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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화성,오산자랑거리 좀.....
dk**** 조회수 30,408 작성일2010.05.23
제가초3인데오늘사회숙제인데 화성,오산    자랑거리를조사하래서요.....자랑거리있으면 좀 강으쳐주세욤....제발료                                     내공100겁니당~ 제발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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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신
2019 지역&플레이스 분야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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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시의 자랑거리)

 

1.화성8경

1)제1경 융건백설

정조대왕은 그의 부친인 사도세자의 죽음을(뒤주속에 갇혀 죽음) 애석해하며 양주 배봉산에 있는 영우원을 현재의 화산으로 옮겼는데 어느날 아버지의 능주변 소나무에 송충이가 대단히 번식하여 소나무를 갉아 먹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행차하여 산에 와보니 송충이의 기승이 목불인견이라, 정조가 진노하여 송충이를 잡아 깨물면서 "아무리 미물일 망정 네 어찌 내가 부친을 그리워하며 정성껏 가꾼 소나무를 갉아 먹느냐"고 꾸짖고 돌아서자 천둥번개와 함께 장대비 가 쏟아져 송충이가 사라졌다는 일화가 있으며, 융건릉은 용주사와 함께 정조대왕의 효심이 깃든 유적으로 우리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효(孝)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우리시의 자랑거리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수려한 경관을 자랑할 만하다. 특히, 능 전역에 빽빽히 들어선 노송의 백설이 덮인 풍경은 세인들의 마음을 무아의 경지로 빠지게 하는 장관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2)제2경 용주범종

조선 정조대왕이 양주군 배봉산에 있던 사도세자의 영우원(永祐園)을 지금의 화산(花山)으로 이장한 이후 사찰을 중건하여 융릉 (사도세자의 묘)의 원찰로 이용하였고 사찰내의 범종은 고려시대 범종으로서는 한국종의 양식을 가장 충실히 갖추고 있는 종으로서, 정조의 애절한 효심이 깃든 용주사의 "불설부모은중경"과 함께 우리 고장의 자랑거리이며 금동청동향로와 전적수사본, 후불탱화, 병풍 등 많은 문화재를 소장한 용주사는 일년사철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3)제3경 제부모세

12km 해안선은 해수욕객들의 각광을 받고 있고, 모래벌 끝에는 크고 작은 암석이 어울린 3개의 바위가 솟은 매봉 (일명 삼형제 촛대바위)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더해주고 있다.

철 따라 어선을 이용한 낚시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피서철등 성수기에는인근지역의 송산포도와 함께 각광을 받고 있는 곳으로 관내 중 관광인파를 가장 많이 유치하는 곳이며 또한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굴, 바지락, 숭어, 우럭 등 각종 횟감들은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4)제4경 궁평낙조

만조시에는 하루 2시간 이상 해수욕과 함께 20ha의 조개 채취장에서는 직접 조개잡이와 바다낚시를 겸할 수 있어 1석 2조의 관광을 즐길 수 있고 또한 인근 어민들이 잡아온 고기들은 싱싱한 횟감으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특히 작열하던 태양이 서해바다로 질때 바다와 해송이 함께 어우러진 장관은 보는 이의 경탄을 자아내게 하는 빼어난 경관을 연출하는 곳이다. 



5)제5경 남양황라

남양호수는 농업용수는 물론 사시사철 강태공들이 즐겨찾는 곳으로서 특히 겨울철 얼음낚시터로 유명한 곳이며, 남양 간척지에서 생산되는 쌀은 염실이 좋고 알칼리 성분이 많아 경기미 중 최고의 미질을 자랑하고 있다. 광활한 들녘은 계절 따라 각기 다른 풍요로움을 안겨주지만 특히 가을의 황금 벌판은 남양호와 어우러져 넉넉함과 충만함을 더하여 주는 곳이다. 



6)제6경 입파홍암

광활한 서해 바다에 태고의 신비를 묻고 우뚝 솟아있는 붉은 기암괴석과 파도와 갈매기가 어우러진 풍경은 한폭의 산수화로 보는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하고 사면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은 우리 가슴을 시원하게 하여 주는 곳이며 아직도 뭇사람들에 때가 묻지않은 청정지역으로 인근에 있는 국화도와 함께 낚시객과 피서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7)제7경 제암만세

특히 4월5일 이곳 주민들이 발안장터에서 격렬한 만세운동을 벌이자 만세운동에 대한 주모인사명단을 입수한 일본 헌병 30여명이 4월 15일 오후 2시경 제암교회에 주민을 모이게 한 뒤 모든 문을 폐쇄하여 감금시키고 교회에 불을 지른 후 교회를 향하여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23명을 학살하고 30여채의 가옥을 불태워 버린 선조의 한과 넋이 서린 곳이다.

제암리 학살사건이 있은지 63년이 지나서야 마을에서 4km떨어진 도이리 공동묘지에 평토장으로 안장되었던 유해를 발굴하여 제암교회 뒷동산 양지바른곳에 유택을 마련하였으며 후세에 이 사실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와 기념관, 교육관, 조형물 등을 설치하여 나라사랑 정신을 일깨우는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8)제8경 남양성지

이곳은 남양순교성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화강암의 대형묵주알, 그리스도왕상, 성모 동굴, 오솔길 소자상, 요셉성인상 등이 있으며 아늑하고 성스러운 분위기 조성을 위한 성지 조성사업을 대대적으로 실시, 성모님품같이 아늑하고 포근한 경관을 지닌 곳으로 시민은 물론 전국의 천주교 신도들의 순례지 겸 휴식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2.화성시의 자랑 10가지

1) 국화도

국화도는 조선시대에 유배지였다. 이 섬의 원래 이름은 국화도가 아니라 만화도였으나 일제 때 경기도 수원군 우정면 만화리에서 화성군 국화리로 바뀌었다고 한다. 
 
최근 십여 년 사이 섬에는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으며, 현재 22가구에 6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장고항이나 왜목마을에서 바라보면 국화도와 형제처럼 나란히 토끼섬이 보인다. 500m쯤 되는 국화도와 토끼섬 사이에는 썰물 때에 갯바위와 모래밭이 드러나 걸어서 건너갈 수가 있다. 이 바닷길 주변에는 고동을 비롯한 각종 조개가 풍부하다.

국화도 선착장 마을에서 야트막한 언덕을 넘어서면 전혀 다른 풍경이 나타난다. 바위투성이인 동쪽 해안과는 달리 조개껍질과 모래가 적당히 어우러진 천혜의 해수욕장이 활처럼 동그랗게 펼쳐져 길게 이어진다. 해수욕장은 경사가 심하지 않아서 안전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으며, 모래와 자잘한 자갈이 섞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다른 서해안지역과 달리 물이 매우 맑으나 해변에 그늘이 없는 점이 아쉽다. 이 해수욕장의 서쪽에는 매박섬이 있는데, 이 섬도 토끼섬과 마찬가지로 썰물 때에는 바닷길을 통해 건너갈 수 있다. 국화도 해수욕장의 동쪽 끝은 바위지대이고, 부근의 산자락엔 소나무가 자라고 있어서 운치를 더해 준다. 북쪽에 있는 해수욕장 앞에서는 바다 건너편에 무인도인 입화도와 풍도 사람들의 바지락 채취지인 도리도가 빤히 건너다 보인다. 이와 같이 해수욕뿐만 아니라 어선도 탈 수 있고, 갯벌체험도 즐길 수 있다.



2) 궁평리 낙조와 해송

남양, 사강, 서신을 지나 궁평리 관광어촌 휴양지 노변에는 천일염전들이 곳곳에 산재하여 있으므로 전형적인 농·어촌의 전원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 어린이 교육에도 좋을 뿐만 아니라 가족 단위의 1일 휴양코스나 드라이브코스로도 손색이 없다. 

궁평리 해안유원지는 길이 2㎞, 폭 50m의 백사장과 수령이 100년이나 된 해송 5천여 그루가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며 서해안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경치를 자랑하고 있는 곳이다. 만조시에는 하루 2시간 이상 해수욕을 즐길 수 있고, 간조시에는 약 2km의 뻘이 형성되어 서해 특유의 갯벌 체험을 할 수 있다. 20㏊의 조개 채취장에 서는 직접 조개잡이와 바다낚시를 겸할 수 있어 일거양득의 관광을 즐길 수 있다.   
또한 인근 어민들이 잡아온 고기들은 싱싱한 횟감으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특히 궁평 해안유원지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화성 8경 중 4경에 꼽히는 절경으로 바다와 해송이 함께 어우러진 장관은 보는 이의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궁평리 해수욕장은 낚시터, 해송숲, 넓은 운동장, 방갈로, 벤치, 식수대, 화장실 등 제반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을 뿐 아니라 완만한 경사의 모래사장이 있으므로 부담 없는 해수욕을 즐길 수 있고, 해수욕장을 따라 늘어서 있는 50년 이상 된 해송숲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어 즐거움을 더해 준다.

또한 낚시터 위에 있는 출렁다리를 건너면 놀이동산을 만날 수 있다. 이 놀이동산에서 시간을 즐기며, 밀물시간이 되면 선착장에서 농어, 우럭, 굴, 꽃게 등을 구하여 시원한 해물잡탕을 맛볼 수 있다.



3) 입파도 홍암

중심부를 중심으로 동서의 완만한 능선과 해안의 모래 및 조약돌밭을 제외하면 섬 전체가 30% 이상의 급사면을 이루고 있으며, 남북해안은 절벽을 이루고 있다. 
 
광활한 서해바다에 우뚝 솟아 있는 붉은 기암괴석과 파도와 갈매기가 어우러진 풍경은 한 폭의 산수화로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인근에 있는 국화도와 함께 낚시객과 피서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4)제부도 바닷길

제부도는 면적이 1.0㎢, 해안선의 길이가 12km인 한가롭고 작은 섬이다. 섬 중앙에 있는 최고봉은 62.5m에 지나지 않으며 섬 전체에 약간의 구릉지가 있을 뿐 대부분의 지역이 평지이다. 서쪽과 북쪽에 농경지가 발달해 있고 육지와 연결되는 동쪽 해안에 취락이 형성되어 있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으며 굴 양식이 활발하다. 서해안은 수심이 얕고 사빈이 발달하여 해수욕장으로 개발되었고 썰물 때에는 간석지를 통하여 동쪽 해안이 육지와 연결된다. 

남양반도의 서쪽 끝에 있는 제부도는 수도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므로 교통이 편리하여 가족 단위의 1일 휴양코스의 여행지로 적당한 곳이다. 특히 제부도는 6시간마다 간조와 만조가 엇갈리면서 바다길이 열리는 이른바 ‘모세의 기적’이라 불리는 현상이 하루에 두 차례씩 나타나 색다른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썰물 때 4~5m깊이의 바닷물이 빠져 나가 바닷물이 갈라지면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2.3km에 달하는 시멘트 포장길이 나타난다.   
 
길 좌우에 펼쳐진 갯벌 사이의 시멘트 포장길을 건너는 묘미는 제부도 나들이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이 길 양쪽으로 폭이 500m가 넘는 갯벌이 펼쳐지는데 왼쪽은 진흙밭이고 오른쪽은 모래와 자갈이 섞여 있다. 
 

섬으로 들어서면 바로 갈래길이 나오는데 왼쪽 길로 들어서면 그림과 같은 해안선과 기암괴석, 넓게 펼쳐지는 아름다운 풀밭을 만나게 되고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광어, 우럭, 꽃게 등의 싱싱한 해산물을 파는 포구를 만날 수 있다. 섬을 싸고 도는 왼쪽 길과 오른쪽 길이 마주치는 곳에서 1.4km 좁은 길을 달리면 모랫벌 남서쪽 끝에서 매바위를 만나게 된다. 이 매바위는 제부도의 명물로 오랜 기간의 해식작용에 의해 기이한 모양을 한 기암괴석으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더해 준다.  

매바위 주변은 갯벌로 이루어져 있어 바지락이나 조개를 잡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섬의 서쪽에 1.6km에 달하는 곧게 펼쳐진 제부리 해수욕장은 백사장의 폭이 좁고 백사장 곳곳에 조개껍질이 깔려 있어서 맨발로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 그러나 수심이 얕고 고른 편이므로 밀물시간에 3시간 정도 바닷가에서 간이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묘미가 있다. 원래 이 제부리 해수욕장은 모래가 고운 것이 특징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제부도 북쪽에 시화호가 건설되면서 서해 바다의 길이 바뀌어 제부리 해수욕장의 모래가 쓸려나가 지금과 같이 되었다고 한다. 시화호 건설로 인해 제부도는 서쪽 해안의 갈대밭이 없어지는 등 많은 환경 변화가 있었다고 하는데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제부도 나들이의 즐거움 가운데 또 다른 하나로 물이 빠진 바위틈에서 석화를 캐먹는 즐거움을 빼 놓을 수 없다. 또한 제부도의 갯벌에서는 제철이면 바지락과 굴을 쉽게 볼 수 있는데, 11월 말까지가 바지락철이고 그 후는 굴이 제철이다. 많은 주민들이 굴양식을 하고 있으며, 관광객을 위한 산지 굴 판매도 하고 있다.
제부도는 조개류가 많을 뿐 아니라 맛 또한 매우 좋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식당에서 조개구이를 팔고 있고 이 바지락을 이용한 칼국수가 잘 알려져 있다. 제부도에서 조개를 잡으려면 호미와 맛소금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맛소금은 조개의 미끼로 사용되는데, 갯벌의 조개 구멍에 맛소금을 조금 뿌리면 조개는 바닷물이 들어 온 것으로 알고 구멍에서 갯벌로 나온다고 한다. 제부도 해안에는 무분별한 조개 채취 때문에 출입이 금지된 곳이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제부도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 가운데 하나는 제부도의 낙조이다. 제부도에서 바라보는 서해의 낙조는 서해 지역에서 낙조가 가장 아름다운 대표적인 곳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5) 고정리의 공룡알 화석 산출지

종    목  천연기념물  제414호  
면    적  15.90㎢  
지 정 일  2000.03.21  
소 재 지  경기 화성시  송산면 고정리 산5 등  
 
화성 고정리의 공룡알화석 산출지는 중생대 백악기(약 8300만∼8500만년 전으로 추정)에 형성된 퇴적층으로 시화호 간석지가 조성되기 이전에는 섬이었던 6∼7개 지점에서 공룡알화석 및 알둥지가 발견되었다. 세계적으로 공룡알 화석이 발견된 곳은 대부분 중국과 몽고 지역이었으나 시화호처럼 많은 공룡알화석이 한꺼번에 발견된 것은 매우 드문 경우이다.

시화호 화석지에는 가로·세로 50∼60㎝ 크기의 둥지 20여 개에서 둥지마다 5∼6개, 많게는 12개의 공룡알 화석이 발견되었다. 공룡알 화석은 보통 주먹 크기보다 작은 타원형으로 지름 11∼12㎝이고, 큰 것은 14㎝나 되며, 지금까지 모두 130여 개가 발견되었다. 현재 뻘로 덮여있는 부분에서도 뻘을 제거하면 더 많은 공룡알 화석이 발견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외에도 줄기에 마디가 있는 늪지 갈대 등의 식물화석과 생물의 흔적이 있는 화석도 대량 발견되었다. 전문가들은 공룡알 화석이 여러 퇴적층에서 발견된 점으로 미루어 시화호 일대가 약 1억년 전 공룡의 주요 서식지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화성 고정리의 공룡알 화석 산출지는 공룡의 서식 근거지라는 증거 뿐만 아니라 당시의 환경 및 생태계 연구에 중요한 학술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6) 시화호

시화호는 농어촌진흥공사가 시화지구 대단위 간척종합개발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1987년부터 1994년까지 시화방조제를 건설함으로써 조성되었으며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안산시, 시흥시, 화성시에 걸쳐있는 인공호수이다. 
 
당초 계획은 시화방조제 건설 후 바닷물을 빼내고 담수호로 만들 예정이었으나 방조제 완공 후 주변 공장의 하수와 생활하수가 유입되면서 심각한 수질오염 문제가 발생하였고, ‘죽음의 호수’라고 불리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정부에서는 시화호의 담수호 계획을 포기하였고 2001년 시화호는 공식적으로 해수호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 이후 여러 환경단체와 관심있는 시민들의 노력으로 시화호는 차차 죽음의 호수에서 벗어나 생명의 호수로 거듭나는 과정에 있다.
 
시화호를 되살린 일등 공신은 다른 무엇도 아닌 자연 그 자체였다. 해수가 유통되면서 시화호는 놀라운 자연의 자생력을 보여주면서 되살아나기 시작하였다. 해수가 미치는 곳에서는 수질이 좋아지기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갯벌 및 바다생물들이 소생하게 되었고, 이들을 먹이로 하는 다양한 철새들이 시화호를 다시 찾게 되었다. 방조제 물막이 공사 이후 시화호 주변의 환경이 급속도로 변화되면서 이곳에 서식하는 식물들에도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탈염이 진행되는 기간에는 곳곳에서 나문재, 퉁퉁마디, 갯개미취 등의 염생 식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으나 탈염이 어느 정도 진행된 이후에는 갈대나 산조풀과 같은 육상 수생식물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고 있다. 앞으로는 더 많은 육상 식물들이 증가하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해수 유입으로 시화호의 수질이 개선되자 우럭 등 주변의 물고기들이 점차 시화호로 유입되고 있으며, 특히 시화호내의 갯벌이 서서히 제 기능을 회복하게 되면서 동죽, 바지락, 갯지렁이, 칠게, 좁쌀무늬고동, 조무래기따개비, 별불가사리, 굴 등의 갯벌 생물들도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현재 시화호에서 관찰되는 조류는 국제 보호조인 검은머리갈매기와 장다리 물떼새를 포함하여 연간 53종 17만 여 마리에 이르고 있다. 이 중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황조롱이와 저어새도 포함되어 있으며 그 외에 알락꼬리마도요, 물수리와 같은 진귀한 종류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조류 외에도 노루, 고라니, 토끼, 오소리, 멧돼지 등의 야생동물들도 다수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듯 되살아난 시화호는 인간의 자연파괴의 일면을 보여줌과 동시에 놀라운 자연의 자생력을 동시에 관찰할 수 있는 아주 좋은 현장이 되고 있다. 




7)화성호 지역

갯벌과 그 주변부는 서식지 형태가 다양하므로 생물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수질정화 작용, 홍수조절, 야생동물의 산란과 생육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또한 회유하는 물새들의 중간 기착지로서 휴식 또는 번식의 장소로도 이용되고 있다.
 
 
그리하여 최근에는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게 하고, 낚시 등 체험관광을 할 수 있는 생태관광의 대상지로서 부상하고 있다. 화성시 서쪽 해안에는 길고 넓은 갯벌이 형성되어 있다. 이곳에는 아직까지 갯벌에서만 서식하는 각종 생물들이 보존되고 있어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화옹호 간척사업으로 이러한 갯벌이 심하게 파괴되고 있어서 안타깝기 그지없다.
 
아직까지 일부나마 갯벌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앞으로 관광자원으로서 보존이 필요한 갯벌 몇 곳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호곡리
 소재지 - 화성시 우정면 호곡리
 
해안선은 대부분 사질로 구성되어 있고 일부 자갈이 있는 곳도 있다. 간석지는 농경지나 낮은 산지와 경계하고 있다. 해안선으로부터 20m 격리된 간석지는 갯벌로 구성되어 있다. 간석지 내에는 물골이 여러 갈래로 분지되기 때문에 평탄하지 않다.

사구가 다소 불안정하기 때문에 다년생 식물인 갈대나 갯잔디, 천일사초 군락은 일정한 형태를 보이지만 일년생식물(나문재, 칠면초)이나 2년생 식물(갯질경, 갯개미취)은 엉성한 군락을 보이고 있다. 이곳은 비교적 좁은 지역이지만 사구식생과 갯벌식생이 함께 분포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철조망이 설치되어 보호를 받아 온 지역이기 때문에 자연성이 비교적 양호한 지역이다. 따라서 갯벌과 갯벌식생물을 관찰할 수 있는 관찰학습장으로서 활용이 가능하다.   

② 장덕동
 소재지 - 화성시 장덕동
 
 장덕리의 해안선은 대부분 제방으로 축조되어 있다. 해안선을 따라 폭 5~10m 사이에는 사질로 형성되어 있으나 그 이외의 지역은 모두 갯벌로 형성되어 있다. 간석지 내에 깊은 물골이 산재하여 전체적으로는 평탄하지 않고 요철이 있는 상태이다.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어서 간석지가 어느 정도 보호되고 있다.

이 지역의 식생은 해안선을 따라 510m 범위 내에 사구식물이 분포하고 있다. 이곳에는 갈대, 갯잔디, 나문재, 갯쇠보리, 해옹나물 등 염생식물 군락지가 있는데 사구가 다소 불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갈대나 갯잔디, 천일사초는 작은 범위에서 모여 있으나 그 밖의 식물은 엉성한 군락, 혹은 간헐적으로 나타난다. 해안선으로부터 20m 떨어지면 갯벌로 형성된 고위간석지에 칠면초가 생육하는데 초장은 25cm 이내로 작지만 대단히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넓은 간석지에 칠면초가 대단위 군락을 형성하고 있고, 주변에 오염배출원이 별로 없는 지역으로 호곡리와 함께 갯벌을 체험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③ 매향리
 - 화성시 우정면 매향리
 
해안선과 접한 육지는 대부분 농경지와 염전으로 해발고도가 낮고 해안선에는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어 인위적인 영향이 덜 미치고 있는 지역이다. 미군 폭격장의 설치로 유명해진 이곳은 물골이 깊고 많아서 지면이 평탄하지 못한 편이고 해안선이 낮은 제방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육지와 간석지 사이의 고도차가 크지 않다. 철조망으로 인하여 간석지 식물군락이 비교적 보호를 잘 받고 있어서 갈대, 천일사초 등의 단자엽식물이 해안선을 따라 폭 10m정도로 분포하고 있다. 이들 식물은 순군락을 형성하거나 혹은 혼생하는데 자연성이 매우 탁월한 편이다.
제방 근처에는 갈대모새달, 갯잔디 등이 큰 부분을 형성하고, 육지와 멀어지게 되면 칠면초가 순군락을 형성한다. 3면이 제방으로 둘러싸여 1년생 염생식물이 생육하기에 좋은 환경을 갖춘 곳으로 보여진다. 이곳에는 고둥, 칠게, 밤게 등의 각종 갯벌생물들이 서식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갈매기, 마도요 등의 다양한 조류들이 살고 있는 터전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에는 화옹방조제 건설로 생태계가 크게 위협받고 있으며 이곳을 관광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미군폭격장의 문제 해결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 밖에도 화옹호에는 저어새와 검은머리물떼새, 논병아리, 해오라기, 쇠오리, 알락오리, 물수리, 물닭, 개꿩, 마도요, 괭이갈매기, 청딱따구리, 알락할미새, 비오리 등 무수한 새들이 찾아오는 보금자리가 되고 있다.

8) 비봉 인공습지

인공으로 조성한 갈대밭과 습지를 이용하여 시화호로 흐르는 하천의 수질을 정화시키기위해 만든 공원입니다. 전체 면적은 314,000평이며 울창한 갈대숲과 습지, 생태보호시설과 관찰로, 전망대, 쉼터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비봉인공습지공원은 시화호 상류천인 동화천, 삼화천, 반원천의 물을 임시로 가두어 갈대와 수서식물을 통해 정화시킨다음 시화호로 흘려 보내는 인공으로 조성된 공원입니다.
 
비봉인공습지는 시화호 , 공룡알화석지와 우음도, 형도로 이어지는 수변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어 국제적으로도 중요하게 관리되어야 할 습지입니다. 특히 수많은 철새들이 서식지와 번식지로 이용하고 있는 등 다양한 생태환경을 보여주고 있으며 인근지역으리 역사, 문화 관광지를 함께 체험할 수 있는 미래형 인공 조성 공원입니다.



9) 건달산

화성시 팔탄면 기천리 및 봉담읍 세곡리에 걸쳐 위치한 건달산(建達山)은 화성시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정상에 올라 보면 맑은 날에는 서해에 둥둥 떠 있는 아름다운 섬들과 인천 앞바다까지 훤히 보이는 명산이다.
세곡리 지역의 건달산 중턱에는 아직도 산신각이 모셔져 있는등 민간신앙의  흔적이 남아있다. 
 
유적으로는 1821년(순조 21)에 설치된 봉수대가 있는데 당시에 이곳에 50여명의 군관들이 상주했다고 전해지며 지금도 정상에는 그 잔재인 깨진 기왓장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전쟁 때는 마을사람들이 이 산에 올라 월미도를 포격하는 인천상륙작전의 모습을 보기도 하였다고 하며, 건달산 상공에서 미군 전투기가 북한군 전투기를 격침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건달산은 원시림에 가까운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어서 천연기념물 324호 소쩍새와 솔부엉이, 솔개, 오색딱따구리와 여러 종의 파충류(살모사, 율목이, 도룡뇽 등) 및 멸종 위기의 양서류(두꺼비, 맹꽁이 등)가 서식하고 있으며 또한 사라져 가는 곤충류인 반딧불이, 장수하늘소가 남아 있는 청정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건달산 부근에 여러 가지 개발사업들이 계획되어 있어 이러한 생태환경의 파괴가 우려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10) 초록산

양감면 사창리와 대양리, 신왕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풀이 무성해 늘 초록색으로 보인다 하여 초록산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초록산은 높이가 완만하고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노약자와 어린이가 등반하기에도 무리가 없어 가족 단위의 산책코스로 좋은 곳이다.  
 
주로 가족 동반 및 각종 단체의 야유회, 어린이의 소풍장소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한편 초록산에는 1995년 97ha의 면적에 삼림욕장이 조성되어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산림욕장 내에는 4km의 산책로와 8백 여평의 잔디광장, 전망대, 배드민턴장, 농구대, 씨름장, 어린이 놀이터, 모험놀이시설, 패러글라이딩장, 약수터, 대피소 등의 편익시설과 체육시설이 갖추어져 있을 뿐 아니라 입구에는 60여대의 주차가 가능한 주차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삼림욕장 내에는 작은 연못이 설치되어 있어서 자유롭고 시원한 분위기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고 4월~5월에는 철쭉이 만발하여 이용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초록산 삼림욕장에서는 숲 속 에서 맑고 신선한 공기와 함께 피톤치드를 마시고 피부로 호흡함으로써 바쁜 일상과 스트레스에 지친 몸과 마음을 동시에 건강하게 할 수 있는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오산시의 자랑거리)

 

1.독산성 및 세마대지

종    목  사적  제140호 
면    적  37,299㎡ 
지 정 일  1964.08.29 
소 재 지  경기 오산시  지곶동 162-1 외 
시     대 삼국시대

독산성은 다른 이름으로 독성산성이라고도 한다.

선조 26년(1593) 임진왜란 중에 권율 장군이 전라도로부터 병사 2만여 명을 이끌고 이 곳에 주둔하여 왜병 수만 명을 무찌르고 성을 지킴으로써 적의 진로를 차단했던 곳이다.

독산성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분명하지는 않으나 원래 백제가 쌓은 성일 것으로 추측되며, 통일신라시대나 고려시대에도 군사상 요충지로 쓰였을 것으로 본다. 선조 27년(1594) 백성들이 산성을 쌓고, 임진왜란이 끝난 선조 35년(1602)에 당시 부사 변응성이 다시 보수하고, 그후 정조 16년(1792)과 20년(1796)에도 다시 공사했다.

성 둘레는 3,240m이고 문도 4개이지만 성 안에 물이 부족한 것이 큰 결점이었다. 이런 결점때문에 이 곳에는 세마대의 전설이 있는데, 권율 장군이 산위로 흰 말을 끌어다가 흰 쌀로 말을 씻기는 시늉을 해 보이므로 왜군이 성안에 물이 풍부한 것으로 속아서 물러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2.금암리 지석묘군

종    목  경기도 기념물  제112호 
지 정 일  1987.02.12  
소 재 지  경기 오산시  금암동 산53  
시     대  청동기시대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 놓은 탁자식과, 땅 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경기도 오산시 금암동에 위치한 9기의 바둑판식 고인돌이며, 덮개돌은 땅 위에 드러나 있지만 하부구조는 흙속에 묻혀 있어 자세하게 알 수 없다. 고인돌 가운데 규모가 큰 것은 덮개돌의 길이가 6m 정도이다. 덮개돌의 윗면에 수직으로 파인 알구멍<성혈(性穴)>이 있는 고인돌(2호 고인돌)이 있는데, 구멍의 파인 모양으로 보아 쇠붙이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것 같다. 알구멍은 풍년을 빌거나 자식 낳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만들었다고 하지만 정확하게는 알려져 있지 않다.
 
 
3.궐리사

종    목  경기도 기념물  제147호  
지 정 일  1994.04.20  
소 재 지  경기 오산시  궐1동 147  
시     대  조선시대

조선 전기 문신이자 공자의 64대 손인 공서린(1483∼1541) 선생이 후학지도를 위해 세운 곳으로 지금은 공자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중종 2년(1507) 문과에 급제하고 공조참의, 대사헌 등을 지낸 공서린 선생이 후학을 지도할 때 은행나무에 북을 달아 놓고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도록 깨우쳤는데, 그가 죽자 은행나무도 말라죽었다고 전한다. 그 뒤 정조가 화산에서 바라보니 많은 새들이 슬피 울며 은행나무 곁으로 모여들었고, 이를 괴이하게 여긴 임금이 가까이 가서 보니 죽은 은행나무에서 새싹이 돋고 있었다고 한다.

정조 17년(1792) 이곳을 공자가 살던 노나라의 마을 이름을 따라 궐리로 바꾸고 사당을 세운 후 ‘궐리사’라고 했다.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00년 다시 세우고 1981년 강당을 세웠으며, 1993년 중국 산동성에서 기증 받은 공자의 석고상을 모셨다.

사당은 앞면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동쪽으로는 학문을 배우는 공간인 강당 건물이 있어 동학서묘의 전형적인 서원 건축 양식을 보이고 있다.

논산의 노성 궐리사와 함께 우리나라 2대 궐리사로서 조선 후기 사당형식을 잘 보여 주는 곳이며, 해마다 지방 유림들이 모여 봄·가을로 제사를 지내고 있다.
 
 
4.외삼미동 고인돌

종    목  경기도 기념물  제211호 
지 정 일  2006.01.23  
소 재 지  경기 오산시  외삼미동 384 
시     대  청동기시대

외삼미동의 지석묘는 숲으로 둘러싸인 구릉에 위치한 2기의 고인돌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시민의 요구에 의하여 한양대 박물관장겸 경기도 문화재 위원인 김병모 교수가 현지 확인결과 청동기 시대 후기에 속하는 유적으로 북방식과 남방식이 혼재되어 있는 희귀한 예로서, 선사시대 생활상을 연구할 수 있는 문화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5.보적사

 종    목   전통사찰 제34호 
소 재 지  오산시 세마대길 94 (경기도 오산시 지곶동 150)     
 
고려초 창건 당시 세계 중생의 질병치료, 수명연장, 재화소멸, 의복, 음식등을 만족케 하고, 부처의 행을 닦아 무상보리의 진리를 터득케 한다는 약사여래를 모신 약사전을 중심으로 독산성의 역사와 함께 오랜 세월을 같이 했다.

대웅전 좌두에는 요사채 2동이 있으며 대웅전 정면에 3층 석탑이 조성되어 전통사찰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조선후기의 사찰, 호국의 군진으로 이름난 사적 제140호 독산성 세마대지와 자리를 같이하고 있는 보적사는 아무런 사적 자료없이 고려초기 창건으로만 전해올 뿐이다.

수원유수가 관할하는 3백여호의 변화한 촌락이 되었으나 한일 합방후 왜인은 세마대를 파괴하고 주민을 각처로 분산 이주케 하였다. 여러차례 전란으로 중건을 거듭하다 조선 22대 정조가 용주사 건립시 재건하였고, 1957년 세마대의 복원과 함께 산상에 연무의 3개 광장도 마련하였다.

 

6. UN초전비

위치 : 오산시 중앙대로 608 (오산시 내삼미동 산 70-6)     
 
유엔군 참전기념비는 한국전쟁(1950년 6월 25일)시 유엔군의 일원으로 1950년 7월 5일 미군 제24사단 소속 제21보병부대 및 제52 야포대대 소속 1개 중대로 편성된 스미스 전투부대 406명의 장병이 북한과의 최초 전투를 기념하기 위하여 1955년 7월 5일 미군 제24단과 장병에 의하여 건립되었다.

1964년 미 24사단 장병 및 동지회, 미8군장병, 육군 동지회, 재항군인회, 한국신문 편찬협회, UN군 자유수호참전 건립위원회 등에 의해 보수되었으며, 1972년 9월 20일 미8군, 제802 공병대, 제22 K,S,C 중대 및 K,S,C 제22본회에 의하여 약 66㎡의 주차장 확보와 1981년 전적지 개발계획에 의해 구 기념비 앞산에 16,500㎡의 규모로 새로이

단장하여 매년 7월 5일 장병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7.문헌서원

 위치 : 경기도 오산시 내삼미동 753-2   
 
문헌서원은 고려시대의 유학자 문헌공 “최충”선생을 중앙에, 우측에는 문화공 “유선” , 좌측에는 문장공 “유길”을 봉안한 영정각과 강당을 겸한 2층의 건물로 구성돼 있다. 영정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구조에 청기와를 얹은 팔각지붕의 건물로 1991년에 건립.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은 중종 38년(1543)을 전후하여 동방성리학의 조종인 동시에 벼슬이 인신의 극에 달했던 문헌공 선생을 모신 “문헌서원”이 항해도 해주에 세워졌다.

이후 황해도 관찰사로 하여금 몇 차례의 이동과 정비를 하면서 1945년 남북의 분단되는 시점까지 온존하게 보존되었다. 문헌서원은 최충선생의 상징적 의미와 함께 나라의 귀중한 문화재로서 현재 남한에는 두곳의 서원이 있다. 그래도 본거가 되는 서원은 해주의 “문헌서원” 이므로 남한의 20만 해주최씨 대종회인들은 북한 해주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못내 쉽게 생각하여 오산에 재건립 하였음.


 
8.산림욕장

 위치 : 오산시 중앙대로 443 (경기도 오산시 양산동 산19-60 일원)    
 
오산시는 양산동 산19-60 일원의 잣나무 조림지와 인근의 사적 제140호인 독산성을 연계하여 공업화, 도시화에 찌든 시민들에게 산림이 주는 혜택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의 독산성 산립욕장을 조성하였다.

특히 독산성 산림욕장의 조성으로 어린이들에게는 자연과의 접촉기회를 제공하여 자연과 함께 하는 생활 및 환경의 중요성을 체험케해 심신단련과 숲속활동을 통한 인성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시민들에게는 부족한 휴식공간을 제공하여 건전한 여가활동의 장으로 발전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를 위해 시는 독산성 주변의 산림 20.7ha에 4억원(국비:2억, 도비:1억, 시비:1억)의 예산으로 1999년 9월에 착공하여 전망대를 비롯한 교육시설 2개소, 편의시설 6개소, 체육시설 6종 10개소, 모험극기시설 10종 10개소, 산책로 2개소, 기타 간판석등 9개소의 조성을 1999년 12월 중순 완료하였고, 특히 잣나무 인공림에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목교나 휴식공간을 설치하였으며, 철쭉이나 진달래 등을 식재하여 개설한 산책로는 잣나무숲에 위치하여 살균성질을 가진 화합물(피톤치드)로 인하여 인체의 심폐기능강화에 도움을주며 피부를 소염, 소독하는 약리작용도 하고 정신의 피로를 씻어주는 효과가 있기에 향후 시민들의 많은 이용 및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학생들의 소풍이나 자연학습을 위한 공간으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된다.



9.물향기수목원

위치 : 경기도 오산시 수청동 경기도임업시험장 안

경기도가 2000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하여 2006년 5월 4일 문을 열었다. 약 10만 평 부지에 1,600여 종 42만 5,000여 본의 식물을 전시하고 있다.

'물과 나무와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하여 모두 16개 주제워 이외에 산림전시관, 숲속쉼터, 잔디광장, 전망대 등의 부대시설로 이루어졌다. 또한 곤충류, 조류 등을 관찰할 수 있는 전시공간도 있다.

습지생태원, 수생식물원, 호습성식물원 등 맑은 물이 나오는 곳이라는 동(洞) 이름에 맞춰 물을 좋아하는 식물들로 꾸민 여러 개 주제원이 특징이다. 덩굴식물로 이뤄진 만경원,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열매가 열리는 나무를 심어놓은 유실수원, 여러 종류의 소나무를 모아놓은 한국의 소나무원 등도 있다.

야외 주제원 외에 나비, 사슴벌레, 장수풍뎅이 등의 곤충들의 생태를 관찰할 수 있는 곤충생태원, 닭을 비롯한 꿩, 공작 등을 사육하는 관상조류원, 겨울에도 푸른 잎을 볼 수 있도록 꾸민 난대양치식물원 등 실내 관람시설도 조성되었다.

훼손을 막고 조용하고 깨끗한 환경을 지키기 위해 수목원 안에는 매점이나 식당이 없으며, 싸간 도시락 등을 숲속쉼터에서 먹을 수 있도록 하였다. 자전거, 인라인스케이트, 애완동물 등을 반입할 수 없고, 쓰레기통도 없다.

2010.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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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화성시청 및 직접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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