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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대전 서구에 있는 도산서원...
idnp**** 조회수 1,815 작성일2008.11.13

 

 

 탄방동에 있는 도산서원 말이에요

 들어가서 볼 수 있나요??

 사진도 찍고... 좀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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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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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
절대신
2019 지역&플레이스 분야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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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갔을 때는 무료로 개방하고 있었어요^^

 

물론 들어가서 사진도 찍고요^^

 

                                (도산서원 전경)

 

          (도산서원 명교당과 양재 전경)

 

                   (도산서원 함덕사 )

 

                   (도산서원 사적비)

 

                         (탄옹묘소)

 

                     (탄옹묘소 숭모각)

 

도산서원

 

종 목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호 

지 정 일 1989.03.18

소 재 지 대전 서구 탄방동 233

시 대 조선시대

 

만회 권득기와 그의 아들 탄옹 권시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권득기는 41세 때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좌랑을 지냈으며, 정세가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도학을 공부하였다고 한다.

 

권시도 학문이 뛰어나 대군사부·한성부좌윤 등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이곳에서 학문에 힘썼다.

 

이 서원은 조선 숙종 19년(1693)에 유림들이 뜻을 모아 세운 것으로,숙종 37년(1711)에 나라에서 내린 현판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규모는 사우 3칸, 묘문 3칸, 강당 4칸, 서재 3칸, 남재 4칸, 전사청 3칸 등 모두 23칸이었다. 그 후 흥성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헐리었다가 1921년에 단을 조성하고 제향하다가 1968년과 1973년 2차례에 걸쳐 안동권씨 문중에서 복원하였다. 권득기선생은 41세때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좌랑을 지냈고, 광해군때 어지러운 정치를 개탄하며 벼슬의 뜻을 버리고 도학을 연마하여 당시에 고절한 선비라 일컬어졌다. 또한 후 손들에게 학문의 목적을 과거에 두지 말라고 하며 "모든 일은 반드시 옳은 것을 구하고 의롭지 못한 일에 빠지지 말라'는 가훈을 나겨 놓았다.

 

권시선생은 만회 권득기 선생의 아들로서 학문이 뛰어났다. 학행으로 천거되어 대군사부, 한성부좌윤 등에 임명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고향인 이곳에서 학문에 힘썼다. 이곳 탄방동에 서원을 짓고 13년동안 도학과 예학에 더욱 정진하였다. 그의 호인 탄옹은 이 지명에서 따온 것이며 도산이라는 산이름도 그가 이곳에 정착하여 도학을 연마하였기 때문에 붙여졌을 것이다.

200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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