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

질문 칼기폭파사건은 어떤 사건이었나요???
dbwl**** 조회수 1,409 작성일2013.10.23

 칼기폭파사건은 어떤 사건이었나요???

그리고 몇년도쯤에 일어났는지도 알려주세요~

프로필 사진

답변자님,

정보를 공유해 주세요.

2 개 답변
2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비공개 답변
영웅

 +

이 사건으로 탑승객 115명 전원이 사망하였다. 이 사건은 1987년 10월 7일 서울올림픽대회 참가를 방해하기 위해 대한항공 여객기를 폭파하라는 북한의 지령과 중동노선 항공기를 이용하는 해외근로자들을 희생시킴으로써 국내 서민들의 대정부 불신을 조장할 수 있다는 치밀한 계획에서 수행되었다.

대한항공 858기는 일본인 하치야 신이치(蜂谷眞一)와 하치야 마유미(蜂谷眞由美)로 위장한 북한 대남공작원 김승일(金勝一)과 김현희(金賢姬)가 기내에 두고 내린 시한폭탄과 술로 위장한 액체폭발물(PLX)에 의하여 폭파되었다. 시한폭탄에 사용된 폭약은 컴포지션 C4와 액체폭약으로, 범행에 사용한 컴포지션 C4는 TNT보다 1.34배의 위력이 있으며, 고성능폭약인데다 형태변경이 용이하고 냄새가 없는 비금속성이어서 이들이 검색을 피할 수 있었다.

김승일과 김현희는 철저한 공작교육을 받은 북한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사부 소속 특수공작원이었다. 특히, 김현희는 1972년 11월 2일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조절위원회 2차 회담에 참석한 우리측 장기영(張基榮) 대표에게 꽃다발을 증정했던 장본인으로 지목되기도 하나 이에 대해서는 약간의 논란이 있다.

기내에 폭발물을 장치한 뒤 이들은 중간 기착지인 아부다비에 내려서 암만과 로마를 경유, 빈으로 도주하려다 여의하지 않자 바레인-암만-로마행으로 항공권을 바꾸어 바레인으로 떠났다. 바레인 체류중 대한항공 바레인지점과 한국대사관 관계자들의 추적을 받자 이들은 12월 1일 급히 호텔을 빠져나가 로마로 떠나기 직전 공항에서 바레인 당국의 조사를 받던 중, 극약이 든 담배를 삼켜 김승일은 숨지고 김현희는 혼수상태에 빠졌으나 이틀 뒤 의식을 되찾았다.

대한항공기 폭파와 관련하여 각국에서는 대북한 제재조치를 취하였다. 1988년 1월 21일 미국 정부는 수출관리법에 따라 북한을 테러국가로 규정했으며, 북한 여권을 가진 민간인에 대해 미국 입국비자 발급규제를 더욱 강화했다. 그리고 미 외교관들이 중립적 환경에서 북한 외교관들과 대화를 갖도록 허용한 1987년 3월의 접촉 지침을 철회하였다.

1988년 1월 26일, 일본 정부는 이날부터 당분간 제3국에서 북한 외교관과 접촉을 엄격히 제한하고, 공무원의 북한방문과 북한공무원의 입국을 원칙적으로 중지하였다. 일본∼북한을 운항하는 특별기는 외국항공기라도 일본 기항을 중지시켰다.

1988년 2월 16·17일 양일간 미국·영국·프랑스·일본 등 우방은 물론, 유고슬라비아까지 참가한 유엔안전보장이사회 토의에서 무고한 인명을 해친 극악무도한 만행을 일제히 규탄하였다. 하치야 마유미로 행세하였던 김현희는 북한폐쇄사회로부터 속고 이용당해 온 사실을 깨닫고, 현재 한국에 전향하여 법의 심판을 받아 사형이 선고되었으나, 대통령의 특사로 풀려나 자유인이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칼기폭파사건 [─機爆破事件]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3.10.25.

  • 채택

    질문자가 채택한 답변입니다.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
1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가을사랑
수호신 열심답변자
세계사 7위, 역사학 3위, 외교관계 14위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KAL858기 폭파 사건’의 진실

 ‘KAL858기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인 지난 1987년 11월29일, 중동 건설현장에 나갔던 근로자들과 대한항공 승무원 등 115명을 태우고 이라크 바그다드를 출발해 서울로 돌아오던 대한항공 858편 보잉707기가 미얀마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홀연히 사라진 사건이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김현희와 김승일 등 북한공작원에 의해 벌어진 폭파사건”으로 결론을 내리고 115명의 탑승객 전원을 사망처리했다. 
 김현희는 1987년 ‘KAL858기 폭파범’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역사적 사건의 유일한 증인’이라는 이유로 1990년 특별사면을 받았다.

 

그는1991년 기자회견을 가진 후 97년 전국 공안검사를 대상으로 특별강연을 하는 등 그의 행적이 간간이 언론에 보도되기는 했지만 공개석상에는 모습을 내비치지 않았다. 지난 1987년 ‘KAL858기 사건’의 범인으로 알려진 김현희가 10여년 만에 공식석상에 나타나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밝혀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김현희는 지난 11일 부산벡스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KAL기 폭파사건은 북한이 한 테러이며 자신은 가짜가 아니다”며 사건조작설을 강력 부인했습니다. 
 
 김현희가 사면된이유.
끝나지 않은 의혹 ‘KAL기 사건’ 
지난 정권인 김대중.노무현정권에서 KAL기 사건의 조작설과 음모론이 그 어느 시기 때보다 크게 제기되었고 MBC등 공영방송사들이 이에 편승하여 KAL기 사건의 실체를 부정적으로 방송하는 사태가 발생하였습니다.그러나 당시 전두환정부는 야당이나 사회일각에서 일고있는 군사정권 유지를 위해 조작했다는 주장에 대응해 그사건의 피의자 김현희를 사면한것 입니다.만약에 당시 전두환정권이 정권 유지차원에 KAL858기 사건을 조작했다면 김현희를 그때 사형에 처했을 겁니다.이사건은 북한의 당시 김일성이 명령을 내린것 입니다.

 

2013.10.23.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