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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조류독감(AI) ‘과도하게’ 신경쓰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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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조류독감(AI) ‘과도하게’ 신경쓰는 이유는?

2016.12.19 17:00
조류 독감과 인류

GIB 제공
GIB 제공

▶ 고민

낙타가 옮겼다는 메르스(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MERS), 즉 중동 호흡기 증후군의 악몽이 바로 작년 일인데, 조류 독감(Avian Influenza, AI)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행히 이번 조류 독감은 인간에 대한 감염성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합니다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부터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가축 전염병. 과연 인류는 안전한 것일까요?

 

● 바쁜 분들을 위한 4줄 요약


1. 인류는 진화과정을 통해서, 감염병에 취약해졌다.
2. 다양한 신종 감염병은 영장류나 박쥐 등, 다른 동물에서 시작한다.
3. 종종 이러한 감염병은 밀집 사육되는 가축에게 옮겨지고, 가끔은 인간에게도 전파된다.
4. 보다 건강한 사육을 통해, 인간과 동물이 공생할 수 있어야 한다.

 


인류의 진화와 병원체 레퍼토리의 감소


인류의 역사는 전염병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유럽 사회를 뒤흔든 흑사병, 즉 페스트(Plague), 식민지 개척 시대 원주민을 거의 몰살시켰던 홍역과 천연두, 그리고 현대 사회의 큰 문제인 에이즈(Acquired Immune Deficiency Syndrome, AIDS)나 다제 내성 결핵균(multidrug-resistant tuberculosis)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역사는 곧 전염병의 역사라고 해도 그리 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실 인류가 전염병에 의해 이렇게 많이 희생된 것은 불과 수천년에 지나지 않습니다. 신석기 시대에 접어 들기 전, 인류는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서 살았습니다. 전체 인구도 최대 500만명 이하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설령 심각한 전염병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주변 몇몇 사람만 감염되고 끝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농경이나 목축을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고 전염병도 그 위세가 더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전염병을 문명의 대가라고 하기도 합니다.


작년에서는 낙타가 원인인 것으로 알려진(사실은 낙타도 중간 숙주이며, 박쥐가 원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만), 메르스에 의해서 국가적으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인플루엔자(Influenza) 바이러스에 비하면 메르스 바이러스는 상당히 ‘약한(?)’ 편입니다. 1918년 세계적으로 유행한 스페인 독감에는 무려 5억명이 감염되고, 약 5000만명이 죽었습니다. 고작 닭이나 오리가 걸리는 조류 독감에 과학자들이 ‘과도한’ 신경을 쓰는 이유입니다.


전염병에 인류가 특히 취약한 원인은 크게 세 가지 입니다. 첫째 인류는 유일하게 화식 하는 동물입니다. 불의 발명은 인류에게 큰 이득을 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체내로 들어오는 병원체의 수와 종류가 급감했습니다. 따라서 병원체 레퍼토리의 다양성을 감소시키는 의도치 못한 문제를 낳았습니다. 둘째 구석기 시대 여러 번의 재난적 상황을 겪으면서, 인구 집단 전체가 가진 면역 다양성이 감소했습니다. 셋째 인류의 상당수가 병원체가 상대적으로 적은 온대, 심지어는 한대 지방으로 퍼져 살면서 역시 병원체 접촉 빈도가 줄어든 것입니다. 

소를 사육하는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 그림. 인간이 수많은 전염병에 시달리게 된 것은, 불과 10,000년에 지나지 않는다. 농경과 목축을 통해 식량 생산량을 늘릴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인구가 증가하고 도시와 국가가 형성되며 문명 사회를 건설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다양한 종류의 병원체에 노출되게 되었다. - EBS, 오마이미래 제공
소를 사육하는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 그림. 인간이 수많은 전염병에 시달리게 된 것은, 불과 1만년에 지나지 않는다. 농경과 목축을 통해 식량 생산량을 늘릴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인구가 증가하고 도시와 국가가 형성되며 문명 사회를 건설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다양한 종류의 병원체에 노출되게 되었다. - EBS, 오마이미래 제공

가축화와 바이러스


사실 상당수의 전염병은 인간이 키우는 가축에서 유래합니다. 홍역은 소에서, 천연두는 낙타로부터, 백일해는 돼지에서 왔다고 합니다. 한센병은 물소에서 시작했다고 하죠. 그리고 독감, 즉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닭이나 오리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수많은 야생 동물을 가축화하면서, 그 대가로 전염병을 얻었다고 주장합니다. 전염병 학자 네이선 울프(Nathan Wolfe)는 “인간의 주된 질병 중 대부분은 어떤 시점에 동물로부터 기원한 것이다”라고 하였죠.


물론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만, 사실 인간과 같이 오랫동안 살아온 가축은 이제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일부 인수 공통 감염의 위험성은 있지만, 수천년 이상 인간 옆에서 같이 진화한 동물은 이제 안전한 편입니다. 오랜 기간 동안 병원체를 교환했기 때문이죠. 개나 고양이와 같이 자고, 먹고, 심지어는 뽀뽀를 해도 대개는 안전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바로 인간과 비슷한 신체를 가진 영장류입니다. 침팬지의 조상과 인류의 조상이 서로 다른 길을 가기 시작한지, 약 700만년이 흘렀습니다. 세계 각지로 떠나 살게 된 인간과 달리, 침팬지는 줄곧 열대 밀림을 지켜 왔습니다. 따라서 인간보다 다양한 병원체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당수의 바이러스(침팬지에게는 문제가 없는)가 인간에게 옮아오면 큰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인간의 주요 감염병 중 약 1/5이 영장류에서 유래합니다.


더 큰 문제는 박쥐입니다. 박쥐는 약 5000만년 전에 진화하여 포유류 중에서 가장 오래된 종에 속합니다. 진화적 분기도 많이 일어나서, 포유류 전체 종의 약 20%가 박쥐일 정도입니다. 게다가 날아다니는 특징으로 인해 아주 다양한 병원체 레퍼토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메르스도 사실 낙타가 아니라 박쥐가 원인이라고 하는 연구가 있습니다. 에볼라(Ebola) 바이러스도 원인은 박쥐입니다. 박쥐를 별미로 생각하는 중국 남부의 식문화가 신종 전염병 발생에 좋은 조건을 제공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추정 감염 경로. 박쥐에게 상재하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우연한 기회에 비인간 영장류나 다른 동물에 감염 된 후, 인간에게도 옮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미 질병예방통제센터 제공
에볼라 바이러스의 추정 감염 경로. 박쥐에게 상재하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우연한 기회에 비인간 영장류나 다른 동물에 감염 된 후, 인간에게도 옮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미 질병예방통제센터 제공

집단 사육과 독감 대유행


전염병 학자들은 신종 병원체를 일으키는 자연 숙주로 유인원, 박쥐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인간에게 직접 병원체를 옮기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숙주의 상태가 너무 달라서, 공통 감염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인간과 유인원, 혹은 박쥐가 자주 만날 일이 별로 없습니다. 설령 인간에게 감염이 된다고 해도, 인간 사이의 2차 감염이 일어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인간과 오랫동안 같이 살아온 가축이 문제입니다. 아시아 온대 지방에 사는 인구는 약 20억명입니다.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인데, 그들 대부분은 비좁은 도시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사는 곳과 가축을 키우는 곳이 아주 가깝습니다. 중국 남부에서는 집 안에서 돼지나 닭, 오리를 키우는 경우도 많습니다. 중국에서 키우는 닭이나 오리는 약 130억 마리, 돼지는 5억 8000만마리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닭을 1억5000만마리나 키우고 있다고 합니다.


좁은 지역에서 수십억의 인간과, 수백억의 각종 가축이 뒤엉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연히 야생 동물의 바이러스가 비슷한 종의 가축으로 전염되고, 밀집 사육되는 가축 집단 내에서 크게 유행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닭이나 돼지 등에 감염이 같이 일어나면서 변이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이번 조류 독감은 인간에 대한 감염력이 없다고 하지만, 좌시할 수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공장식 사육은 육류 생산량을 극대화 시켰다. 하지만 가축에 대한 비인도적인 밀집 사육은 가축 전염병의 창궐 및 신종 전염병의 출현 등 보다 큰 문제를 야기했다. - 과학동아, 낙타와 메르스 제공
공장식 사육은 육류 생산량을 극대화 시켰다. 하지만 가축에 대한 비인도적인 밀집 사육은 가축 전염병의 창궐 및 신종 전염병의 출현 등 보다 큰 문제를 야기했다. - 과학동아, 낙타와 메르스 제공

건강한 환경, 건강한 닭, 건강한 인류


사스(SARS)나 메르스는 전 세계로 퍼져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고, 일부는 안타깝게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스를 홍콩과 싱가포르에 퍼트린 최초의 감염자, 그리고 메르스를 한국에 퍼트린 최초 감염자는 단 한 명이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비행기를 통해서 이동할 뿐만 아니라, 500만명 이상의 도시만도 세계적으로 35개나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단 한 명의 슈퍼 전파자가 며칠만에 전세계로 병원체를 퍼트리는 일도 가능합니다.

 

이미 살처분된 닭이 1500만마리라고 합니다. 국내에서 사육하는 닭의 10%에 달하는 엄청난 숫자입니다. 농가의 피해도 막심했고, 계란 가격 상승, 닭 품귀 현상이 발생하는 등 국가적 손해도 적지 않습니다. 이런 과감한 대처에도 불구하고, 조류 독감은 사실상 전국으로 퍼졌습니다. 연례 행사처럼 되풀이되는 집단 유행을, 단지 살처분 혹은 이동 제한, 방역 등과 같은 사후 대응으로는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비슷한 일은 계속 될 것입니다. 더 많은 밀림이 개발, 벌목 등으로 파헤쳐지고, 밀렵도 끊이지 않으면서 오랫동안 야생 영장류나 박쥐 등의 몸 속에 묻혀 있던 다양한 바이러스가 밖으로 퍼지고 있습니다. 우연히 가축에 전염되면, 집단 사육되는 주변 가축에 급속도로 퍼집니다. 그러다가 변종 바이러스가 출현하면, 사람에게 전염되기도 합니다. 한번 사람에게 전파된 바이러스는 금새 전 도시로 퍼지고, 또 전 세계로 퍼집니다. 사스도, 메르스도 이런 경로를 밟아서 많은 희생자를 냈습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가축의 과도한 밀집 사육을 줄여 나가는 것뿐입니다. 너무 좁고 비위생적인 곳에서 키워지는 공장식 사육은, 당장은 경제적 이득을 가져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연례 행사처럼 반복되는 가축 전염병 문제를 해결하려면, 당장의 손해를 감수해야만 합니다. 살처분이나 격리, 방역 등으로 인해서 드는 직간접적인 비용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익일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만에 하나, 인간에게도 감염이 일어나는 변종이 발생하면 돈을 계산할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됩니다. 보다 건강한 사육을 통한, 인간과 동물의 공생. 이제 과감한 방향 전환이 필요합니다.

 

좁은 케이지에서 집단 사육되는 닭. 가축 전염병을 막기 위해서는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가축을 보다 건강한 환경에서 사육하고, 가축 스스로 감염병에 대한 저항력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 GIB 제공
좁은 케이지에서 집단 사육되는 닭. 가축 전염병을 막기 위해서는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가축을 보다 건강한 환경에서 사육하고, 가축 스스로 감염병에 대한 저항력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 GIB 제공

 

※ 참고문헌
박한선(2015), 오마이미래-미래강연 2035, 인류와 전염병, EBS
박한선(2015), 시사 기획 메르스, 의료인류학으로 본 메르스, 과학동아.
박한선(2015), 메르스와 전염병 인류학, 생명윤리포럼 제 4권 제 1호.
Wolfe, Nathan(2013), 바이러스 폭풍, 김영사.

 

※ 필자소개

박한선. 성안드레아 병원 정신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경희대 의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이대부속병원 전공의 및 서울대병원 정신과 임상강사로 일했다.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 및 이화여대, 경희대 의대 외래교수를 지내면서,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원인에 대해 연구 중이다. 현재 호주국립대(ANU)에서 문화, 건강 및 의학 과정을 연수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2014)을 번역했고, '재난과 정신건강(공저)'(2015), ‘토닥토닥 정신과 사용설명서’(2016)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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