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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켈러라고 하면 흔히 설리번 선생의 인내와 사랑으로 장애를 극복한 장애인 여성으로 생각하지만, 역사 속의 헬렌은 진보적 사회운동을 실천한 사회주의 지식인이었다. 헬렌켈러는 29세 때인 1909년 미국 사회당(영어: Socialist Party of America,1901년 창당)에 입당하였으며, 공개 서한 《나는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되었나》 발표와 방송출연을 통해 자본주의를 비판했다.
또한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세계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독일에 선전포고한다.”라고 선언하자, “(미국 백인들이) 수많은 흑인을 학살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지배자는 세계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비판으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도덕주의(Moralism)가 얼마나 표리부동한지를 신랄하게 비판할 정도로 헬렌 켈러는 미국 사회의 문제점을 직설적으로 고발했으며, 여성 참정권 운동, 사형 폐지 운동, 아동 노동과 인종차별 반대 운동을 실천했다.
그녀의 이러한 활발한 사회참여에 대해 보수주의 언론들은 “헬렌 켈러가 누군가에게 조종당한다.”라며 비난했는데, 이에 대해 헬렌은 “나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공장, 빈민가에도 방문했다. 볼 수 없을지라도… 냄새는 맡을 수 있었다.”라며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사회참여를 하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헬렌 켈러의 사회참여에는 한계가 있었는데, 바로 자신이 당원으로 활동한 미국 사회당의 분열을 막지 못한 것이다. 당시 미국 사회당은 1913년 1월, 11만 당원 중 2만 명이 빌 헤이우드 집행위원에 대한 제명 조치에 반발, 탈당할 정도로 엄청난 내분을 겪고 있었다. 이에 대해 헬렌 켈러는 일치하여 민중의 편을 들어야 할 사회당이 두 파벌로 갈라져 서로 비열한 싸움을 벌인다고 비판했지만, 결국 내분을 막지 못했다.
2019.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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