에게 충성을 맹세하기를 거절하고 여하한 종류의 군 복무도 거부하였기 때문에―정치에 관한, 그들의 신앙의 필연적 귀결―그들은 박해를 받았다.”―「마우타우젠 강제 수용소의 역사」(Die Geschichte des Konzentrationslagers Mauthausen), 한스 마르샬레크가 제공함, 오스트리아 빈, 1974년.

**사형을 선고받은 일부 사람에게서 온 편지
(참수형을 당하게 된)프란츠 라이터가 1940년 1월 6일에 베를린-플뢰첸제 강제 수용소에서 자기 어머니에게 쓴 편지:
“제가 지금 취하고 있는 행동이 올바르다는 저의 믿음은 확고 부동합니다. 여기 있는 동안은 아직 생각을 바꿀 수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께 불충성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 곳의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영예를 위해 그분에게 충실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제가 알기로는, 만일 [군인의] 선서를 했다면, 저는 죽어 마땅한 죄를 저지른 것이 될 것입니다. 그 일은 제게 해가 될 것입니다! 부활될 가망이 전혀 없을테니까요. 그러나 저는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고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어머니 그리고 모든 형제 자매들, 오늘 저에 대한 선고가 있었습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사형이 선고되었습니다. 집행일은 내일 아침입니다. 과거의 모든 참 그리스도인들이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저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는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그 말씀은 제게도 참됩니다. 저는 그 점을 어머니께 증명해 드렸으며, 어머니는 그러하다는 것을 깨달으셨겠지요. 사랑하는 어머니, 상심하지 마십시오. 모두가 성경을 더 잘 아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견고하게 서 계신다면, 부활하여 다시 만날 것입니다. ···
“다시 만날 때까지
“아들 프란츠 올림.”

**1945년 3월 2일에 헝가리 쾨르멘드에서 총살형을 당한 베르톨트 사보가 보낸 편지 :
“사랑하는 누이 마리카!
“내게 남아 있는 한 시간 반 동안 네게 편지를 써야겠구나. 그러면 네가, 곧 처형될 내 상황에 관해 부모님께 알려 드릴 수 있겠지.
“재난으로 가득 찬 현 세상 가운데서 내가 이 마지막 순간에 맛보고 있는 것과 똑같은 정신의 평화를 부모님도 누리셨으면 좋겠구나. 지금은 10시란다. 이제 11시 30분이면 처형되겠지. 그렇지만 아주 평온하단다. 이후의 내 생명은 여호와와 그분의 사랑하시는 아들 왕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의탁드렸지. 그분들을 진실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분들은 결코 잊지 않으실 거야. 나는 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아니 잠든 사람들이 곧 부활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 또 특별히 말하고 싶은 것은 내게 베풀어 준 사랑에 대해 여호와께서 지극히 풍성한 축복을 내려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란다. 나 대신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입맞추어 드리렴. 그리고 아누스에게도. 부모님에게 내 염려는 마시라고 해. 우리는 곧 다시 만나게 될테니까. 내 손이 이제 안정이 되는구나. 그러면, 여호와께서 나를 다시 부르실 때까지 쉬러 가야지. 지금도 그분께 서원한 것을 지키는 셈이 되겠지.
“이제는 내 시간이 다 되었구나.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그리고 나와 함께하시기를 바란다.
“깊이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며, ···
“베르티”

*용기와 확신으로 유명함
◆ “온갖 난관에도 불구하고 수용소 내의 증인들은 함께 모임을 갖고 기도하였으며 출판물을 생산하고 사람들을 개종시켰다. 자기들끼리의 동료감으로 지탱하면서 다른 많은 수감자와는 달리 그러한 장소가 존재하는 이유와 그러한 일을 당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는 증인들은, 적지만 잊을 수 없는 수감자 무리로서 보라색 삼각형으로 구별되었고 용기와 확신으로 유명하였다.” 크리스틴 킹 박사가 「나치 국가와 신흥 종교: 비국교주의에 관한 다섯 가지 사례 연구」(The Nazi State and the New Religions: Five Case Studies in Non-Conformity)에서 기술한 말이다.

◆ 안나 파벨친스카 저 「아우슈비츠의 가치 기준과 폭력」(Values and Violence in Auschwitz)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이 소수의 수감자 집단은 굳건한 사상 세력이었으며 그들은 나치주의에 대한 투쟁에서 승리하였다. 이 종파의 독일인 집단은 당시 공포에 떠는 민족 가운데서 홀로 불굴의 저항을 한 소수 집단이었으며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그와 동일한 의연한 정신으로 활동하였다. 그들은 동료 수감자들 ··· 수감자 간부들 및 심지어 친위대 장교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었다. 여호와의 증인은 아무도 자기 종교의 신앙에 반대되는 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었다.”

◆ 루돌프 회스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장」이라는 책으로 발간된 자서전에서 몇몇 여호와의 증인이 그리스도인 중립을 범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처형당한 일에 관하여 이야기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래서 나는 초기 그리스도인 순교자들이 원형 경기장에서 자기들을 갈기갈기 찢어 버릴 야수들을 기다리는 동안의 모습이 틀림없이 그러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표정을 완전히 바꾸고 눈을 하늘로 향하고 양손을 마주잡아 높이 쳐들고 기도하는 가운데 그들은 죽어 갔다. 그들의 죽음을 본 사람은 모두 깊은 감동을 받았으며 심지어 사형 집행을 한 사람들조차 감명을 받았다.” (이 책은 폴란드에서 “Autobiografia Rudolfa Hossa-komendanta obozu oswi?cimskiego”라는 제목으로 발행되었다.)


*“그들은 반국가주의자가 아니다”
“그들은 반국가주의자가 아니다. 그들은 여호와 편일 따름이다.” “그들은 징병 카드를 태우거나 반란을 일으키지 않으며 ··· 여하한 형태의 선동에도 가담하지 않는다.” “증인의 정직성과 충절은 한결같다. 어떤 사람이 증인에 관하여 어떻게 생각하든지―많은 사람이 많은 부정적인 것들을 생각하더라도―그들은 본이 되는 생활을 영위한다.”―「텔레그램」, 캐나다 토론토, 1970년 7월.

*초기 그리스도인들처럼
◆ “여호와의 증인은 대다수의 사람보다 훨씬 더 진지하게 여기는 종교를 가지고 있다. 그들의 원칙은 인기가 없고 로마인들로부터 잔인한 박해를 받았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을 생각나게 한다.”―「애크런 비컨 저널」, 오하이오 주 애크런, 1951년 9월 4일.


**친위대가 증인들에게 서명하도록 강요하려고 한 선언문의 번역문
.......................................강제 수용소
제2분과
선언문
·······································에
·······································에서 출생한
본인 ·······································는(은)
본 문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선언하는 바이다.
1. 본인은 만국 성경 연구회가 잘못된 가르침을 선포하면서 종교를 구실로 반국가적인 목적을 추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2. 그러므로 본인은 그 조직에서 완전히 탈퇴하였으며 이 분파의 가르침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3. 본인은 본 문서를 통해 다시는 만국 성경 연구회의 활동에 참여하지 않을 것임을 단언한다. 성경 연구생의 가르침을 가지고 접근하거나 어떤 방법으로든 그들과 관련이 있음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다면 본인은 즉시 고발할 것이다. 본인의 주소로 보내지는 성경 연구생의 모든 출판물을 즉시 가장 가까운 경찰서에 넘겨줄 것이다.
4. 본인은 앞으로는 국가의 법을 존중할 것이며 특히 전시에는 손에 무기를 들고 조국을 방어하고 모든 면에서 지역 주민들과 합세할 것이다.
5. 본인은 오늘 작성한 선언문에 반대되는 행동을 할 경우 즉각적으로 다시 보호 구치를 당할 것임을 통고받았다.
·······································, 날짜 ······································· ·······································
서명

"충실한 증인"이시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처음 나신 분"이시며 "땅의 왕들의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과분한 친절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요한 계시록 1: 5절
오늘날의 여호와의 증인은
여호와의 가장 "충실한 증인"이신 예수를 본받고자 힘써 애쓰고 노력합니다.
말만이 아니라 행동으로요...

2004.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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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개업을 하려면 옆집과 메뉴가 틀려야 하고 독특한 메뉴

 

가 있어야 손님을 끌 수 있지 않겠어요?

 

그런데 그 독특한 메뉴가 대중성이 없으면 망한답니다.

 

 

2004.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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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by****
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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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B.C 1446년 모세의 인솔하에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이 '여호와의 증인'이라면...

광야에서 율법을 받고, 성막을 지은 후 하나님이 가나안을 쳐서 취하라고 명령하셨을때 어떻게 했을까요?
'못갑니다!! 살인할 수 없습니다!!! 율법에 살인하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했겠죠?
그럼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을까요......

살인과 심판은 엄연히 다르죠.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진멸하고 취한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사형에 해당한다고 심판하신거고 이스라엘 민족은 그 집행자로서 행한 것이니 살인이 아니죠.
또 성경에는 하나님이 죽이라고 명한 사람을 안죽였을 경우 자기 목숨으로 대신할 정도죠.
현 우리나라에서 판사가 죄수에게 사형은 언도하고 그 집행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판사와 집행관이 살인을 했다고는 안하죠.
결과가 같아도 하나님의 법이나, 세상법에 의한 심판 여부에 의해 살인이냐 아니냐가 결정되는데..

하물며 우리나라 군대가 살인집단도 아니고.. 침략적 야욕을 품은 단체도 분명히(!) 아닌데.. 참 답답하죠..
또 전쟁상황 중 사람을 죽이게 되어도 민간인을 까닭없이 학살한 경우가 아니라면 역시 살인이 아니죠.

우리나라 군대는 이라크에서도 상황이 안좋아지면 부대 밖 외출 금지랍니다.
그만큼 유혈사태를 피해 도망다니는 평화적인(!) 군대죠.

북한도 아닌 우리 나라에서 군대를 간다는 것은 살인하기 위해 가는 것이 아니고 그야말로 이 노래가 말해주죠.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일도 많다만 너와나 나라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전투와 전투속에 맺어진 전우야. 산봉우리에 해 뜨고 해가 질적에 부모형제 우릴믿고 단잠을 이룬다'

군대가는 거, 총칼들고 훈련하는 것을 왜 살인이라고만 하는지..
나라와 가족을 지키는 일이라는 생각은 왜 안하는지..
그쪽은 만약 우리나라에 전쟁이 난다면 도망다니거나, 죽어주는 역할밖에 할수 없겠네요....?
뭐.. 기도도 하고,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할 수는 있겠지만요..... -_-

내용추가 : 군대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는 어디에서건 부당한 권력의 압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군대에서 뿐 아니라 어디에서건 부당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은 압력은 단호히 거부해야 합니다.
직장내에서도 그런 일이 숱한데 그렇다고 직장을 안다닐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것은 살인에 해당하는 미움과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04.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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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뜸이
식물신
개신교 18위, 생리, 피임, 사람과 그룹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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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증같이 전쟁이 없고 군인들을 두지 않는다면 세계는 평화롭겠죠.
그러나 현실 세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인류역사 이래 전쟁이나 폭동 등이 없던 시대는 약2백년 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인류는 전쟁이 아니더라도 형이 동생을 죽이는 가인과 아벨의 피흘림이 있었고 짐승들 같이 약육강식같은 싸움을 계속해 왔습니다.
여증의 종교적 이유로 군복무를 거부하는 것은 성경적인 것도 아니고 양심적인 것도 아닙니다.
남북으로 나뉘인 한국을 누가 지킴니까?
중립국 스위스도 총들을 갖고 있는데 한국은 휴전 국가 이고 미군이 주둔한 현실 입니다.
남한이 총을 다 버린다면 김정일은 얼씨구 하고 삼키려고 할겁니다.
나라를 잃으면 북한 같이 여증도 존재 할수가 없습니다.
아오지나 고향인 미국으로나 가야겠죠.

2004.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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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이해가 안가요
수혈도 절대로 안 하구요
구약종교를 믿기 때문이랍니다
피체 먹지 말라 레위기서에 보면요
되여 있지요
피흘린 자를 죄 없다 하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여기 에서 유례 한 율법적 신앙이지요
예수 그리스도 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해 피 흘리 시고 다 이루었다 하셨는데
그들은 아직도 구약의 율법 사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무서워 하고 있는 거지요
그리고 이땅이 지상 낙원이라고 하고요
구원 받지 못했지요
하나님은 내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 했는데 수혈을 못해서 죽어 가는데도 나 몰라 라 하지요 군대도 안가고..
속이는 사단 이지요 말세에 이단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 신앙 생활에 승리 하세요
할렐 루야

2004.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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