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요주의 물건] #08. 겨울에 누리는 낭만, 카멜 코트 <1>

좋은 코트 한 벌이면 겨울도 두렵지 않다. 따뜻하고 포근하게 몸을 감싸줄 것, 짧은 주기의 트렌드에 휘둘리지 않을 고전적인 디자인일 것, 우아하고 당당한 느낌을 줄 것. 이 조건을 만족할 물건이 하나 있다. 바로 카멜 코트다.

프로필 by ELLE 2019.11.20
 
아침저녁으로 코가 시리다. 밤은 점점 길어지고 한낮의 짧은 볕이 반가워진다. 이렇게 가을이 깊어 겨울을 예감하기 시작하는 날이면 나는 영화 <러브 스토리>를 떠올린다. 가난한 연인과 부모의 반대, 불치병 등 멜로 드라마의 클리셰로 가득하지만, 여전히 볼 때마다 아름답고 슬픈 사랑 이야기. 영화의 첫 장면에서 남자주인공 올리버는 독백한다. “25살에 죽은 한 여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름답고 총명했으며 모차르트와 바흐를 사랑했고, 비틀즈를 사랑했고, 저를 사랑했습니다.” 오, 올리버. 나라면 하나 더 말했을 텐데. “그녀는 정말로 멋진 스타일을 갖고 있었습니다.”
 
내가 떠올리는 것은 영화의 고전적인 스토리 라인도, 영화음악의 거장 프란시스 레이(이 영화로 그는 1971년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다)의 애절한 멜로디도 아니다. 나는 이 영화 속 알리 맥그로의 스타일을 생각한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고전적인 프레피(프레피라는 단어는 영화 초반에 제니가 올리버를 놀리며 ‘금수저’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룩을 연출하는데, 거의 50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세련된 느낌을 준다. 체크무늬 미니스커트와타이츠, 터틀넥 스웨터, 털모자, 플랫 슈즈, 실크 드레스 등, 보스턴의 추위와 싸우기 위해 여자 주인공 제니가 무장한 아이템들은 몽땅 내 옷장에 넣고 싶을 정도로 멋스럽다. 그중 가장 탐나는 건 역시 코트. 발랄한 스타일의 피코트와 크림색 캐시미어 코트 그리고 벨트가 달린 카멜 코트 등이다.  
 
▷ 영화 <러브 스토리>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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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이 길어졌다. 나는 코트에 대한 나의 애정에 대해 짧게 언급하려 했을 뿐인데. 하지만 영화에 등장한 아름다운 코트에 관해서라면 조금 더 할 이야기가 남아 있다. <나 홀로 집에 2>의 마지막, 록펠러 센터의 대형 트리 앞에서 마침내 케빈과 엄마가 재회하는 신을 볼 때마다 나는 케빈 엄마의 코트를 뜯어본다. 무릎을 넉넉히 덮는 길이에 와이드 컬러, 그리고 오버사이즈 핏. 참 포근해 보이는 카멜 코트다. <나 홀로 집에 1>에서 케빈의 누나 헤더(크리스틴 민스터) 역시 카멜 코트를 입고 나왔었는데, 저것은 엄마와 딸이 공유하는 코트인 걸까? 어느 브랜드 제품일까? 하는 생각을 골똘하게, 수일 만에 다시 만나 눈물을 흘리며 포옹하는 엄마와 아들의 감정에 호응하지 못한 채 그런 불순한 생각에 빠지곤 하는 것이다.
 
▷ 영화 <나홀로 집에 2>의 캐서린 오하라,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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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나홀로 집에>의 크리스틴 민터,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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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의 미셸 윌리엄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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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미스 슬로운>의 제시카 차스테인,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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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에서 먼로를 연기한 미셸 윌리엄스 역시 카멜 코트를 입고 등장한다. “메릴린 먼로는 일상생활에서 매우 심플하게 입었을 거예요. 그리고 편안하게요. 자신의 직업에서 벗어났을 때 갖고 있던 모습들, 즉 단순함과 캐주얼한 우아함 같은 것, 나는 그것들을 영화 속으로 가져오고 싶었습니다.” 이 영화의 코스튬 디자이너 질 테일러(Jill Taylor)의 말처럼 영화에서 로브 스타일의 카멜 코트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낸다. 시대의 섹스 심볼이 아닌 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드는 데 심플한 디자인의 타임 리스 아이템이 사용된 것이다. 영화 <미스 슬로운>에서 냉철한 로비스트로 변신한 제시카 차스테인 역시 카멜 코트를 입고 등장한다. 화려한 액세서리를 철저히 배제한, 프로페셔널한 룩을 선보이는 데 좋은 무기로 사용되었다는 평.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시간을 초월하는 능력을 가진 이 우아한 코트는 언제 어떻게 등장했을까. 너무 흥분한 상태로 글을 쓴 나머지 서론이 지나치게 길어진 관계로 카멜 코트에 관한 남은 이야기는 다음 주에 이어서 해볼까 한다. 엘르 독자들의 따스한 이해와 인내심을 바라며, 다음 주에 만나요. 제발! ♡
 
 
☞ 트렌드를 뛰어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가치를 지닌 물건 뒤에 숨은 흥미로운 이야기, 김자혜 작가의 ‘요주의 물건’은 매주 수요일에 찾아갑니다.  

Credit

  • 프리랜스 에디터 김자혜
  • 사진 게티이미지와 imd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