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롱 Oct 30. 2019

#16. 사랑의 불시착

전혀 예상 밖의 전개

 우리나라에는 기미도 보이지 않던 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겨우내 웅크렸던 어깨가 자연스럽게 펴졌다. 동물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박물관을 구경하고 한적한 정원을 걸었다. 돌아가면 할 일이 폭풍처럼 몰아칠 예정이었지만 잠시 잊기로 했다.

 공항으로 가기 전, 다코야키를 한 번 더 먹으러 갔다. 전날과 다른 가게 앞에서 잠시 기다리면서 직원의 엄청난 손놀림을 넋 놓고 지켜봤다. 잠시 후 따뜻한 접시를 받아들었다. 두 번 먹어도 맛있었다.

 "다코야키, 안녕. 또 올게."

 동이가 전철을 타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꾸벅꾸벅 졸다 보니 공항이었다. 면세점에서 작은 선물 몇 가지를 사고 비행기를 탔다. 저녁 6시 30분 출발 예정이었다.


 나는 비행기가 무섭다. 타기 전의 그 초조함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가장 멀리 가본 게 필리핀 세부였는데 몇 날 며칠 잠을 설치며 불안해했다. 신혼여행지로 고른 프랑스도 사실 10시간 가까운 비행이 자신 없었다. 겁은 나지만 그동안 아무 일 없었기 때문에 참고 탔는데 이번에 사달이 나고 말았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도착할 짧은 거리였다. 눈을 감았다가 뜨니 인천 상공이라고 했다. 저 멀리 불빛들이 반짝였다.

 "공항에서 밥 먹고 갈까? 집에 가서 치킨 시켜 먹을까?"

 "뜨끈한 국물도 먹고 싶어."

 8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집까지 가려면 갈 길이 멀었다. 그런데 갑자기 안내방송이 나왔다. '안개가 심하다, 착륙을 시도해보겠다.' 그런 내용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비행기가 휘청했다.

 "악!"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앞서 했던 방송과 비슷한 내용을 기장이 설명했다. 비행기는 한참 하늘을 맴돌다가 아래로 향했다. 또 한 번 크게 흔들렸다.

 우리는 말이 없었다. 동이 손을 잡고 있던 내 손에서 땀이 흘렀다. 내가 가자고 밀어붙인 여행이었다. 결혼이 3개월 남아 있었다. 동이가 꿈에도 그리던 직장에 들어간 지 딱 1년이 됐다. 우리는 이 비행기에서 내릴 수 있을까. 혹시라도 잘못되면 동이 부모님은 나를 얼마나 원망하실까. 우리 엄마, 아빠는 어떡하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다시 안내방송이 나왔다.

 "We regret... landing... return to Kansai airport."

 인천 하늘까지 온 비행기가 일본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었다. 동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괜찮아. 할 수 없지."

 "동아, 안 무서워?"

 잠시 생각하던 동이가 입을 열었다.

 "진짜 무서운 게 뭔지 알아?"

 "뭔데?"  

 "최종 면접에서 떨어지는 거. 불합격하는 거. 떨어졌는데 또 떨어지는 거."

 전직 취업준비생 동이가 씩 웃었다. 대체 이 친구는 뭘까 싶었지만 따라 웃었다. 이틀 같던 2시간이 지나고 우리는 다시 일본 땅을 밟았다. 내리자마자 휴대폰 전원을 눌렀다. 부재중 전화 스무 통, 문자는 셀 수 없었다. 바로 전화를 걸었다.

 "엄마!"

 "어디야! 어디야!"

 나도, 엄마도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안개 때문에 회항했어. 일본 공항이야. 괜찮아. 걱정했지."

 "무슨 일 났나 싶어서 내가 진짜 미치는 줄 알았어."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인천공항 홈페이지를 수십 번, 뉴스를 수백 번 들여다봤을 가족. 우리 모두 2시간 사이에 20년씩 늙고 말았다.


 여권에 출국 중지 도장이 찍혔다. 항공료 환불 안내 종이를 받고 밖으로 나온 우리는 갈 곳을 잃었다. 시내로 나가기도 너무 늦은 시간이라 공항과 연결된 호텔에서 하루 묵기로 했다. 회사에 연락 후 소식을 들은 친구들한테 무사하다는 신고를 하고 다시 집에 전화를 걸었다. 결국 울음이 터졌다.

 "엄마, 너무 무서웠어. 비행기가 막 흔들렸어. 무서웠어."

 "괜찮아. 고생했어. 밥은 먹었어? 그만 울고 동이 바꿔."

 동이가 잠시 통화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어머님이 너 빨리 뭐 먹이래. 배고프면 짜증 낸다고. 나가자."

 정신이 몽롱해서 꿈을 꾸는 것 같았다. 24시간 영업하는 버거킹에서 햄버거를 사고 편의점에서 간단한 요깃거리를 골랐다. 배가 부르니 긴장이 풀렸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아서 늦게까지 뒤척였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서 뉴스를 검색해 보니 저시정 경보로 수십 대의 비행기가 인천에 내리지 못했다고 했다. 특히 일본발 비행기가 여러 대 결항, 회항했고 그래서 당장 한국으로 가는 편도 항공료가 60만 원까지 뛰어 있었다. 간신히 저녁에 대구로 가는 티켓을 구했고 무사히 돌아왔다. 너무 늦게 도착해서 동이와 함께 엄마 집에서 하루 자고 헤어지기로 했다.

 "내 새끼들 잘못되는 줄 알고... 내가 진짜 못 살아."

 엄마 얼굴을 보니 집에 온 게 실감이 났다. 다 같이 치킨을 먹으면서 앞으로 저녁 비행기는 타지 않기로 약속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당분간 일본은 못 갈 것 같다.      

이전 15화 #15. 신혼여행도 연습이 필요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