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한국 최고의 보컬리스트인가? (GQ 2001년 6월호 발췌)

뭐 작곡가들이 뽑는 가수들이랑 평론가들이 뽑는 가수의 기준이 다를지는 몰라도 대략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을듯해 올립니다.


당대 보컬리스트의 리스트에서 가장 압도적인 호소력을 분만하는 카리스마를 보유하고 있다고 흔히 지목되는 인물은 80년대 메틀밴드 시나위 출신의 록커 임재범이다. 그는 공중파 방송은 말할 것도 없고 라이브 콘서트마저도 기피하고 있지만, 네장에 이르는 솔로 앨범을 통해 깊고 무거우면 순식간에 음폭을 장악해 버리는 막강한 에너지와 어딘가 비어있는 듯한 쓸쓸한 톤으로 남녀 성별은 물론 십대에서 사십대를 아우르는 세대의 벽까지 손쉽게 넘어 버린다. 4집의 너를 위해 라는 록발라드에서 보여준 그의 보컬은 정말이지 경이로운 너비와 깊이를 지니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수많은 보컬리스트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간신히 도달하는 높이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손쉽게 돌파해 버린다. ...중략...

임재범 이후의 최고의 보컬로 손꼽히는 N세대는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박효신이다. 그는 이미 십대의 나이에 웬만한 삼십대 베테랑의 호흡을 구사하며 점점 희미해 가는 보컬의 카리스마의 계보에 확실한 방점을 찍었다. 리듬엔블루스의 유려한 그루브에다 낮게 형성되어 있는 허스키의 무게중심은 그의 나이를 의심케 한다. 두장의 솔로앨범 말고도 들국화 트리뷰트 앨범에서 베테랑 록 보컬리스트 권인하와 듀오로 보여준 그것만이 내 세상 의 압권의 장면이나 김동환의 묻어버린 아픔을 소화하는 그의 진득한 보컬은 임재범의 그것처럼 세대와 성별을 초월하는 것이다. 중략 교포 출신 보컬리스트들에게서 발견되는 일종의 빠다냄새가 그에겐 없으며 훨씬 더 굵은 선의 보컬을 구사한다. 그것이 이 젊디 젊은 보컬리스트의 미래를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략...

남성적인 위대함의 봉우리에는 아직도 그 위용이 퇴색하지 않은 80년대 언더구라운드의 살아 있는 신화 들국화의 프론트맨 전인권이 우뚝 서 있다. 그는 동양인에게는 한계로 느껴져 온 샤우트 창법을 독창적으로 수용하면서 서구의 록 영웅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황홀경의 신천지를 개척한 인물이다. 그가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는 G키의 고음을 솟구쳐 오를 때면 관객들은 전율을 느낀다. 그가 구사하는 고음역에선 흔히 록 보컬리스트들이 구사하는 것처럼 결이 협소한 금속질이 아니라 풍부한 대지의 힘이 느껴진다. 그 마력이 80넌대의 수많은 무명 청년들을 음악의 길로 인도한 아찔한 매혹이었으며 아직까지 아무도 넘지 못한 정상의 위용인 것이다. ...중략...

1926년 윤심덕 이후 이미자, 패티김에 이르는 장구한 여성 보컬리스트의 계보에서 가장 개성적이며 가장 압도적인 폭발력을 구사한 인물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한영애일 것이다. 그의 광대한 보컬의 세계는 90년대의 어린 여성 보컬리스트들이 범접할 수 없는 위엄과 기교를 아예 넘어서버린 통찰력이 깃들어 있다. 우리는 그의 목소리에서 마치 감전당한 듯한 주술을 경험하게 되는데, 무대에서 그 작은 몸은 어느덧 우주를 덮을...중략...

주로 TV를 중심으로 활약했던 이선희의 경우 미스다이너마이트라는 애칭을 가졌던 미국의 여성 록커 펫 베너타에 결코 뒤지지 않는 파워를 자랑하며 십대 소년뿐만 아니라 소녀팬들의 시선을 집결시켰다. 그는 사랑이 지는 이 자리 나 나 항상 그대를 같은 히트넘버에서도 드러나듯이 파워의 이면에 숨은 섬세한 감수성을 표출하는 데에도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는데...중략...

음악적인 제반 역량을 떠나서 보컬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정신을 대변했던 가왕이 있다면 주저 않고 조용필을 들 수 있겠다. 그는 일본이나 서구의 흉내내기를 넘어 보컬에 있어서도 변방의 숙명을 벗어나는 독창성을 연금한 인물이다. ...중략... 그가 나이트클럽 밴드를 시작할 때인 70넌대의 목소리는 미성에 가까운 소리였다. 하지만 이십대 후반 그는 살인적인 연습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탁성으로 바꾸었고, 진성과 가성을 천의무봉하게 오갈수 있는 테크닉을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다시 컴백하면서 발표한 창밖의 여자와 단발머리는 한 왜소한 몸을 가진 젊은 예술가의 의지가 얼마나 처절한 것인지르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었다. ...하략...

작곡가 같은 경우에는 특정한 가수를 선호하기 보다는 자기의 노래를 잘 표현해 줄수 있는 가수를 찾겠지요. 위는 그나마 공인된 보컬리스트들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위글의 필자는 대중음악평론가 강헌씨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