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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kal기 폭파사건에 대해서 급함 내공 검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7,988 작성일2007.12.02

87년에 있었던 마유미 858기 폭파사건에 대해서 언론에 의해 알려진 사건 개요는 어떻게 되며

 

유가족들이 말하는 진상은 무엇인지 간단하게 요약좀 해주세요

 

원래 알려진 사건은 북의 올림픽 방해공작으로 이사건이 터져서 어찌어찌 된거고

 

진상은 전두환이 정권이 바뀌면 자기목숨이 위태로워 자작극으로 꾸며서 어찌어찌 되었다는데

 

자세히 알기쉽게 답변 부탁드려요

 

성의있는 답변 내공 50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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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4일에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실규명 위원회>에서 KAL기 폭파사건의 진실에

 

관해 발표했습니다. 그 사건 자체를 조작했다는 증거는 없으며 그 사건은 북한에 의해

 

저질러진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이며 다만 그 사건 결과를 대통령선거 등 한국정치에

 

이용한 면은 있다는 말했습니다.

 

국정원 진실위는 과거 전두환 정부에 대한 비판적이고 칼기 사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던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국가기구입니다.

 

이러한 기구에서 상당한 시간과 인력을 투입해서 조사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뚜렷한 진실로 판단됩니다.

 

 

 

 

"KAL기 폭파는 北소행… 안기부 조작 없어"
87년 대선 앞두고 노태우 후보에 유리하게 이용 확인 (한국일보)

  
24일 국정원 진실위의 최종 조사결과 발표에 따라 KAL858기 폭파사건을 둘러싼 의혹과 논란의 최종 종착점이었던 ‘안기부 조작설’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졌다.

 

진실위가 KAL기 폭파사건과 관련해 당시 안기부의 조작ㆍ기획은 없었다고 정식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1988년 1월 당시 안기부 수사 결과 발표 직후부터 ‘안기부에 의해 기획된 자작극’이라거나 ‘북한의 테러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할 목적으로 저지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진실위는 이 사건과 관련한 의혹을 ▲안기부 및 제3국의 사전 인지 및 공작 여부 ▲김현희ㆍ김승일의 북한 출신 여부 및 행적 관련 의혹 ▲김현희ㆍ김승일의 폭파범행 여부 ▲폭탄의 종류와 양 ▲잔해 수색 문제 ▲사건의 정치적 이용 여부 ▲김현희 재판과정과 김현희 관리의 적절성 여부 등 7개 분야 148개로 나눠 광범위한 조사작업을 벌여왔다.

 

그 결론이 바로 KAL기 폭파사건은 북한 당국의 지시를 받은 공작원 김현희와 김승일의 소행이라는 것이다. 진실위는 당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 사건을 민정당 노태우 후보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기 위해 범 정부 차원에서 움직였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하지만 조사결론에 완벽한 신뢰를 보내기엔 미흡한 부분이 없지 않다. 진실위가 강제 조사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건 현장의 유일한 생존자인 김현희씨에 대해 10여 차례 면담요청을 했으나 끝내 불발된 것은 개운치 않은 대목이다. 또 비행기 폭파에 사용된 폭발물의 종류 등에 대해서도 명쾌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  

입력시간 : 2007/10/25

 

 

KAL기 폭파사건 그 자체를 설명해보죠.

 


1987년 11월 29일, 승객과 승무원 115명을 태우고 이라크 바그다드를 떠나 서울로 향하던

 

대한항공 858 여객기가 미얀마 상공에서 갑자기 폭발합니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는 이듬해인 1988년 1월 15일, 한 달 반 동안의 수사 결과를

 

공식 발표하고 바레인 당국으로부터 신병을 인도받아 수사해온 폭파범 마유미의

 

본명이 김현희라고 밝혔습니다.

 

김현희는 기자회견에서 바레인 공항에서 음독자살한 김승일과 자신은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소속 특수공작원이라고 말했습니다.

 

김현희는 바그다드공항에서 서울행 KAL858기에 시한폭탄을 갖고 탑승한 뒤

 

중간 기착지인 아부다비에서 비행기 선반에 시한폭탄을 놓고 내렸다고 밝혔습니다.

 

폭파범들은 범행 이틀 뒤 바레인 당국의 조사를 받다가 음독자살을 기도했지만

 

김승일은 사망하고 김현희는 의식을 되찾았죠.

 

수사결과 폭파범들은 1984년부터 3년 7개월 동안 언어교육과 폭파훈련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KAL기 폭파사건으로 국내외에서는 북한의 만행을 규탄하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고

 

남북관계는 악화됐습니다.

 

또한 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북풍’이라고 일컬어지며 노태우 후보의 당선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2007.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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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858기는 1987년 인도양 상공에서 실종되었다. 수사는 북한지령에 의한 공중폭발로 결론짓고 종결하였지만, 사망자들의 시체 미발견등의 아직 풀리는 않는 의문들로 진실 규명 활동중인 사건이다

 

사건 일지

당시 한국정부의 수사 결과

1987년 11월 29일 미얀마 안다만해역 상공에서 대한항공 보잉707기는 조선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에 의해 공중 폭파되어 탑승객 115명 전원이 죽었으며, 이 사건은 1987년 10월 7일 김정일의 명령에 의해 88 서울올림픽대회를 방해하고, 대한민국 내 대정부 불신을 조장을 목적으로 하였다. 여객기 폭파후 두 폭파범은 1987년 12월 1일 바레인 공항에서 조사를 받던 중 김승일은 독약으로 자살 하고, 김현희는 남한으로 압송하였다.

수사 결과에 대한 의혹들

  • 블랙박스 발견되지 않음 ( 안기부의 일부 폐기 )
  • 대한항공 858편 사고 사망자 시체, 유품이 발견되지 않음
  • NIS국가정보원의 빠른 수사 종결처리

 

외국자료참고

Korean Air Flight 858 was en route from Abu Dhabi to Bangkok on 29 November 1987 when it exploded over the Andaman Sea killing all 115 on board. Two North Korean agents had boarded the plane in Baghdad and departed during its stopover in Abu Dhabi having left a time bomb in an overhead compartment and were arrested when they attempted to leave Bahrain using fake Japanese passports. Both immediately swallowed cyanide capsules. The male, later identified as 70-year-old Kim Sung Il, died almost instantly, but the female suspect, 26-year-old Kim Hyon Hui, survived.[1]

On 15 December 1988 Kim Hyon Hui was transferred to Seoul where she recovered from the poison and, after seeing life in South Korea on television, realized that she been "exploited as a tool for North Korean terrorist activities", and made a detailed and voluntary confession[2] detailing her travels under guidance of North Korean agents from Pyongyang via Moscow, Budapest, Vienna, Belgrade, and eventually to Baghdad where the bomb was primed. The escape route was to be from Abu Dhabi via Amman to Rome but was diverted to Bahrian due to visa complications.[3]

In January of 1988, Ms. Kim announced at a press conference held by the Agency for National Security Planning, the South Korean secret services agency, that both she and her partner were North Korean operatives. She said that they had left a radio containing 350 grams of C-4 explosive and a liquor bottle containing approximately 700 ml of PLX explosive in an overhead rack in the passenger cabin of the aircraft. Kim expressed remorse at her actions and asked for the forgiveness of the families of those who had died. She also said that the order for the bombing had been "personally penned" by Kim Jong Il, then the son of North Korean President Kim Il Sung, who had wanted to destabilize the South Korean government. An article written by Peter Maass for the Washington Post and dated January 15, 1988 [1] states that it was unknown whether Ms. Kim was coerced in her remarks or in her remorse for her actions.

The United States State Department specifically refers to the bombing of Korean Air Flight 858 as a "terrorist act" and listed North Korea as a Designated State Sponsor of Terrorism [2] based on the results of the South Korean investigation.

The action was discussed at length in at least two 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meetings where the allegations and evidence was aired by all sides,[4][5] but no resolution was passed.[6]

This act is the deadliest terrorist attack ever perpetrated against South Korea.


Korean Air Flight 858
Summary
Date November 29, 1987
Type Airliner bombing
Site over the Andaman Sea
Origin Baghdad International Airport
Last stopover Abu Dhabi International Airport
Destination Don Mueang International Airport
Passengers 104
Crew 11
Injuries 0
Fatalities 115
Survivors 0
Aircraft
 Aircraft type Boeing 707-3B5C
Operator Korean Air

2007.12.02.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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