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

질문 불어라는 것이 언어인데 역사적인 배경과 어느나라들에서 사용되어 지는지 알려주세요.
비공개 조회수 2,609 작성일2020.01.29
불어라는 것이 언어인데 역사적인 배경과 어느나라들에서 사용되어 지는지 알려주세요. 
스페인, 캐나다-퀘백 이런 나라에서 쓰이는 언어로만 알고 있었는데..

프로필 사진

답변자님,

정보를 공유해 주세요.

2 개 답변
1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비공개 답변
우주신

2020.02.03.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
2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MIYA
초인
금융, 그래픽소프트웨어, 아르바이트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프랑스어는 대표적인 로망스어군 언어로서, 원어인 le français 의 발음은 [lə fʀɑ̃sε]인데, 보통 르 프랑세 라고 표기한다. 중국어, 스페인어, 영어와 더불어 유엔 공용어로 지정된 언어이다.

프랑스가 한국 한자어로 불란서(佛蘭西)로 표기되기 때문에 보통 불란서어(佛蘭西語)를 줄여서 불어(佛語)라고 흔히 부른다. 중국어로는 法语(fǎyǔ)라고 하는데, 구한말 시기에는 중국어의 표기를 차용하여 법어라고 불렀다.

프랑스, 캐나다, 벨기에, 스위스 등의 국가에서 모국어로 사용되며, 특히 서아프리카중앙아프리카 와 같이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에서도 공용어로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의외로 여러 화자 수 순위 자료에서는 프랑스어의 화자 수는 한국어의 화자 수 보다도 더 적은 것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 # 다만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 대 제2언어로 사용하는 사람의 비율로 따지면 제2언어로 사용하는 사람의 비율은 영어를 포함한 어느 언어도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압도적으로 높아서 두 경우를 모두 포함한 화자 수는 아랍어러시아어보다 더 많을 정도로 세계적인 언어이다.

프랑스어 사용 국가들의 모임은 프랑코포니라 한다

지역별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유럽: 프랑스, 벨기에 왈롱 지방 및 브뤼셀[5], 스위스의 로망드 지방, 룩셈부르크, 모나코, 안도라[6]

북미: 캐나다(연방 공용어), 캐나다 퀘벡 주, 캐나다 뉴브런즈윅[7], 프랑스령 생피에르 미클롱 섬, 미국 루이지애나

아프리카: 콩고 민주 공화국, 마다가스카르, 카메룬, 코트디부아르,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세네갈, 말리, 르완다[8], 기니, 차드, 부룬디, 베냉, 토고,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 콩고 공화국, 가봉, 코모로, 모리셔스, 적도 기니[9], 지부티, 세이셸, 상투메 프린시페[10]모로코[11], 알제리[12], 튀니지, 프랑스령 레위니옹

아시아: 레바논[13], 인도 푸두체리[14]

중남미: 아이티, 프랑스령 기아나, 마르티니크, 과들루프[15]

오세아니아: 바누아투, 누벨칼레도니,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에서는 소수의 사용자에 의해 사용되고 있으나 사실상 사멸 직전이다.

영어스페인어와 더불어서 세계에서 비교적 많은 인구가 쓰는 언어로, 스페인어가 중남미 지역에서 주로 쓰인다면 아프리카에선 프랑스어가 많이 쓰인다. 캐나다에서는 영어와 함께 프랑스어가 공식 언어다. 5대륙 모두에서 쓰인다고 할 수 있는 언어지만, 사실 서유럽캐나다 밖에서는 모어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다고 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모어 화자의 수가 많은 영어나 스페인어와는 다르게 제2, 제3언어로 많이 쓰이는 이유는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가 주로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이나 스페인의 식민지는 원주민을 몰아낸 땅(신대륙)에 백인들과 흑인 노예를 이주시키는 형식으로 '개척'되었고, 지금도 그 땅에는 그 후손이 다수 거주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이 해당되고, 스페인의 경우 멕시코,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국가들이 해당된다. 포르투갈이 지배한 브라질도 같은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프랑스의 식민지는 캐나다 정도를 제외하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등, 당시를 기준으로 해도 이미 많은 인구가 살고 있는 대륙에 위치하고 있었고, 현지인을 몰아내기 보다는 그대로 '지배'하는 모양이 되면서, 현지인들 사이에 통하는 '공용어' 정도로 자리잡은 것이다.

어쨌든 현재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채택한 나라는 29개국으로 영어 다음으로 막강하며, 프랑스어가 널리 쓰이는 모로코[17], 튀니지, 프랑코포니 멤버가 아닌 알제리까지 합하면 32개국이 넘는다.

중서부 아프리카의 경우, 수많은 토착언어[18]를 구사하는 사람들끼리 쓸 수 있는 중립적인 언어다.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모리타니, 지부티, 차드 등 북아프리카는 모어가 아랍어이지만, 식민지 시절의 영향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프랑스와의 외교, 또 프랑스어를 배우라는 프랑스의 지원과 상위, 중상층의 프랑스어 선호 덕에 상당히 널리 쓰이는 언어가 되었다. 이 중 몇몇 나라는 아랍 문화권이거나 이슬람이 강세라 아랍어를 통용언어로 쓸 수도 있겠지만, 아랍어 방언이 워낙 다양해서 같은 나라인데도 각 지역에서 쓰는 현지 아랍어 방언은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을 정도이고, 아랍어를 쓰지 않는 소수 민족들도 있어 결국 프랑스어를 쓰게 되었다.

프랑스어 사용자는 아프리카에서 집중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2014년 기준 진한 남색으로 색칠된 아프리카 프랑스어권의 인구는 약 3억7천만 명이며, 이는 2050년이면 약 7억 8천5백만 명에서 8억 3천 7백만 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19] 아프리카에서의 프랑스어 영향력은 워낙 막강해서 국경없는의사회의 에이전트나 의료종사자 면접에선 영어와 더불어 프랑스어 능력을 반드시 요구한다. 한편, 국경 없는 의사회의 약자 MSF 역시 프랑스어 Médecins Sans Frontières의 약자이긴 하지만, 이건 국경 없는 의사회가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전세계로 퍼졌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EU에서도 프랑스어는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와 함께 영향력이 있는 언어이기도 한다. 영어가 EU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그동안 영어로 회의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브렉시트로 인해 프랑스어가 다시 EU에서 영향력을 회복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더가디언(연설영상 포함) 2018년 3월 20일에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코포니의 날을 맞이하면서 해외에 있는 프랑스어 학습 기관을 지원해 프랑스어 교육 기회를 두 배로 확대하기로 발표했다.# 또한, 프랑스어권 25개국의 예술가, 지식인 100명은 마크롱 대통령에게 프랑스어 보호능력을 배가하라고 촉구했다.

피진어로서의 고대 프랑스어는 라틴어를 기반으로 형성되었으므로 당연히 관계가 매우 깊으며 프랑스어의 어휘는 대부분 라틴어에서 기원한 것이다. 당장 인삿말만 해도 Bonjour, Bonsoir, Bonne nuit의 bon, bonne는 라틴어 bonus, jour는 날~을 의미하는 라틴어 diurnum[22]에서, soir는 늦저녁을 뜻하는 라틴어 sera에서, nuit는 밤을 의미하는 라틴어 noctem[23]에서 기원하였다. 다만 라틴어 원어민의 후손들이 형성한 다른 로망스어들과는 달리 발음이 완전히 켈트-게르만식으로 변형되어 라틴어와의 발음 괴리는 심하다. 단, 프랑스어가 라틴어 후손인 만큼 라틴어에서 온 단어들이 아주 많다.

프랑스어 원어민의 조상 중 다수가 원래는 대륙 켈트어 원어민이었다. 그래서 프랑스어는 라틴어를 기반으로 형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켈트어 어휘가 얼마간 있다. 프랑스어를 배우다 보면 다른 유럽 언어들 기준으로는 상당히 생소한 기초어휘가 꽤 나오는데 이것들은 켈트어에 기반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aller(가다), battre(때리다), manteau(외투), petit(작은) 같은 단어들은 고대 켈트어에서 기원한 단어들이다. 켈트계 언어 중에서 국가단위의 공용어는 아일랜드어 하나뿐이고 그 아일랜드어에서도 영어가 더 많이 쓰이기 때문에, 오늘날 켈트어 원어민의 후손들이 쓰는 언어이자 켈트어 어휘를 가장 많이 쓰는 메이저 언어는 오히려 프랑스어이다. 또한 켈트어 때문에 프랑스어가 더 어려워지기도 했는데, 라틴어가 10진법을 쓴 반면 켈트어는 60진법을 썼기 때문에 70 이상의 숫자를 표기하는 프랑스어의 규칙은 굉장히 괴상하다. 오늘날 프랑스어의 괴상한 숫자표기법은 켈트어의 잔재라고 할 수 있다.

켈트어파에 속하는 갈리아어는 프랑스어의 제1기층언어(Substrat)로, 그 위에 덧씌워진 라틴 속어에 크게 4가지의 음운변화 현상을 일으켰다

프랑스는 기본적으로 라틴어에서 파생된 언어이고,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 갈리아 지방에서 쓰인 고대 갈로-로망어의 직계후손이지만, 파리에 사는 모든 프랑스어 원어민의 조상이 라틴어나, 켈트어나 갈로-로망어를 썼던 것은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프랑스어의 시대를 연 것은 서로마제국을 유린했었던 숱한 게르만 부족들 중에서도 지배층으로서 지금의 파리에 해당하는 위치에 번듯한 나라(프랑크 왕국)를 세운 뒤론 통치 상의 필요성 때문에 일찌감치 모국어인 고대 게르만어를 버리고 중간계층의 갈로-로망어를 받아들인 프랑크족이었다.

하지만 원래 대대로 쓰던 말을 버리는게 쉽지는 않았는지 상당수의 고대 게르만어 어휘들을 섞어썼고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있다. 다만 비율로는 표준 프랑스어의 약 20% 어휘는 고대 게르만어 계통로 분류될 지라도, 그 대부분이 너무 오래된 프랑크족의 사투리라서 현재까지 남아있는 독일어나 영어와 연관지을 수있는 정도로 유사한 단어의 수는 매우 적다. 예시) bleu(blau,blue), bateau(Boot,boat), haut(hoch,high)

최초의 프랑스어 사용례이자 프랑스어 문헌으로 손꼽히는 것은 842년 2월 14일 작성된 스트라스부르 서약이 유명하다. 당시 서프랑크 왕국동프랑크 왕국은 연합하여 중프랑크 왕국로타리우스 1세를 협공했다. 그는 아버지인 경건왕 루트비히가 죽은 뒤 프랑크 왕국 전체를 통틀어 자신을 왕국의 왕으로 선언하는 과실을 저지른다. 이에 서프랑크와 동프랑크가 협공해 841년 7월 25일 퐁트느와 전투에서 로타리우스 1세는 패하여 아헨으로 피신하고, 둘은 스트라스부르에서 동맹 맹약을 맺었고 이를 그자리에서 문서화한 것이 바로 스트라스부르 서약이다. 당시 서약은 서류상 내용은 라틴어로 적혀 있고, 두 왕이 선서한 내용만은 각 왕들의 말을 라틴어 번역 없이 그대로 옮겼다. 카를 2세의 말은 고대프랑스어로, 루트비히 2세의 말은 고고지독일어로 작성되어 문헌적 가치가 상상을 초월한다. 지방어에 불과했던 두 언어가 어떻게 라틴어에서 파생되어 변형되었는지 초기 원형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이기 때문이다.[31] 서류는 카를 2세의 친척이자 샤를마뉴의 외손자인 니타르트 후작이 자필로 작성했는데, 그는 최초로 프랑스어를 사용(기록)한 자라는 칭호를 갖고 있다. 니타르트는 후에 카를 2세의 상속과 관련된 서류 등을 기록으로 남긴다.

언어학에서 프랑스에게 붙여준 별명 중 하나인 방언의 왕국이 증명하듯, 16세기까지인 중기 프랑스어까지만해도 표준어가 없이 수많은 방언이 각지에서 사용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사용되던 언어는 수도가 위치한 파리 등지의 방언인 프랑시엥어(francien)였고, 왕궁에 드나드는 귀족이나 귀족에 소속된 문장관들은 모두 프랑시엥어를 사용할 줄 알았다. 그럼에도 당시 문학이 주로 생산되던 곳은 교회였기에, 라틴어 자료들이 여전히 월등히 많았고, 백성들을 위해 알기 쉬운 고대 프랑스어로 창작된 몇 개의 성가극이나 <롤랑의 노래>처럼 구전되던 옛 전설을 기록한 작품들, 크레티앵 드 트루아의 아서 왕 연작 등의 자료는 그에 비하면 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13세기 프랑스 남부의 카타리파를 진압하면서 발루아 왕조는 봉건 영주 통합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이에 프랑수아 1세는 빌레르-코트레 칙령(L'ordonnance de Villers-Cotterêts)을 발표해 공적인 자리에서의 모든 방언 사용을 금지해버린다. 봉건 영주들이 각 지방어 사용을 자제하게 되면서 프랑시엥어가 지방 귀족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16세기까지를 중기프랑스어의 시대로 규정한다. 이 시기동안 생산된 문헌사료의 양은 이탈리아나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방대한데, 당시 유럽 국가들처럼 프랑스 역시 인간의 모든 사회활동과 행정적 업무를 문서로 남겼기 때문이다. 특히 문학에 있어서는 라틴어에서 본격적으로 독립하기 시작하기는 했지만서도 여러 변형이 아직 정리되지 못하기도 했으며 작가들이 자기네 지방에서 사용하던 용어를 작품에 올리면서 해석이 막히는 경우 등 아직 혼란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대재상 리슐리외의 전적인 후원 아래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설립된다. 당시 중앙집권을 강화하던 루이 14세에게 언어의 통합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강조하였고, 왕의 지원으로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사전 편찬은 날개를 달게 된다. 당시 사전에 수록할 표준어휘와 백성들에게 가르칠 표준문법을 정리했는데, 표준어휘를 정하는게 특별한 게 없고 당시 회원들의 토론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당시 회원 대부분은 귀족신분이었던 탓에 지방 백성들이 쓰던 표현들은 당연히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었다. 사전을 만드는 작업 자체도 품이 많이 드는 탓에 여러 재정난을 이유로 몇번 중단되기도 했으며, 한 회원은 리슐리외가 하도 닦달하는 탓에 제대로 검수도 하지 못하고 사전을 냈다고 회상했다.

언어적으로는 줏대 없는 가위질에 문법이 잘려나갔지만, 문학적으로는 가장 풍성한 시기였다. 시인 롱사르를 필두로 플레이아드파가 결성되었고 이들은 고전 문법인 알렉상드랭을 부활시킨다. 모차르트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스 고전과 라틴어 문학에서 벗어나 프랑스어의 고급화, 문예화를 꿈꿨던 그들은 12격음율인 알렉상드랭[32]을 다시 사용해 적극적으로 작품을 만든다. 아카데미와 반대로 이들은 프랑스어는 물론 각종 지방어, 이탈리아어, 라틴어 등에서 어휘를 적극 차용해 문학적 언어로서의 프랑스어를 더욱 풍부하게 했다. 알렉상드랭은 이후 희곡작가들에게 적극적으로 사용되게 이르는데, 3대 대작가로 꼽히는 코르네이유가 적극 사용했고 그의 뒤를 밟아 라신, 몰리에르도 적극 사용했다.

2020.02.08.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