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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홋카이도와 사할린에 대하여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10,673 작성일2005.06.06

일본 북쪽에 있는 홋카이도와 그 위에 있는 사할린섬

 

제가 궁금한것은

 

홋카이도가 언제 일본 영토가 되었는지.궁금하네요 정확한 시기가 언제인지..

 

그리고 사할린은 원래 일본영토가 아닌가요? 러일전쟁때나 1~2차대전

 

 때 러시아 땅이된건지..

 

홋카이도와 사할린에대해서 좀 가르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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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북해도는 蝦夷(에조、에미시)라 불리웠으며 문자 그대로 蝦夷라 불리우던 원주민

아이누가 살던 땅이었습니다。에도시대에 북해도 남단의 하코다테에 처음으로 奉行所를

설치했으며、1852년에 하코다테가 개항하면서 서양 각국의 거류지가 형성되어 일본

역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합니다。당시 막부 말기에서 명치유신에 이르는 격동의

시대에 본토에서 신정부군에게 패한 구막부군 잔존세력이 북해도에 에조(蝦夷) 공화국의

건국과 독립을 선포하여 구막부군과 신정부군과의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으며、

(http://www.hijikata-toshizo.com/) 명치유신 이후 내전에서 승리한 신정부군에 의해

蝦夷에서 오늘날의 北海道로 지명을 바꾸고 정식으로 일본 영토에 편입하여 북해도

개척사를 설치하고 행정권을 행사하면서 이 때부터 본토 일본인의 대대적인 북해도 이주

및 개척이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주로 칸사이 및 시코쿠、큐슈 등의 서일본 지역

출신이 많이 이주하여 개척했으며、1880년대에 최초로 철도가 개통되고 본토 출신

이주민에 의해 대규모 농지가 개척되어 발전하게 됩니다。한편、본토 출신 일본인에

의해 삶의 터전을 빼앗긴 원주민 아이누는 土人 등으로 불리우면서 사실상의 노예생활을

강요당하고  극심한 차별 및 강제 동화정책에 의해 생존 존립이 어려워지게 됩니다。

(미국에서 백인이 인디언에게 했던 짓을 그대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명치유신 이후 일본이 근대화에 성공하고 부국강병을 달성하면서 장래 러시아와의

전쟁을 대비한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중요성 또한 매우 부각되었죠。

오늘날에도 일본 국내 타 지역과는 전혀 다른、어떤 의미에서는 일본보다는 미국 및

캐나다와 훨씬 닮았으며 아직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광활한 대자연의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지역입니다。

 

원래 사할린은 카라후토(樺太)라 불리웠으며、섬의 남과 북을 일본과 러시아(소련)가

각각 나누어 지배하여、남쪽의 일본 영토는 북해도 개척과 동시에 개발 및 발전이

진행되었는데 일본의 2차대전 패전과 함께 소련에게 빼앗기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이 때에 미처 소련군의 내습을 피하지 못한 많은 수의 일본인 및 조선인이 소련으로

끌려가서 강제노역을 당했죠。

1956년 일본과 소련 간에 국교가 회복되면서 일본은 사할린/카라후토에 대한 영유권을

영구 포기하는 조건으로 소련에 끌려간 일본인을 되돌려받을 수 있게 됩니다。

(조선인에 대한 처리는 일본국적상실 및 북한국적 자동취득 등을 이유로 제3국 국민으로

분류、소련 거주 북한 공민으로 인정하여 사할린에 영주할 권리를 부여합니다)

러시아에서는 사할린、일본에서는 카라후토(樺太)라 부른다고 알아두시면 됩니다。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사실은、과거에 일본 영토였던 사할린/카라후토는 일본이 건설한

철도 및 기타 공공 인프라 덕분에 전체 러시아 내에서 철도 교통망 및 사회간접자본이

가장 발달한 지역이라는 사실입니다。

 

2005.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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