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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부모님과의 관계 안에서 아가페적 사랑에 관하여
비공개 조회수 10,410 작성일2016.05.31

부모님과의 관계 안에서 아가페적 사랑에 관해서 A4용지로 한페이지 정도로 자신의 생각을 포함해서 적어주세요. 오늘안에 가능하시면 오늘까지 좀 부탁드립니다. ㅠㅠ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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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성경에서 아가페적 사랑에 관한 정의부터 살펴보고 부모와 자녀간의 아가페 사랑을 논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습니다.

 

그리스어 성경(신약)에서 주로 사용하는 사랑에 관한 단어들은 아가페, 필리아, 그리고 스토르게에서 파생된 두 단어 등의 변화형들인데 (이성 간의 사랑을 의미하는 에로스는 한번도 사용되지 않았음). 다른 용어들보다도 아가페가 더 자주 나옵니다.


명사 아가페와 동사 아가파오에 관하여 바인의 신구약 단어 해설 사전(Vine’s Expository Dictionary of Old and New Testament Words)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사랑이 불러일으키는 행동을 통해서만 알 수가 있다. 하느님의 사랑은 자신의 아들을 선물로 주신 것에서 볼 수 있다. (요한1 4:9, 10) 그러나 분명히 이것은 자기만족의 사랑이나 애정이 아니다. 즉 그 대상에게 어떤 뛰어난 점이 있어서 생겨난 사랑이 아니다. 로마 5:8.

 

그것은 의도적인 선택을 통한 하느님의 의지의 행사였는데, 하느님 자신의 본성에서나 찾을 법한 사유 외에는 이렇다 할만한 사유 없이 행사된 것이다. 신명기 7:7, 8 비교.”1981, 3, 21.

 

동사 필레오에 관해서 바인은 이렇게 해설합니다. “[그것은] 이러한 점에서 아가파오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즉 필레오가 부드러운 애정에 더 가까운 표현이라는 점이다. ··· 또 삶의 진정한 목적을 잊어버리고 어떻게 해서든 생명을 보존하려는 부당한 욕망으로 생명을 사랑하는(필레오) 것은 주의 책망을 받게 된다. 요한 12:25. 반면에 베드로 전서 3:10에서 사용된 의미로 생명을 사랑한다(아가파오)는 것은 삶의 참으로 유익한 면들을 고려한다는 말이다. 여기에는 필레오라는 말이 상당히 부적합할 것이다.”3, 21, 22.

 

제임스 스트롱의 완벽 성서 성구 사전(Exhaustive Concordance of the Bible)의 그리스어 사전(1890, 75, 76)에서는 필레오 제하에 이렇게 말합니다. “친구가 되다([어떤 개인이나 대상을] 좋아하다), 즉 애정을 갖다(기분이나 감정이 관련된 개인적인 애착을 가리킴. 반면에 [아가파오]는 의미가 더 광범위하여, 특히 원칙·의무·예법상의 일로서 판단한 것, 의지를 통해 의도적으로 동의한 것을 내포하는 말이다. ···).”


그러므로 아가페에는 원칙의 인도 혹은 지배를 받는 사랑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여기에는 애정과 좋아하는 마음이 포함될 수도 있고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가페에 애정이나 따뜻함이 포함될 수 있다는 점은 많은 구절에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요한 3:35에서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신다[아가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5:20에서는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계시다[필레이]’고 말씀하셨습니다.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에는 많은 애정이 곁들여져 있습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이렇게도 설명하셨습니다. ‘나를 사랑하는[아가폰] 사람은 내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아가페테세타이]. 그리고 나도 그 사람을 사랑하겠습니다[아가페소].’ ( 14:21)

 

아버지와 아들의 이러한 사랑에는 그처럼 사랑스러운 사람들에 대한 부드러운 애정이 곁들여져 있습니다. 여호와 하느님의 숭배자들은 그분과 그분의 아들을, 그리고 서로를 그와 같은 방식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21:15-17.


그러므로 아가페가 원칙을 존중한다는 면에서 다르기는 하지만,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감정이 없다면 냉정한 공의와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정이나 기분에 좌우되는 것은 아닙니다. 원칙을 무시하는 일이 결코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애정이나 좋아하는 마음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아가페를 올바로 나타내는데, 그 사람들의 복지를 위하여 그렇게 합니다. ( 6:10) 그들은 그런 다른 사람들에 대해, 애정이 느껴지지는 않지만, 의로운 원칙이 허용하고 인도하는 범위까지 그것이 허용하고 인도하는 방식으로 진심에서 동정심을 느끼고 진지하게 염려합니다.

 

그러나 아가페가 원칙의 지배를 받는 사랑을 가리키기는 하지만, 원칙도 좋은 것이 있는가 하면 나쁜 것도 있습니다. 나쁜 원칙에 인도되어 그릇된 아가페를 표현하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아가파테], 그것이 여러분에게 무슨 영예가 되겠습니까?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랑합니다. 또 여러분에게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 여러분이 선을 행한다면, 그것이 여러분에게 과연 무슨 영예가 되겠습니까? 죄인들도 그와 같이 합니다. 또한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이자 없이 빌려 준다면, 그것이 여러분에게 무슨 영예가 되겠습니까? 죄인들도 그대로 되돌려 받기 위하여 죄인들에게 이자 없이 빌려 줍니다.” ( 6:32-34)

 

그러한 사람들의 행동의 기초가 되는 원칙은 내게 선을 행하라, 그러면 나도 네게 선을 행하겠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와 함께 일했던 한 사람에 관하여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였기[아가페사스] 때문에 나를 버[렸습니다].” (딤후 4:10) 데마가 세상을 사랑하게 된 것은 세상을 사랑하면 물질적 유익을 얻게 될 것이라는 원칙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이 빛보다 오히려 어둠을 사랑한[에가페산] 것입니다. 그들의 행위가 악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악한 일을 행하는 사람은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기 행위가 책망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 3:19, 20)

 

어둠이 그들의 악행을 덮어 가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진리 혹은 원칙 때문에 그들은 어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여러분의 적들을 사랑하라[아가파테]’고 명령하셨습니다. ( 5:44) 그 원칙을 세우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신데,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한 바와 같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자기의 사랑[아가펜]을 추천하십니다. ··· 우리가 적이었을 때에 하느님의 아들의 죽음을 통하여 하느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한 지금은 더욱더 아들의 생명에 의해 구원받을 것입니다.” ( 5:8-10)

 

그러한 사랑이 표현된 두드러진 예는 하느님께서 다소의 사울을 대하신 경우인데, 나중에 그는 사도 바울이 되었습니다. ( 9:1-16; 딤전 1:15) 그러므로 적들을 사랑하는 우리의 사랑은 하느님이 세우신 원칙의 지배를 받아야 하고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는 가운데 표현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그 사랑에 따뜻함이나 애정이 곁들여져 있는가 여부와는 무관합니다.

 

인류에 대한 여호와 하느님의 사랑은 자녀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 5:45) 그분은 그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면 아무것도, 그분에게 아무리 값비싼 대가가 요구되는 것이라도 아끼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사랑은 우리가 느끼거나 표현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능가합니다. ( 2:4-7; 55:8; 11:33)

 

그분은 인류를 위해서 최대의 사랑을 나타내시어 부모로서 해 줄 수 있는 가장 사랑에 넘친 일을 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충실한 독생자의 생명을 주신 일이었습니다. ( 3:16) 사도 요한은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고 기술하였습니다. (요일 4:19)

 

따라서 그분은 사랑의 근원이십니다. 요한의 동료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술합니다. “의로운 사람을 위해서 죽는 사람은 거의 없고, 선한 사람을 위해서 감히 죽는 사람은 혹시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자기의 사랑을 추천하십니다.” 5:7, 8; 요일 4:10.

 

사랑은 그릇 인도될 수 있다

 

따라서 올바른 방향의 진정한 사랑을 갖는 것은 하느님의 영을, 그리고 그분의 말씀에서 나오는 지식을 추구하고 따를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예를 들어, 부모라면 자기 자녀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변질되거나 감상적인 생각 때문에 그릇 인도되어서 부모는 아이에게 무엇이든지 다 해 주고 거절하는 법이 없게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징계를 하거나 때로는 실질적인 벌을 주어야 하는 부모의 권위를 행사하지 않게 될 수 있습니다. ( 22:15) 사랑이라고 여기며 나타내는 그런 사랑이 사실은 집안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는데, 이것은 이기심입니다.

 

성서에 의하면 그러한 부모는 사랑이 아니라 미움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녀의 생명을 구해 줄 행로를 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3:24; 23:13, 14.

 

이것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아가페 사랑이 아닙니다. 경건한 사랑은 다른 사람을 위하여 좋고 유익한 것을 행하게 해 줍니다. ‘사랑은 세워 준다.’ (고전 8:1) 아가페 사랑은 감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굳건하고 강하고 경건한 지혜의 인도를 받는 것으로서, 무엇보다도 순결하고 올바른 것에 고착합니다. ( 3:17)

 

따라서 부모는 성경의 정확한 지식에 근거한 사랑(아가페. 이하 같음)을 말과 행실로 나타냄으로써 아가페 사랑이 무엇인지 자녀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성경에 나오는 하느님의 명령과 원칙들을 명확하게 알고 있어야 하며 그것들을 솔선수범하여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인내하고 있는 것은 징계를 위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아들처럼 대하고 계십니다.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 더욱이, 우리에게는 육신의 아버지가 있어서 우리를 징계하였으며, 우리는 그를 존경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적 생명의 아버지께는 더욱더 복종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육신의 아버지는 자기에게 좋아 보이는 것에 따라 몇 날 동안 우리를 징계하곤 하였지만, 그분은 우리가 그분의 거룩함에 참여하도록 우리의 이익을 위하여 그렇게 하십니다. 사실, 어떤 징계나 당시에는 기뻐 보이지 않고 근심스러워 보이지만,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받은 사람들에게 평화를 이루는 열매, 곧 의를 맺게 합니다.” 12:7-11.

 

사실 오늘날 도덕 기준이 모호한 세상에서 성경 원칙들을 제대로 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그것들을 실천하면서 자녀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원칙에 근거한 아가페적 사랑을 나타내려면 부모는 부지런히 그러한 지식을 배워서 확고한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신명기 6: 5-9)

 

많은 부모들은 감정에 치우친 나머지 잘못된 사랑을 자녀들에게 나타내며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자녀 징계를 소홀히 하고 자녀를 다른 기관(학교, 학원, 기타 등)에 맡깁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자녀들이 올바른 원칙, 기준도 모르고 자라게 되고 아가페 사랑이 무엇인지도 배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가 생명의 수여자이신 창조주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게 도울 막중한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잠언 1:8) 그렇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녀가 영적으로 발전하도록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가족관계 내에서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성경 원칙입니다. 따라서 자녀는 성경 원칙에 상충되지 않는 한 부모에게 순종함으로써 원칙에 근거한 사랑 아가페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아가페 사랑은 학습을 통해 정확하게 알게되며 실천을 통해 비로소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많은 시간을 노력을 요구하며 그것을 소유한 자는 진정으로 비이기적인 참 사랑으로 참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2016.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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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성경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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