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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도산서원을 다녀왔는데..
비앙카 조회수 2,431 작성일2007.09.09

도산서원을 다녀와서 라는 보고서인데요...

도산서원의 건물들의 소개를 길게 적어주세요...

자세하면 더욱좋습니다..

진짜 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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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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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

도산서원은 경관이 좋은 언덕위에 위치해 있고 최근엔 안동댐 물이 서원 바로 밑까지 들어차서 더욱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고 있다.
 


도산서원은 원래 '해동주자'라 일컫는 퇴계 이황이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곳으로 조선 선조7년(1574) 그의 학덕을 추모하는 문인과 유림에서 상덕사란 사당을 지어 그를 향사하였고 전교당과 동.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하였으며 선조8년(1575) 임금이 한석봉 친필인 '도산서원'의 현판을 사액하여 영남 유학의 본산이 되었다.

 서원의 정문을 들어서면 우측에 도산서당이 있고 좌측에는 농운정사가 있으며, 그 뒤로 올라가 진도문을 지나면 책을 보관하는 동.서의 광명실이 있고 그뒤로 서원의 주 건물로 전교당과 동.서재가 있다. 또한 전교당 뒤로는 퇴계의 위패를 모신 상덕사가 있고 주변에는 '도산12곡'의 판목이 소장된 장판각이 자리잡고 있으며, 1970년에 신축된 옥진각은 퇴계선생의 유물전시관으로 선생 생존시에 늘 사용하시던 문구류와 실내비품, 가까이 두고 즐겨 읽으시던 서책들을 보관, 전시하고 있다.
 
 도산서원 맞은편에 푸른 안동호를 배경으로 그림처럼 외딴섬이 서 있는데 이곳에 조선 정조16년(1792)에 임금이 평소에 흠모하던 퇴계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지방 사림들의 사기를 높혀주기 위하여 어명으로 특별과거인 '도산별시'를 치른 시사단이 있다. 도산서원을 둘러싼 울창한 소나무숲, 서원내의 고목들과 잔잔한 안동호의 경치가 한데 어우러져 사철내내 그 멋과 서정을 듬뿍 느낄 수 있다.  
 

도산서원(陶山書院)

문화재지정 : 사적 제170호

지 정 일 : 1969. 5. 28.

소 유 자 : 도산서원(陶山書院)

소 재 지 :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680

문화재 안내


 선조(宣祖) 7년(1574) 서원을 건립하여 퇴계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이듬해인 선조(宣祖) 8년(1575)에 한석봉(韓石峯)이 쓴 편액을 국왕이 하사하였으며, 광해군(光海君) 7년(1615)에 이르러 사림(士林)이 월천(月川) 조목(趙穆, 1524∼1606) 선생을 종향(從享)했다. 도산서원은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는 동시에 영남(嶺南) 유림(儒林)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었다. 대원군 서원철폐 당시 훼철되지 않고 존속된 전국 47개 서원 중 한 곳이다. 1969년과 1970년에 정부의 고적보존정책에 따라 성력화 대상으로 지정되어 대대적 보수 및 일부 건물(유물전시관인 玉振閣)의 신축이 이루어졌다.도산서원 도서관인 동서(東西) 광명실(光明室)에는 1300여 종 5000여 책의 장서가 소장되어 있다. 장판각에는 선생의 문집 책판을 비롯하여 총 37종 2790여 판이 보관되어 있다. 유물전시관에는 선생의 유품인 자리, 베개 등의 실내비품과 매화연(梅花宴)등 문방구 및 청려장, 투호, 혼천의 각종 서책 등이 일반에 전시되고 있다. 현재 안동시에서 관리사무소를 개설 운영하고 있다.

 


[도산서당]

선생께서 4년에 걸쳐 지으신 건물로 몸소 거처하시며 제자들을 가르치시던 곳이다.


[농운정사]

농운정사는 선생의 제자들이 공부하던 일종의 기숙사이다.선생은 제자들에게 공부에 열중하기를 권장하는 뜻에서 한자의 '공(工)'자 모양으로 집을 짓도록 하였다.공부하던 동편 마루를 '시습제(時習齋)'라 하고,휴식하던 서편 마루를 '관란헌(觀瀾軒)'이라 하였다.


[광명실]

책을 보관하는 서고인데 현판은 퇴계선생 친필이다.동,서 두곳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습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누각식으로 지었다. 현재1271종 4917권의 고서가 보존되어있다.


[동.서재]

도산서원의 유생들이 거처하며 공부하는 건물로 지어진 집이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데, 동편 건물을 '박약재' 서편 건물을 '홍의재'라 한다.


[장판각]

서원에서 찍어낸 책의 목판본을 보관하는 장소이다. 현재 선조 어필, 퇴계선생 문집, 유묵, 언행록, 병서,도산십이곡 등의 목판 2,790장이 보관되어 있다.


[상덕사] 보물 제211호

선생의 위패를 모셔놓은 사당이다. 퇴계선생의 위패와 제자인 월천 조목의 위패가 함께 모셔져 있다. 월천은 선생 곁에서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하였으며 선생께서 돌아가신 이후에는 스승을 대신하여 서원에서 제자들을 훈육하였으며 특히 청렴,강직함이 돋보인 수재이다. 매년 춘추(음력2,8월 中丁일)로 향사를 지낸다.


[역락서재]
퇴계선생의 제자인 사성 정지헌의 부친이 지헌을 선생에게 취학시킬 때 특별히 지어준 집으로현판의 글씨는 퇴계 선생의 친필이다.


※퇴계이황(1501~1570)

 퇴계 이황 선생은 현재의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나셔서 34세에 과거에 급제,예조판서,우찬성,
대제학등을 지냈고 사후에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칠십여 회나 벼슬을 사양하고 학문도야,인격도야,후진양성에 힘써 이 나라 교육 및 사상의 큰 줄기
를 이루었고 후대의 존경을 받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계몽전의』,『성학십도』,『도산십이곡』,『주자서절요』,『심경후론』등이 있다.

2007.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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