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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우미관이 왜 종로 나와바리의 상징이 됐나요?
비공개 조회수 25,766 작성일2003.01.15
일제시대때 조선제일의 주먹이 우미관을 나와바리로 하고있었자나요

그당시엔 종로에서 우미관이 돈이 젤 마니 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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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g6****
중수
전세, 월세, 인체건강상식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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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에는 극장이 별로 없고 깡패들은 갈곳이 없으니 주로 극장 앞에서서 서성이고
놀아도 극장앞에서 놀았지요
우미관은 종로2가 화신백화점에서 동쪽으로 조금 더 올라 와 있었지요 약간 뒷 골목에서요 종로 2가를 중심으로 하여 국일관이니(관철동) 명월관(종로 3가) 같은그당시 일류 요정도 거기를 중심으로 하고 종로의 상권이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상권이 었지요
물론 진고개(명동)이 있었지만 거기는 주로 일본 사람들이 설치는 신흥가이구요
종로는 원래부터 경복궁도 가깝고 궁중이 가까운 제일 먼저 형성된 거리이기 때문에
그 주위에 옛 양반들도 많이 살았구요 일제 이후 모든 금융권도 종로2가를 중심으로 하여 광교 소공동 쪽으로 발전 하였기 때문에 자연히 건달들이 노는 장소가 극장이있는데로 기울지요 그들은 소위 극장의 기도를 보아 주면서 쬐금 대우 받고 하는 일 없이... 그들은 해방 이후도 각 극장 앞에서 암표 장사도 하고 사실은 김두환도 티비에서 처럼 그렇게 대우 받지는 못 하였겠지요
그후에 우미관은 디쉬네라는 뮤직홀도 되구요
이정재도 종로 3가의 평화 극장을 무대로 자유당 때 온갖 악행을 일삼다가 혁명이나자 정치 깡패로서 사형을 당하게 되구요

2003.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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