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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모자이크 유라시아

코랴크인

순결을 중시한 민족

[ Koryaks ]

명칭 Коряк(러시아어)
인구 7,953명(2010년 러시아 인구조사 결과)
지역 시베리아 북동부 캄차카 반도에 위치
언어 코랴크어(추콧카-캄차카어, 고아시아어 계통), 알류트어, 러시아어
문화적 특징 캄차카 해안지역의 정주집단과 내륙지역의 유목집단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집단에 따라 문화적 차이가 있다.
코랴크 자치구(붉은색 표시)

코랴크 자치구(붉은색 표시)

다양한 코랴크인 별칭

코랴크인은 여러 시베리아 민족과 마찬가지로 해안에 정주하는 그룹과 유목하는 그룹으로 나뉜다. 해안 정주그룹은 캄차카 반도 동부와 서부 해안 펜지나 행정구와 타이고노스 반도에 거주하고 있으며, 순록 유목그룹은 주로 캄차카 반도 내륙 및 대륙 인접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코랴크 자치구

코랴크 자치구

과거 코랴크인은 그룹별로 서로 다른 명칭을 사용하였다. ‘순록 유목민’ 또는 ‘순록을 많이 가진’이라는 의미의 ‘차브치브’(чавчыв) 또는 ‘차브추’(чавчу)로 불리거나, ‘이 땅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나밀근’(намылгын) 등의 다양한 명칭을 사용했다. 현재 코랴크인을 지칭하는 명칭으로는 해안에서 정주하는 그룹을 ‘니밀란’(нымылан)과 순록 유목 그룹을 일컫는 ‘차브추벤’(чавчувен)이 있다.

러시아 문헌에 ‘코랴크’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1630~40년대이다. 당시 유카기르인이 코랴크인을 ‘카라카’(карака)라 불렀는데, 러시아인들이 그것을 듣고 ‘코랴크’(коряк)로 표기했다.

해안에 정주하는 사람들과 툰드라에서 유목하는 사람들

코랴크인 선조는 신석기 수렵민족의 전통을 기반으로 오호츠크 해안에 고대 코랴크 문화를 형성했다. 기원 전후 수세기에 걸쳐 고대 코랴크 문화는 해양 동물 사냥 문화로 발전하였다. 이 과정에서 코랴크 종족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고대 코랴크인은 점차 캄차카 반도 깊숙이 이동했다. 이와 같은 주요 경제활동의 변화는 고대 코랴크인의 분화, 방언 형성, 신체적 외양 변화 등을 촉진했다.

코랴크인이 순록을 유목하기 시작한 것은 11~16세기이다. 정주생활을 하면서 해양 동물을 사냥하던 코랴크인 일부 그룹이 펜지나(Пенжина) 강어귀와 캄차카 반도 동부 해안의 퉁구스인으로부터 순록 유목을 배운 이후이다. 초기의 순록 유목은 해양 동물 사냥, 어로, 채집에 비해 부수적인 활동에 그쳤으나 점차 중요성이 커지면서 코랴크인의 주요한 경제 활동으로 변화하였다.

코랴크인의 암흑기

17세기 말 약 10,000~11,000명이던 코랴크인의 인구는 주변 종족들과의 다툼으로 인해 18세기 말경에 큰 폭으로 감소하였다. 오호츠크 해안에서 정주생활을 하던 코랴크인(니밀란)은 코사크(Cossacks, 카자크)가 캄차카 진출을 시도하자 18세기 중반까지 격렬하게 저항했고, 그 과정에서 인구가 약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한편 코랴크인 순록 유목 그룹은 축치인 순록 유목 그룹과 잦은 무력 충돌을 일으켰고, 이들 간의 전쟁은 1780년대에 들어서 겨우 종결되었다. 장기간에 걸친 축치인과의 전쟁에서 패한 코랴크인은 인구의 절반을 잃었을 뿐 아니라 많은 순록을 빼앗겼다. 결국, 코랴크인은 축치인과 에벤인에게 순록 유목 영역을 내주고 아나디르 강 유역에서 캄차카 반도로 이주해야 했다.

코랴크인 남성

코랴크인 남성

코랴크인 여성

코랴크인 여성

한편 1769~1770년에 창궐했던 천연두는 많은 코랴크인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 코사크인, 축치인과의 전투와 더불어 천연두의 유행은 코랴크인의 수를 크게 감소시켰다. 그 결과 한때 11,000명에 달하던 코랴크인 인구수는 1800년에 이르러 정주그룹과 유목그룹을 합쳐 4,800명 정도로 많이 감소했다.

어느 하나 버릴 것 없는 순록

코랴크인 정주그룹의 주요 경제 활동은 어업과 해양 동물 사냥이었다. 다양한 그물과 낚시를 이용하여 주로 연어를 잡았다. 해양 동물 사냥은 5월 말이나 6월 초에 시작되어 늦가을까지 지속되었다. 코랴크인들은 봄철에는 개별적으로 사냥하다가 가을에는 그룹을 지어 사냥했다. 사냥 대상은 다양한 물개류였다. 19세기 중반까지 펜지나 지역 코랴크인과 알류토르인은 고래와 바다코끼리도 사냥했다. 그러나 19세기 말에 미국 포경선들의 남획으로 고래와 바다코끼리 어획량이 급감했다.

코랴크인 소년과 순록

코랴크인 소년과 순록

이들의 또다른 경제 활동은 순록 유목이었다. 그룹별로 400마리~2,000마리 정도의 순록을 유목하여 생활하였다. 이들은 계절에 따라 일 년에 네 번 이동하는데, 봄에는 이끼가 자라는 곳으로, 여름에는 깔따구(파리같이 생긴 곤충)가 적은 곳으로, 가을에는 다량으로 순록을 잡기 편한 마을 가까운 곳으로 이동하여 유목했다. 겨울에는 마을 가까운 곳에서 이리저리 이동하며 유목했다.

눈 속에 묻힌 이끼를 먹는 순록

눈 속에 묻힌 이끼를 먹는 순록

코랴크 유목인들에게 순록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순록 고기는 주요 음식 재료로 사용되었고 순록의 모피는 의복, 신발의 재료로 사용되거나 ‘야란가’(яранга)라는 천막의 덮개로 사용되었다. 순록의 뼈는 장식품을 만드는 재료로도 사용되었다. 그리고 먼 거리 이동 시 짐을 나르는 수단으로도 사용되었다.

정주그룹과 유목그룹은 모두 겨울에 담비, 여우, 수달, 족제비, 청설모 등 모피동물을 사냥했다. 코랴크인은 러시아인이 도래하기 전에는 모피동물 사냥을 거의 하지 않았으나, 러시아인 상인들이 모피를 구하러 다니게 되면서 코랴크인도 본격적으로 모피동물 사냥을 시작했다.

결혼하고 싶으면, 우선 신부 집에서 머슴이 되어라

코랴크인의 혼인은 기본적으로 복역혼(봉사혼)이었다. 미래의 신랑은 신부 집안을 위해 6개월에서 3년 정도 일을 한 후 신부의 아버지 또는 장남이 충분하다고 판단되면 결혼을 할 수 있었다. 장작 패기, 물 길어오기, 불 피우기 등 기본적인 살림뿐 아니라 신부 식구들이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해야 했고, 신부 식구들보다 먼저 일어나고 맨 마지막에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또한, 코랴크인은 미혼의 여자가 남자와 접촉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했다. 청년이 신부를 얻기 위해 신부 집안에서 일하는 경우에도 성적 접촉을 죄악시하여, 청년이 신부 집에서 일하는 동안 딸을 친척 집에서 지내게 하기도 했다.

결혼이 허락되고 첫날밤을 맞이하기 전 신부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겉옷과 바지 소매를 끈으로 단단히 동여매 칼로 자르지 않고는 벗길 수 없게 만들고서 온종일 신랑을 피해 다녔다. 심지어는 신부가 신랑을 싫어하여 다른 여자들의 도움으로 이리저리 숨어 다니는 바람에 신랑이 결혼을 단념하고 떠나는 경우도 있었다.

결혼이 성사된 후 신랑과 신부는 신랑 집으로 갔다. 신부가 신랑 집 가까이 오면, 신랑의 부모와 친척들이 집안의 화덕에서 불이 붙어 있는 나무를 꺼내 들고 나와서 신부를 맞이했다. 이 의례는 신부가 화덕으로 상징되는 시댁의 일원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천막집과 반지하 가옥

코랴크인 유목그룹은 다른 유목민과 마찬가지로 나무 기둥에 천을 씌워 만든 ‘야란가’(яранга)라고 불리는 천막집에 거주하였다. 이 집은 먼저 3.5~5m 길이의 나무 기둥을 겹쳐 세운 뒤, 그 위에 털을 깎은 순록 가죽을 씌우거나 순록의 모피를 털이 바깥으로 향하도록 씌워 만들었다.

야란가 짓는 과정 1(뼈대 세우기)

야란가 짓는 과정 1(뼈대 세우기)

야란가 짓는 과정 2(천을 두르기)

야란가 짓는 과정 2(천을 두르기)

천막집 내부에는 벽을 따라 높이 1.3~1.5m, 길이 2~4m, 너비 1.3~2m의 모피로 만든 침상을 배치했다. 침상의 수는 천막집에 사는 가족의 수에 따라 달랐다. 그리고 침상 아래에는 버드나무나 잣나무 가지를 깔고 순록의 모피를 덮어두었다.

야란가 짓는 과정 3(완성된 야란가)

야란가 짓는 과정 3(완성된 야란가)

정주그룹의 가옥은 깊이 7m 이상에 길이 15m, 너비 12m 정도의 지하 공간을 마련하여 지어졌다. 먼저 팔방에 8개의 기둥을 세워 보강하고, 중앙에 4개의 기둥을 세워 출입구 및 연기 구멍을 만들었다. 지상 부분은 막대를 가로로 놓아 지붕을 얹은 구조이다. 집 중앙에는 긴 돌 두 개를 사용해 화덕을 만들었다.

정주그룹의 가옥

정주그룹의 가옥

정주그룹의 가옥(반지하 형태로 건축)

정주그룹의 가옥(반지하 형태로 건축)

겨울에는 환기구멍을 통해 드나들었으며, 나머지 기간에는 바다 쪽으로 만들어둔 통로로 드나들었다. 이 통로의 반대편 벽 쪽에는 평상을 설치하여 손님을 맞을 때 사용했고, 나머지 벽 쪽에는 침상을 배치했다.

정주그룹 가옥 내부

정주그룹 가옥 내부

불을 피우는 방법도 그룹별로 달랐다. 유목그룹은 점화용 막대를 순록의 뿔로 만든 활에 걸어 인간 형상의 나무판에 마찰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정주그룹 코랴크인의 불 피우는 모습

정주그룹 코랴크인의 불 피우는 모습

정주그룹은 보통 상인들로부터 구입한 성냥이나 부싯돌을 사용했고 의례용 불을 피울 때만 마찰판을 사용했다. 코랴크인은 집안 조명이나 난방을 위해 사암으로 만든 얕은 그릇을 받침대 위에 올려두고 연료를 넣어 태웠다. 이때 사용된 연료는 유목그룹의 경우 순록의 뼈에서 추출한 지방을, 정주그룹은 물개의 지방을 사용했다.

화려한 장식이 돋보이는 코랴크 전통의상

코랴크인의 겨울용 여성 복장

코랴크인의 겨울용 여성 복장

1961년 소련에서 발행된 코랴크인 민속 의상 기념우표

1961년 소련에서 발행된 코랴크인 민속 의상 기념우표

코랴크 전통의상은 화려하게 장식되었는데, 여성용 의상뿐 아니라 남성용 의상에도 많은 문양이 새겨졌다. 주로 외투 밑 부분에 25cm 정도의 두께로 삼각형, 마름모, 사각형 등 여러 가지 문양을 새겨 장식하였다.

코랴크인의 전통 문양

코랴크인의 전통 문양

두꺼운 외투와 더불어 따뜻한 모자는 시베리아의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한 필수품으로, 코랴크인에게도 모자는 중요한 의복 중 하나였다. 모자는 외투에 부착하여 착용하기도 하지만, 외투 위에 따로 모자를 착용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코랴크인의 모자는 다른 시베리아 민족과 비교하면 독특한 모양을 하고 있다. 대부분 시베리아 민족들이 쓰는 모자는 원통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코랴크인의 모자는 사각형이다.

코랴크 남성용 모자

코랴크 남성용 모자

코랴크 여성용 모자

코랴크 여성용 모자

겨울 외투와 모자의 주재료는 순록과 물개 가죽이다. 여름용 의복은 순록 가죽이나 개 가죽의 털을 제거하여 무두질한 천으로 만들었다.

활과 갑옷으로 무장한 코랴크 병사

활과 갑옷으로 무장한 코랴크 병사

활 시위를 당기려는 코랴크 병사

활 시위를 당기려는 코랴크 병사

코랴크 전사들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상반신을 감싸는 갑옷을 덧입었다. 그들은 물고기 비늘처럼 철제조각들을 이어 붙여 만든 비늘갑옷(찰갑)으로 무장하였고, 상반신에는 가죽 등으로 조각을 이어 붙인 방패 모양의 갑주를 둘렀다.

갑주를 펼친 모습

갑주를 펼친 모습

순록고기와 생선이 주재료인 코랴크 전통음식

순록을 유목하는 코랴크 그룹은 주로 순록의 고기를 삶아 먹었으며, 버드나무 껍질과 미역도 자주 먹었다. 정주그룹은 주로 해양 동물의 고기와 물고기를 먹었다. 주요 어종은 연어이다. 이들은 생선을 날 것으로 먹기도 하고 햇볕에 말려 유콜라(юкола)를 만들어 먹었다. 해양 동물의 고기는 삶아 먹거나 얼려서 먹었다. 사냥이나 여행을 떠날 때는 얼린 순록 고기를 가지고 다니며 먹었다.

톨쿠샤를 만드는 모습

톨쿠샤를 만드는 모습

손절구에 각종 재료를 갈아서 만드는 톨쿠샤

손절구에 각종 재료를 갈아서 만드는 톨쿠샤

제례용으로 사용되는 음식으로는 톨쿠샤(толкуша)가 있다. 이 음식은 말린 순록 고기를 각종 식물 뿌리, 동물의 비계, 각종 열매와 함께 손절구에 갈아서 만들었다.

코랴크인의 전통 음식 톨쿠샤

코랴크인의 전통 음식 톨쿠샤

모든 코랴크인들은 그룹에 상관없이 식용 식물과 열매를 채취하여 먹었다. 흥분제로 무호모르(мухомор)라는 버섯을 먹기도 했다. 19세기 이후에는 밀가루, 쌀, 빵, 차 등이 널리 확산됐다. 밀가루에 물이나 순록의 피 또는 물개의 피를 섞어 죽을 끓여 먹었으며, 쌀로는 주로 물개나 순록의 지방을 넣어 죽을 끓여 먹었다.

삶과 연관된 코랴크 축제

코랴크 전통 축제는 계절적인 특징을 가졌다. 유목그룹에서는 그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순록과 관련된 축제가 열렸다. 이들은 봄에 순록의 뿔 축제인 ‘킬베이’(кильвей)와 가을에 순록을 잡는 축제를 즐겼다.

첫 어로 축제에서 사용되는 것으로 풀로 만든 노끈에 생선 머리를 꿰어 물에 던진다.

첫 어로 축제에서 사용되는 것으로 풀로 만든 노끈에 생선 머리를 꿰어 물에 던진다.

정주 사회에서는 어업, 해양 동물과 관련된 축제가 열렸다. 이 그룹에서도 봄과 가을에 축제가 각각 열렸다. 봄에는 ‘첫 어로 축제’(Праздник первой рыбы)를 즐겼고, 해양 동물 사냥철이 끝나는 11월에는 ‘홀롤로’(хололо)(‘졸롤로’ зололо 또는 ‘올롤로’ ололо로 불리기도 함)가 행해졌다.

‘홀롤로’ 축제

‘홀롤로’ 축제

‘첫 어로 축제’는 물고기 머리와 아가미를 풀로 만든 노끈에 꿰는 것으로 시작한다. 노끈을 길게 만들어 바다에 던지고서 물고기가 많이 잡힌 것을 흉내 내며 코랴크어로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고기가 잡혔으니, 이리 와서 나를 좀 도와주세요.” 주위 사람들은 같이 거들면서 많은 고기가 잡힌 것을 흉내 내며 여름과 가을 동안 많은 생선을 잡을 수 있도록 기원한다.

‘홀롤로’ 축제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모습

‘홀롤로’ 축제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모습

홀롤로(Хололо)는 해양 동물 사냥이 끝났음을 알리는 축제로, 예부터 전해오는 제례 무용, 노래, 풍습 등을 모두 모아놓은 종합축제이다. 축제 기간에는 전통 코랴크 음식을 맛볼 수 있고, 전통의상을 입으며, 힘과 민첩성을 겨루는 다양한 경기가 열린다. 홀롤로 축제는 관광객들이 참여한 가운데 오늘날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코랴크인의 밝은 미래를 기대하며

코랴크인이 거주하는 캄차카 반도는 러시아에서도 북동쪽 끝에 자리 잡고 있어 사람들의 접근이 쉽지 않은 곳이다. 그런 만큼 활화산, 간헐천, 불곰, 연어 떼 등 자연이 잘 보존된 곳이기도 하다.

천혜의 자연 속에 거주하는 코랴크인은 현재 어업과 순록을 기반으로 하는 전통산업의 약화로 그 수가 점차 줄고 있다. 다른 시베리아 소수민족과 마찬가지로 사라지게 될 위험성에 놓여 있다. 캄차카의 자연 보존뿐 아니라 그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순록과 함께 평화롭게 사는 코랴크인의 명맥이 오래 이어지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출처

제공처 정보

<민족의 모자이크 유라시아>는 교육부 및 한국연구재단의 후원으로 HK인문한국연구소협의회와 네이버가 공동기획하여 만들어진 콘텐츠입니다.

  • 저자 변군혁 한국외국어대학교 미네르바 교양대학 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에서 언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와 연세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하였고, 러시아 연방 내 사하공화국에서 한국어 교사로 근무하기도 하였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미네르바 교양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러시아어 음성학과 문화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러시아어 자음 탈락의 최적성 이론 분석”을 비롯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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