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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켈러 고통의 내용,
생후 19개월 때 앓은 뇌척수염으로 인해 시청각장애인이 되어,
장님, 귀머거리, 벙어리라는 3중고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당연히 정상적인 교육이 될 리 없었고, 대여섯 살이 될 때까지도
물건을 던지거나 사람을 할퀴거나 때리는 정도로밖에 의사표현을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고통 극복 과정,
거종교사 앤 설리번이 헬렌을 맡으면서 그 모든 것을 하나하나 극복해 갑니다.
응석받이로 자랐던 헬렌에게 극도의 인내심을 가지고 손바닥에 글씨를 쓰는
방식으로 언어를 가르치려 했습니다.
물 펌프에서 처음으로 'water'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이후 8살때 퍼킨스 맹인 학교에 입학하여 정식 교육도 받게 됩니다.
6년 후에는 뉴욕으로 가서 라이트 휴먼스 농아 학교를 다니고, 그 이후에는 호렌스 만
농아 학교를 다니는데, 이 학교의 선생인 새라 풀러가 목의 진동과 입의 모양을 만지고
느끼게 하는 방법으로 헬렌에게 말하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칩니다.
이 방법으로 말은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헬렌 켈러는 16세의 나이에 래드클리프 여대에 입
학하고, 04년 졸업할 무렵에는 5개 국어를 습득하게 됩니다.
그리고 극복 후 성장
언어를 깨친 이후로도 그녀의 성장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녀의 곁에는 항상 앤 셜리번과
그 후임인 폴리 톰슨이라는 보조자가 붙어 손바닥에 모든 정보를 전달해주어야 했습니다.
그것을 수십년 동안 계속해온 탓에 톰슨의 오른손은 비정상적으로 커지고 핏줄이 튀어나올
정도였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런 노력으로 헬렌 켈러는 앤 설리번이 죽고 나서도 32년을 더 살다가, 향년 87세로
사망했습니다. 그만큼 앤 설리번이 헬렌 켈러를 스스로 자립하면서 살아가도록 노력했던 성과는,
어떻게든 빛을 보았습니다.
헬렌은 그 후 사회운동가로 활약합니다.
그녀는 작가로서의 저술 활동도 활발하고 여성 참정권, 인종차별반대 운동 등
사회 운동도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합니다.
2019.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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