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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피라미드 관련 소설 쓸려고 하는데
비공개 조회수 548 작성일2018.06.17
학교에서 동아리로하는 소설 만들기에 이집트 관련 내용으로 하나 쓸려고 하는데요, 모르는게 있어서 질문 몇가지 남깁니다!

1.이집트 왕으로 할만한 이름(가상 인물이고 피라미드의 주인입니다. 옛 이집트 지역의 고급진 이름 정도라면 좋을 것 같아요.)

2.아직 큰 피라미드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피라미드가 얀속해서 발견된 지역과 가까운 곳에 있는 지역

3.투탕카멘 저주의 내용

4.피라미드 탐사에 걸리는 시간 (규모는 중간, 일이 아주 잘 풀린다고 할 경우)

5.고고 학자로서 벌 수 있는 연봉(고고학자도 받는 돈이 최상~최하까지 있다고 하면 중상)

6.피라미드를 탐험하시던 분들의 탐험기 비슷하게 소개돼 있는 블로그, 책 등 자료.

7.갈증 및 환영을 일으키는 약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거나 아니라면 해독제도 같이요)

질문이 너무 많네요. 하하 다 작성 안하시고 5개 정도만 확실히 하셔도 다른 분들 없으면 채택하겠습니다! 캬캬캬컄. 벌써 일요일. 주말 끝나가네요. 제 질문 봐주신 분들 모두 한주의 마지막 날인만큼 기분 좋은 하루 보내시고 좋은 일 있으시길 바라겠습니다:). 내공은 100으로 짱짱하게 넣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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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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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
달신
세계사 16위, 사회학 28위, 경제 동향, 이론 27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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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르메르 혹은 메네스 (이집트의 단군급 인물이다. 헌데 그걸 아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걍 써도 된다)

(2) 흐르셉트, 호른헤름, 아케나톤, 아메넴히트. 하트셉수트 등등... 헌데 이 역시 전부 실존 인물명이지만 역시 아는 사람이 손에 꼽으니 걍 써도 된다.


2. 질문 자체가 뭔 소리인지 납득이 안되지만, 피라미드는 역순발전을 한다. 쉽게 말해서 질문자가 알고 있을 만한 크고 아름다운 피라미드는 기원전 2500년전 고왕국시절의 물건으로, 중왕조 이후로 오면 그런 거대한 피라미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쉽게 말해서 이집트 초창기에는 거대 피라미드가 만들어졌는데 중기(이게 BC22C다)를 넘어서면 거대 피라미드는 커녕 우리나라의 왕릉보다 작은 벽돌형 피라미드이고, 중왕국시절을 넘어서면 피라미드는 만들지도 않고 왕가의 계곡이라는 계곡에 걍 구멍파고 매장했다. 참고로 그 유명한 투탕카멘도 왕가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참고로 투탕카멘은 이집트 역사에 꽤 근세인물인데 BC14C로 소크라데스보다 약 7백년 앞서 있다.


3. 투탕카멘의 저주?

걍 도시전설이다.

"왕의 안식을 방해하는 자는 죽음의 날개에 닿으리라"라는 문구가 부장품에 상형문자로 새겨져 있다는 것에서 발원했는데, 사실 이집트 왕가의 무덤에서는 흔히 발견되는 상용구이다.

그만큼 투탕카멘 시절에 오면 도굴이 횡횡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며, 이를테면 후대왕의 무덤에서 전대왕의 유물이 발견되는 일도 빈번하다.(도굴된 부장품을 썼다는 말이다)

심지어는 그 시절부터 도굴을 전문으로 하는 집단이 아예 왕가의 계곡에 집성촌 만들고 대대손손 수천년동안 도굴업에 종사했다. 즉, 저주는 개 뻥이라는 소리다.


내용인 즉은 투탕카멘 묘소 발굴을 한 카나본 경이 급사했고, 이어서 발굴에 참여한 일꾼, 역사도우미, 운전사등이 차례로 비명횡사했다는 가십성 이야기인데, 결정적으로 카나본 경은 발굴이후에도 장수했다.



4. 중간정도의 피라미드라?

이런 경우는 많이 아는 게 흠인데 질문자가 알고 있을 만한 거석형 피라미드는 투탕카멘이 살아있던 시설에 이미 다 털렸다. 값나가는 부장품은 기원전 14C이전에 다털렸고, 심지어는 미이라마저 유럽에서 약으로 쓴답시고 수입해간 통에 서기 17C까지 대부분이 반출되었다.

즉, 거석형 피라미드는 이른바 인디아나 존스식의 탐사를 하던 19세기 무렵에는 탐사할 것 자체가 없었다.


중왕조 이후의 벽돌형 피라미드는 거석형 비해서 워낙 약한데다 오랜동안 관리를 받지 못하다보니 흔적을 찾는 것만 해도 용할 지경이다.

사실 투탕카멘이 유명해진 이유가 이 털거 다 털린 왕가의 계곡에서 아주 드물게 유럽인들이 발굴질할 때까지 무사했던 덕분이다.

헌데 투탕카멘 시대에 오면 피라미드를 더 이상 만들지 않았으니 질문자가 상정하는 유럽인의 발굴시대에는 탐사할 피라미드가 하나도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5. 흔히 영화 인디애냐 존스나 미이라 따위의 시대인 20세기 중엽이라면 미국 기준으로 교수 월급이 3~40달러이다. 사실 고고학자들이 돈을 버는 경우는 도(발)굴에 성공해서 값비싼 부장품으로 로또 맞는 경우를 뺴고는 대부분이 가난했다.

그나마 강단에서 일자리를 얻는 경우는 나은 편이고, 발굴 사업 자체가 워낙 돈이 많이 드는 일이다보니 대부분은 돈을 버는 게 아니라 꼴아박는 일이었다.



6.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발굴할 수 있는 무덤은 싹다 했고, 그 시절에는 도굴과 발굴의 차이가 거의 없던 무식한 시절이다보니 (일단 막히면 유적보전을 싹 무시한채 누구나 다이나마이트부터 찾던 시절이다) 염치가 없어서 수기 따위도 잘 남기지 않았다. 또한 카나번이나 슐리만 처럼 성공한 고고학자(부장품으로 대박이 터진 경우) 현세의 로또맞은 사람처럼 피해다니기에 바빴다는 걸 부연해둔다.


7. 약학과 출신이 아니라 잘 모름.


이상.



2018.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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