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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kal기 폭파사건 조작이라는데 진짜 범인은 누굴까요?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8,157 작성일2006.01.18

여러 의혹들이 많은걸 보면 kal기 폭파사건은 조작일 확률이 높아보입니다.  근데 그렇다

 

면 도데체 누가 범인이라는 말인지 너무 궁금해서 글을 올립니다. 일단 실종이든 폭파이

 

든 현재 kal기의 생존자나 비행기 잔해가 깡그리 사라진 것으로 보아 누군가가 kal기를

 

공격한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그러나 전두환정권이 대선승리와 국면전환을 위해 그러한

 

짓을 하고 북한정권에 뒤집어씌웠다는 것은 매우 설득력이 빈약해보이는데요, 아무리

 

대선승리를 위해서라지만 자기나라 국민들을 죽이는 그런 행위를 했다가 들통이라도 나

 

면 리스크가 워낙 큰데다가 그렇다면 김현희를 살려둘 이유도 없으니까요. 두번째 가설은

 

kal기가 단순사고로 바다에 추락해 실종됐는데 정권이 당시 비행기에 탑승했다가 우연히

 

내린 김현희를 범인으로 조작했다는 것인데요, 이것도 조금 석연치 않은게 김현희가 조작

 

론자들 주장대로 북한출신 공작원이 아니라 조선족이거나 다른 지역 출신이라면 십수년

 

이 지난 지금와서 당시 같은 학교를 다녔던 김현희의 친구들이나 친척들이 언론에 증언

 

정도는 했을 법한데 김현희를 안다고 증언하는 사람은 도통 나타나지를 않으니 말입니다.

 

과연 조작이라면 사건의 진실은 무엇이라고 추측하시는 지 여러분들의 대답을 듣고 싶습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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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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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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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암흑속에 뭍여있습니다.

그들이 죽지 않는한 절대 나오지 않을것입니다..

너무많은 의혹이 있어서...... 함부로 말하진 못하겠네요.

 

여러가설!!!!이 있습니다.

 

1.  안기부 발표대로 김현희는 북한 공작원이다.

또한 북한의 명령으로 테러를 감행했다...

 

2. 안기부가 비밀리에 키워온 정보원으로서  대선을 위해

작전을 실행했다. (당시 대선에서 노통이 떨어지면 전두환.... 목숨이 위태롭기 때문)

 

3. 당시 미국 , 북한의 냉전은 최고를 달해 있었다.   이에 미국은 북한을 테러국으로

지명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자 당시 전두환대통령과 합의하에

작전을 실행했다..

 (김현희는 미국쪽 정보부(CIA) 혹은 안기부정보원)

<< 추가 - 참고로  미국이 잘하는게 전쟁 붙이기 불화 일으키기에요.

아프리카 쪽이나 기타 군소국가들이 분쟁 대부분에 투입되었으니까....

 (무기팔아먹으려고)

 

4.  일본극우파 .. (이건 헛소리인거 같네요...)

 

 

밑의 글은 한 블로그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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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올림픽 개최 둘러싼 비밀스런 남북 대결 최초 공개
●KAL 사건, 올림픽 참가 신청 50여일 앞두고 터져
●아부다비에서 암만으로 튀려고 했던 하치야 父女
●실존 일본인 여권 사용한 김승일의 정체
●아부다비와 바레인공항 요원의 친절에 발목잡힌 김승일
●안기부 “북한 놈들이 바레인 와서 갈겨도 우리는 모른다”
●한밤중에 인도받은 관 뚜껑 열고 시신 수색
●불 꺼놓고 진행된 안기부의 수사발표
●“꽃다발 소녀는 김현희 아니다” 北女 정희선 주장
●金正日을 金正一로 적어놓은 수사발표문
●“규율과 규률의 차이점은 중앙일보가 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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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발표문이 야기한 의혹들】

노태우 후보가 13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다음인 1988년 1월15일 안기부는 매우 이례적인 기자회견을 가졌다. 서울 이문동에 있는 안기부 본청 강당으로 기자들을 초청해 KAL 858기 폭파사건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이상연(李相淵) 1차장이 먼저 수사 전반에 대해 발표했다. 이어 수사 책임자인 대공수사단장이 H수사공작과장 등 실무자들과 함께 나와 상세한 이야기를 한 후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불은 끄고 녹음은 하지 마시오”

대공수사단장 등이 무대에 나타나기 전 안기부측은 강당 안의 불은 물론이고 방송사 ENG카메라의 조명도 끄게 했다. 무대를 촬영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당연히 스틸 사진을 찍는 신문사의 사진기자들에게도 “사진을 찍지 말라”고 요구했다. 오직 귀로 듣고 노트에 적기만 하라고 한 것이다.

순식간에 강당 안은 어두컴컴해졌다. 그러나 창문과 문틈새로 빛이 들어와 무대에 있는 사람의 윤곽을 볼 수는 있었다. 취재기자들이 필기할 수 있을 정도의 밝기는 유지되었던 것이다.

대공수사단장 등은 자신에 찬 목소리로 “하치야 마유미로 위장한 김현희와 하치야 신이치로 위장한 김승일은 제3국을 우회해서 대남공작을 하는 북괴(당시는 북괴라고 했다) 노동당 조사부 소속 공작원이다. 이들은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이때는 김일성이 살아 있었다)로부터 ‘남조선의 두 개의 조선 책동과 올림픽 단독 개최 책동을 막기 위해 남조선 비행기 한 대를 폭파하라. 이 사업은 올림픽에 참가하려는 세계 여러 나라의 의사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다’는 지령을 받고 KAL 858기를 폭파 대상으로 선정했다”는 요지의 설명을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평양 동북리에 있는 초대소에서 여행자들이 일상적으로 휴대하는 라디오와 술병을 이용해 대한항공기를 폭파하기로 하고 이 폭발물의 시한장치를 작동시키는 훈련을 받았다. 김현희는 김옥화라는 이름의 북한 여권을 이용해 김승일과 함께 헝가리 부다페스트까지 온 후, 헝가리 주재 북한대사관이 제공한 승용차로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가는 도중 북한 여권을 반납하고 하치야 마유미 명의로 된 일본 위조 여권을 받았다. 그리고 빈에서 항공권을 구입해 폭파공작에 나섰다”는 요지의 설명을 덧붙였다.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기자들은 안기부측이 제공한 수사발표문을 보고 있었다. 대공수사단장이 이야기 하는 것 중 상당수는 수사발표문에 이미 포함돼 있었다. 이때 안기부측은 “김현희는 만 10세이던 1972년 11월2일 평양에서 제2차 남북조절위원회 회담이 열렸을 때 화동(花童)으로 나와 한국의 장기영 대표에게 꽃을 선사했다. 그때 우리측은 북한 소녀에게 꽃을 받는 장기영 대표를 찍었는데, 이 소녀가 바로 김현희다”라며 수사발표문을 통해 사진을 공개했다.

사람 귀는 평생 그 모양이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진에서 김현희로 지칭된 소녀는 도톰한 귓불을 갖고 있으나, 김현희는 귓불이 없는 세칭 칼귀를 갖고 있다. 그러나 안기부에서는 그 누구도 이러한 차이점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런데 수사발표 두 달 후인 그해 3월 북한에서는 정희선이라는 여성이 외신기자회견을 갖고 ‘1972년 장기영 대표에게 꽃다발을 건넨 것은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이 기자회견에는 조총련으로부터 초청을 받은 일본 기자들이 참여했는데, 이 회견에서 북측은 1972년 11월2일 남북조절위 행사 때 찍어놓은 비디오를 공개하며 장기영씨에게 꽃다발을 준 소녀는 정희선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언론은 KAL 858기 사건에 대한 관심이 높았으므로 ‘당연히’ 이 비디오를 방영했는데, 이것이 일본에서 KAL 858기 사건에 대한 의혹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안기부가 이 필름을 ‘적성(敵性) 자료’로 분류하는 바람에 방영되지 못했다. 이러한 금지 조치는 훨씬 더 강력한 의혹을 제기하는 간접 자료가 되었다.

안기부는 김현희의 아버지는 김원석인데, 그는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에 근무했고 1986년 8월부터 KAL 858기 사고가 날 때까지는 앙골라 주재 북한무역대표부에 수산대표로 있었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국가는 자국에 근무하는 외교관 명부를 공개한다. 그런데 얼마 후 앙골라의 외교관 명부 북한편에는 김원석이라는 이름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것도 훗날 의혹을 부풀리는 요소가 되었다.

직접 수사발표문 친 대공수사국장

대공수사국장이 타자 연습을 위해 치다가 金正日을 金正一로 잘못 쳐놓은 수사발표문

국정원의 해명 중에서 가장 군색한 것은 김현희씨의 귀에 대한 것이다. 김현희 소녀가 꽃다발을 준 것은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되는데, 안기부는 공개했다가 오히려 의혹만 증폭시키고 말았다. 이는 안기부의 수사와 발표가 노련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안기부 발표문에는 이것 외에도 여러 가지 오류가 발견된다. 김정일의 한자 이름은 金正日인데 수사발표문에는 金正一로 적혀 있는 것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이 수사에 관여했던 K씨는 “수사발표 직후 한 언론사의 기자가 이 글자를 가리키며 ‘김정일의 일자가 ‘한 일’로 바뀌었는가’라고 물어, 우리가 오자(誤字)라고 답변했다. 통상적으로 수사 발표문은 전문 타자수가 치므로 실수가 적다. 그러나 이 발표문은 전문 타자수가 아니라 대공수사국장이었던 J씨가 친 것이다. 당시 안기부에는 286급 컴퓨터가 보급돼 있었는데 J국장은 타자 연습을 위해 자신이 치겠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金正一 등의 오자가 들어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것은 김현희가 직접 썼다는 자술서에도 오자가 있다는 점이다. 바레인에서 그는 리젠시 호텔에 묵었는데 자술서에서는 리젠트 호텔에서 잤다고 써놓았다.

국정원에 대해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언론인들은 안기부를 ‘블랙홀’에 비유한다. 안기부가 용의자를 데려간 다음에는 더 이상의 취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블랙홀이라는 별명을 붙인 것이다.

안기부는 수사과정에서 언론의 견제를 받지 않아 편리했을지 모르지만, 이는 결국 실수를 사전에 발견하지 못한다는 문제를 낳았다. 아무런 견제없이 진행되는 안기부 수사는 완벽해야 하는데 이들은 그렇지 못했다

 

김현희씨 귓불 사진 공방
“김현희는 세 번째로 꽃 전달했다”

하기와라 료 기자가 공개한 사진(위)과 미쓰이시 기자가 공개한 사진.
김현희씨 사진 오보 사건은 매우 복잡하게 진행돼 왔다. 1988년 1월 수사발표 때 안기부는 1972년 11월2일 장기영 남북조절위 대표에게 꽃을 주는 소녀를 김현희로 발표했다. 그런데 1988년 3월6일자로 발매된 일본의 주간지 ‘그라프 곤니치와’에는 일본 공산당 기관지인 ‘아카하타(赤旗)’의 평양 특파원 하기와라 료 기자가 쓴 기사와 함께 1972년 11월2일 남북조절위 회담 때 화동으로 나온 북한 소녀들이 두 줄로 서 있는 사진을 실었다. 하기와라 료 특파원은 이중 한 소녀를 지목해 김현희라는 설명을 덧붙였다(위 사진에 화살표를 한 소녀).

이에 대해 일본 경찰의 과학경찰연구소는 3월28일 “골격으로 보아 이 소녀가 김현희인 것으로 추정된다”는 발표를 했다. 그러나 이 소녀의 귀에는 귓불이 있다. 이에 대해 북한에서는 정희선이 “그 소녀는 나”라고 주장하였다. 하기와라 료 특파원도 틀렸고 일본 과학경찰연구소도 잘못 감정한 것이다. 국정원은 앞에 크게 찍힌 소녀 왼쪽에 왼쪽 옆얼굴만 나온 소녀(●표시)가 김현희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01년 11월 월간조선에는 72년 11월2일 남북조절위 회담 때 일본 요미우리 신문의 미쓰이시(三石英昭) 사진 기자가 찍은 북한 소녀 사진이 실렸는데(아래사진), 미쓰이시 기자는 이중 오른쪽 세 번째 소녀(●표시)를 김현희로 지목했다. 미쓰이시 기자는 72년에 찍었던 사진 중에서 발표하지 않았던 것을 뒤지다 이를 찾아냈다고 한다. 국정원은 이 소녀의 골격을 확대해보니 지금의 김현희씨와 아주 비슷하다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따라서 국정원은 김현희씨는 그의 주장대로 두 번째로 꽃을 준 것이 아니라 세 번째로 꽃을 주었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장기영씨에게 꽃을 준 것은 자신이라는 북한 여성 정희선의 기자회견은 결국 안기부에게 크로스 펀치를 먹였다.

200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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