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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사도신경에 삭제된 문장
그린 파파야 향기 조회수 4,471 작성일2017.10.27
영어 사도신경에는 예수님이 장사된 것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사흘만에 부활한다는 내용 사이에,
“예수가 지옥에 내려간다”(He descended into hell)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영문 사도신경 라틴어 원문 "descendit ad inferos"의 번역이라고 합니다.

사도신경은 중세교부들의 신앙고백이니 히브리어 원문이 없는 것은 당연할 것이고요.
그런데 왜 한국어 사도신경에는 이 내용이 빠져있는가요?

다른 곳도 이상한 곳이 많지만 이렇게 문장을 송두리째 삭제를 한 이유를 궤변 말고
교리적이나 성경적 또는 신학적으로 정확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시는분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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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길지만 아래  인천 더함공동체교회 새벽기도회에서 한 이진오 목사님의 글에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http://www.cltv.co.kr/%EC%82%AC%EB%8F%84%EC%8B%A0%EA%B2%BD%E2%91%A8-%EC%9E%A5%EC%82%AC%EB%90%98%EC%8B%9C%EC%96%B4%EC%9D%8C%EB%B6%80%EC%97%90-%EB%82%B4%EB%A0%A4%EA%B0%80%EC%8B%A0-%EC%A7%80-%EC%82%AC%ED%9D%98-%EB%A7%8C/



사도신경⑨ 장사되시어(음부에 내려가신 지) 사흘 만에

본문: 사도신경

오늘은 사도신경 본문 중 좀 난해한 구절은 “장사되시어 (음부에 내려가신 지) 사흘 만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도신경에는 “장사된 지 사흘 만에”라고 되어 있는데 “음부에 내려가신 지”(Descendit ad inferna)를 추가 한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추가한 것이 아니라 원래 원문에는 있던 것인데 우리 말 사도신경에는 생략되어 있는 것입니다.

모든 교파가 고백하고, 모든 번역본에 존재한다

이 구절이 생략된 과정이나 이유를 설명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이 구절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하는 것이 사실 좀 난해합니다. 그냥 생략된 채로 지나가면 저도 쉽고, 여러분도 쉬울 텐데 굳이 이 부분을 언급하는 것은 이 구절이 원문에는 있는 구절이고, 그 의미도 사실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소천하신 이정석 교수는 ‘사도신경의 음부강화론’이란 글에서 “사도신경은 전 세계 교회가 공통적인 신앙고백으로 인정하는 유일한 신앙고백문이며, 라틴어 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언어로 번역된 사도신경에 이 구절이 포함되어 있고, 가톨릭, 동방정교회, 성공회, 칼빈파, 루터파,, 성공회 등 세계 모든 교회가 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또 “19세기 독일에서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으로 사도신경에서 동정녀 탄생 부분을 빼려고 했고, 최근 여성신학의 영향으로 아버지라는 단어를 수정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모두 거부되었다. 그 이유는 사도신경을 훼손하는 것은 정통 기독교회로부터 탈퇴하는 결과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며 사도신경의 원문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물론 서철원 교수와 같이 초기 원문에는 이 구절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는 지극히 소수 의견이며 라틴어 뿐 아니라 영어,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모든 언어들에 이 구절이 있는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이 구절이 빠져있는 것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성경을 새롭게 개역개정으로 번역하면서 사도신경 새번역을 수록하면서 원문에는 빠졌지만 난하주 2번으로 “장사되시어 지옥에 내려가신 지”가 공인된 원문에는 있으나 대다수의 본문에는 없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구절이 원문에 들어가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고백에 삭제된 이유

우리나라 번역본에서 이 구절이 생략된 이유에 대해 이정석 교수는 “김용준 목사가 1963년 [기독교사상]에 2회 연재한 “사도신경의 개역의 필요성”이라는 논문에 의하면, 이 구절의 삭제가 감리교회의 영향에 의한 것임을 발견하였다. 1894년 언더우드선교사의 사도신경 번역판이나 1905년 장로교선교사협의회에서 번역한 사도신경에는 이 구절이 들어 있는 반면, 1897년과 1902년, 그리고 1905년에 번역된 감리교회의 사도신경에는 한결같이 이 구절이 삭제되어 있다…그러나 1908년 장로교회와 감리교회가 [합동찬송가]를 발간하면서 사도신경의 통일이 불가피하게 되었을 때 장로교회는 양보해서는 안 될 것을 양보하고 말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감리교회가 이렇게 한 이유에 대해서 “감리교회는 교리보다는 실천적인 면을 강조하면서 역사적인 정통교리 중에서 난해하거나 상식을 초월하는 일부 교리를 제거하는 작업을 감행하였다. 감리교회의 창시자인 John Wesley가 1784년 작성한 감리교신조는 영국교회의 신조인 ’39신조’에서 발췌한 25신조인데, 이때 칼빈주의적인 부분들이 많이 제거되면서 39신조의 제3항인 “그리스도의 음부강하에 대하여”가 전부 생략되었다. 한국 감리교회의 사도신경 번역에 이 구절이 삭제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현재 우리나라 사도신경에서 이 구절이 생략되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번역에서 비록 난하주이지만 이 구절의 존재에 대해 언급하고 있고, 신학적으로 가장 보수적인 교단 중 하나인 ‘고신 총회’에서 이 구절을 받아들이기로 결의하고 이에 대해 이성호 교수(“음부에 내려가사” 개혁주의 신조의 관점에서 이해하기), 황대우 교수(사도신경의 지옥강하)라는 글을 통해 이를 설명하고 있는 등 점차 이 구절은 회복되고 있습니다.

“장사되어”의 의미

여기까지 설명을 드리고, 이 구절의 의미에 대해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먼저 “장사되어”라는 구절을 고백하는 것의 의미에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는 “음부에 내려가사”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음부에 내려가사”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죽으시고 장사되어”와 연결되어 있고,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음부에 내려가사”는 이런 문맥 속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면 사도신경은 왜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것에서 바로 부활로 넘어가지 않고 장사되었다는 것을 기록하였을까요? 초대교회에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함께 장사되심 즉, 매장되심을 기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예수님이 죽지 않고 기절했거나, 죽은 척 했다는 등의 소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부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빼돌리고 부활했다고 한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위대한 인물들은 죽지 않고 영생한다는 당시 일반적인 생각에 동조해 예수님도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잘못된 소문이나 믿음을 바로 잡기 위해 성경은 예수님이 죽으셨고 장사되었다는 것을 기록합니다. 바울도 이 부분을 분명히 해서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다시 살아나사”(고전15:3,4)라고 기록합니다. 이 본문은 바울이 복음을 분명히 전하는 대표적인 말씀입니다.

하이델베르크 문답서 41번에도 이에 대한 질문에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죽으셨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의 장사되심은 그리스도가 실제로 죽었음을 확증해 준다.”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도신경이 예수님의 죽으심 후에 부활로 넘어가지 않고 그의 장사되심을 기록하는 것은 그가 실제로 죽었음을 확증하기 위한 것이고, 이를 통해 그의 부활이 죽음을 이기신 권세 있는 역사라는 것을 분명히 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장사되심을 고백함으로 그의 죽으심이 소위 영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육체적 죽음이라는 것을 믿는 것은 이를 통해 부활을 소망하는 우리도 세상 가운데 죽은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6:4,5)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5:24) 예수님의 죽음이 사실인 것처럼 그 예수의 죽음에 동참하여 구원을 받은 성도 또 옛 사람이 완전히 죽고 십자가의 삶을 따라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아울러 영광스러운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임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음부에 내려가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

“음부에 내려가사”가사는 이와 같이 예수님이 완전히 죽으시고 장사되었다는 것에 이어서 언급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이 구절을 해석하는 다양한 견해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실제 예수님께서 음부에 내려가셨다는 해석입니다. 가톨릭에서는 이 구절을 근거로 “선조 림보”(Limbus Patrum)라는 ‘연옥’의 정당성을 설명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음부에 내려가셔서 복음을 전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믿지 않거나 믿음이 부족했던 사람들이 ‘연옥’에서 있다가 살아있는 자들의 기도나 선행을 통해 다시 구원의 길로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해석은 벧전3:18~20,4:6 등에 근거를 둡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가톨릭의 교리를 상당부분 승계하고 있는 성공회에서는 음부를 죽은 자들이 종말의 백보좌 심판을 통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전에 거하는 낙원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낙원에 “올라갔다”고 하지 않고 왜 “내려갔다”라고 표현했는지는 의문입니다.

루터파에서는 예수님께서 음부에 가셔서 복음을 전하심으로 사탄에 대해 궁극적인 승리를 선포하셨다고 해석합니다. 외경인 ‘에녹서’를 근거로 한 것인데, 하나님의 통치권이 하늘과 이 땅 뿐 아니라 음부와 지옥에까지 이른 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사실 지옥도 사단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곳입니다. 따라서 십자가를 통해 음부에까지 하나님의 영원한 승리를 선포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개혁파 교회의 해석에 대해서 이정석 교수는 실제적으로 예수님께서 음부에 내려가신 것을 거부하고 상징적 것으로 해석한다고 제시합니다. 상징적 해석에는 2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3일간 죽으셨던 기간 즉, 죽음 그 자체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음부”를 나타내는 “하데스”를 어떤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격리된 것, 죽음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라 보는 것입니다.

두 번째 해석은 칼빈의 견해입니다. 칼빈은 단순히 죽음에 대한 언급이라면 앞에 분명히 “죽으시고 장사되었다”는 표현이 있는데 굳이 이 구절을 넣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들어 이를 거부합니다. 그는 이 구절의 의미를 이 구절은 단순한 사망상태의 서술이 아니라 “음부”즉, 실제적 죽음의 공간에 대한 실제적인 고통의 영적 체험이라 설명합니다.

이 말은 완전한 인간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되어 인간의 육체적 죽음을 완전히 체험하신 것처럼, 인간의 영적인 죽음의 고통도 동일하게 체험하셨는데 이를 “음부에 내려가사”로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육적 죽음과 영적 죽의 고통 두 영역에 대한 완전한 대속적 완성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하이델베르크 문답은 제44문에 “나의 가장 무서운 시험 중에도 나의 주되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당하신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통해서 우리가 지옥에서 당할 불안과 번민에서 건져내 주셨다는 확신을 가지게 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답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설명에 대해 음부 강하가 단지 영적 죽음의 고통에 대한 체험이라면 왜 “죽음” 이전에 기록하지 않고 부활 직전에 기록하고 있는가? 하는 반론과 개혁파 교회의 가르침은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은 무덤이나 음부, 낙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천국과 지옥으로 간다고 하는데 예수님의 음부강하는 이런 가르침에 위배되는 것이라는 반론도 있습니다.

음부에 직접 내려가셨다는 것은 상징적 표현

어떤 번역본들은 이 구절을 “음부”가 아니라 “지옥”으로 표현합니다. 개혁개정의 사도신경 새번역도 난하주를 달면서 “지옥”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음부를 나타내는 “하데스”는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대체로 어떤 장소를 나타내는 지옥이 아니라 “죽음의 상태”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지옥은 ‘타르타루스’(벧후2:4)라는 단어 등을 사용합니다.

사도행전은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음이라”(행2:24)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2:31은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의 영혼이 사망과 음부에 매이거나 버림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한 편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하셨고, 아버지 하나님께 영혼을 부탁하셨습니다.”(눅23:46) 이 때 “낙원”은 에덴동산처럼 “동산”이나 “숲”으로 번역된 단어로(창2:8,느2:8,전2:5,아4:13)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낙원은 복되게 죽은 자들이 처하는 장소의 시적인 표현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의 품”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따라서 이 구절이 의미하는 바는 칼빈이 이야기한 것처럼 예수님께서 인간과 동일하게 육체적 죽음을 당하고, 영적 죽음의 고통을 맞보신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적당하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예수님은 범사에 인간인 형제들과 같이 되셨으나(히2:17) 사망이 그를 매여 두지 못하였고, 음부의 고통에서 부활 승천하심을 궁극적인 승리를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다 이루었다”(요19:30)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다 이루심은 음부에 있든, 낙원에 있든 모든 자를 포함합니다.

벧전3:18~20, 4:6 은?

그러면 여기서 예수님께서 직접 음부로 내려가셔서 복음을 선포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연옥설”이나 “제2기회설” 등의 근거로 제시되는 벧전3:18~20은 무슨 의미인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여기 “저가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생각해 볼 것은 베드로전서 3장은 그리스도인들의 고난의 삶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 고난은 예수님의 승천과 부활로 승리하신 것처럼(벧전3:22) 그리스도인들의 고난도 승리로 끝날 것이라는 소망을 주기 위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옥에 있는 영”에게 전파 하셨다는 것을 노아의 방주 때 구원받은 8명의 가족 외에 불신하며 죽었던 자들(20절)에게 노아의 시대에 노아의 입을 통해 그리스도의 영이 말씀을 전했다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이런 해석은 예수님께서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구약시대에도 존재했고, 구약시대 사람들에게도 그리스도께서 다양한 방식을 통해 구원에 이를 길을 주었다는 것에 근거합니다. 노아의 시대에는 노아를 통해 그리스도의 영이 전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개혁주의 신학자 중에도 “옥”(하데스)에 있다는 표현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노아 가족 외에 불신하며 죽었던 영들, 또는 4:6에서 이야기하는 “죽은 자들”을 염두해 두어 예수님 이전에 죽었던 모든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승리를 선포하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기회를 주었다고 설명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때도 두 번째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이전 시대에 죽은 자들에게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인격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의미입니다.

두 가지 중 어떻게 해석하든, 이 본문을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될 시점에 이 사건이 있었다고 적용하는 것은 조금 확대 해석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사도신경의 “음부에 내려가사”와 이 본문에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는 별개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4:6의 “죽은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 되었으니”에서 “죽은 자들”이 누구일까요? 초대 교회 신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자신들이 살아있을 때 이루어 질 것으로 믿고,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먼저 죽은 자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궁금해 했습니다. 이에 대해 그들은 예수님이 재림이 임박해 곧 살아날 것이기 때문에 그들을 “잠자는 자”들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베드로는 그렇게 재림 전에 죽은 성도들을 “죽은 자들”이라고 한 것이고, 그들은 육체로는 죽은 자들이지만 이미 복음이 전해진 자들로 영으로는 부활의 승리를 받은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사되시어 음부로 내려가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 가지 어려운 설명을 드렸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 “장사되시어 음부로 내려가사”라고 고백하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첫째는 예수님께서 완전한 인간으로 육체적을 죽으셨고 그 죽음의 고통을 우리와 같이 겪으사 우리로 하여금 그 고통에 연합함으로 십자가의 부활에 참여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님께서 육체적 죽음의 고통 뿐 아니라 영적 죽음의 고통까지도 그대로 겪으사 완전한 인간으로서의 대속적 죽음을 감당하셨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예수님이 지배권이 음부에까지 이르는 하늘과 땅과 땅 아래까지 모든 영역에 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든 역사적 시간과 공간을 섭리하신 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넷째로 그의 죽음의 고통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깊고 클수록 그의 부활의 영광 또한 더욱 크고 아름답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 해석이 있고 모두 이해되지는 않지만 분명한 것은 이 구절은 사도신경 안에 있고, 그럼으로 우리의 믿는바 신앙고백의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주께서 육체적 죽음을 확정하며 장사되시고 음부에 내려가사 우리가 겪을 영혼의 고뇌와 고통과 공포를 감당함으로서 우리를 이것들로부터 구원해 부활에 이르게 하심을 믿고, 그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멘!


* 위 내용은 4.2(월) 인천 더함공동체교회 새벽기도회에서 이진오 목사가 설교한 내용입니다.

2017.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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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
세상 죄를 뒤집어 쓰고 죽었으니 지옥가는 건 사실이고 허나 죽었던 사흘동안 고통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들의 권세로 죄를 사함받는 동안 잠시 머무르신 것입니다
천국이나 지옥이나 하루가 천년같다는 말있는데 여기 사흘이면 지옥은 찰나의 시간입니다

2017.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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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pientia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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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이 아니라 고성소(셰올)에요
그냥 단순히 말해서 참으로 죽음에 드셨다는 말이지요

2017.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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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g****
지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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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도신경(使徒信經 The Apostles'Creed)은 오늘날 교회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고있는

  가장 대표적인 신앙고백으로 성경의 기본 골격이라 할것입니다

  사도신경이라는 명칭은 215년경 히포크라테스의 질문중에들어있고 340년경 마르셀루스

  (Marcellus)도 이 신앙고백을 하였으며 400년경 알렉산드리아에있는 아프리카 교회들도

  사도신경을 사용하였습니다. 404년경 루피너스(Rufinus)는 그의 주석서문에서 오순절에

  사도들이 성령의 충만을받고 온 천하에 복음을 전하러 흩어지기전에 가장 핵심적인 신앙

  요소들을 정리한것이 사도신경이라 말합니다

  또 훨씬 후대의일이지만 710-724년에 보급된 공인본문(Textus Receptus)에서도 이신앙

  고백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100년 경에 대부분의 교회들이 신조로 채택하여

  사용했다는 증거들이 있습니다.  따라서 사도신경은 수세기에 걸쳐 기독교 공동체안에서

  이뤄진 공동 전례문으로 보는것이 타당합니다

  중세초기에는 서방의 모든교회들이 세례예식때 사도신경을사용했고 7-9세기에 이르러서

  는 초신자 교육내용으로 보편화되었으며 12세기에는 서방교회의 대표적인 공식신조로 정

  착되었습니다 사도신경은 신앙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로 구성되어있어 신자는 말할것도

  없고 초신자나 개종자들이 신앙의 핵심을 배우는데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사도(使徒)의 사명은 부활하신 예수님의지상(至上) 대명령(마28:18-20)을 따라 복음전파

  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것입니다(마 10:5-7)

  그러므로 넓은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전권대사로서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며 하나님 나라를

  든든히 세워가는 모든 주의일꾼들은 하나님앞에서 사도라고 할수있습니다(눅 24:48, 고전

  1:17, 고후 5:20, 엡 6:20)

 

  질문 내용으로 가서. 어느 영어성경에 예수가 지옥에 내려간다. 는 구절이 있는지는 알지

  못하나 라틴어 원문의 번역이라하니 로마카톨릭에서 번역한 불가타(벌겟)역 인듯 합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사도신경은 기독교신앙의 고백문이니 자신의 믿음대로 고백하는것으로

  잘못된 교리해석이나 잘못 번역된 성경을보고 믿음생활을 갖는다면 그것대로의 신앙고백

  을 할수밖에 없는것입니다

  질문자도 알고있듯이 로마교(천주교)는 지옥외에 그와 버금가는 연옥교리를 채택하여 그

  교인들에게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예수께서 지옥(연옥)에 내려갔다고 주장을 한다

  하여 전혀 놀라워할 일이 아니지요.

  한국어사도신경에 이내용이 빠져있음을 의문하고있으나 그반대의 의문을생각해야합니다

  성경 어느곳에든지 죽은후에도 복음을 들을수있는 기회가 있다고 가르치는데는 결코 없

  습니다

  논란의 소지가 있는곳으로 베드로전서 3장19절을 말하는자들이 있으나 그것은 성경전체  

  또는 앞뒤의 문맥들을 떼어버리고 단 한구절만을 갖고 그뜻을 해석(解釋)하므로 사족(蛇

  足)을 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이단 사이비가 발생합니다


      (벧전3:19의 구절을 설명하기위해 전에 몰몬(말일성도)교 답글중에서 옮김)




 

  위와 같이 벧전 3장19절의 옥(獄)은 '죄인된 마음의 감옥'을 뜻하는것입니다


  "내가 깨달은즉 마음이 올무와그물같고 손이 포승(捕繩)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독한자라

  하나님을 기뻐하는자는 저를 피하려니와 죄인은 저에게 잡히리로다"(전7:26)


  여기서 전도자가 말하는 여인은 인격체의 여인을 말함이아니라 사단(satan)의 영역에 있

  는 독(毒)을 말함이니 성경에서는 일반적으로 뱀의 독을 말합니다(신32:33, 욥20:16, 시

  58:4, 행28:3-6)  즉'하나님의 아들들'에 대비(對比)되는'사람의 딸'을 말하는것으로 '어  

  둠의 감옥'에 갖혀있는 자들을 가리킵니다(슥 5:7-8, 계19:2, 사 32:9-11)

  이 여인(사단마귀.하나님의 대적자)의 마수(魔手)는 사망보다 독하니 그실체는 상상을

  초월하는 악의세력을 말하며 사망보다 더한 지옥으로의 압송(押送)자임을 말년의전도자

  (솔로몬.전1:1)가 그 영안 (靈眼)으로 경계(警戒)해 주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는 한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 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18)"저가(예수) 또한 영으로(어둠의)옥에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19)

  벧전4:6의"(영이)죽은자들에게도 복음이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하려함이니라"도 같은 맥락으로 몸은

  살아있으나 영이 죽은자를 복음으로 살리신다는 말입니다 

  사도 베드로의 말을 유의해보면 지옥에있는 영혼들에게 하는 말이라고 한다면

  "심판을 받았으나.." 라고 과거형으로 말해야하나, 그는 "심판을 받으나.." 라고

  아직 완결되지 않은 미래형 어법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논제의핵심인 19절에가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오르시기 전 40

  일동안 세상에 계시며 제자들에게 보이셨으나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말씀을하

  신 곳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예수께서 지옥에 내려갔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다는 것

  이 겠습니까? 베드로가 예수의 지옥행에 동행 했을까요?

  이말씀의 전개는 3장8절에서 4장6절까지가 주 단락(短絡)입니다 그러므로 위에

  서와같이 한두구절만 볼것이 아니요 단락의 흐름내용을 보아야 한다는것입니다

  성경의 장 구절은 후대에 인위적으로 구분된것으로 내용 상고에 무리하게 장,구

  절을 맞출 필요가 없는것입니다

  19절에 예수께서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문구도 없거니와 생뚱맞게 옥(獄)이라는

  자구(字句)에만 집착하여서 (로마)교계(敎界)가 그야말로 '태산명동 서일필'의

  모양세를 떨구있으니 민망(憫妄)한 것입니다 그런식이면 베드로 주위의 세상감

  옥에 있는 사람들에게 한말이 아니라고 할수도 없습니다.






  초대 교회사에 큰기둥이었던 사도베드로가 세상적인 학문은 많이하지 않았으니

  (행4:13) 베드로가 교우들에게 이편지를 보낼때 실루아노(실라)가 대필(5:12)을

  했을것이라는 추측을합니다

  실라(실라스,아람식이름)가 예루살렘 교회지도자중 한사람으로 제1차 예루살렘

  총회 결의안을 안디옼교회에 전달하기위해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파송된인물로,

  확실치는않으나 오해의 소지가있는 자구에서 베드로의 순수뜻이 아닐수도 있을

  것으로 되나.. 당시 영지주의(그노시스)자들의 사상이 횡행(橫行)하던때 입니다

  그러나 앞뒤의 문맥에서도 맞지않으니 생뚱맞게 베드로가 자신의영역밖의 지옥

  을 거론했다고는 생각할수 없는것입니다

  20-21절의 노아홍수를 거론하는것은 죄인들은 물속에서 죽고 의인들은 물위로

  떠올라 살았다는점에서 베드로는 노아때 홍수를 물세례의 예표로 본것입니다

 

  벧전3:19, 4:6의 이구절을 가리켜 로마교에서는 예수께서 죽으신후 부활하시기

  까지 죽은자들이 거처하는 음부에내려가셔서 구약시대의 저주받은자들에게 복

  음을 전하셨다는 주장을하고 이구절로 연옥설의 근거로 삼는것입니다(톰스II 주

  석성경. 벧전3:19-20)


  눅 23:33-46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상(十字架傷)의 수난(受難)을 보는데 그중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함께 낙원(樂園)

  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옆에달린 강도에게 낙원을 약속하시며 오늘 낙원에 있으신다고 하

  십니다. 내일도 아니고 그 다음날도 아니며 바로 오늘이라고 하신것입니다

  낙원은 죽은 성도들이 거하는 신령한처소 내지는 천국과 동의어로 사용됩니다

  (눅16:22-26, 고후12:4, 계2:7) 이렇게 성경에 분명하게있는데도 예수께서 장사

  되신후에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로마교의 억지는 어불성설입니다.

  백번을 양보해서 그렇다해도 죄없으신 예수께서 무엇때문에 지옥에 내려갔다

  는것이고 가당치않은 설정이긴하나 지옥의 죄인들을 구하기 위함이라해도 왜

  하필 십자가에서 죽으신 날을 택했다는 말인가요? 

  또한 이미 지옥에있는 자들에게 다시 재생의길이 열린다면 누가 편치않은 믿음

  생활을 하고 있겠습니까?  

  그러나 위에서 지적했듯이 성경 어느곳에든지 죽은후에도 복음을 들을수 있다

  고 가르치는데는 결코 없습니다

  사람도 여물지않은 곡식이나 익지않은 열매를 쓰레기장에버린후 돌아보지않으

  니 하나님께서도 이미 지옥에 떨어진 벌레같은 영물(靈物)은 돌아보지않습니다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悖逆)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可憎)함이 되리라  (사 66:24 )



 
 


  기독교로 출발하여 로마제국의 기독교 공인으로 급격하게 (세속적으로)성장한

  로마교구는 비성경적인 교리와 전례(典禮)들을 만들었으니, 성경에 무지한 前

  者들의 잘못된 관례들을 바로 잡아야함에도 후대에 오면서 오히려 더 추가하며 

  이교(異敎)화되기를 서슴치 않으므로 오늘날 그대로 이교(異敎)가 된것입니다

  로마교에는 개신교에서 사용하지 않는 가(假)경 7권을 끼워넣고 있습니다.거짓

  된 내용과 근본을 알수없는 이 문서들은 대부분 2-5세기에 걸쳐 기록된것으로

  성경과 유사하게 지어낸 내용들 입니다.  1945년 이집트의 나그 함마디의 들판

  에서 토기에 담긴 그노시스파(영지주의)등의 광범위한 문서가 발견되는데 그리

  스어에서 콥트어로 번역된 것들입니다 1947년 쿰란에서 발견된 사해문서로 에

  세네파의 문서가 최초로 등장한것과 마찬가지로 이 이집트 문서의 등장은 그노 

  시스파의 실제 문서를 세상에 선 보인것입니다

  이 문서들은 천지장조와 인류창조 지옥등등을 작자가 그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적고 있으며 그밖의 것들도 거짓을 그럴듯이 지어내고 있습니다

  이글을 쓰는것은,

  이런류의 글을 성경에 포함시키고있는 로마교가 교리까지도 추출해대는 그무지

  (無知)를 지적하는 것입니다  

   로마교가 벧전3:19를 들어서 예수께서 지옥에 내려갔다고하나 그들이 연옥교리

   를 추출(抽出)해 낸곳은 사해문서의 '빌라도 행전.지옥에 내려간 그리스도'에서

   일것입니다

   유치하기가 짝이없는(모든 문집이 그런 수준이지만)내용을 조금 옮겨봅니다


    "문들을 열어라!"라는 소리가 다시금 들렸다. 

    그소리를 두번 들은 '하데스'는 자기도 모르게 "이영광의 왕은 누구냐?" 라고  

    말했다

    주님의 천사들이 "강하고 권세있는 주님, 전투에 강한 주님이다" 라고 말했다

    천사들의 대답에 즉시 청동문들이 산산이부서지고 강철빗장이 모두 부서지고

    쇠사슬에 묶여있던 모든 죽은자가 풀려나고 거기 있던 우리도 풀려났다.

    영광의 왕이 사람의 모습으로 들어오고 하데스의 어두운 구석이 모두 환하게

    비쳤다

    하데스가 즉시 소리쳤다

    "우리는 패배했다 우리는 저주를 받았다. 그렇치만 이렇게 큰권위와 힘을가진

    당신은 누구요? 죄가 없는데도 여기 온 당신. 조그맣게 보이면서도 위대한 일

    들을하는 당신, 비천하면서도 고귀하고, 노예이자 주인이고 병사이자 왕이고,

    죽은자와 산자 위에 권위를 행사하는 당신은 누구요? 십자가에 못박히고 무덤

    에 묻혔는데, 이제는 자유롭게되어 우리의힘을 모조리 파괴한 당신이 예수요?

    십자가와 죽음을 통해서 온세상을 상속받을것이라고 최고지배자 사탄이 우리

    에게 말해준 그 예수란 말이오?"

    그러자 영광의 왕이 최고 지배자 사탄의 머리를 잡아서 천사들에게 넘겨주며

    "사탄의 손과 발과 목과 입을 강철족쇄로 채워라."라고 말했다. 사탄을 하데스

     에게 넘겨주면서 "사탄을 받아서 내가 재림할때까지 단단히 가두어 두어라."

     라고 말했다.


     이하생략하면서, 위에서 말했듯이 이글을 지어낸 자는 당시에 자신도 지옥의

     현장에 있었던듯이 말을하고 있습니다 또한 더욱 황당한것은 하데스(陰府)는

     구약에서 지옥개념으로 칭하는 공간(장소)임에도 작자는 하데스라는 공간이  

     말을 하는 인격체로 설정하여 글을 쓰고있습니다.


         전 답글중에 로마교 2경전의 도마스행전.토빗서중에 일부분.

         시중에 도마가 인도에가서 복음을 전했다는 말이있으나 거짓

         문서에 의한것으로 믿을것이못됩니다 


 


     이때 들쳐보던중 집회서의 '옥좌'가 사해문서에 나오는 용어이며, 집회서의

     40번 초입인가?에  '여자의 뱃속에서 태어나는 날부터 만물의 어머니에게로

     돌아가는 날까지' ...   마치 대지의 여신사상을 노래하는 글입니다.

     기회가되면 그 위경(僞經)들을 분해해 보련만... 그리한들 무슨 득 이리오

     오늘도 로마교인은 저것들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읽고 있겠지요?

    

             (라이프 성경사전 인용)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 신적인 계시와현몽에 의한 초자연적인 지식

    (그노시스)을 소유할때 구원을 받는다는 사상입니다 이것은 헬라철학과 동양

    의 이교사상,그리고 에굽과인도,페르시아의 이원론적인 우주론에 유대교사상

    이 가미된 혼합주의 철학체계로서, 심지어 기독교사상까지도 영지주의사상에 

    포함시켜 새로운 종교철학을 수립하려는 시도를 했다

    A.D.1세기 중엽에 발흥하여 2-3세기를 풍미하다가 4세기경 마니교에 흡수된

    다. 특별히 2세기에서3세기초에는 로마제국내의 수많은 지성적 그리스도인들

    이 사상에 영향을받아 교회 내부에 큰 혼란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영지주의 중심사상은. 첫째 영(혼)은 선하고 순수하며 신비적인데 반해 물질(

    육체)은 악하고 타락한것이라는 이원론적사상이다 이사상에 기초하여 세계의

    창조는 하나님이 아닌 저급한 조물주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둘째 극단적 금욕주의를 추구하거나 때로는 쾌락주의(극단적 도덕폐기론)를 

    주장하기도 한다. 

    셋째 영의신비성을 강조하였으므로 신비종교의 성질을가진다. 넷째 육체를 죄

    악시한결과 예수그리스도의 인성(人性)과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을 부인하

    고 그리스도는 단지 사람처럼 보여진것에 불과하다는 가현설(假現說 Docetism)

    을 주장한다. 한편 성경에서는 그들이 자유를 남용하고(고전6:12-18) 몸의 부활

    을 부인하며(고전15:12, 35) 신화와족보에 집착했으며(딤전1:4)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을 가졌으며(딤전6:20) 극단적인 금욕주의자(딤전4:3)인 동시에 성적방종을

    일삼았고(딤후3:6) 그리스도가 육체로 이땅에 오신 사실을 부인했다고 지적했다

    (요일4:1-3) 영지주의자들은 기독교 복음을 각나라와 각계층의 다양한사상과 조

    화시켜 모든민족들이 공감할수있는 보편타당한 진리 체계를 만들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이사상은 결국 기독교 진리를 심하게 왜곡시켰고 복음과는 상관없는 이

    단 사설에 불과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2세기경 안디옥의 사토르닐루스(Satornilus) 알렉산드리아

    의 바실리데스(Basilides) 로마의 발렌티누스(Valentinus)등이 있다.


     로마교는 정경(政經)에 한구절도 없는 제3의 처소로 연옥까지도 발명하여 사용하고 있습니

    다. 프랑스작가 자크 르 고프의 '연옥의 탄생'(문학과지성사 최애리옮김)을 이참에 읽어보

    려 하니(1996.10.구입함) 한권이기는 하나 그 두꺼운 부피가 읽어볼 엄두가 나지않습니다

    차례의. 제2장 '연옥의 아버지들'이 눈에 들어오니 그 소제목들을 여기 옮겨봅니다

    ㅇ 알렉산드리아에서:두명의 연옥 창건자들. ㅇ 라틴 기독교:저승의 발전과 미결사항들.

    ㅇ 연옥의 진정한 아버지:아우구스티누스. ㅇ 모니 (아구스티 모친):그녀를위해 기도

    하시오. ㅇ 413년이후,전적으로 선하지않은 자들을위한 죽음과 심판사이의 고

    통스러운 정화. ㅇ 아우구스티누스와 유령들. ㅇ정화하는불과 아우그스티누스

    의 종말론. ㅇ 연옥과 아를르의 세제르 ㅇ 이승 연옥의 역사:연옥의 마지막교부

    대 그레그리우스

    제3장 교의의 침체와 상상세계의 확대

    ㅇ 세명의 스페인인에 있어서 아우그티누스적 저승. ㅇ 다른 야만적 저승들...

    ..  계속되나 읽지 않았음으로 줄임.

  

    또 로마교는 위경들을 끼워넣어서 하나님의 복음을 변질시킬 뿐만 아니라 정경까지도

   자신들의뜻대로 왜곡시켜서 번역하므로 닥쳐올 하나님의 진노(震怒)를 예비하고 있습

   니다

                (카톨릭용 공동번역 성서에서)



 

             


   ( 다른이의 글을 옮김 ) 



       

    ( 다른이의 글로, 로마교 한국지부교의 하는일들 중에 )



       



      

    내친김에 펌.한 신의대리자(代理者)로 무오(無汚)하다는 역대교황들의 취미(趣味)생활??

  

  

    

                 

201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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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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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25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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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적 신학적으로 이유를 따진다면~

"사도 신경" 이란 것은, 전혀 논할 필요 조차 없는 쓰레기 입니다.

사도 신경이라 불리는 것의 기원을 아십니까? ^^


기독교의 교리 신조를 간략히 요약 정리한 신앙 고백문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러한 신앙 고백문이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것은....

AD 4세기에 로마 제국에서 1-2차 에큐메니컬 공의회 결과,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 이란 이름으로 처음 등장했습니다. (참조)

https://ko.wikipedia.org/wiki/%EB%8B%88%EC%BC%80%EC%95%84-%EC%BD%98%EC%8A%A4%ED%83%84%ED%8B%B0%EB%85%B8%ED%8F%B4%EB%A6%AC%EC%8A%A4_%EC%8B%A0%EA%B2%BD


읽어보셨다면 느끼겠듯이 내용이 좀 길어서.....

후에 AD 8세기에 천주교에서 이것을 축약해 만들고,

천주교 신경이 아닌, 사도 신경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 그 기원입니다.

16세기 이후에....개신교는 이 천주교 신경을 적당히 고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개신교 신경이라 부르지 않으니....천주교와 같은 행태를 보이는 것이죠.

한국도 한국 개신교 신경이라 불러야 맞는 것이죠.

2017.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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