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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kal기폭파사건 조작설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20,876 작성일2009.03.15
kal기폭파사건과 kal기폭파사건의조작설이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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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858편 폭파사건

1987년 11월29일

 김포공항에서 출발하여, 1987년 인도양 상공에서 실종된 사건이다. 일명 김현희 테러사건이라합니다

 북한은 이 사건 때문에 미국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라 있었지만, 2008년 10월 명단에서 삭제되었다

 

 

 

 수사결과

1987년 11월 29일 미얀마 안다만해역 상공에서 대한항공 보잉 707기는 북한 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에 의해 공중 폭파되어 탑승객 115명 전원이 죽었으며, 이 사건은 1987년 10월 7일 김정일의 명령에 의해 88 서울올림픽대회를 방해하고, 대한민국 내 대정부 불신을 조장을 목적으로 하였다. 여객기 폭파후 두 폭파범은 1987년 12월 1일 바레인 공항에서 조사를 받던 중 김승일은 독약으로 자살 하고, 김현희는 남한으로 압송하였다.

 

수사 결과에 대한 의혹들

  • 블랙박스가 발견되지 않음 (안기부에서 일부를 폐기함)
  • 대한항공 858편 폭파사고 사망자 시체, 유품이 발견되지 않음
  • 국가정보원의 빠른 수사 종결처리

 

체포 압송당시 모습

 

 

 

 

 2. 조작설

이당시 노태우후보의 대통령 선거가 임박한 상태에서 관련기관이 서둘러 조사를 마무리한것에대한 의혹을 갖고 조작설을 말한것입니다  다음자료는 사건 진상대책위원회의 의문제기 사항을 올립니다  그러나 진실은 단한사람만만 알고있을것입니다

A. 안기부의 거짓 수사발표 (29가지)

A-1. 북한인 신원 관련

1. 김현희가 어릴 적 평양에서 찍었다는 꽃 주는 소녀(화동花童) 사진 - 김현희는 두 차례나 자신이 아닌 화동소녀를 자신이라고 주장했으며, 이는 모두 거짓으로 밝혀졌다. 국정원은 최근 김현희가 꽃을 준 사람은 이동복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주장 또한 거짓말이다.

2. 김현희가 진술한 존재하지 않은 평양 주소 - 김현희가 1987 12월 수사과정에서 밝힌 자신의 평양주소평양시 문수구역 83 3월에 없어진 주소로 밝혀졌다.

3. 김현희의 아버지가 앙골라 무역대표부의 수산대표라는 사실 - 그런 직책과 근무자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고, 국정원도 이를 시인했다.

A-2 모스크바 행적 관련

4. 김승일, 김현희의 평양-모스크바 비행기편 - 김현희가 1987 11 12일 이용했다고 밝힌 평양발 모스크바행 비행기편은 직항기였으나, 김현희는 이르츠크를 경유하는 비행기를 탔다고 진술했다. 이 비행기편은 1987년 이전에 있었던 비행기편 이었다.

5. 김승일, 김현희의 모스크바-부다페스트 비행기편 - 김승일, 김현희가 탔다는 비행기편은 확인 결과 없었다.


A-3 헝가리 부다페스트 행적

6. 87.11.28 진술서에서 김현희는부다페스트에 도착하니 이미 모스크바에서 연락이 있었으므로 주재 지도원이마중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라고 했으나, <고백록>에서는아무도 마중 나온 사람이 없다라고 말을 바꾸었다.

7. 김승일, 김현희가 부다페스트에 도착한 날인 1987 11 13일은 금요일로 평일이었다. 그러나 김현희는 <고백록>에서그 날은 토요일이어서 주변에 있는 고기집도 우체국도 모두 문을 닫은 채 휴업이었다라고 기술했다.

8. 부다페스트의 비밀 아지트 전화번호라고 안기부가 발표했던 ‘164635’ 전화번호는 비밀 아지트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유치원의 전화번호였다.

A-4 오스트리아 빈 행적

9.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한 역이서역이었는데, ‘남역에 도착했다고 거짓 진술했다.

10. 빈에서 묵은 호텔의 방 번호가 암 파클링 호텔 322호실 이었는데, 603호라고 틀리게 발표했다.


A-5 유고 베오그라드 행적

11. 김승일, 김현희는 베오그라드에서메트로폴 호텔 806’-폭탄을 건네 받았다는 방-에 묵었으나, 안기부는메트로폴리탄 호텔 811에 묵었다고 발표했다. 안기부 수사발표(88.1.15)전에 이미 신문지상에 806호에 묵었다고 보도(87.12.4)됐으나, 무슨 이유에서 인지 안기부는 811호에 묵었다고 발표했다.

12. 메트로폴리탄 호텔에 예약 없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김현희는 <고백록>에서 예약을 하고 왔다고 거짓 기술을 했다.

13. 베오그라드에서 <로마-비엔나> 항공권을 예약할 당시, <고백록>에는 예약을 한 오스트리아 항공사 바로 옆에 알이탈리아 항공사가 있는 것처럼 돼있으나, 실제로 두 항공사는 약 50미터 떨어진 별개의 빌딩에 있으며, 있는 층수도 서로 다르다.

14. 베오그라드의 비밀 아지트 전화번호라고 안기부 발표한 ‘625646’은 역시 비밀 아지트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조르카(ZORKA)’라는 화학, 야금회사로 밝혀졌다.

A-6 아부다비 공항에서의 행적

15. 아부다비에서 암만으로 가지 않고 바레인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는 진술 - 김현희는 아부다비에서 새벽245분경에 도착해서, 원래 오후245분에 떠나기로 돼있던 비행기를 앞당겨, 아침9시에 바레인으로 갔다. 아침9시 이전에도 김현희는 다른 비행기를 타고 아부다비를 떠나 유럽으로 도망갈 수 있었다.

A-7 바레인에서의 행적

16. 김현희가 바레인에 도착한 날이 휴일이었다는 진술 - 바레인에 도착한 날은 일요일. 그러나 이슬람권이 바레인에서 일요일은 휴일이 아니다. 그런데 김현희는 도착한 날이 일요일 즉 휴일이라 다른 비행기표를 구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며칠 바레인에 묵었다고 했다.

17. 바레인에서 더 일찍 출발하는 비행기가 없었다는 진술 - 김승일과 김현희가 실제로 바레인을 떠나려고 했던 87121일 아침 830분 비행기보다 일찍 바레인을 떠나는 비행기편들이 있었다.

18. 바레인에서 김현희가 음독했다는 발표 - 김현희는 음독하지 않았음이 당시 현장에 있던 목격자, 의사들의 증언으로 밝혀졌다.

19. 바레인에 도착한 뒤, 김승일과 김현희는 첫날휴식’, 둘째날관광-쇼핑-비행기표 예약의 순으로 시간을 보냈다고 진술서에서 밝혔으나, <고백록>에는 첫날은 일요일이어서 항공사가 휴무여서 어쩔 수 없이 쉬고(거짓임), 둘째날비행기표 예약-관광을 했다고 말을 바꿨다.

A-7 KAL858기의 잔해물 관련

20. KAL858기의 부유물이라고 발표한 고무구명보트 - 고무구명보트는 김현희가 폭탄을 놔뒀다는 곳 근처에 설치돼있던 것이었는데, 발견 당시 몇 군데 찢어진 흔적 말고는 외상이 거의 없었고, 다만 둘둘 말린 상태의 구명보트 안에서 발견된 수동펌프만이 불에 그을려 파괴된 상태로 발견됐다. 국정원은 비행기 파편이 구명보트를 뚫고 들어가 수동펌프를 부순 것이라고 발표했으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발표에 의하면 그 수동펌프는 압축에 의한 파손이라고 밝혀졌으며, 구명보트에는 파편이 뚫고 지나간 구멍이 발견되지 않았다. 국정원은 국과수의 감정을 은폐했던 것이다.

21. 90 3월에 발견된 안기부가 주장하는 KAL858기의 동체조각 - 사고발생 24개월여 만에 기적적으로 발견된 동체조각들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미국 MIT 박사가 분석한 결과, 폭발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 조각들 가운데는 김현희가 폭탄을 설치했다고 한 좌석 근처의 것도 있었다. 더구나 안기부는 그 동체조각들을 폐기처분했다.

A-8 폭탄, 폭발 발표 관련

22. ‘KAL858기 폭파에 사용됐다는 폭약의 종류와 양 - 안기부는 콤포지션C-4폭약 350g을 라디오에 넣어서 폭탄으로 사용했다고 발표했으나, 라디오에는 폭약 350g이 들어갈 수 없고, 안기부도 임의로 폭약의 종류와 양을 추정했음을 시인했다.

23. 김승일과 김현희의 소지품에서 발견된 TNT 화약 성분 - 김승일의 허리띠와 김현희의 옷에서 TNT화약 성분이 검출됐으나 안기부는 수사발표시 이 사실을 은폐했다.

24. 비행기가산산조각 폭발돼서 잔해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발표 - 안기부가 수사발표를 한 88115일 보다 약 한달 전인 8712월 중순, 버마에서는 비행기의 추락 사실에 대한 보고가 이미 접수됐던 상태였고, 이 내용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제출된 보고서에도 기재돼있다.

25. 수심이 2~3천미터 이고, 상어 떼가 득실거려 시신을 찾을 수가 없다고 한 발표 - 버마가 사고조사보고서에 밝힌 추락지점의 수심은 70미터 정도에 불과하고, 상어가 득실거리는 지역도 아니다.

26. 사고지점이 특정되지 않아 블랙박스 탐지장비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발표. - 87 12월 중순 - 블랙박스가 아직 신호를 보내고 있을 시점 - 경 이미 KAL858기의 추락지점에 대한 좌표까지 보고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해저수색이나 블랙박스 수색을 하지 않았다.

27. 폭파장치 세팅시간 - 안기부와 김현희는 폭파장치 세팅시간을 수시로 바꾸면서 자꾸 앞당기고 있다.


A-9 김승일 신원 관련

28. 1987 KAL858기에 탑승했던 김승일이 1984년에도 김현희와 동행을 했다는 발표. - 1984년 김승일이 남겼다는 필체와 1987년 남긴 필체를 비교해 본 결과, 이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의 필체임이 을 통해 밝혀졌다.

29. 김승일의 신원 - 안기부는 1989 <월간조선> 취재 시 김승일이 일본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월북했다고 발표했으나, 2004년에는 김승일이 황해도의 명신중학교를 졸업한 김일선(金一善)이라고 번복했다.



B. 풀리지 않은 의문점 (73가지)

1. 안기부와 김현희는 왜 상기한 28가지의 거짓말을 했는가?

2. 김현희가 음독(?)을 저지한 사람은 누구인가? - 바레인수사보고서, 김현희, 안기부는 공항의 여자경찰관이 저지했다고 주장 - 릴리 전 주한미국대사관은 바레인경찰서장 핸더슨이 저지했다고 주장. 핸더슨은 김현희를 저지하려다가 손가락을 깨물려 상처까지 있다고 함.

3. 안기부가 얘기한 사고지점과 버마가 작성한 사고조사보고서 상의 사고지점은 약200Km의 거리 차이가 있다. 이 차이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4. KAL858기는 미국에서 수리 받고 나온 지 85시간 만에 사고를 당했고, 882월이면 퇴역할 비행기였음. 이런 노후기종을 바로 해외편에 운항시키는 것은 극히 드문 경우임.

5. 김승일과 김현희는 1984 8월 해외적응훈련 당시 비자 없이 일본 여권만으로, 부다페스트에서 열차를 타고 오스트리아에 입국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7 11월 공작 여행 당시에는오스트리아로 넘어가는 방법에 대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표현했다. 더구나 비자가 없다는 이유로 열차를 이용할 수 없다며, 자동차를 타고 오스트리아에 입국을 했다고 했다. 이런 모순은 왜 생겼는가?

6. 유고의 베오그라드에서 김현희는 3명의 동양남자를 혼자 만나 가방을 주고받았고, 목격 자들도 있는데, 이에 대한 진술은 전혀 없음.

7. 베오그라드에서 관광객처럼 보이기위해 사진 찍은 날이 진술서에서는 1124일이었던 것이, <고백록>에는 12 25일로 바뀌어져 있다.

8. 베오그라드에서 <로마-비엔나>표를 구입한 것이 진술서에서는 1124일이라고 했으나 <고백록>에서는 11 26일이라고 말을 바꾸었다.

9. 김승일과 김현희는 1984 8월 해외적응훈련 당시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56일을 보내며 거리를 익히고, 여행사에 가서 항공권도 구입했다고 했다. 그런데 1987 11월 다시 오스트리아의 빈에 왔을 때, 두 사람은 이미 가본 적이 있는 여행사를 가면 서도 마치 낯선 곳에 처음 온 듯 헤메고 다녔다고 <고백록>에 기술돼 있다. 이런 모순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10. 바그다드 공항에서 공항 검색원이 김승일과 김현희가 갖고 있던 밧데리를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했는데, 공항에서 검색원이 안전을 위해 승객의 물건을 보관했다가 나중에 돌려주는 경우는 있어도, 버려버리는 경우는 없다.

11. 밧데리를 공항 검색원에게 빼앗긴 김승일이 검색원에게 일본어로 강하게 항의를 해서, 바그다드의 공항 검색원이 밧데리를 가져가도록 묵인을 했다고 김현희는 진술을 했으나, 항의한다고 보안에 걸리는 물품을 허용하는 검색원-하물며 전쟁 중인 국가의 공항에서- 이 있을 것이며, 바그다드 공항에는 일본어를 이해하는 검색원도 없었다.

12. 결국 김승일은 밧데리를 비행기내에 갖고 들어가기 위해, 복대에 밧데리를 숨기고 검색 대를 통과했다고 한다.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보안검색이 어느 공항보다도 철저한 곳에서 이런 일이 가능한가?

13. 김승일과 김현희가 라디오 밧데리를 비행기 안에 갖고 타기위해 검색과정에서 대단한 소란이 있었던 것처럼 안기부가 발표했으나, 바그다드 경찰이 보내온 공문에는 밧데리로 인한 소란 얘기는 하나도 없다.

14. 김승일과 김현희를 접대했던 KAL858기 스튜어디스 박은미는 폭탄을 놔뒀다는 비닐쇼핑백이 없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는데, 김현희는 쇼핑백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15. 김현희는 자신의 옆자리에 30대 중반의 서구여인이 있었다고 진술했으나, 당시 같이 탑승했던 대한항공의 승무원은 김현희 옆자리가 아랍인이라고 했으며, 앞 쪽 좌석에 여자 승객은 김현희 뿐이었다고 증언했다. 김현희가 말하는 서구 여성은 누구인가?

16. <고백록>을 보면, '폭파될 시간을 계산해 보니 아부다비 시간으로 새벽 6시쯤 되었기 때문에라고 기술돼 있다. 그러나 <고백록>에서의 주장대로 만약 폭파장치 세팅을 바그다드에서 전날 224분에 9시간 뒤 폭발하도록 했다면 비행기 폭발은 아부다비 시간으로 아침8 40(바그다드 시간 아침 740)이 된다. 이런 모순은 왜 생긴 것인가?

17. 김승일과 김현희는 자신들의 도주가 예정에서 벗어나고, 추적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만한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신분이 드러날 수 있는 흔적들을 전혀 폐기처분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18. 바레인에서 김승일과 김현희가 묵고 있던 호텔방에 걸려온 전화들의 진실은 무엇인가? - 김현희의 자술서에는 4, <고백록>에는 3, 그리고 당시 기사에는 대한항공의 직원이 직접 찾아갔다는 내용도 있다.

19. 김현희의 일본어 교관이라는 리은혜가 납북 일본인 다쿠치 야에코라는 주장은 김현희와 안기부의 주장일 뿐이다. - 납치할 인물의 선정 기준 - 중산층, 교양있는 인물- 에 다쿠치 야에코는 적합지 않음. 다쿠치 야에코는 도쿄에서 캬바레 호스테스 였음. 또한 김현희가 일본인어 교육을 마친 1983 3월 이후인 1984 9월 다쿠치 야에코가 방콕의 호스테스로 활동하면서 찍힌 사진이 있음. 이는 다쿠치 야에코가 북한의 교관이 아니라 술집 호스테스이고, 김현희는 술집 호스테스인 다쿠치 야에코를 어딘가에서 만나, 그녀를리은혜라는 가상의 인물로 설정했을 가능성을 높게 하고 있음.

20. 다쿠치 야에코의 한국식 이름은고혜옥이라고, 역시 납북됐던 요코다 메구미의 가족이 증언한 바 있다.

21. 다쿠치 야에코는 일본에서 종종 목격이 됐고, 다쿠치 야에코의 가족들은 다쿠치 야에코가 살아있다고 믿으며, 지금도 송환 운동을 벌이고 있다.

22. 김현희가 평양의 동북리 초대소에서 훈련받은 기간이 안기부 수사보고서에는 81 4월부터라고 했으나, <고백록>에는 81 7월 부터라고 돼있다. 이런 차이는 왜 생기는가?

23. KAL858기의 최종 교신지점 조작 가능성 있음. - 대한항공과 안기부 그리고 버마의 사고조사보고서는 최종 교신지점을 어디스(Urdis)라 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고 초기 일본 아사히 신문의 취재와 <파괴공작>의 저자 노다미네오 씨가 현지 관제소를 취재한 바에 의하면 KAL858기는 어디스(Urdis) 이전 위치 통보 포인트인 톨리스(Tolis)에서 최종 교신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김현희가 자신의 고백록 <이제는 여자가 되고싶어요>에서 밝힌 내용을 봐도, KAL858기는 어디스에 도착하기 전 폭발되게 시한장치가 돼있었다.

24. 87 1210일에서 1212, 안다만해의 코코섬과 니콘담제도 근방에서 발견된 부유 물들은 왜 국과수에 감정의뢰를 하지 않았나? - 이 부유물들은 당시 해류와 발견지점으로 봤을 때, KAL858기의 것이었을 가능성이높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부유물들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목록에 빠져있다. 안기부는 왜 이 부유물들을 감정에서 빠뜨렸는가?

25. 김승일과 김현희가 바레인으로 도망간 이유는? - 바레인은 남한과만 단독수교를 맺은 국가이고, 대한항공의 중동진출 거점있었으며, 80년 중동전쟁 때, 교민 철수의 거점으로 활용될 만큼 남한과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나라였다. 남한 항공기를 폭파했다는 북괴공작원이 왜 북한대사관도 없는, 자신들에게는 극도로 불리한 지역으로 도망(?) 갔는가?

26. 김승일, 김현희가 신속히 도주하지 않은 이유는? - 김승일과 김현희는 아부다비에서 KAL858기에서 내린 뒤, 신속하게 북한을 향해 갈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바레인의 호텔에 투숙하면서 122일까지 방을 예약했으며, 출국 가능한 모든 비행기를 모두 타지 않았다. 왜 그랬는가?

27. 김승일과 김현희의 소지품 가운데 암호수첩은 현지 정밀검사 때는 등장하지 않다가, 국내에 압송될 때 등장한다. 더구나 그 수첩에 기재된 암호들은 비밀아지트가 아니거나, 암호로 만들 이유가 없는 - 현지 전화번호부에도 기재돼 있는 - 북한대사관의 전화번호였다. 왜 그런 전화번호들을 암호로 만들어서 다녔는가?

28. 김승일과 김현희가 사용한 암호는 이미 검거된 남파간첩이 사용했던 암호와 같은 종류의 암호였는데, ‘KAL858기 폭파와 같은 엄청난 공작에 이미 공개된 암호를 다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한가?

29. 김승일의 여권을 위조해준 것으로 알려진 이경우(미야모토 아키라)는 이미 일본과 한국의 공안기관에 의해서 감시받고 있던 인물이었는데, 어떻게 이미 노출된 인물을 이용해‘KAL858기 폭파 사건같은 공작을 꾸밀 수 있는가?

30. 거짓 부유물로 밝혀진 구명보트를 발견했던 버마 화물선 다곤1호는 우리나라의 해운공사 소속 배였다고 한다. (정형근 인터뷰) 어떻게 그 중요한 거짓 증거물이 하필 한국 국적선에 의해 - 그것도 버마 앞바다에 있는 한국 국적선에 의해 - 발견이 됐을까?

31. 구명보트가 발견됐다는 최초 발견 지점 발표와 이후 안기부가 발표한 구명보트 발견지점은 서로 다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32. 구명보트 안에서 발견된 부숴진 수동펌프에 대해서 안기부와 국정원은 왜 거짓말을 했는가?

33. 90 3월에 발견된 KAL858기의 동체조각 이라는 것을 안기부는 왜 폐기했는가?

34. 과거 안기부는 KAL858기가 어디스(Urdis)을 지나, 4분정도 비행한 뒤 폭발됐다고 발표했었는데, 최근 국정원은 KAL858기의 추락지점을 바로 어디스(Uddis)로 발표했다.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35. 버마의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87 12월 중순경 KAL858기의 추락에 대한 제보가 접수됐었는데, 왜 우리 정부는 추락지점에 대해서 제대로 수색을 하지도 않고, 블랙박스도 탐지하지 않았는가?

36. 김승일, 김현희의 여권에 일본 출입국 흔적이 분명히 있는 것은 어떤 이유인가?

37. 동경과 방콕에서 호스테스 생활을 했던 다쿠치 야에코를 김현희는 어떻게 알았는가?

38. 여권을 보면, 김현희와 진짜 하치야 신이치가 84825일 같은 날 도쿄에서 방콕으로 간 것으로 돼있는데, 이는 어찌된 일인가?

39. 김현희는하치야 마유미라는 여자 행세를 하면서, ‘다카하시라는 남자의 여권을 위조해 다녔다. 왜 그런 엉터리 위조를 했는가?

40. 북한의 최부장은 실존하지도 않는 하치야 마유미의 신상을 김현희에게 알려주면서, 마치 마유미가 실존 인물인양 신원내역을 암기하고 다니라고 했다. 왜 이런 엉터리 명령을 내렸는가?

41. 사건 당시 기사를 보면, 김현희는야카베 마유미라는 또 다른 여인의 운전면허증을 갖고 다녔다고 하는데, 그 운전면허증은 어디로 사라졌으며, 또 왜 그것을 갖고 다녔는가?

42. 김현희의 재판 증거물 목록에 보면, 김현희가조선노동당원증을 소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오는데, 정말로 김현희가조선노동당원증을 소지하고 있었는가?

43. 김승일과 김현희가 실제로 갖고 다녔던 84 825~102일의 여권에 찍혀있는 출입국 도장과 재판 판결문에 적혀있는 행적의 내용이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44. 김승일의 84 921~26일 사이의 서울 행적에 대해서 왜 안기부의 초기 수사발표와 최종 수사발표 그리고 재판부의 판결문 내용이 서로 다른가?

45. 김승일과 김현희가 유럽에서 찍었다는 사진들은 왜 공개를 하지 않는가?

46. 공개된 김승일과 김현희의 사진 중 일부는, 누군가가 멀리서 망원렌즈로 찍은 사진들이다. 그 사진은 누가 찍은 것인가?

47. 공개된 사진 가운데 김승일이 베오그라드에서 찍은 사진 속의 나무그림자와 김승일의 그림자가 서로 각도가 틀린 이유는 무엇인가?

48. 김현희는 <고백록>에서 김승일과 같이 베오그라드에서 사진을 찍은 날이 비가 오락가락하는 안좋은 날씨였다고 했다. 그러나 촬영된 당시 사진을 보면, 햇볕이 좋은 날이었다. 어찌된 일인가?

49. 김승일과 김현희는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젊은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이 목격이 되었다. 그 젊은 남자는 누구인가?

50. 70살의 김승일 부검감정서에 붙어있던 40~50대로 보이는 남자 사진은 누구의 사진인가?

51. 실종유예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왜 정부는 서둘러 실종자들을 일괄 사망처리 했는가?

52. 90327일 대법원의 최종판결이 있기 한달여전부터, 갑자기 김현희의 화동사진이 등장(2.25) - 거짓으로 밝혀짐 - 하고, KAL858기의 동체조각이 기적적으로 발견(3월초) - 폭발흔적 없음 - 되더니, 최종판결 뒤에는, 2년 넘게 지지부진하던 위령탑이 기공되고(4.9), 바로 김현희를 사면(4.12)하는 등 일련의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난 것이 과연 우연인가?

53. ‘역사의 증인으로 삼기위해 살려 둔 김현희를 국정원은 왜 꼭꼭 숨겨두는가? - 노태우, 김영삼 정권 시절 안보강연, 신앙간증, 집필(?) 활동 그리고 방송출연 등 다양한 대중공개활동을 했던 김현희는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 공개활동을 갑자기 중단했다.

54. 김승일과 김현희의 행적을 사건 초기부터 미국의 국무성내 한국과, 국제테러담당실, CIA 등이 함께 추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안기부의 사건수사발표 당시 전혀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이 발표된 이유는 무엇인가?

55. 북한에 대한 제재결의안을 통과시키려고 소집한 유엔안보리 회의에서, 북한이아부다 비에서 남한 외교관 11명이 KAL858기에서 내렸다라고 주장하며 KAL기 실종이 남한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했을 때, 왜 남한은 당시 승객명단을 보여주며 반박을 하지 못했는가?

56. 대한항공에서 제시한 KAL858기에 탑승했다가 아부다비에서 내린 승객 명단 가운데, 국적이 표시 안 된 승객들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57. 실종자 명단이 호외보도, 최종보도, 재판 판결문에서 다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58. 실종자 중에 몇 명은 주소가 서로 다르게 나오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59. 아부다비에서 내린 김승일과 김현희를 - 당시 신이치와 마유미 - 우리 정부와 대한항 공은 사건 초기 신속하게 추적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 사실을 일본대사관 쪽에 바로 알리지 약 24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렸는가?

60. 김승일과 김현희가 바레인에 입국했을 때, 당시 아직 KAL858기의 실종이 보도되기도 전이고, 일본 대사관에서도 두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있을 때, 두 사람이 투숙하고 호텔과 여행사에 전화를 걸어 온 여성은 누구인가?

61. 대한항공사 직원이 바레인의 호텔방으로 김승일과 김현희를 찾아갔던 사실이, 김현희의 진술과 안기부 수사발표 내용에서 빠진 이유는 무엇인가?

62. 안기부가 발표한 김승일과 김현희의 행적에는 동독이 들어가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소지품 가운데, 동독 동전과 동독에서 찍은 사진이 발견된 이유는 무엇인가?

63. 김승일은 죽고, 김현희는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는 가운데, 사건 발생 사흘만에, 김승일 과 김현희 유럽 행적이 보도가 됐고, 그 정보는 안기부에서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안기부는 과연 그 사실들을 어떻게 알았는가?

64. 아직 김현희의 진술이 있기도 전에, 김현희가 폭약을 인계한 곳이 베오그라드 였음이 역시 신문에 보도가 됐는데, 그 정보의 제공자인 안기부는 그 사실을 어떻게 사전에 알 수 있었는가?

65. 호외보도와 이후 보도에서 KAL858기의 바그다드 이륙시간과 방콕 도착예정시간이 서로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66. ‘9시간 뒤 폭파라는 사실을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중앙일보에 ‘9시간 뒤 폭파가 보도된 것은 어떻게 설명이 가능한가?

67. ‘일본 여권 위조로 일본실정법을 위반한 것이 분명한 마유미가 아직 분명치도 않은 테러범죄의 혐의만을 갖고 한국으로 인계된 이유는 무엇인가?

68. 88115일 중앙일보에 실린 김현희의 자필맹세문의 용지와 내용 중의규율, 다음날 신문에 용지도 바뀌고, ‘규률로 바뀌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69. 883월경 이미 거짓말로 들통 난 김현희의 화동사진이 89 3월 검찰이 작성한 공소장에 그대로 증거물로 채택된 이유는 무엇인가?

70. 검찰이 범행 입증자료로 제시한 증거물들은 모두 김현희의 폭파를 입증할 증거가 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김현희를 폭파범으로 단정해 사형을 선고할 수 있었는가?

71. 김현희의 거짓 진술로 밝혀진평양시 문수구역이라는 주소가 대법원의 판결문에 까지 버젓이 기재될 정도의 엉터리 재판이 행해진 이유는 무엇인가?

72. 안기부 수사보고서와 검찰 공소장 등에서공중 산산조각 폭발로 표현했던 KAL858기 사건이 왜 최근 국정원의 답변에는추락으로 바뀌는가?

73. 안기부가 1998 10 14일 안기부 KAL858기 사건을북풍 의혹사건으로 거론한 근거는 무엇인가?

 

 

2009.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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